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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73화 (67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73화

서준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조나단 윌 감독은 완성된 시놉시스를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대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줄거리처럼 중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쓰여진 시놉시스에 캐릭터가 뱉을 대사와 장면을 설명하고 움직임을 지시할 지문을 덧붙여야 하는 일이었다. 90분~120분 정도의 분량으로. 물론,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선 이 대사가 나으려나…….”

겨우 일주일이기는 하지만 천재적인 배우와 열띤 토론과 회의와 싸움(?) 끝에 만들어진 시놉시스이니만큼, 그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본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써봤는데 어때?”

그 다른 사람들에는 한국에 있는 천재적인 배우도 있었다.

-괜찮네요.

조나단이 보낸 몇 페이지의 대본을 읽어본 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조나단이 활짝 웃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아니, 꽤 자주 조나단 윌은 서준에게 한 장면이 완성될 때마다 대본을 보냈다.

“이번 장면에선 이렇게 해봤는데…….”

-좋네요. 잘 표현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장면은 어때? 좀 이상한가?”

-아뇨. 딱 좋아요. 조나단.

이상하게도,

“으아아아. 준. 이 부분 대화 좀 이상하지 않아?”

-괜찮은데요?

모든 질문에 괜찮다는 대답만 들려왔다.

통화를 하고 있던 조나단이 눈을 끔벅이며 이번에 서준에게 보낸 대본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글자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보였다.

“……이게?”

-네. 잘 썼는데요. 조나단. 저 이제 저녁 먹어야 해서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조나단도 얼른 자세요. 지금 LA 새벽이잖아요. 대본 열심히 쓰는 건 좋지만, 건강도 챙기면서 쓰세요.

한없이 가벼운 서준의 대답.

그게 조나단 윌 감독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 * *

“시놉시스를 쓸 때는 그렇게 아니라고 말하던 준이 괜찮다고만 하고 있다니까요?!”

조나단은 안전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나 초조한지 다리를 덜덜덜 떨고 있었다.

“실망한 게 분명해요! 시놉시스는 잘 적었지만 대본은 쓰레기 같으니까! 이렇게 적어도 형편없고 저렇게 적어도 형편없으니까 아예 신경을 안 쓰게 돼버린 게 분명해!”

이제는 아예 제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쥐어뜯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이 있었다면 머리를 박아댔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으아아아! 준을 실망시키다니…… 이번 영화는 망했어! 망한 거야!”

라이언 윌은 조나단의 한탄을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보냈다. 시선조차 보고 있던 책에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역시나. 쓸데없는 것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도 조카이니 한마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준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럴 리가 없어요!”

단번에 반박이 돌아왔다.

“아니, 어떻게 이게 괜찮을 수가 있어요? 이렇게 허접한데! 봐봐요. 삼촌. 여기 이 부분 대화. 와! 내가 적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썼지? 차라리 중학교 때 적었던 대본이 더 잘 쓴 것 같지 않아요? 아, 차라리 그걸 가져다 쓸까?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어쩌지? 으아아아! 진짜 망했어! 망했다고……!”

바닥을 뒹굴 기세인 조카를 보며 라이언 윌이 말했다.

“나가.”

* * *

“/내글구려병인가……./”

-/내그……/ 네?

휴대폰 건너에서 들려오는 영어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지금 통화 중인 사람은 마린사의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팀의 직원 중 한 명으로, 대본을 쓰는 작가이자 감독인 조나단 윌 감독의 케어를 맡은 사람이었다.

서준이 LA의 라이언 윌의 저택에서 조나단과 한참 시놉시스로 즐겁게(?) 회의를 할 때, 필요한 자료들이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모아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그런 담당자가 조나단 윌 감독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 코코아엔터에 연락한 것이었다. 대본에 관해서라면 아무래도 서준과 통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지금 서준과 통화하고 있었다.

“자기 글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뭘 써도 이상하다고 느끼는 때랄까요.”

지인들 중에 작가들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나도 몇 번 써봤고.’

조나단 같은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거울]을 각색하고 [MOEB-436]의 대본을 쓰면서 이게 정말 최선일까? 하는 고민은 한 적이 몇 번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 경우가 꽤 있긴 하죠.

그제야 이해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이라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그렇다면 리는 정말로 조나단 감독님의 대본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걱정이 섞인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덧붙였다.

“안 괜찮다고 생각했으면 대본 보자마자 바로 LA에 갔을 거라고 감독님에게 전해주세요,”

서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담당자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듯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렇게 전할게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

“별말씀을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반대로 자기 글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기도 있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오히려 자신감이 가득한 그때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땐 진짜 LA로 가야 할지도.’

작게 웃은 서준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네. 알겠습니다. 아 참. 연락한 김에 미리 말씀드리면 되겠네요.

담당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고편까지는 아니지만, 진 나트라1이 나올 거라는 암시가 담긴 짧은 영상을 쿠키영상으로 넣기로 결정됐습니다.

“쿠키영상이라면…… 1월에 나오는 영화 말인가요?”

-네. 매드해터에요.

시즌2의 새로운 히어로, [매드해터]

그 영화가 내년 1월 개봉될 예정이었는데 날짜로 치면 약 한 달쯤 남았다.

생각보다 빠른 일정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러면 정말로 내년에 [진 나트라1(가제)]가 개봉할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하.하.하. 이쪽도 급해서 말이죠.

시즌1의 중심이 레드본이라면 시즌2의 중심은 진 나트라.

마린사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뒷말을 삼킨 담당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면 미국으로 오셔야 할 수도 있어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확실히 정해지면 소속사에 연락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리.

진심이 가득 담긴 담당자의 정중한 인사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 * *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용 연습실.

“연락은 아직 안 왔지만 그렇게 되면 내년 1학기에 촬영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될 수 있으면 여름방학 때 찍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마린사는 내년에 [진 나트라1(가제)]를 개봉하려는 의지가 아주 가득한 것 같았다.

‘내년에 2학년 1학기 수업을 들으려고 했는데…….’

역시 촬영과 학업 병행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둘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작품 출연으로 강의를 듣지 않고도 출석을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한예대에 입학한 의미가 없었다.

“계절학기 강의를 듣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겠네. 아, 한예대에 사이버강의는 없어? 사이버강의라면 미국에서도 들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아무래도 실습이 많은 연기과니, 사이버강의는 생각도 안 해본 서준이었다.

“잠시만요. 물어볼게요.”

서준이 휴대폰을 꺼냈다.

<주희야.

<연기과 전공강의 중에 사이버강의 있어?

이런 건 역시 정보에 빠삭한 양주희에게 묻는 것이 최고였다.

>양주희: ㅇㅇ 3, 4학년 강의지만.

대답도 빨랐다.

>양주희: 싸강 들으려고?

>양주희: 또 촬영하나 보네ㅋㅋㅋ

추리력도 좋았고.

서준이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ㅋㅋㅋ그렇게 됐어.

<3, 4학년 강읜데 나도 들을 수 있을까?

>양주희: ㅇㅇ 3, 4학년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양주희: 수준이 그쯤 돼야 들을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럼 인기 많겠네.

<수강신청 힘들겠다ㅠ

>양주희: ㄴㄴ 수업 내용이랑 시험이 엄청엄청 빡세서 인기는 별로 없어.

‘엄청’이란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갈 정도면 정말 힘든가 보다.

>양주희: 근데 넌 걱정 안 해도 될걸ㅋㅋㅋ

>양주희: 교양 싸강 목록도 보내줄까?

<그럼 고맙지!

>양주희: ㅇㅋ

휴대폰을 보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1학기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

최태우가 자기가 다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걱정되는 듯 서준에게 물었다.

“근데 촬영하면서 수업 들으면 안 힘들겠어?”

“괜찮아요.”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힘들면 바로 말해줘.”

“네. 태우 형.”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서…… 팬미팅 말인데.”

오늘 코코아엔터에 온 건 마린사의 일뿐만이 아니라 팬미팅에 대해서도 회의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팬미팅에 서준도 들뜬 얼굴로 최태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2월 15, 16, 17일 금토일 사흘 동안 진행될 예정이야. 팬미팅 개최는 1월 초에 알릴 예정이고 티켓팅은 1월 중순. 장소도 정해졌어.”

서준은 최태우가 내민 파인패드로 대관한 팬미팅 장소의 안과 밖, 무대와 관객석을 살펴보았다.

‘2월이라…….’

갑작스럽게 눈이라도 내리면 어쩌나, 한파라도 몰아치면 어쩌나.

오들오들 떨 새싹들이 걱정된 서준은 생의 도서관에서 적당한 능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뭐, 이상기온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추운 날씨 정도는 괜찮을 거다.

“날씨가 추우니까, 팬분들이 즐겁게 보고 가실 수 있게 잘 살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알았어.”

“근데 2월이면 진 나트라1이 나오는 거 다 알고 계시겠네요.”

“그러네. 엄청 놀라겠다.”

최태우의 말대로, 새해부터 팬미팅과 [진 나트라1(가제)]의 소식에 깜짝 놀랄 새싹들이 떠오른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얼마 후.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종강을 하고 겨울방학을 맞이한 서준은 언제나처럼 대본을 읽고 있었다.

내년 상반기쯤이 될 [진 나트라1(가제)]의 촬영 때문에 새로운 작품에 출연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에 드는 대본이 있으면, 그리고 만약 제작진 쪽이 괜찮다면 [진 나트라1(가제)]의 촬영 이후로 스케줄을 잡아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제작진 쪽은 이서준이 출연만 해준다면 몇 년이고 촬영을 미룰 생각이 가득하겠지만 말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에 서준이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들었다며?

조나단 윌이었다.

민망함이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 좀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네.”

-으아아아…….

안 봐도 머리 쥐어 싸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많이 고민했어요?”

-그냥 뭐랄까…… 옆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 없이 혼자 쓰게 되니까 불안하다고 할까, 믿음이 없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어.

읽던 대본을 내려놓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나단은 잘 쓰고 있어요.”

-……그래. 들었어. 마음에 안 들었으면 곧바로 LA로 찾아왔을 거라는 말.

담당자가 잘 전해준 모양이었다.

휴대폰 건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허탈함이 조금 담겨 있긴 했지만 분명 웃음소리였다.

-그거 들으니까 준 너랑 있었던 일주일이 생각나는 거 있지? 그때 얼마나 갈려 나갔는지를 떠올리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세상에! 내가 내 손으로 무덤을 파고 있었다니……! 하고 말이야.

“하하하.”

서준에게는 즐거웠던 시간이 조나단에게는 힘들었나 보다.

뭐, 마지막에 반 시체였던 조나단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때보다는 천국이지! 하면서 적으니까 술술 적히더라고.

“어쩐지 한동안 대본을 안 보낸다고 했어요.”

툭하면 대본 몇 페이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던 조나단의 연락이 뚝 끊긴 것도 담당자의 전화통화를 한 후였다.

“그래서 좀 아쉬웠는데…….”

아.하.하.하.

또 갈려 나갈 뻔했던 조나단이 어색하게 웃자,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대본은 완성된 거예요?”

-아니, 아직 완성된 건 아닌데. 제목이 정해져서 알려주려고.

오.

감탄과 함께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제목! 언제 나오나 했어요.”

-그렇지? 다른 히어로영화처럼 히어로 이름을 제목으로 쓸까 고민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이게 좋겠더라고. 마린사에서도 연결성이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

조나단 윌 감독의 설명에 서준 리가 눈을 반짝였다.

“뭔데요?”

휴대폰 건너,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고 배우가 낮은 목소리로 따라 읊조렸다.

[Shadow & Knight 쉐도우&나이트]

새로운 히어로가 탄생할 영화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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