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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65화 (66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65화

10년 전 느꼈던 감정이, 아니, 그때보다 강렬한 감정이 이미연을 뒤덮었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지만(정말로 후원한 적도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레이와 단순한 후원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닌,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년 전 영화관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1]을 보고, 오늘 여기서 [오버 더 레인보우2]를 본 건 정말로 행운이 아닐까 싶었다.

마치 생생한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기분이랄까.

이미연과 박성아, 그리고 1편을 봤던 새싹들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이, 스크린이 어두워졌다. 영화가 끝난 것이었다.

아…….

아쉬움의 한탄이 흘러나왔지만 정말로 끝났다는 듯, 1편의 OST [오버 더 레인보우]가 흘러나오며 엔딩 스크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영관 내부는 여전히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스크린에서만 나오는 빛을 통해 아직 남아 있는 장면, 그러니까 쿠키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새싹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있겠죠? 쿠키영상? 스포일러 피하느라 있는지 없는지도 못 알아봤거든요.”

“저도요. 그래도 아직 어두운 걸 보니까 있나 봐요.”

“2편 기념 티켓 보셨어요?”

“엔딩크레딧 올라오자마자 봤죠. 그 바람에 울컥해 버렸어요. 이제 휴지도 없는데…….”

“여기. 저 많이 챙겨왔어요.”

새싹들은 오늘 처음 본 옆 사람과 마치 십년지기 친구처럼 작게 속닥거리며 감상을 나누거나 소리 없이 세수하듯 펑펑 흘러나왔던 눈물을 열심히 닦아내며 쿠키영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일부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감상하며 엔딩스크롤에 올라오는 이름들을 바라보며 [SEOJUN LEE]라고 나올 자신들의 배우의 이름을 찾았다.

“……응?”

그런데 엔딩크레딧의 순서가 이상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제작사인 웨일 스튜디오라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그 뒤를 배급사와 영화 제작을 도운 회사들과 담당자들의 이름이 올라오는 것은 많이 이상했다.

“원래 배우 이름이 제일 먼저 뜨지 않아?”

“그러게.”

의아함에 고민할 틈도 없이 이미연과 박성아의 입이 다물렸다. 둘뿐만 아니라 다른 새싹들도 그랬다.

엔딩 크레딧이 사라지고 쿠키영상이 떴기 때문이었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눈물에 젖은 눈동자를 빛냈다.

* * *

화면에 나온 장소는 익숙했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풍성하고 푸르른 잔디밭이 펼쳐진, 다운록과 스타필 사이에 있는, 그레이와 레베카, 조지가 처음 만났던 그 공원이었다.

산책 나온 사람들과 피크닉 나온 가족들 사이.

10년 전, 한바탕 펑펑 울고 퉁퉁 부은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던 그 장소에 세 아이가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그림자 한 점 없는 밝은 얼굴이었다.

그레이가 가져온 샌드위치와 과일을 레베카와 조지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근데 만약에 내가 슬럼프에서 못 빠져나왔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다큐멘터리 말이야.”

샌드위치를 먹던 레베카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맞아! 나도 솔직히 그게 궁금했어. 그레이가 슬럼프를 겪는 장면을 조지 네가 방송으로 내보낼 것 같지는 않았거든!”

그렇지.

이미연과 박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라면 시청률이나 화제성, 그리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그레이가 좌절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장면을 방송을 내보내지 않을 것이었다.

“뭐, 그레이가 이겨낼 거라고 믿고 있기도 했고,”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느라 피곤에 쩐 조지가 매트에 옆으로 누워 와작와작 과일을 씹으며 대답했다. 그 믿음에 그레이가 민망한 듯 웃었고, 레베카는 ‘역시!’ 하고 활짝 웃었다.

“힘들겠다 싶으면 촬영분을 전부 불태우려고 했지.”

“……응?”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조지에 그레이와 레베카가 멍한 얼굴로 변했다.

……조지야?

삼총사의 우정에 흐뭇하게 웃고 있던 관객들도 그랬다. 다들 동공지진이 일으키며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발언을 내뱉은 조지를 바라보았다.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눈을 몇 번 깜빡이던 레베카가 아하핳 웃었다.

“에이, 농담도! 진짜 조지는 농담도 진담같이 한다니까!”

“그러게. 깜짝 놀랐어. 촬영분을 불태우면 큰일이잖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레베카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잘릴 거고!”

“뭐, 불태운다는 말은 비유이긴 해.”

평화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조지에 이미연과 박성아가 작게 웃었다. 그럼 그렇지. 농담도 참 진담같이 한다.

“최대한 사고처럼 보이게 없앨 생각이었어. 잃어버렸다거나 자료가 날아갔다거나. 조연출도 그레이 네 팬인 데다가 친한 후배라서 같이 계획해 뒀었는데, 필요 없게 됐네.”

……진심이었구나. 우리 조지.

깊은 우정에 감탄해야 할지, 막 나가는 행동에 탄식해야 할지. 관객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다행히도, 관객들 대신 조지를 혼내주는 이들이 있었다.

“……조지 너 진짜!”

“조지! 그러면 안 돼!”

짜악! 짝!

레베카와 그레이가 조지의 다리와 팔을 쳤다.

“악!”

팔과 다리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꿈틀거리던 조지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으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가끔 이렇게 노는 것도 좋은데?”

레베카와 그레이도 아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다음 투어 끝나면 또 놀러 오자. 그레이! 조지!”

“응. 그러자.”

화사한 햇살과 산들바람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삼총사를 스쳐 지나갔다. 보는 사람마저도 행복해지는 모습이었다.

오래도록 보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아쉽게도 카메라는 천천히 삼총사에게서 멀어져갔고, 이내 어두워졌다.

다시 새하얀 글씨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2편의 OST [포 마이 프렌드]로 바뀌어 있었다.

“서준이 이름 나왔어?”

“아니. 아직.”

여전히 출연했던 배우들의 이름은 올라오지 않았다. 게다가 상영관도 아직 어두운 상태였다.

“설마 쿠키영상이 하나 더 있나?”

“그런가 봐!”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2개라니!

“3편 예고일까요?”

“3편! 10년 뒤라도 좋으니까 나왔으면 좋겠어요. 30대의 서준이라니……!”

“……!”

두근두근한 얼굴로 모두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에 화답하듯 엔딩크레딧이 사라지고 쿠키영상이 시작되었다.

* * *

두 번째 쿠키 영상의 장소도 관객들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전 스크린으로 본 장소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LA 자선 연주회의 대기실.

그레이가 다큐멘터리와 연주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장소였다.

“……나를 위한 연주회라고?”

먹먹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레이에 조지와 레베카가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이 자선 연주회는 너를 위한 연주회야.”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하고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 누군지 알겠어?”

레베카의 말에 그레이는 멋진 연주를 보여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이내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고개를 저었다.

관객들이 눈을 끔벅였다.

……편집 실수인가? 왜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거지?

모두 이다음 대사도 알고 있었다.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레이 바이니’가 후원했던…….

“네가 후원했던 분들이야.”

“……응?”

“네가 10년 전부터 후원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눈을 끔벅인 ‘그레이’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였다. 카메라는 ‘그레이’를 클로즈업했다.

파삭-!

완벽했던 ‘그레이 바이니’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사이로 천천히 ‘진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컷 사인은 들리지 않았고 촬영은 계속되는 중이었음에도.

몸과 마음을 삼켜 버릴 듯한 거대한 감정을 더 이상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그레이 바이니’는,

‘서준 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서준 리’는 그 어떠한 꾸밈도 없고 연기도 아닌 순수한 감동과 벅참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서준의 팬인 ‘새싹들’이 그 확연한 변화를 모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왜……?’

새싹들이 촬영 중임에도 ‘그레이 바이니’에서 ‘이서준’으로 돌아와 버린 배우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다른 배우도 아니고 서준은 이런 실수를 할 배우가 아니었다.

그때,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래. 준 네가 10년 전부터 후원하던 분들이야.”

……!!

캐서린의 말에 쿠키영상을 보고 있던 새싹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충격적이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이…… 정말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저절로 조금 전, 서준의 모습도 떠올렸다.

새싹들은 서준이 연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촬영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그리고 연기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화면 속 서준이 촬영 중에 자신도 모르게 연기하던 배역에서 빠져나올 정도로, 정말 크게 동요했고 감격했으며 감동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배우의 반응에 새싹들까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감독님?”

떨리는 서준의 목소리에 사라 로트 감독이 웃으며 대답했다.

“준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준비 기간이 1년이나 됐잖아. 길어진 김에 이런 이벤트를 기획해 봤어.”

“그럼 저기 앉아 있는 모든 분들이…… 그런 분들이에요?”

“아니. 전부는 아니고. 오고 싶어 하셨지만 못 오시는 분들도 계셨으니까. 그래도 대부분은 준이 후원한 사람들이야.”

화면 속 서준이 감탄하는 것처럼 새싹들의 입에서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그레이’와 관련된, 엑스트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레이 바이니’가 만난 사람들도.”

“……네?”

……예?

팬들의 표정이 배우와 같은 표정으로 편했다.

“노인 음악가분은 원래 노숙자였는데 네가 준 기부금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대. 그리고 세 악사분은 알코올중독자였는데 음악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 린다 가족의 이야기도 그래.”

이어지는 설명에 새싹들은 입만 쩌억 벌리고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감독님…….’

원래부터 음악가였던 듯 즐겁게 연주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원래는 노숙자였고,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그럼…… 공동묘지도……?”

“……맞아. 그것도 비슷한 사연을 각색한 거야.”

“가족분들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전해 달래.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 달라고 하셨어.”

……!!

영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도 눈물이 쏟아졌던 사연에 그런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춰 버릴 것만 같았다. 영화 보는 내내 흘러서 더 나올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다시 새싹들의 얼굴을 흥건하게 적셨다.

스크린 속 서준도 팬들과 같은 마음인 듯 보였다.

자잘하게 떨리는 속눈썹과 처연한 검은색 눈동자, 그리고 붉어진 눈시울이 서준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오늘 무대에서 연주하신 분들도…….”

“맞아. 너한테 들려주고 싶다고 열심히 연습하셨어.”

화면에 무대에 올라 연주했던 팀들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청년, 노인, 아이들 등. 다들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이 새싹들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만들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더니…….”

나까지 속아버렸네.

조금은 허탈하게, 하지만 대부분은 기쁜 감정을 담아 웃는 서준의 모습에 새싹들도 감격의 눈물을 닦아내며 동의했다.

출연하는 배우까지 속이다니……!

잘했다! 웨일 스튜디오!

으흐흑으흑-

감동과 슬픔이 휘몰아치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쿠키영상이 사라지고, 스피커에서 다시금 [포 마이 프렌드]가 흘러나왔다.

OST와 영화와 제목과 쿠키영상과 기념 티켓의 문구가 너무 찰떡같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이미연과 박성아는 눈물을 닦았다.

[서준 리]

[캐서린 밀러]

[폴 오든]

아쉽게도.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드디어 엔딩크레딧에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연한 조연들과 엑스트라들의 이름도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다랗고 새까만 배경의 스크린을 흰색으로 가득 채운 수많은 글자들이 나타났다.

영어도 있었고 한국어도 있었다.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등. 온 세계의 언어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글자들이 있었다.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모를, 너무 많은 글자들이 스크린을 채웠지만 새싹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글자들의 가장 위, 자막으로 친절히 쓰여 있는 제목 덕분에.

[그리고 친구들]

그건 마지막 장면, 브레드홀의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고 관객석을 가득 채웠던 ‘친구들’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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