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62화
“그래도 좀 목소리가 큰 거 아니야?”
---!
서재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제임스 랜던의 걱정에 라이언 윌이 픽, 웃었다. 이틀 정도 큰 소리에 안절부절못하던 매니저 태우 최도 이제는 별 반응이 없는 것처럼, 일상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니까.”
“애들이라기엔 너무 크지 않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애라고는 하지 않지.”
그렇게 말한 제임스 랜던 또한 처음 서준과 조나단을 봤을 때를 떠올리고는 웃고 말았다. 하도 어릴 때 처음 봐서 그런지 몇 년이 지나도 어린아이들 같긴 했다.
우당탕탕-!
목소리뿐만 아니라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회의가 많이 과격하네…… 라이언?”
라이언 윌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번 소음도 평범한 소음이구나, 생각했던 제임스 랜던이 작게 웃으며 라이언 윌을 바라보았다가 눈을 끔벅였다. 라이언 윌이 조금 굳은 얼굴로 서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방에서 일하고 있던 최태우가 뛰쳐나올 정도였다.
그 모습들을 보아하니, 이번 소음은 ‘평범’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설마…… 진짜 싸우기라도 하는 건가?’
놀라는 제임스 랜던을 지나쳐 조금 굳은 표정의 라이언 윌이 앞장서 서재로 걸어갔다. 제임스 랜던과 최태우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라이언 윌이 조금 열려 있던 서재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고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세 어른은 멈칫하고 말았다.
중앙에 놓여 있던 테이블과 의자들은 방 한쪽으로 치워져 있고 화이트보드는 쓰러져 있었으며 바닥에는 종이들과 필기구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풍경의 중앙, 조나단 윌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서준은 요령 좋게 책장에 매달려 있었다.
……책장에 매달려?
세 어른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위로 움직였다. 서준이 매달려 있는 곳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아, 하, 하하하.”
오른손으로 책장의 선반을 붙잡고 있던 서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조나단도 어색하게 웃으며 아마도 소음의 원인일 화이트보드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있는 듯, 나란히 어른들을 앞에 선 서준과 조나단이었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피하는 눈빛이 마치 사고 치고 난 후의 강아지들 같았다.
“설명.”
나지막한 라이언 윌의 목소리가 어찌나 싸늘한지.
“그게…….”
어깨를 움츠린 조나단이 입을 열려던 찰나,
“조나단이 제가 어디까지 액션을 할 수 있나 궁금하다고 해서요!”
서준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전적으로 조나단의 탓입니다! 라는 뜻이 담긴 서준의 말에, ? 화들짝 놀란 조나단이 지지 않고 말했다.
“준이 와이어 없이 천장에 매달릴 수 있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할 생각은 없었는데 조나단이 못 믿겠다고 했잖아요!”
“아니, 네가 스턴트맨도 아니고 못 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왕왕 짖듯, 서로의 탓을 하는 것이 정말 어린애 그 자체였다.
제임스 랜던이 어깨를 떨며 킬킬 웃었고, 최태우는 반쯤 해탈한 얼굴로 ‘안 이사님께 보고……’라고 중얼거렸다.
“안전장치도 없는 곳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다칠 수도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서준과 조나단이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한숨을 내쉰 라이언 윌이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이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저녁때까지 반성하고 있어라.”
“네에…….”
서재 밖으로 나가려던 중 제임스 촬영감독을 발견한 서준과 조나단이 ‘안녕하세요. 제임스 감독님.’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런데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준. 조금 전 그거, 꼭 히어로인 주인공이 정체를 들키는 장면 같지 않았어?”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찔해지는 감정이 딱 느껴지더라고요.”
“조나단 윌! 서준 리!”
“죄송합니다!”
풀네임을 외치는 라이언 윌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서준과 조나단의 모습을 본 제임스 랜던이 빵 터지고 말았다.
* * *
‘이 나이에 ‘방으로’라니……!’ 하고 민망함에 몸부림치며 반성한 조나단과 최태우의 보고로 안다호에게 잔소리를 듬뿍 들은 서준은 정말로 반성한 얼굴로 저녁 식사 자리에 앉았다.
라이언 윌은 만족한 듯 보였고 제임스 랜던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최태우는 조금 미안한 눈치였지만 한편으로는 혼날 만했다고 생각했다.
“회의는 어느 정도 진행됐어?”
맛있는 저녁 식사에 민망함에서 벗어난 조나단이 라이언 윌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제 70% 정도요. 지금 회의하는 게 시놉시스라서 대본은 다시 만들어야 하지만요.”
“대본도 둘이서 회의해야 해?”
제임스 랜던의 물음에 한국에 가면 다시 혼나려나, 생각하며 허허허, 웃고 있던 서준이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뇨. 대본을 제작할 때는 제가 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필요하더라도 전화 통화로도 충분할 것 같고요.”
그에 라이언 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의 기초가 되는 시놉시스가 철저하고 세밀하면 그만큼 대본을 적기 쉬워지는 법이었다.
“70%면…… 모레까지 할 수 있겠어, 서준아?”
최태우의 걱정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자체 휴강을 하지 않으려고 하루 늦게 출발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주일 수업을 통으로 날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지.’
서준은 조나단 감독과의 첫 회의를 떠올렸다.
솔직히 말하면, 서준은 조나단이 금방 자신의 의견에 설득당할 줄 알았다. 캐릭터 분석에는 자신이 있었고 그 캐릭터가 ‘진 나트라’이니, 더더욱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나단의 의견도 설득력이 있었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 말로 시작한 조나단 감독의 의견은 서준도 일부분 설득당할 정도로 자료 면에서나 캐릭터의 감정 면에서나 설득력이 있었다.
서준은 라이언 감독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스태프 조나단 윌’만 봐왔다. 그래서 조나단 윌이 그다지 의견을 내세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감독 조나단 윌’은 달랐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고 그걸 주연 배우에게 주장할 단단한 의지도 있었다.
그러니 서준의 마음에도 불이 붙을 수밖에.
‘진 나트라’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와 [진 나트라 시리즈]를 총괄해야 하는 감독의 회의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가끔 덕질하는 느낌도 있긴 했지만…….’
‘그 부분 좋았죠.’, ‘거기에서는 나도 울었다니까.’ 하고. [쉐도우맨 시리즈] 덕후들의 깊이 있는 대화랄까.
하여튼, 하루 이틀로 끝날 회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주일을 통째로 비웠는데, 그 이상 자체 휴강을 더 늘릴 생각은 없는 서준이었다.
서준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태우 형.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하면 돼요.”
“오늘따라 스테이크가 맛있네…… 응?”
오늘따라 입맛에 딱 맞는 스테이크 한 조각을 크게 썰어 한입에 넣던 조나단 감독이 서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보다 더? 어쩐지 파란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최후의 만찬인가.”
“그렇군.”
서준 리의 남다른 체력을 알고 있는 제임스 랜던이 남 일이라는 듯 웃으며 말하자, 라이언 윌도 입꼬리를 올렸다.
* * *
이틀 후.
서준의 귀국 날 아침.
“끝! 수고했어요. 조나단!”
조나단 감독의 서재에는 살아생전 감독이었던 시체 하나와 파릇파릇 생기가 넘치는 배우 한 명이 있었다.
“……He……l……p……!”
“에이. 이 정도로는 안 죽어요.”
“……아니, 죽을 것 같은데.”
아침 식사 할 거냐고 물어보러 왔던 최태우가 소파 위에 널브러진, 초췌하게 변한 조나단 감독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나단 감독님, 살아계시……아니, 아침 식사 하실 거죠?”
“……Y……”
한마디 한마디가 힘겨워 보였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조나단 감독을 바라보던 최태우는 고개를 돌려 마무리한 시놉시스를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준을 보았다. 왜 같이 이틀 동안 고생한 자신의 배우는 저렇게 생생한 걸까.
“서준이 너도 아침 먹을 거지?”
“네.”
“그럼 시간 되면 내려와. 감독님도요.”
“그럴게요.”
최태우가 걱정스러운 듯 조나단 감독을 바라보다가 서재 밖으로 나갔다.
서준은 거의 숨만 쉬고 있는 듯한 조나단 감독에게 선기를 흘려보내 주며 기운을 회복시켜주었다.
“으아…… 묘하게 지칠 때면 생생해지는 느낌이라니까. 끊임없이 살아나는 좀비가 된 느낌이야.”
정신을 차린 조나단 감독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고요해진 서재.
몇 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 조나단 윌 감독이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소파에 바로 앉아 물었다.
“준, 시놉시스는 어때?”
그 진지한 목소리에 서준이 손에 든 시놉시스를 내려다보았다. 거의 일주일 동안 서준과 조나단이 서로를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의견을 파기하고. 그렇게 열심히 만든 결과물이었다.
“좋아요. 엄청.”
화사하게 웃는 배우의 얼굴에 감독은 그제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 정말로 작품에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서준과 조나단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왔다. 다이닝룸으로 향하며 서준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진짜 라이언 감독님 말씀대로 엄청 굴리니까 좋은 작품이 나오네요.”
그때 ‘그 감독’이 자신인지도 모르고 불쌍하다고 말했던 조나단 감독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두 번은 못 할 것 같아. 언덕 정도에서 구르는 걸 생각했는데, 로키산맥 꼭대기부터 굴러 내려오는 느낌이었어.”
특히, 요 이틀 동안은 진짜 48시간 내내 구른 것 같았다.
“하하하. 농담도.”
“진심이야, 준.”
* * *
서준과 최태우가 한국에 도착했다.
서준은 시차 적응을 하고 다호 형에게 잔소리를 듣고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며칠 안 나와서 또 입대한 줄 알았는데.”
같은 수업을 듣는 정보람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으음. 내가 군 생활 좀 편하게 하긴 했지만, 그건 아닌 듯.”
“농담이야. 농담.”
농담 한번 살벌하다.
“근데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아차, 이런 거 물으면 안 되죠!?”
서준에게 물었던 2학년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자기 입을 때렸다.
주위에 서준만큼 대단한 배우가 없어서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나온 물음이었다.
“아냐. 괜찮아. 오버 더 레인보우2 때문에 잠시 미국에 갔다 왔어.”
이것 참.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상황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변명도 익숙해지는 것 같고.
오오오!
서준의 말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오버 더 레인보우2요!?”
“저 그거 기사 나오고 디데이 설정까지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도. 굿모닝만 계속 듣고 있다니까.”
“이제 공개까지 2주 남았지?”
떠들썩한 분위기에 서준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오버 더 레인보우2]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서준을 기쁘게 했다.
“근데…….”
들뜬 분위기 속, 암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 선배님이 지금 미국에 갔다 오셨다는 건 오버 더 레인보우2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 아닙니까?”
……!
학생들이 입을 쩌억 벌리고 서준을 바라보았다.
영화 공개 3주 전.
일주일 동안.
미국에 있었던 주연배우.
딱 봐도 무슨 일이 터진 느낌이었다.
“서, 설마 공개 미뤄진 거예요?”
“안 돼요.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 기사 났어?”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진 강의실에 서준이 웃으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니까 걱정 마. 공개는 예정대로 될 거야.”
“휴. 다행이에요.”
“하긴, 문제가 생겼으면 이렇게 홍보는 안 했겠지.”
정보람이 웃으며 말하자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11월부터 시작한 마린사의 OTT 플랫폼 [유니버스] 홍보는 ‘역시 마린사!’라고 할 정도로 TV며 인터넷이며 너튜브며,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거기에 [오버 더 레인보우2]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홍보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는 팝업 스토어도 연대요! 전 가려고요!”
“난 아직 고민 중이야. 뭐 팔지 모르니까.”
“마린사 캐릭터 상품은 다 팔지 않을까요?”
“또 텅장 되겠네!”
다시 떠들썩해진 강의실은 교수님이 들어오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 * *
그리고 11월 30일.
마린사의 OTT플랫폼 [유니버스]의 출시와 함께 오리지널 작품들이 공개되었다.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오버 더 레인보우2: For My Friend]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