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60화
“……LA행 비행기?”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전화를 받고 있는 최태우에게로 향했다. 매니저 최태우에게 저런 연락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서준이?’
‘배우님 LA 일정 있으세요?’
속닥거리는 목소리들에 최태우도 같은 의문이 들었다. 이제 11월. LA에서 돌아온 지 겨우 2달이 지나있었다.
-네. 힘들까요?
“아니야. 표 있어.”
그 사수에 그 후임이라고, 서준의 부탁이 있자마자 휴대폰을 어깨로 받치고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있던 최태우였다. 다행히 LA행 비행기는 꽤 있었다.
“그럼 2시간 뒤에 출발하는 걸로 예약할게.”
-네. 여권은 집에 있으니까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서준의 말에 최태우는 옆자리의 직원에게 비행기 티켓 예매를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준을 집까지, 그리고 공항까지 데려다줘야 했다.
나가려는 최태우를 보며 부팀장이 입을 뻥긋거렸다. 아, 하고 눈을 깜빡인 최태우가 물었다.
“근데 어디 가려고?”
목적지를 묻는 걸 깜빡했다.
LA에 있을 킹즈 에이전시 직원들에게도 연락을 해줘야 할 터였다.
-조나단한테요.
최태우는 서준의 대답을 그대로 1팀 직원들에게 들려주었다.
아하.
그에 다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온 시놉시스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똑같은 생각을 하며 최태우가 차 키를 챙겼다. 그러고는 문득 떠오른 것을 물었다.
“근데 서준아.”
-네?
“너 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지금은 목요일 오후.
내일은 금요일이었고 서준은 내일 수업이 있었다.
오고 가는 데만 비행기로 28시간.
미국과 한국 사이에 시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나단과의 이야기가 짧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금요일 수업은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 건너, 서준의 숨소리가 흡, 하고 멈추었다.
그에 최태우는 예상할 수 있었다. 서준이 시놉시스를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학교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자체 휴강은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이벤트죠!
“안 이사님께 보고할게.”
-……네에…….
최태우의 말에, 듣지 않아도 시무룩하게 대답할 서준이 떠올라 1팀 직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말았다.
* * *
안다호 이사에게 보고가 올라간 후, 아쉽게도(?) 서준의 LA행은 하루 미뤄졌다.
“내일 출발해도 시간은 충분해. 게다가 금요일은 오전 강의만 있잖아.”
“네에.”
이사실로 올라온 서준이 안다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아쉬운 감정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막 찾아가는 것도 실례고. 놀러 가는 거라면 모르지만 이번 건 일이잖아.”
그건, 그렇다.
어느새 서준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은 사라지고 시무룩함만 남았다.
“……조나단이 편해서 그랬나 봐요.”
다른 감독님들이라면 이렇게 막 찾아가려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 같은 조나단이 감독이라서 그런가, 마음이 너무 풀어졌던 모양이었다.
‘편한 사이라면 더 조심해야 하는 건데…….’
서준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 나트라도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고요…….”
그런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의 시놉시스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니 잠깐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았다.
기가 죽은 듯한 제 배우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진 매니저가 살살 달래듯 말했다.
“그럼 서준아. 오늘 집에 가서 시놉시스를 더 살펴보고, 조나단한테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설명해 보면 어떨까?”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설득해 보면 조나단도 이해하고 시놉시스를 수정하지 않을까?”
“그러면 되겠네요!”
빛이 돌아온 배우의 모습에 안다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내일 LA로 출발한다고 조나단에게 연락할게.”
“괜찮아요. 다호 형. 연락은 제가 할게요.”
감독과 배우 사이의 일인 만큼 직접 하고 싶었다.
진지한 서준의 얼굴에 안다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조용히 앉아 있던 최태우도 작게 웃었다.
“태우 형.”
그런 최태우를 서준이 불렀다. 그 부름에 훈훈하게 마무리되나 싶었던 안다호와 최태우가 눈을 끔벅였다.
“제가 연습실에서 진 나트라 연기 연습한 영상들 있죠? 액션 트레이닝 센터에서 찍은 영상들도요.”
“응? 아, 자료실에 있어.”
부팀장님이 한 번 액션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하던 서준의 영상을 보여준 기억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짧은 시간에, 훌륭하게 액션을 소화해내는 아역 배우는 서준이 말고는 없죠.’ 하고 덧붙이며. 자료실에 그때의 영상들이 있을 터였다.
“그것 좀 찾아서 보내주세요.”
“그건 왜?”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나단 감독님을 설득하려면 최대한 준비해서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연기 연습했던 영상이랑 대본이랑 캐릭터 분석했던 거랑…….”
으음.
정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단단히 준비할 것 같은 서준의 모습에, 그냥 오늘 LA에 보내는 게 나았나 싶은 안다호였다.
* * *
같은 시각, 미국 LA.
라이언 윌 감독의 저택.
달이 떠오른 새벽 시간인데도 조나단의 서재는 밝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런 서재의 문을 라이언 감독이 가볍게 두드렸다.
책상 위 모니터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고 있던 조나단 윌이 고개를 들었다.
“아, 삼촌. 아직 안 주무셨어요?”
“넌 언제 자려고?”
라이언 감독의 물음에 조나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늘 완성된 시놉시스를 준에게 보냈거든요. 어떻게 봤을까, 궁금하고 긴장돼서 잠이 안 와서 말이에요. 겸사겸사 고칠 곳은 없나 살펴보고 있었어요.”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조카에 라이언 감독도 웃고 말았다.
“그래. 너무 늦게 자지는 말고. 촬영 시작부터 준비 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까. 체력도 중요해.”
“네.”
라이언 감독의 충고에 조나단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전히 다리를 달달 떠는 모습이 초조한 눈치였다.
그때 조나단의 휴대폰이 덜덜 진동했다.
허둥지둥 들어서 살펴보니 서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준이에요!”
조나단은 일순 밝아졌다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문자를 살펴보았다. 전화해도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조나단은 괜찮다는 답장 대신 먼저 서준에게 연락했다.
곧바로 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응. 시놉시스를 조금 살펴보고 있었어.”
-자고 있으면 문자로 하려고 말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에요.
평소와 같은 서준의 목소리에 조나단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조나단 감독님.
그 진중한 호칭에 금세 사라졌지만.
사뭇 진지한 베테랑 배우의 목소리에 신인 감독이 바짝 긴장했다.
바짝 굳어 전화를 받는 조카의 모습에 라이언 감독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휴대폰 건너 서준이 무어라무어라 말하는 듯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조나단의 얼굴이 점점 복잡해져 가고 있었다. 무거운 한숨을 내뱉진 않았지만, 온몸의 기운이 쑥- 하고 빠져나간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럼 그때 온다고? 기다리고 있을게.”
침착한 목소리로 긴장한 듯 허리를 꿋꿋하게 세우고 전화를 받던 조나단은 전화가 끊기자마자 책상 위로 무너져내렸다.
“으아아아…….”
영혼과 함께 한숨과 같은 탄식도 조나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냐?”
“준이 온대요.”
“뭐?”
라이언 감독이 눈을 끔벅였다.
고개를 든 조나단이 머리를 쥐어뜯을 것처럼 엉망으로 만들며 말을 이었다.
“시놉시스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고. 내일 한국에서 출발해서 LA에 온다고 했어요. 삼촌, 어떻게 하죠? 준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라니…… 제가 뭘, 어디를 잘못 적은 걸까요?”
조나단이 허둥지둥 프린트한 시놉시스를 살펴보며 말했다. 정말로 초조한 듯 눈동자가 빠르게 위아래 좌우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준의 말대로 고치는 게 낫겠죠? 준이 진 나트라를 분석한 게 제가 한 것보다 나을 테니까요.”
자신의 머리를 헤집으며 끙끙 앓는 조카를 바라보던 라이언 감독이 입을 열었다.
“조나단.”
“……여기, 아니, 여긴가?…… 네?”
“시놉시스 열심히 적었지?”
라이언 윌이 조나단 윌 감독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준 자료부터 각종 영상들까지.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 그리고 [어셈블]에 나왔던 나트라에 대한 조각조각, 작은 이야기들까지 모으고 모아 정리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 흔적들을 모티브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버리고 또다시 궁리했던 모든 시간이 이 서재에 남아있었다.
이 서재야말로, 이번 시놉시스에 조나단 윌 감독이 얼마나 애정과 노력을 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네.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서 적었어요.”
라이언의 질문에 조나단 윌 감독은 일단 대답했다.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의 첫 시작이 될 [진 나트라1(가제)]는 지금까지 적어온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쓴 작품이었다.
“그럼 그렇게 쉽게 바꾸면 안 되지. 넌 그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만든 거잖아.”
“하지만…… 준인데요?”
서준 리가 누구인가.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고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연기 천재가 아닌가.
게다가 ‘진 나트라’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배우의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캐릭터였다. 그런 배우의 캐릭터 분석이 신인 감독보다 모자랄 리가 없었다.
“배우의 의견도 중요하지. 하지만 작품의 중심은 감독이다.”
라이언 감독이 작게 웃으며 어린 감독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은 조나단 윌 너고.”
조나단 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폭풍처럼 몰아치던 마음이 천천히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용기가 생겨났다!
“그럼 그냥 밀고 나갈까요?”
“그럼 안 되지.”
어쩐지 한숨처럼 들리는, 단호한 라이언 감독의 말에, 1초짜리 용기가 사라진 조나단이 깨갱, 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배우를 설득해야지. 배우는 네 작품을 제일 처음 보는 관객이야. 첫 관객이 재미없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영화를 어떤 관객이 좋아하겠어.”
“아…….”
“특히 그게 인생의 대부분을 그 캐릭터와 함께한 배우라면 더더욱 눈이 높을 수밖에 없지.”
라이언 감독의 말에 조나단 윌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배우가 납득하지 못한 이야기를 어떤 관객들이 몰입해 줄까.
“준과 이야기를 나눠보렴. 감독의 시선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그 이야기에 휩쓸리지는 말고. 이 영화의 중심은…….”
“감독인 저죠.”
라이언 윌의 말을 이어받은 조나단 윌 감독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위 가득한 자료들과 책꽂이에 꽂아둔 자료들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준이라면 엄청 준비해 올 것 같으니까.’
그에 반박하고 설득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낮보다 더욱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 있는 조카를 보며 작게 웃은 라이언 윌은 커피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 * *
며칠 후.
[쉐도우맨 시리즈]의 촬영감독이자 라이언 윌의 친구인 제임스 랜던이 라이언 윌의 저택에 방문했다.
아무래도 감독이 신인 감독이었던 터라, 스태프들은 베테랑인 편이 안정적일 것 같다는 판단에 마린사는 [진 나트라1(가제)]의 촬영감독을 제임스 랜던으로 결정했다.
그에 조나단 감독과 이야기도 나눌 겸 친구인 라이언 윌과 담소도 나눌 겸 들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손님도 있었다.
“준이 왔다며?”
“그래. 2층에 조나단이랑 같이 있다.”
어쩐지.
언제나 조용하던 저택이 떠들썩하다고 했다.
“그럼 준이랑 인사나 할까.”
[쉐도우맨3]의 촬영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서준에 제임스 랜던이 미소를 지으며 2층으로 향했다. 라이언 윌이 그 뒤를 따랐다.
2층에 가까워질수록 떠들썩함이 시끌벅적함으로, 시끌벅적함이 시끄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응?”
제임스 랜던이 눈을 끔벅였다.
웃음소리나 즐거움에 나오는 큰소리라고 생각했던 목소리들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니지! 이걸 보라니까!”
“와아! 답답해 죽겠네!!”
“악! 내가 할 소리거든!”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하던 서준 리와 조나단 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었다.
“……둘이 싸워?”
왁왁! 대는 두 목소리에 서재의 문도 못 열고 당황하는 제임스 랜던의 모습에 라이언 윌이 픽,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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