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57화 (65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57화

“오랜만이에요! 서준이 형!”

“그러게. 다들 여기서 보니까 좋다.”

서준이 군대에 다녀온 1년 반 사이, 새로운 사람들이 한예대에 입학해 있었다.

[MOEB-436]에 출연했던 보부상으로 출연했던 김영찬, 직접 의상을 제작했던 박민형 등 당시 1학년이었던 후배들이 한예대 1학년이 되어 있었고, 2학년이었던 음악과, 미술과 후배들도 모두 한예대 학생이 되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전부 한예대에 합격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MOEB-436]의 팀원이었던 1, 2학년 전원이 한예대에 합격한 사실은 서준을 놀라게 만들었다.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얘는 최저성적 맞춘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서준이 복학한 김에 모이게 된 [MOEB-436]팀의 테이블마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채연이 언니는 교환학생으로 유럽 갔대요.”

“원래는 6개월이었는데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음악과 2학년이 음악팀 팀장이었던 김채연의 교환학생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에 김주경이 설명을 덧붙였다.

“채연이 귀국하면 또 모이면 되겠네.”

물론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또 모이면 되는 거였다.

“서준 오빠, 축제 때 뭐 하……진 않겠구나. 군대에, 촬영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겠네요.”

질문하던 박연지가 자문자답하듯 답했다. 아이들이 으하하하 웃었다.

한예대 축제는 9월.

이제 곧 축제가 열릴 시기였다.

“저희는 연주회 해요. 꼭 보러 와주세요!”

“미술과도 전시회 열어. 화처럼 눈 위에 그린 작품도 있거든. 그거 한다고 작년 겨울에 엄청 고생했다니까.”

“맞아요. 화 개봉한 후로 눈 위에 그림 그리는 작품 엄청 늘었어요.”

미술팀 팀장이었던 이솔의 말에 미술과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미술계에도 유행이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 유행의 시작이 영화 [화]라는 게 조금 신기했다.

그렇게 근황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축제 대한 이야기며, 독립영화를 만드는 한예대 프로젝트팀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며, [화] 같은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이야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신나게 떠들던 중 누군가 물었다.

“서준이 형. 오버 더 레인보우2는 언제 나오는 거예요?”

그에 모두 맞추기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글쎄. 나도 자세한 일정은 몰라서. 지금쯤 편집하느라 바쁘지 않을까?”

어쩐지 커피와 에너지음료를 테이블 위에 가득 올려놓고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을 사라 로트 감독과 에밀리 조감독, 편집 기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니버스랑 같이 나오는 건 맞죠?”

“응. 그건 확실할 거야. 기사도 나오고 있고.”

아직 ‘마린사’답게 TV광고나 인터넷광고 등으로 도배하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니버스]와 함께 [오버 더 레인보우2]와 다른 오리지널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능성은 높았다.

“빨리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 히어로 영화 엄청 좋아하는데!”

“저도요. 쉐도우맨도 보고 싶고, 레드본도 보고 싶고.”

“어셈블이 최고지.”

“전 그냥 VOD 결제했어요. 흐.”

마린사의 히어로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새롭게 등장한 차세대 히어로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재미있긴 한데 좀 아쉽달까.”

“그러니까. 다들 특징 있고 좋은데 말이야. 시즌1만큼의 힘은 없지.”

“아예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N차를 뛸 만큼은 아니랄까요.”

특히 이 나이대는 마린사의 히어로영화 시즌1과 함께 자라서 그런지 더욱 전문적이고 열정적이었다.

“팬텀도 연기는 잘했는데 말이죠.”

“시즌1 배우들보다는 부족한 느낌이었지.”

“빌런이긴 했지만 진 나트라는 막 마음이 갔는데 말이에요.”

“연기력이 아니라…… 애정? 진 나트라는 그런 애정이 생길 정도로 배우가 잘 표현했…….”

[팬텀]에 대해 이야기하던 김주경이 앞에 앉은 친구를 보았다.

“……는데, 배우가 여기 있네?”

조용해진 단체실.

시선이 할리우드 스타 서준 리에게로 쏠렸다.

“……허억! 깜빡하고 있었어요!”

숨까지 멈췄던 듯,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친해져서 그런가. 가끔 서준이 형이 할리우드 스타인 걸 까먹는다니까요.”

“서준 오빠 일코는 진짜…….”

후우,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 후배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인터넷에 그런 이야기 많아요. 진 나트라가 또 등장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요.”

마린사에서 생각하는 걸, 마린사보다 훨씬 더 영화에 진심인 팬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영화 속 프레임 하나하나까지 살펴보며 떡밥이 아닌 우연의 산물까지 떡밥 취급하며 무한한 상상을 뻗어 나가고는 했다.

[진 나트라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 10가지.]

[다시 한번 빌런으로 등장할 진 나트라!]

[팬텀의 새로운 대적자! 진 나트라!]

[빌런? NO! 진 나트라는 차세대 히어로가 될 겁니다!]

“기억상실이라는 떡밥도 있고!”

“맞아요. 서준이 형 나이도, 영화 속 윌리엄의 나이도 아직 어리잖아요.”

그 말대로 다른 히어로들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이제 만 22살인 서준은 오히려 어린 축에 들었다. 쿠키영상에서 기억을 잃고 7살 때로 돌아간 윌리엄 리도 마찬가지였고.

……이야.

팬분들 무섭네.

물론 아직 감독도, 대본도 정해지진 않았지만 마린사와의 회의 때 나왔던 이야기와 비슷한 추측들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는 서준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계약서도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계약서를 써도 홍보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쪽에 들어온 이야기는 없어.”

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서준의 연기에서 진심(?)을 본 아이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렇게 끝나는 것도 괜찮긴 하죠.”

“괜히 2편이 망하는 영화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게 소포모어 징크스였죠?”

김주경의 말에 박연지가 대답했고, 고기를 흡입하던 연기과 김영찬이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소포모어 징크스 리포트 있었는데! 언제까지였지?!”

다급하게 휴대폰을 뒤져보는 김영찬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각자의 과제와 교수, 강의에 대한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교수님 수업만 듣는 게 아니라고요오…….”

“이제 막 개강했는데…….”

대학생다운 후배들의 모습에 서준과 김주경, 이솔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미국에서 돌아온 후.

최태우의 일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담당 배우 없이 일손이 부족한 곳을 채우던 일에서 배우 이서준에 대한 일들만으로 변한 것이었다.

배우가 한 명이라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배우 이서준 전담 1팀이 따로 있어서 일하는 직원은 많았지만, 들어오는 양이 다른 배우들보다 몇 배나 많으니 피장파장이었다.

게다가 배우가 배우인 만큼 일은 더 어려워졌다.

최태우는 이제 배우 이서준의 전담 매니저라서 더욱 그랬다.

“여기요. 태우 씨.”

“넵!”

예능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들어오는 것만 살펴봐도 하루가 훌쩍 지나는데, 우리 배우님은 얼마나 적극적인지 작은 작품이라도 재미만 있으면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팀이라서 다행입니다.”

“하하. 그렇죠?”

최태우의 말에 배우 이서준 전담 1팀 직원들이 웃었다.

“서준이는 연극 보러 다닌다고 바쁘겠죠?”

직원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9월 중순인 지금. 한예대 축제 중으로, 연기과가 준비한 연극을 보러 다니느라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을 서준이 떠오른 탓이었다.

“다음엔 연극한다고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음. 그럴지도.

“연극 대본을 찾아놓을까요?”

“근데 서준이라면 직접 쓰지 않을까요?”

오래도록 서준의 전담팀이었던 직원의 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연극 [거울] 각색, 연극 [MOEB-436] 각본이라는 경력이면 그럴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다들 제 할 일을 계속해 나갔다.

“아, 태우 씨. 마린사 일은 어떻게 됐어요?”

“아직 감독을 정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최태우의 말에 부팀장이 턱을 긁적였다.

“으음. 감독이 정해지고 대본을 쓰고 세트장에 촬영 준비까지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한 작품 정도 할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정하는 건 서준이지만.

“근데 그쪽에서 제작비를 많이 쓰면 준비 기간이 확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괜히 할리우드 스케일이 아니다. 게다가 돈을 쏟아부으면 안 되는 일도 없고.

히어로 영화는 CG 작업이 많으니 촬영보다 후작업에 더욱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음. 애매하네.”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으니, 일정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감독이라도 빨리 정해지면 좋을 텐데…….”

부팀장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그러면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대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 *

며칠 후.

미국, LA.

라이언 윌 감독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조나단 윌은 여전히 ‘J.W.’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후보는 많이 있었지만 ‘이 사람이다!’ 하는 감독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준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고…… 진짜 누구지?”

절대로. 진심으로.

자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는 조나단 윌 감독이었다.

자신이 적어놓은 감독 후보 목록을 살펴보던 조나단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누군진 몰라도 부럽네…….”

[쉐도우맨 시리즈]

그리고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

“내가 만들고 싶었는데…….”

코믹북 [쉐도우맨]을 보면서 꿈을 키웠던 라이언 윌 감독처럼, 조나단 윌은 영화 [쉐도우맨]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라이언 윌 감독의 촬영을 도우면서 실제로 보게 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완성된 영화는 조나단 윌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됐다.

언젠가 이 뒤를 이을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물론 영화감독이 되는 것도 꿈이긴 했지만, 영화감독이 되어서 꼭 만들고 싶은 작품 중 하나가 [쉐도우맨 시리즈] 다음의 이야기였다.

“생각해 놓은 것도 많은데 말이야.”

소파에 누운 조나단 윌이 고개를 돌려 책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진 나트라’의 이야기들이 프린트되어 꽂혀 있었다.

마린사에서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를 기획할 때까지, 경력도 쌓고 저 이야기를 자르고 수정하고 모아, 완성해서 준을 캐스팅해서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이르잖아.”

이렇게 빨리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가 기획될 줄은 몰랐다.

“고생해도 괜찮은데 말이야.”

서준과 라이언 윌 감독이 대화할 때는 언덕에서 굴러가는 돌멩이처럼 데굴데굴 구를 감독과 시나리오팀이 안됐다는 듯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소파에 누워있던 조나단 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는 다른 사람이 맡을 테니 이제 마음 정리를 하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게 좋을까.”

기존에 구상하던 작품도 좋을 것 같았고 완전히 새로운 내용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나단 윌이 막 집중하려던 때, 초인종이 울렸다.

삼촌의 손님인가?

조나단은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마린사 직원분이시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조나단 감독님.”

[쉐도우맨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제법 높은 위치의 직원으로 기억한다.

‘새 시리즈 때문에 라이언 삼촌을 설득하러 온 건가?’

나름 추측한 조나단이 말을 이었다.

“라이언 감독님은 지금 외출 중이셔서요. 연락처랑 용건을 알려주시면 전달해 드릴게요.”

“아, 라이언 감독님이 안 계신 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네?”

직원의 말에 조나단 윌이 눈을 끔벅였다. 들어서 알고 있다고? 누구에게?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전 조나단 감독님을 만나러 온 겁니다.”

“……네?”

직원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조나단 감독은 멍하게 되물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진 나트라 시리즈를 맡아주시겠습니까, 조나단 윌 감독님?”

“……네?”

조나단 윌 감독이 고장 나버렸다.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