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56화
마린사와의 회의를 끝으로 미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
서준과 두 매니저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놓고 가는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뭐 놓고 가더라도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렇게 샅샅이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태우 씨.”
책상 밑까지 샅샅이 살피는 최태우의 모습에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한데, 역시 과하다. 그래도 신입 때는 저러는 게 보통이니 익숙해지면 여유로워질 터였다.
안다호의 말에 방을 먼지 한 톨 놓칠세라 뒤지던 최태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해외 출장은 처음이라 마지막 날까지도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도착한 후 집에 돌아가서야 긴장이 풀릴 것 같았다.
“서준아. 짐 다 챙겼어?”
“네.”
이런 해외 일정을 많이 겪어본 서준은 벌써 짐을 다 챙기고 숙소 입구에 캐리어를 가져다 놓은 상태였다.
“그럼 잠시만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곧 차 올 거니까.”
“도와드릴까요, 형?”
“아니야. 괜찮아.”
손을 내젓는 안다호와 최태우에 볼을 긁적인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앉았다.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리첼: 벌써 가는 거야?!
리첼 힐이었다.
<네. 좀 있다가 숙소에서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에요.
>리첼: 나는 왜 하필 지금 해외 촬영일까/ㅠㅠ/
한글로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한 리첼 힐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서준이 웃었다.
촬영으로 뉴욕에서 LA까지 미국 횡단을 하는 바람에 있는 지인들은 대부분 만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현재 해외 촬영 중인 리첼 힐은 만나지 못했다.
>리첼: 에반은 두 번이나 갔다며. 연주 들으러!
>리첼: 연주회까지 보고!
>리첼: 나도 직접 듣고 싶었는데!!
메시지지만 어쩐지 리첼 힐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편집 안 한 촬영본 있는데 보내드릴까요?
>리첼: 응!
답변이 빠르다.
서준이 킥킥 웃었다.
사라 로트 감독에게 허락을 받고 리첼 힐에게 촬영본을 보낸 서준은 온갖 화려한 이모티콘으로 메시지창을 도배하며 기뻐하는 리첼 힐의 메시지를 보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를 촬영하게 된다면…….
‘리첼하고 에반도 나오려나?’
어쩌면 스왈린도.
감독이나 시나리오팀이 써 내려가는 대본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다.
쉐도우맨(맥/뮐 나트라)과 벨 나트라, 튤 나트라.
이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캐릭터들을 떠올리며, 저 나름대로 이런저런 전개 방향을 생각해 보던 서준의 귀에 최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아. 차 왔대!”
“아, 네!”
* * *
비행기로 14시간.
기나긴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뭔가…… 마음이 편하네요.”
최태우는 후우, 하고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낯선 이국의 땅에 자신이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 땅에 발을 딛게 되니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은 최태우였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최태우는 금세 다시 긴장의 줄을 바짝 당겨 잡았다.
‘뉴스에서 보면 항상 팬들이 엄청 몰려와 있던데!’
물론 켄자스시티에서의 얻은 교훈처럼 한국 경호 팀이 알아서 잘 대처할 거고, 서준의 팬들이 특별할 정도로 질서정연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면 온몸으로 막아설 생각이 가득한 최태우였다.
“가죠.”
“넵!”
최태우는 캐리어를 끌고 출구로 향하는 안 이사님과 서준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게이트 너머,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역 후 서준의 모습도 대중들에게 보일 겸 [오버 더 레인보우2] 홍보도 할 겸, 도착 시간을 미리 알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례해 경호 인력도 많이 늘렸고 공항 측에도 부탁했다.
“기분은 어때?”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는 몰라도 행복한 분위기만은 느껴졌다. 작게 웃으며 묻는 안다호에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깃든 손목을 매만지던 서준이 봄에 피어나는 꽃처럼 웃었다.
“엄청 좋아요.”
물론 전역했을 때도 팬분들을 만나긴 했지만, 작품을 찍고 돌아와서 만나는 느낌은 색달랐다. 이제야 정말로 자신의 자리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경호를 맡은 경호팀장에게 안전을 확인한 안다호는 서준을 앞세웠다.
“그럼 먼저 가 봐. 서준아.”
스포트라이트는 스타에게.
“네!”
스타가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게이트가 열렸다.
열리는 게이트 사이로 막혀 있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서준아! 이서준!
그레이! 연주회 성공 축하해요!!
사방에서 반짝이는 플래시, 그리고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여름 햇살보다 더욱 뜨겁게 서준에게 쏟아졌다.
그에 화답하듯 평소보다 몇 배는 반짝반짝한 아우라를 뿜어내며,
돌아온 슈퍼스타가 활짝 웃었다.
* * *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발동됩니다.]
공항을 가득 채우던 환호성도 잠시.
최태우를 바짝 긴장하게 했던 새싹들은 언제나 그렇듯 차분해졌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연예부 기자들도 별 반응 없는 모습이 익숙한 듯 보였다.
“……영상으로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신기하네…….”
“뭐, 저희는 항상 그렇습니다.”
최태우의 말에 바로 옆에 서 있던 경호팀원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주변 경계는 계속하고 있었다. 켄자스시티의 사건을 듣고 평소보다 배는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은 모두 끝났나요?”
“학교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이번 영화에 삽입할 곡을 직접 작곡하셨다던데……!”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이서준은 곧장 자리를 떴다. 아쉬워하던 팬들도 이내 자리를 정리하고 떠났고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일이 있어 공항에 왔다가 얼떨결에 그 광경을 보게 된 누군가가 감탄하며 인터넷에 후기를 남겼다.
[제목: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feat. 이서준 본 후기)]
공항 갈 일이 있어서 갔는데, 마침 이서준이 입국한다는 거야. 그래서 보러 갔는데 팬들이 엄청 많더라고. 그래서 사고 나겠구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서준 팬들이 좀 특이하잖아. 그게 진짠가 싶어서 보고 있었는데…….
이서준 진짜 잘생겼더라. 그냥 계속 ㅇ0ㅇ 이 표정으로 봤음.
나 연예인 몇 번 봤는데 이서준이 왜 연예인의 연예인이라는 줄 알겠더라. 그냥 나랑 다른 차원에서 사는 생물체 같음……(중략)X5
아, 이게 아니고.
처음에 이서준 등장할 때 환호성 들리길래, 다른 팬들이랑 똑같은데? 했는데, 금세 잠잠해짐. 근데ㅋㅋ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어떤 건지 알겠더라ㅋㅋ 소리는 진짜 작은데 분위기는 활활 타오름ㅋㅋ 음소거 된 콘서트 느낌이랄까ㅋㅋ응원봉도 있고ㅋㅋ
그러다가 이서준 인터뷰 조금 하고 떠남. 그리고 팬들이랑 기자도 떠남.
근데 진짜 순식간에 흩어져서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더랔ㅋㅋ 쓰레기도 1도 없고 흔적도 없고ㅋㅋ 공항 직원분들도 익숙하게 정리하시던데ㅋㅋ 아니 왜 익숙하시냐고요ㅋㅋ
아무튼 이서준 팬들 진짜 독특함ㅋㅋ
-나도 봤음ㅋㅋ진짜 깔끔하게 사라짐ㅋㅋ
=22 이서준 팬들 질서정연하달깤ㅋㅋ환호성도 이서준 나타날 때 잠시뿐이고.
=33 그래서 별로 안 기쁜가, 하면 그것도 아님. 눈은 완전 불타오르고 있음ㅋㅋ
-근데 이서준 본 후기만 다섯 문단인 거 나만 웃겨??
=ㅋㅋ이서준 실물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ㅋㅋ엔터도 없이 빽빽함ㅋㅋ
=이서준 본 후기로, 제목 바꿔야 하는 거 아님?
=ㄱㅆ) 아. 그럴까?
=ㅋㅋㅋ뭐가 ‘아. 그럴까?’야ㅋㅋ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 귀국!]
[전역 후 첫 작품! 할리우드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2!!]
[오버 더 레인보우2, 11월 말 OTT 플랫폼 유니버스와 함께 업로드?!]
[배우 이서준, 전역 후에도 여전한 미모!!]
[이서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품 기대해 주세요!”]
-전역 후 첫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라니ㅎㄷㄷㄷ
=근데 OTT에 올라가는 거면 할리우드 영화라고 하기엔 좀.
=요새는 OTT 오리지널도 많으니까 딱 구분 짓기는 어렵긴 함.
=그래도 해외작품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거지.
=22 진짜 전역하고 2주 만에 촬영하러 간 거잖아.
-그래서 유니버스 언제 나오냐고!!!
=진짜 11월 30일에 나올 것 같다.
=ㅅㅂ!!!
-기사 사진 진짜 잘 나왔네. 전역하고도 저 얼굴이라니 나랑 같은 종족 맞냐.
=ㄴㄴ실물 다 못 담아냄.
=22 발로 찍은 듯.
=……예?
=(대포새싹이 찍은 사진.) 이게 실물이랑 거의 비슷함.
=……ㅇㅖ?
=위에 고장났는데ㅋ
-여전한 미모ㅠㅠ 우리 서준이ㅠ
=22 후광이 보인다ㅠㅠ
=진짜 이런 미모에, 연예인 아우라인데 왜 목격담이 없는 걸까. 진짜 연예계 미스터리 탑임.
=근데 연기하는 거 보면 그럴 만도. 같은 얼굴인데 캐릭터마다 완전 다른 느낌이잖아.
=22 캐릭터마다 매력이 다 달라ㅠ 보통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가려지는데 서준이는 외모랑 연기력이 합쳐져서 시너지가 생김.
=얼굴천재에ㅠㅠ연기천재ㅠㅠ
-누가 그레이 연주회 성공 축하하던데ㅋㅋ
=ㅋㅋㅋ과몰입ㅋㅋㅋ(사실 그거 나.)
=ㅋㅋ잘했어ㅋㅋ 서준이가 그거 듣고 웃더랔ㅋㅋ
=(서준이 웃는 얼굴 사진)
=ㅎㅇㅎㅇ(거친 숨소리)
=ㅋㅋㅋㅋ
* * *
“역시 이서준 선배님! 선배님 이야기밖에 없어!”
한예대 2학년생들이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수업이 있을 강의실로 향했다.
“연예부를 가득 채운 이서준 선배님이 학교 선배님이라니! 한예대에 오길 잘했다!! 아, 이서준 선배님 복학하시려나?”
“보통 학기 맞춰서 하지 않나?”
1학년 2학기까지 끝내고 입대했으면, 2학년 1학기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었다.
“아, 그럼 내년에 복학하시면 2학년 수업 들으시겠네. 우린 3학년 수업 듣고. 아쉽다. 같이 수업 듣고 싶었는데!”
“난 같이 수업 들으면 긴장해서 못 할 듯.”
“그래도 실력은 늘겠지! 한석이랑 연지가 그랬잖아. 이서준 선배님이랑 연기하면 엄청 는다고.”
미리내 예고의 1년 후배로, [한 걸음]과 [흘러가다]에 출연했던 김한석과 연극 [MOEB-436]의 주모로 나왔던 박연지도 한국예술대학교에 합격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이서준 선배님과 같이 수업을 들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강의실은 어쩐지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안녕! 다들 뭐해엑?!”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을까 싶어, 벌컥 문을 열자마자 쏠리는 눈들. 그 중심에 있던 익숙하다 못해 조금 전까지 휴대폰으로 봤던 남자의 모습에 2학년이 삑사리를 내고 말았다. 2학년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웃었다.
“안녕하세요.”
“……네엑! 안녕하십니까악!”
세상에!
이서준 선배님이었다!
계속 나오는 2학년의 삑사리에 동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작게 웃었다. 그걸 알아차린 2학년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네. 반가워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음. 그럼 그럴까?”
야호!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에 두 2학년이 속으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촬영은 잘하고 오셨어요?”
“저 오버 더 레인보우 진짜로 좋아해요!”
“응. 잘 끝내고 왔어. 좋아해 줘서 고마워.”
복학생인 데다가 유명하기까지 하니 어려울 법도 한데, 서준 쪽에서 먼저 다가와 주니 후배들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배우(지망생)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호감도가 쌓여 있는 서준이다 보니, 이야기를 나누는 서준도 즐거웠다.
“어? 서준 오빠!”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입구를 본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연지야.”
“와! 이 수업 들으세요?”
2학년 박연지였다.
“응.”
“와! 오빠랑 같은 수업을 듣게 되다니 이상한 느낌이네요! 아, 한석이 입대했다는 거 들으셨어요?”
“들었어. 올 초에 입대했다며.”
“네! 아, 나중에 면회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박연지 이후로도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중에는 서준의 동기들과 선배들도 있었다.
“2학년 수업이라 동기가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 학과 특성상 휴학할 일이 많잖아. 촬영이나 연극 같은 거. 뭐, 이래저래 섞일 수밖에 없지.”
드라마 촬영 때문에 휴학했던 정보람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스케줄이 겹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서준도 어쩔 수 없이 촬영 때문에 휴학할 일이 또 생길지도 몰랐다.
곧 강의 시간이 되고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교수는 학생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