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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55화 (65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55화

“서준 리 배우와의 친분도 도움이 될 겁니다.”

또 다른 직원의 말에 프로젝트팀 팀원들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지만, 곧 다른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그래서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삼촌인 라이언 윌 감독의 영화를 이어받아서 서준 리 배우가 주연인 작품을 연출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죠.”

“게다가 인맥 이야기가 안 나올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인맥으로 캐스팅한다면 오히려 감독이나 배우 쪽에서 반발할 수도 있겠네요. 라이언 윌 감독님과 친분이 있다는 건 비슷한 성향이라는 뜻인데…….”

음.

거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회의실 팔짱 사건’을 떠올린 팀원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쪽 같은 라이언 윌 감독을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조나단 윌 감독님이지만 상업영화계, 그것도 히어로 영화에서는 어떨지 의문이 듭니다만.”

“라이언 윌 감독님도 쉐도우맨1을 촬영할 당시는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조나단 윌 감독님보다 수상 이력이 적었죠.”

“그때는 레드본2를 대체하기 위해 제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린윙과 함께 말입니다.”

배우 데이비스 가렛이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난 사고로 [레드본2]의 제작이 미뤄지고 땜빵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쉐도우맨]과 [그린윙]이었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제작비만 건져도, 아니, 제작비를 건지지 않아도 시간만 때울 수 있었다면, 두 감독의 실력만 확인해 볼 수만 있었다면 됐었죠.”

직원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진지하고 열띤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진 나트라 시리즈는 차세대 히어로영화들의 중심이 될 만큼 중요한 기획이 될 겁니다. 1세대 히어로들을 좋아했던 팬들이 2세대 히어로들에게도 애정을 갖게 할 수 있는 다리가 될 수 있는 시리즈에요. 우리에게는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 회의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어질 2세대 히어로 영화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회의실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전 프로 감독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세대 히어로 영화를 맡았던 감독님들이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예전 감독님들의 스타일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큼 베테랑의 실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익숙한 스타일은 질려 할 수도 있습니다.”

치열하게 의견이 오고 갔다.

베테랑 감독과 신인 감독.

어느 쪽도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 막막한 상황이었다.

“자. 다들 진정하시고.”

조용히 듣고만 있던 프로젝트팀의 리더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가 감독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떠올리세요. 내일 있을 회의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 방법을 의논하는 자리입니다.”

리더가 어깨를 으쓱했다.

“서준 리가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런 의견들도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는 거니까요. 서준 리 배우가 아닌 진 나트라는 떠오르지 않잖습니까.”

그건 그렇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모를까, 이제 겨우 6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가 ‘서준 리의 진 나트라’와 함께 자라온 세대들에게 서준 리가 아닌 진 나트라는 이상하고 이질적이며 불만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그런 상황인데 서준 리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런 회의도 다 물거품이 되는 거였다.

“차라리 출연료로 협상할 수 있으면 편할 텐데 말입니다.”

누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를 시전할 수 있는 마린사였지만.

“알아보니 서준 리 배우는 출연료로 출연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도 출연료에 연연하지 않는 배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제시할 카드가 하나 없어진 제작사로서는 막막할 따름이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한숨 소리에 쓰게 웃은 리더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오늘은 후보 감독들과 앞으로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정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나눠봅시다. 물론, 감독이든 스토리든 언제든지 갈아엎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시고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 감독은 제시카 킴 배우와 충돌이 있었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의 발언도 그렇고…… 인종차별주의자인 것 같더라고요.”

“그럼 안 되겠네요.”

주인공을 맡을 배우가 동양인인데 인종차별주의자 감독이라니…… 크게 화제가 되긴 할 거다.

신문 기사 사회면에서.

“이 감독은 배우들을 험하게 다룹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리테이크를 시키거든요.”

“그건…… 좀 애매하네요.”

좋은 장면을 위해서 몇 번이고 찍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쓸모없는 리테이크에 쓸모없는 고생이라면 문제가 있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연출 방식만 알아봐도 될 것 같은데…….”

누군가의 질문에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훗, 하고 웃었다. 어쩐지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이 정도는 약과예요. 준의 매니저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이 정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주 탈탈 털릴걸요.”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어쩔 수 없죠.”

수많은 영화를 만든 마린사인 만큼 감독들에 대한 정보들도 많았다. 그런 정보를 살펴보며,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의 프로젝트팀의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 * *

다음 날.

서준에게도 마린사에게도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물론 오늘 한 번 이야기하는 걸로 결정 나는 건 아니니까 편하게 이야기해. 서준아./”

“/네. 알았어요./”

“/태우 씨도 참가하진 않지만 잘 살펴보고요./”

“/넵! 알겠습니다!/”

편하게 회의실로 향하는 서준과 안다호와는 달리, 바짝 기합이 들어간 최태우였다.

마린사다. 마린사.

마린사의 히어로 영화를 보며 자란 최태우에게는 저절로 심장이 떨리는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반갑습니다. 리.”

“안녕하세요.”

넓은 회의실 안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서준 리와 함께 두 매니저와 에이전시 직원 한 명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춰 인원을 결정했다. 어디까지나 대등한 회의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잘 지냈니, 준?”

“네. 잘 지냈어요. 사장님.”

“제대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고생했어.”

“하하.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긴 시간 동안 [쉐도우맨 시리즈]를 찍으면서 서준과 몇 번 인사를 나눈 리처드 보윈과 페일런 박도 있었다.

“오늘 회의 잘 부탁합니다. 안. 의견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쪽은 준의 새 매니저가 된 태우 최입니다. 출연이 결정되면 앞으로는 새 매니저가 준을 케어할 예정입니다.”

“아, 그렇군요. 잘 부탁합니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준 리의 매니저 다호 안에게 새로운 매니저 태우 최도 소개받고, 서로 악수를 나누는 훈훈한 분위기에 프로젝트팀의 리더와 팀원은, 회의가 괜찮게 흘러갈 거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감독님은 스캔들이 있지 않습니까?”

회의가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 파사삭-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렸지만.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바로 옆에서 실시간으로 건네준 자료를 토대로 매니저 다호 안은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 프로젝트팀 리더와 팀원의 멘탈을 아주 잘근잘근 밟아버리고 있었다.

저쪽도 정보량이 상당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 감독님은 예시일 뿐입니다. 연출 스타일이 마음에 드신다면 비슷한 연출을 하는 감독님을 찾을 예정입니다.”

“음. 그렇군요.”

종이가 뚫어져라 감독 후보를 살피는 매니저의 눈빛이 날카롭다.

팔랑-

종이가 한 장 넘어갔다.

“이 감독님이 히어로 영화를 연출하시면 재미있겠네요!”

서준 리는 계속 생글생글 웃으며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다. 하지만 프로젝트팀의 리더와 팀원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근데 일상 장르를 많이 찍으셔서 액션 장면의 CG 활용에는 조금 약하실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다호 안 매니저가 사적인 부분의 정보에 통달했다면, 서준 리 배우는 공적인 부분의 정보에 빠싹했다. 안 본 영화가 없는 듯 감독 후보가 나올 때마다 연출이며, 스토리 진행이며, 캐릭터 활용 부분이며 모르는 정보가 없었다.

“이 감독님 영화 재미있게 봤습니다. 상은 못 받아서 아쉬웠지만요.”

독립영화계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감독도 알고 있는 서준 리에 리처드 보윈과 페일런 박이 혀를 내둘렀다. 프로젝트팀의 리더와 팀원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무섭다.

이 배우. 이 매니저.

역시 하루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하며, 프로젝트팀 리더는 마지막 감독 후보를 발표했다.

“……오…….”

감독의 이름을 보자마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만은 침묵이 길었다.

[조나단 윌]

그가 마지막 감독 후보였다.

“조나단 윌 감독님은 아직 상업영화 경력은 없으시지만, 여러 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으시고, 라이언 윌 감독님 아래에서 배우면서 비슷한 연출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조나단 윌 감독님만의 특색이 없는 것도 아니죠. 게다가 쉐도우맨 시리즈의 제작에 처음부터 참여했다는 경력과 진 나트라 시리즈 제작에 캐릭터에 대해 잘 아는 것만큼 커다란 강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의 설명을 듣던 서준과 안다호의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어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아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친분이 있어 보다 냉정해진 배우와 매니저였다.

* * *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의가 드디어 끝났다.

계약서를 쓸 만큼 확실히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서로의 생각은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대본이 나오면 바로 보내주세요.”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말해주렴. 언제든 어떤 부분이든 수정할 수 있으니까.”

‘네 말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엎겠다. 그게 감독이라도!’라는 진심이 가득한 리처드 보윈의 눈빛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페일런 박도, 뒤에 서 있는 프로젝트팀의 리더와 팀원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네. 그럴게요. 저도 진 나트라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고 싶으니까요.”

서준의 말에 다들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막 바꾸진 않을게요. 대본이나 연출은 감독의 일이고 배우는 연기하는 게 일이니까요.”

서준의 말에 리처드 보윈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을 잘 고르란 말이지? 명심하마.”

……아니.

그 말을 왜 그렇게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배우의 역할에 충실할 거라는 이야기였는데…….’

눈을 끔벅이던 서준은 그냥 웃고 말았다.

진지한 마린사 측의 눈빛을 보니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해석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오! 준! 회의는 어땠어? 감독은 정해졌어?”

아무래도 [쉐도우맨 시리즈]를 이을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의 감독이 궁금했던 모양인지 라이언 윌 감독과 조나단 윌이 서준의 집에 다시 찾아왔다.

“아뇨.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니고 후보만 몇 명 추렸어요. 앞으로 스토리 진행 방향도 대충 들었고요. 물론 감독이 정해지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지. 크랭크인까지 대본은 몇 번이고 바뀌는 법이니까.”

“촬영 중에도 바뀌는 경우도 있고!”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보는 누구누구였어? 아, 이거 비밀인가?”

“네. 확실히 정해질 때까지는 비밀이에요.”

“나 비밀 지킬 자신 있는데! 살짝만 말해주면 안 돼?”

응. 안 된다.

그 후보 중 하나가 형이니까.

“이름 약자만 말해주면 내가 추리할게!”

“음. J.W.요.”

“J.W……. J.W……. 으. 누가 있지?”

고민하는 조나단 윌과는 달리, 라이언 감독은 금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조금 커진 눈동자가 서준에게서 조나단에게로, 그리고 확인하듯 다시 서준에게로 향했다. 서준이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라이언 윌 감독이 작게 웃으며 훌륭하게 자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듯 헤집었다.

“억?! 삼촌. 왜요?”

J.W.

조나단 윌 감독이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존경하는 삼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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