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54화
-다시 연주해 볼게요.
“그래. 시간 많으니까 편하게 연주해. 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도중에 연주를 멈춘 서준이 말하자, 사라 로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녹음 부스를 나와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서준이 얼마나 진심으로 녹음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흐뭇한 얼굴로 녹음 부스에서 서준이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안다호는 진동하는 휴대폰에 최태우에게 뒷일을 맡기고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발신자는 킹즈 에이전시였다.
-마린사에서 귀국 전에 만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던데, 어떻게 할까요?
‘마린사에서?’
안다호가 잠시 녹음실을 바라보았다. 웨일 스튜디오의 이야기라면 담당자인 넬슨이 직접 연락을 했을 테니, [오버 더 레인보우2]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 터.
‘새로운 작품에 관한 것이라면 대본을 먼저 보냈겠지. 그게 아니라 직접 만나겠다는 건…….’
음. 묘하게 데자뷔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오버 더 레인보우2]를 제안하러 온 넬슨도 이랬었지. 조금 웃음이 나온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예. 만나기로 하죠. 준도 함께 오길 바란답니까?”
-네. 가능하다면요.
자신이 예상하는 작품이 맞다면 서준도 어떤 이야기인지 나눠보고 싶어 할 터였다. 처음으로 출연했던 작품이면서 계속 함께해왔던 작품이기도 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만날 시간을 정하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녹음도 순조로워 오늘 안으로 끝날 것 같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도 모레 출발하니, 내일 만나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한 분과도 관련이 있고.’
그렇게 킹즈 에이전시 직원에게 연락한 안다호는 곧바로 그 ‘초대한 분’에게 연락했다. 잠시 이어지던 신호음이 끊겼다.
“안녕하십니까. 라이언 감독님. 다호 안입니다.”
[쉐도우맨 시리즈]의 감독, 라이언 윌이었다.
* * *
음!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갈비찜의 간을 보기 위해, 한입 먹은 서준은 양념이 잘 밴 부드러운 살코기에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다.
“/태우 형도 맛 좀 보실래요?/”
서준이 작은 접시에 빛깔 좋은 갈비 한 조각을 올려 최태우에게 주었다. 양념이 촉촉하게 밴 갈빗살은 보기만 해도 흰쌀밥이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다. 꿀꺽 침을 삼킨 최태우가 고기를 흡입하고는 오오!, 감탄하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서준이 씨익 웃었다.
“/근데 서준아. 안 피곤해?/”
“/괜찮아요. 녹음도 빨리 끝났잖아요./”
식탁으로 접시를 옮기던 최태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고 있는 서준을 보며 감탄했다.
오전부터 후시 녹음을 한다고 힘들었을 텐데, 직접 저녁을 준비하고 싶다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서준이었다. 그 옆에서 안 이사님도 수준급의 실력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특이한 곳에서도 유능한 배우와 매니저 사이에서 자잘한 심부름만 하고 있는 최태우는 배워야 하는 목록에 요리도 추가했다.
양식, 한식 가릴 것 없이 준비한 요리가 하나둘 마무리되고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제 오실 때 됐죠?/”
“/그래. 곧……./”
띵동-
안다호의 말과 동시에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서준과 두 매니저가 웃음을 터뜨리며 현관 쪽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감독님! 조나단!”
오늘 저녁 식사의 초대 손님, 라이언 윌 감독과 조나단 윌 감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준.”
“너 군대 갔다 왔다며!”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이 빙그레 웃으며 서준과 포옹했고,
“오랜만입니다. 라이언 감독님. 잘 지냈지, 조나단?”
안다호와도 악수를 나누었다.
“이쪽은 준의 새 매니저 태우 최입니다. 앞으로 저 대신 준을 케어할 예정입니다.”
안다호의 소개에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의 고개가 최태우에게로 향했다.
“반갑군. 라이언 윌이네.”
“안녕하세요. 조나단 윌입니다.”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면서도,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자신을 뼛속까지 분석하려는 두 감독의 눈빛에 최태우는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서준의 지인들이 최태우를 처음 볼 때면 다들 이런 눈빛이라,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만큼 서준이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니까 어쩐지 기분이 좋기도 했다.
어느새 팔불출이 다 된 최태우였다.
“얼른 들어가세요. 음식 다 식겠어요!”
“그래.”
“이거 샴페인이야. 맛있어.”
“무알코올이에요?”
조나단이 내민 샴페인을 받은 서준이 물었다. 조나단 윌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 알코올. 준이 성인 되고 같이 마신 적이 없잖아.”
성인이 된 지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과 만난 건 한예대 입학식 때가 마지막이었다. 유럽 여행이며, [화] 촬영이며, 군대 때문에 만날 틈이 없었다.
“마셔도 괜찮죠, 다호 형?”
눈을 반짝이며 묻는 서준에 안다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마린사와의 회의가 있지만 샴페인이라면 그렇게 도수가 높지도 않을 거고.
“한 잔이라면야.”
서준과 조나단이 히히 웃었다.
* * *
서준과 안다호가 요리한 음식과 두 감독이 사 온 샴페인은 아주 잘 어울렸다.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저녁 식사가 떠들썩해지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쉐도우맨]의 감독과 스태프 겸 조감독, 배우까지 있으니 저녁 식사의 주된 화제는 [쉐도우맨]이었다.
“준을 처음 봤을 때는 제발 울지만 말아 달라고 빌었다니까요.”
조나단의 입에서 나오는 네 살짜리 서준의 이야기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비하인드였다.
“그냥 보통만 해달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연기를 잘해서 놀랐죠.”
“저도 다들 엄청 놀라던 모습이 기억나요. 감독님이 칭찬도 해주셨잖아요.”
“그랬지. 정말 잘해서 놀랐다.”
서준도 라이언 윌 감독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쉐도우맨1]부터 [쉐도우맨3]까지.
“쉐도우맨3 쿠키 영상 찍었을 때는 진짜 말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하하하.”
그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추억들이 가득했다.
“벌써 6년이나 지났네요.”
“그러게.”
서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엊그제 촬영하고 개봉했던 것 같은데, 그게 벌써 6년 전의 일이었다.
샴페인 한 잔으로도 얼굴이 조금 상기된 조나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준…… 할 거야?”
목적어가 없어도 조나단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라이언 윌 감독이 마린사에서 새로운 시리즈의 감독을 제안받았다는 이야기를 서준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거절했다는 것도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사람들이 원해도, 본인이 ‘완성’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손을 대기 싫은 법이니까.
괜히 더 연장해서 스토리가 망하는 작품들도 있었고,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괜히 있는 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라이언 감독님의 뜻.
라이언 감독님을 바라보니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하라는 듯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전 하고 싶어요.”
그에 라이언 감독을 따라 웃은 서준은 고민도 없이 말했다.
서준의 단언에 놀란 건 조나단 윌과 최태우뿐. 안다호는 이미 예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진 나트라는 아직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거든요. 빌런이었던 히어로의 복잡한 감정도 연기해보고 싶고요. 배우가 정말로 한 사람의 생을 사는 것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주아주 드물잖아요.”
그 모든 이유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서준이 꽃처럼 활짝 웃었다.
“진 나트라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이니까요.”
그 말에 라이언 윌 감독도 미소를 지었다. 배우가 이 정도로 좋아한다니, 캐릭터를 만든 사람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대본 보고 결정하려고요.”
“대본이 별로면?”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으로서 조나단이 물었다.
“안 할 거예요. 애드리브 정도는 괜찮지만, 데이비스처럼 아예 대본을 갈아엎을 정도로 개입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감독은 감독의 일이 있고, 배우는 배우의 일이 있으니까.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안 하는 수밖에.
서준이 상쾌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편하게 결정해. 서준아.”
“만약에 출연하고 싶으면 최대한 굴려. 마음에 들 때까지 바꾸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
웃으며 말하는 안다호와 라이언 감독의 말에 조나단 윌과 최태우는 마린사의 명복을 빌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굴린다니, 최악의 클라이언트가 아닌가. 시나리오팀이 따로 있을지, 아니면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근데 삼촌이 안 한다면 누가 감독을 할까요?”
조나단의 물음에 라이언 윌 감독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히어로 영화라 액션 장면에 특화된 감독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나온 스토리가 있으니, 캐릭터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에 대해 잘 아는 후보들 중에 뽑겠지. 액션은 뭐, 좋은 무술 감독을 쓰면 되니까.”
“쉐도우맨 시리즈하고 비슷한 느낌의, 그러니까 라이언 감독님과 비슷한 연출이 좋겠죠?”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팬들이 바라는 느낌이 있을 테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은 해야 할 거야.”
“스토리에, 연출에…… 진 나트라 팬들의 기대까지 만족시키려면…… 누가 감독을 맡을지는 몰라도 엄청 고생하겠네요.”
조나단 윌이 안됐다는 듯 말했다.
* * *
“조나단 윌 감독은 어떻습니까?”
서준 리와의 만남이 결정된 직후, 마린사는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를 위해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이전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활동했던 직원들부터 새롭게 들어온 유능한 직원들까지 머리를 맞대고 내일 있을 만남에 대비하여 회의를 이어나갔다.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배우 서준 리의 출연 여부였다. 그리고 그건 내일 결정될 터였다.
그 결정이 긍정적으로 향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대략적인 틀을 먼저 잡아놓아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를 총괄할 감독으로, 물론 반나절 만에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니, 후보 목록 정도를 정하게 되었다.
“조나단 윌 감독님은 쉐도우맨1 때부터 함께하신 분입니다.”
조나단 윌 감독을 추천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쉐도우맨 시리즈]를 제작할 때 함께했던 직원이었다.
“진 나트라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시죠.”
“그래도 나이가 아직 어려서……쉐도우맨1 때 참여한 것도 중학생이었잖습니까.”
“그 나이 어린 감독님이 루카스 터너를 발굴하셨죠.”
독립영화 [신의 이름으로]의 주인공이었으며, 2세대 히어로 중 하나인 [팬텀]의 루카스 터너의 이야기에 직원들 중 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어리시니 좀 더 색다른 연출도 가능하겠죠. 그 바탕에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옆에서 봐왔던 라이언 윌 감독님의 연출이 있을 거고요.”
“으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쉐도우맨 시리즈]와 비슷하면서도 [진 나트라 시리즈(가제)]만의 특징이 잘 나타날 수 있는 연출일 것 같기는 했다.
“서준 리 배우와의 친분도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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