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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51화 (65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51화

대기실 하나를 빌린 서준은 정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생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선의 도서관.

“이것도 괜찮을 것 같고 저것도 괜찮을 것 같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해 주기 위해, 서준은 그동안 읽었던 생의 책들 중 가장 적당한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미리미리 비슷한 계열의 능력들을 책꽂이마다 분류를 해놓은 상태라 다시 책을 읽어야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생의 책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설정은 되어 있지 않아 다행이지.”

그러면 다시 책들을 찾는다고 몇 배의 시간이 걸렸을 거다.

생의 책 한 권을 든 서준이 해당 삶의 능력을 살폈다.

아무래도 영상으로 남겨질 거라서 더 신중해야 했다. 20여 년 전에 촬영했던 [아기 먹방] 영상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이번 [오버 더 레인보우2]도 오래오래 남을 테니까.

그 옛날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졌었던 ‘아기 천사’의 능력의 상위 버전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더욱 마음이 가는 능력이 있었다. 연주할 때 사용할 능력들과 함께 써도 시너지가 생겨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이걸로 할까…….”

[(선)이름 없는 신관의 찬가-중급]

신을 모시는 자, 이름 없는 신관이 부르는 축복의 노래입니다.

듣는 존재를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건강.

얼마 전 촬영한 에피소드가 마음 깊이 남았던 서준이었다.

* * *

점심 식사 후 웨일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간식들을 먹으며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브레드홀의 관객들에게도 당연히 주스와 쿠키가 전해졌다.

“명상이라니. 엄청 본격적이네.”

서준이 먹을 오렌지주스와 쿠키를 미리 빼놓은 폴의 말에 흥미로운 얼굴로 서준이 향한 쪽을 바라보던 캐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준이 열심히 한다는 건 알았지만 촬영 전에 명상을 한다고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10년 동안 같이 작품 한 적이 없어서 우리가 몰랐던 걸 수도 있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보니 담당 배우가 명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신입 매니저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안 이사님. 서준이가 명상을 자주 하나요?”

그렇다면 명상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게 있을까.

최태우의 물음에 안다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정말로 집중하고 싶을 때는 하죠. 그리고 그 이후의 결과물은 정말로 감탄만 나오고는 합니다. 따로 준비할 건 없고 조용한 곳만 찾아주면 됩니다. 없으면 차 안도 괜찮고요.”

근처를 지나가다 매니저의 이야기를 훔쳐 들은 이들의 눈동자가 기대로 반짝였다. 매니저까지 감탄이 나오는 장면이라니. 그 이야기는 금세 스태프들 사이로 번져 나갔다.

“나도 관객석에서 듣고 싶다.”

“저도요.”

촬영만 아니었으면.

하고 저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배우 서준 리가 연주를 하게 된 게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먼저 할까?”

“그럴까요?”

사라 로트 감독과 에밀리 조감독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오늘 오길 잘했네요.”

“그렇구나.”

제이슨 무어와 벤자민 교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서준의 연주를 기대하며 웃는 사제의 표정이 똑 닮았다.

서준의 명상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폴과 캐서린이 잔뜩 흥미로운 얼굴로 대기실에서 나오는 서준에게 달려갔다. 오렌지주스와 쿠키를 손에 들고.

“어땠어?”

“잘했어, 명상?”

“응. 괜찮았어.”

주스와 쿠키를 받아 든 서준은 목에 새겨넣은 문양을 떠올리며 웃었다.

“자. 여기.”

제이슨 무어가 간식을 먹은 서준에게 바이올린 케이스를 건넸다. 던지듯 건네주는 건 아니었지만 취급이 거칠었다.

……헉!

제이슨 무어의 거침없는 손길에 그 바이올린 케이스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화들짝 놀랐다. 뒤늦게 안다호에게서 그 안에 수십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들어 있다는 것을 들은 최태우도 기겁했다.

“조심히 좀 다루라니까.”

벤자민 교수가 타박하듯 제이슨 무어의 등을 가볍게 쳤다. 나이를 먹었어도 변하질 않는 녀석이었다. 아픈 모양인지 제이슨의 얼굴이 찌푸려지자, 서준과 캐서린, 폴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휴식 시간이 전부 끝나고 다시 촬영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장면은 조금 전 씬에 이어서, ‘그레이 바이니’가 브레드홀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 대한 정체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레디, 액션!”

눈시울이 붉어진 그레이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닦아내도 닦아내도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해 주신 분들과 자신이 후원한 분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거.”

조지와 레베카의 서프라이즈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조지가 내민 바이올린 케이스를 그레이가 바라보았다. 또 어떤 놀라움이 있을지 긴장이 되어, 바이올린 케이스를 여는 손이 조금 떨렸다.

천천히 케이스가 열렸다.

그 틈 사이로 고동빛 나무가 보였다. 유려한 곡선의 몸체에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지만 잘 관리된 상태. 그리고 팽팽한 바이올린의 현과 단단하게 자리 잡은 부품들.

겉모습만 보면 보통의 바이올린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본 그레이 바이니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

3대 명기 중 하나였다.

“널 후원하셨던 분이 보내주신 거야. 괜찮다면 앞으로는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뭐……?”

그건 마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레이! 숨! 숨 쉬어!”

정말 숨도 쉬지 않는 상태였나 보다.

허억!

하고 숨이 들이마셔졌다. 새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변해가던 그레이의 혈색이 천천히 돌아……오지 못했다.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떨리는 눈동자로 케이스에 들어 있는 몇백 년 된 바이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한다고……?”

“꼭 연주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지의 말에 그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고.”

레베카도 말했다.

“모든 건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레이.”

조지와 레베카의 눈동자에 어쩐지 긴장이 확 풀어졌다.

두 친구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자신이 무슨 결정을 내리든 믿을 것이며 지지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게 한때는 부담으로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 어떤 위험으로도 자신을 지켜줄 것만 같은 커다란 보호막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창백하던 그레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생겨났다.

친구의 미소에 조지도 레베카도 따라 웃었다.

“어떻게 할래?”

“할래. 연주.”

그레이 바이니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손을 뻗었다. 조심스러우나 설렘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하고 싶어.”

그레이 바이니의 눈동자가 10년 전처럼 반짝, 빛났다.

* * *

앞선 촬영 때문에 관객들의 휴식 시간은 더욱 길었다.

촬영 시간에 맞춰 LA음대와 근처를 구경하고 돌아온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으으. 긴장된다.”

“그러게. 내가 다 긴장돼.”

최유성과 나탈리, 친구들이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10년 전 연주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봐서 그런가?”

“그런가 봐.”

오늘 촬영을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기 위해 다 같이 모여 [오버 더 레인보우1]과 너튜브에 올라온 버스킹 영상까지 모두 살펴본 최유성과 친구들이었다. 물론 최유성과 나탈리가 출연했던 장면은 웃음이 가득했었다.

[잠시 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시간표에 딱 맞게 안내 방송이 나왔고, 휴대폰 사용이나 촬영 등에 대한 설명도 흘러나왔다. 관객석 여기저기에 설치된 카메라가 보이고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곧 브레드홀이 어두워졌다.

삐----

미리 안내를 받았듯, ‘액션!’ 사인을 대신한 안내음이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관객들 모두 무대 위를 바라보며 곧 나올 바이올리니스트를 기다렸다.

동시에 무대 뒤.

사라 로트 감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디, 액션.”

어둠 속에 서 있던 그레이는 빛나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던 빛나는 무대, 관객들의 기대, 홀을 가득 채우는 자신의 연주.

그레이는 손에 든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무겁게 느껴지던 바이올린이 오늘따라 가볍다. 아니 무겁다. 그러나 따뜻했다. 뜨거웠다. 모두의 마음이 바이올린으로 실체화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레이는 더 이상 빛이 무섭지 않았다.

그레이는 뒤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커다란 이벤트를 힘들게 준비했을 소중한 친구들이 거기에 있었다. 걱정이 가득한 조지와 레베카의 눈빛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래.

10년 전에도. 그 이후에도.

친구들은 이랬다.

어떻게 하면 다 갚아줄 수 있을까. 끙끙 앓으며 고민하게 될 정도의 애정을 주었다.

그레이는 알고 있었다.

친구들의 걱정을 없앨 말을.

“즐겁게 연주하고 올게.”

레베카와 조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둥글게 휘어졌다.

“! 그래!”

“즐기고 와. 그레이.”

그저 한마디.

그 말만으로도 함박웃음을 짓는 친구들에 그레이는 웃음으로 찔끔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숨겼다. 신이 주신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친구들일 터였다.

차르륵.

그레이 바이니의 손과 바이올린을 꽈악 묶고 있던 무거운 쇠사슬이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손에 든 바이올린이 가볍다.

차르륵.

그레이 바이니의 다리를 묶고 있던 쇠사슬도.

빛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가뿐하다.

차르륵.

그레이 바이니의 몸을 휘감고 있던 쇠사슬도.

무대를 가로지르는 걸음이 경쾌하다.

차르륵.

그레이 바이니의 어깨와 목을 감고 있던 사슬도.

우렁찬 박수 속에서 꾸벅 인사하는 모습이 홀가분하다.

하아!

그동안 온몸을 휘감고 있던 모든 사슬들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 바이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에 턱을 괬다.

첫 곡은 [오버 더 레인보우]의 OST,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

* * *

‘의상이…….’

아주 경쾌한 걸음으로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그레이 바이니’를 보며 열렬히 박수를 보내던 최유성이 그레이 바이니가 입고 있는 의상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렸다.

물론 검은색 정장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저 의상은 알 수밖에 없었다.

바로 어제 봤던 [오버 더 레인보우1]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10년 전, 여기 브레드홀에서 최유성이 봤던 장면에서 ‘어린 그레이 바이니’가 입고 나왔던 복장이었다.

‘그걸 왜…….’

생각을 이어가려던 찰나, 브레드홀을 가득 채우는 [오버 더 레인보우]의 선율에 최유성은 금세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 * *

[(선)바이올린 꿈 요정의 기초수업이 발동됩니다.]

[(선)고블린 바이올리니스트의 선율이 발동됩니다.]

10년 전 촬영 당시 썼던 능력에,

[(선)이름 없는 신관의 찬가-중급-이 발동됩니다.]

새로운 능력,

[(선)엘프의 기초호흡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늘어난 선기까지 더해졌다.

어마어마해진(그러나 서준이 적당히 조절하는) 선율의 파도가 관객들에게 밀어닥쳤다.

10년 전 연주보다 훨씬 성숙해진 그레이 바이니의 연주는

설렘과 기쁨으로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으며,

더욱 절절한 절망으로 가슴 아프게 만들었고,

끝내 파도와 같은 찬란함으로 저도 모르게 의자 손잡이를 꽉 잡게 만들었다.

언제 눈을 깜빡였는지, 언제 숨을 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음악에 푹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이 곡을 들었던 이들은 직감하고 있었다.

정말로 몇 초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오버 더 레인보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마지막 음이 크게 공연장을 울리는 것을 끝으로 그레이의 활이 멈추었다.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준 그레이 바이니 가 꾸벅 인사를 하자 관객들이 약속한 듯 하나둘 일어나며 박수를 보냈다. 원래 그렇게 정해진 것이기도 했지만, 반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였다.

그때,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그레이 바이니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그레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맴돌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레이’가 벅찬 얼굴로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글자로만 표시되던, 그레이 바이니에게 후원해 준 사람들이, 그리고 그레이 바이니가 후원했던 사람들이 모두 실체를 가지고 앉아 있었다.

경이롭다.

문득 묘비가 떠올랐다.

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고 있을 거야.’

입술을 꾹 다물고 관객석을 둘러보던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후원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오랜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짝짝짝짝!!

브레드홀을 가득 채우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려움을 딛고 이 자리에 모여주신 분들께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멋진 연주였습니다.”

와아아아!!

그레이 바이니에게 후원받은 이들이 감사가 가득 담긴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러분들과 제 친구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곡이 있습니다.”

무대 뒤에서 붉어진 눈시울로 손바닥이 불타오를 정도로 손뼉을 치던 조지와 레베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지 않아도 친구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것 같아, 그레이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목은 For My Friend입니다.”

[오버 더 레인보우2]의 OST, [For My Frien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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