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45화 (64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45화

“확실히 준은 실전에 들어가면 다르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연습 때도 물론 잘하지만 촬영에서는 그 이상의 연주를 보여주네요.”

얼마나 연기와 촬영에 열정적인지.

연습 때보다 멋졌던 [자장가]를 떠올리며 웃던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가 작은 술렁임에 고개를 돌렸다. 바이올린에 턱을 괸 서준이 연주를 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촬영을 준비 하나 봅니다.”

“그렇다기엔 아직 준비가 안 끝난 것 같은데…….”

오케이 사인에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벤자민 교수의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촬영이라기엔 서준이 서 있는 장소가 애매하다. 서준은 촬영장소인 묘비 앞이 아니라 사라 로트 감독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의아해하는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의 시야에 서준이, 아니, 그레이 바이니가 바이올린 활을 움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자장가]인가, 생각하던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눈이 커졌다. 전혀 다른 첫 음이었다.

“……편곡?”

“아니, 다른 곡이구나.”

그 대화를 끝으로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는 입을 다물었다.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선율에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그 둘뿐만이 아니라 에반 블록과 최태우도, 통화를 하고 온 안다호도,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스태프들도 모두 들려오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라 로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준의 말대로야.’

다정하게 들려오는 [굿 나잇]의 선율은 정말로 [자장가]의 화답 같았다.

남겨진 자들이 죽은 자들에게 전하는 [자장가]

죽은 자들이 남겨진 자들에게 보내는 [굿 나잇]

서로 다른 입장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랑과 애정과 걱정은 같았기에, 다른 곡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거기다 ‘그레이 바이니’가 작곡한 곡인 것 같은 통일성도 있었다.

‘이걸…… 방금 떠올렸다고?’

정말이지.

서준 리의 천재성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와 관련된 천재성인지, 음악과 관련된 천재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도 모르게 벅찬 한숨을 내쉰 사라 로트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굿 나잇]이 [오버 더 레인보우2]에 삽입되는 건 확정이었다. 이런 곡을 빼놓고 이번 작품을 만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사도 새로 넣어야겠지.’

원래라면 [자장가]의 연주가 끝난 후, 한나 와이즈와 서준이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캐서린이 등장하면서 공동묘지 에피소드가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자장가]의 화답인 [굿 나잇]이 들어갈 장면은 오늘 촬영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대사도, 전개도 바꿔야 했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굿 나잇]을 들으면서도 사라 로트 감독의 머릿속은 온갖 활자들이 이리저리 맞춰지고 있었다. 감독 경력이 몇 년인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사이 ‘그레이 바이니’가 연주하는 [굿 나잇]의 마지막 음이 길게 이어지다 끊겼다.

적막한 촬영장.

얼마간의 침묵 후, 여기저기서 벅찬 숨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주연 배우가 바이올린을 들고 앞에 서더니 굉장한 곡을 연주한 것이었다. 그것도 왠지 모르겠지만 멀리 떠나버린 소중한 이를 떠올리게 하는 곡을.

“이건…….”

일반인도 그러할진대, 음악가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가 느낀 감정은 더욱 격했다. 날카롭고 예민한 귀와 [자장가]를 작곡하면서 고민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서준이 이 곡을 작곡한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작곡가들은 자신이 만든 곡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녹여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곡을 직접 체험하고 겪으면서 작곡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 상상하면서 작곡하는 곡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곡은…….’

정말로 죽은 자가 보내는 답장 같다.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죽은 후의 감정을 알 리가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 곡을 들으면 마치 정말로 죽음은 겪은 이가 빙그레 웃으며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느껴지는 감정이 사실적이며 풍부했다.

‘죽었다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닐 텐데.’

얼떨결에 정답을 맞혀버린 제이슨 무어가 캐서린, 폴과 함께 걸어오는 서준을 보고 질문을 쏟아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곡은 뭐고? 처음 듣는 곡인데 언제 작곡한 거야? 어디서 영감을 얻었어? 자장가랑 관련이 있어?”

“어…….”

시간이 난 김에 [굿 나잇]이 어땠는지 물어보러 왔는데, 활활 타오르는 제이슨의 눈빛에 서준이 말문이 턱 막혔다. 벤자민 교수님을 슬쩍 바라보니 교수님도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게. 촬영을 하다 보니까 죽은 사람들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남겨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걱정할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촬영하면서 떠올랐어요.”

“준이 방금 생각한 곡이래요!”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서준의 설명에 캐서린과 폴이 자기 일인 양 흥분한 얼굴로 덧붙였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 에반 블록과 두 매니저는 물론이고, 고개를 옆으로 쭉 빼고 귀를 기울이던 스태프들이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자장가의 답가니?”

벤자민 교수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어땠어요, 교수님?”

“좋았단다. 자장가랑도 잘 어울리고 그레이가 작곡한 곡 같았어.”

“그래서 제목도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5. Good Night이에요.”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제이슨 무어도 한마디 보탰다.

“진짜 죽어본 사람이 쓴 곡 같았다.”

“하하하.”

……어떻게 알았지.

서준이 얼른 둘러댔다.

“작품 찍을 때마다 많이 죽어봐서요.”

아하.

서준이 촬영한 작품은 모두 봤던 지인들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곡도 영화에 삽입하는 거야?”

서준이 작곡한 곡이니 이래저래 할 일이 생긴 매니저 안다호가 물었다. 최태우가 얼른 메모할 준비를 했다.

“네. 감독님이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장면을 수정 중이세요.”

서준의 말대로 사라 로트 감독은 무언가 쓰느라 바쁜 듯 보였고 에밀리 조감독은 스태프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생겼어요.”

“준비 끝나면 부르신대요.”

“크게 바뀐대?”

에반 블록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대사 몇 개만 추가하실 거래요.”

그 말대로 크게 수정할 것은 없었던 모양인지 다음 촬영은 빠르게 준비되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새롭게 추가된 대사와 전개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서준과 배우들이 촬영장에 섰다. 촬영에 지장이 없게 신경 쓰면서도 이제 곧 [굿 나잇]을 듣는다는 생각에 스태프들의 눈이 반짝였다.

“레디, 액션!”

“정말 고마워요. 그레이.”

[자장가]를 들은 죽은 아이의 엄마가 붉어진 눈시울로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대신 표현한 듯, 사랑이 듬뿍 담긴 이 부드럽고 다정한 곡은 멀리 떠나버린 아이에게도 확실하게 들렸을 것이다.

“별말씀을요.”

그레이가 작게 웃고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슬픔과 걱정, 그리고 사랑과 애정으로 울듯 웃고 있는 표정에, 어쩐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떠올랐다.

“…….”

바이올린을 더 이상 연주하지 못하게 되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고민으로 밤새 뒤척이며 고민하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아직 극단적인 생각까지 뻗어 나가지는 않았으나, 그만큼 막막하고 암담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엄마도 이렇게 계속 슬퍼하고 걱정하겠지.

그렇다면 그레이는 엄마가 오래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다. 슬픈 기억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보다는 미소를 지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마 여기 잠든 아이도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제가…….”

그레이의 목소리에 묘비를 바라보던 한나 와이즈가 고개를 들었다.

“한 곡 들려드려도 될까요?”

“네?”

“꼭 들려드리고 싶어서요.”

그레이의 진지한 목소리에 한나 와이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조지가 눈을 빛냈다. 그레이가 먼저 연주를 하겠다고 한 건 처음이었다.

그레이가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이 곡은 죽은 자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제 깨어나지 못할, 그러나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듯, 그레이는 천천히 활을 내리그었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왔다.

연약한 음이 점점 강해진다. 마치 망자가 죽음의 끝에서 되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망자는 느릿하게 흐르는 스틱스강을 건너 살아 있는 자의 앞에 섰다. 그리고 차갑지만 약간의 온기가 깃든 손으로 남겨진 이의 손을 맞잡는다. 꼬옥 잡는다.

[(선)모드잇꽃의 꽃잎-중하급-이 발동됩니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곡이라 준비한 능력은 없었지만 [(선)모드잇꽃의 꽃잎]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죽은 이가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자장가]와 반대로, [굿 나잇]은 남겨진 이가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곡에 담긴 사랑과 애정과 걱정이 푸르른 꽃잎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갔다.

아…….

한나 와이즈가 또 한 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아버지를 붙잡았던 [자장가]와 달리, [굿 나잇]을 듣는 지금은 아버지가 자신을 꼭 껴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딸도 건강히 지내.’라고 말하며.

따뜻한 그 품의 온기가 그대로 잠들고 싶어졌다.

길게 이어지는 음을 마지막으로 [굿 나잇]이 끝났다.

그레이가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레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드님도 어머니가 이제 그만 슬퍼하길 바랄 거예요. 슬픈 기억보다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요.”

“네…… 고마워요…… 정말로…….”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한나 와이즈의 모습에 스태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아까워.”

제이슨 무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옆에 서 있던 벤자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해하는 최태우와 달리,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 에반 블록과 안다호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이 가득 담긴 제이슨 무어의 뒷말이 이어졌다.

“역시 그때 꼬셔야 했는데.”

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서준은 여전히 탐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 * *

서준과 두 매니저, 캐서린과 폴,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 에반 블록, 사라 로트 감독과 에밀리 조감독까지.

서준이 지내는 LA 집에 준비된 저녁 식사 자리는 북적북적했다.

“아무래도 마약범에 현행범인 데다가, 조니 스트럭이 협조적이라서 재판도 빨리 이루어질 것 같다더군요. 그 외의 다른 범죄 이력은 없어서 조사가 빠르다고 합니다.”

“협조적이라고요?”

“네. 경찰 말로는 반성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에 모두의 표정이 탐탁지 않아졌다.

형량을 줄여보겠다고 반성하는 척하는 범죄자들의 모습은 실제 뉴스에서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안다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선처는 없을 예정입니다. 전례를 만들면 위험하니까요.”

그제야 모두의 얼굴이 풀어졌다.

역시 서준의 안전에 가장 날을 세우고 있는 매니저, 다호 안. 아주 믿음직스러웠다.

“음. 그래도 정말로 반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능력으로 조니 스트럭의 정신세계를 깨끗하게 정리한 서준의 말에 제이슨 무어의 얼굴이 험상궂어졌다.

“정말로 반성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거다. 저렇게 말해놓고 뒤통수칠 수도 있어.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으음.

얼마 전 조니 스트럭의 꿈속에 들어가, 수틀리면 악의 능력을 사용해서 조니 스트럭의 인생을 끝장내려고 했던 서준이 데굴 눈을 굴렸다.

“그렇게 안 착한데요. 저.”

“안 착하긴.”

제이슨 무어가 흥, 콧바람을 내쉬었다.

다들 제이슨의 말에 동의하는 듯하자,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존재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서준이 하하하 웃고 말았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