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44화 (64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44화

벤자민 모튼 교수가 작곡한 [자장가]

먼저 떠나보낸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남은 자들이 보내는 사랑과 슬픔이 가득 담긴 곡.

사라 로트 감독은 아무래도 아직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이 아주 드물, 어린 서준보다는 많은 인연을 만나고 그 인연만큼 많은 사람과 이별했을 벤자민 모튼 교수가 [자장가]라는 곡을 작곡하는 데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에 등장할 [굿모닝]과 이미 촬영을 끝낸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을 서준에게 작곡을 맡긴 것과 달리, 이번 공동묘지에서의 에피소드에서 연주할 [자장가]는 벤자민 교수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벤자민 교수는 옛 인연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누구나 소중한 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자장가]를 작곡했다.

그 곡이 지금 ‘그레이’의 손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정하고 차분하며 상냥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촬영장을 맴돌았다.

그동안 당신을 괴롭게 했던 악몽을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행복한 꿈을 꾸기만을 바라는 남겨진 자들의 애정과 사랑이 듣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저절로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멀리 떠나보낸 이들을 떠올랐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연인. 친구. 반려동물.

각자 떠올리는 사람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같았다.

‘부디 평안하길.’

사라 로트 감독의 추측과 달리, 현재 ‘이 세계’에 살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이별을 한 ‘무한환생자’가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 연주를 이어 나갔다.

‘몬스터라고 해도 이별은 아는 법이니까.’

악의 삶이라면 몰라도, 선의 삶에서는 그만한 사랑과 슬픔과 애정을 겪었다. 서준이 이번 곡의 작곡을 맡았어도 아주 잘 해냈을 거다.

‘물론, 교수님이 작곡한 자장가도 좋지만.’

‘그레이 바이니’로서의 연기를 이어 나가며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선)모드잇꽃의 꽃잎-중하급-이 발동됩니다.]

[(선)모드잇꽃의 꽃잎-중하급]

물속에서 자라는 나무 모드잇의 꽃입니다.

죽은 존재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대상자의 슬픔과 미련의 일부분 없애줍니다.

바닷속에서 자라는 나무, 모드잇.

모드잇에서 피어나는 꽃은 바닷속 종족의 장례식에서 사용된다. 모드잇꽃의 꽃잎은 죽은 자가 살아 있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남겨진 사람들은 슬픔과 사랑을 물로 흘려보낸다.

남겨진 이들에게 미련이 남지 않기를 바라며.

서준에게만 보이는 바다 빛 꽃잎들이 물결에 흘러가듯 허공을 떠내려갔다.

그렇게 서준의 능력까지 더해진, 죽은 자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가 천천히 그 끝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한나 와이즈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언제나 웃으며 자신을 지켜주었던 아버지의 굳은살이 배긴 손을 꼬옥 잡고, 눈물로 젖은 얼굴로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연주가 더욱 느려졌다. 끝이 느껴지는 듯했다.

멀어지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아쉽다.

뒤를 돌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부디, 그곳에서 편안하기를 빌었다.

대본에 ‘눈물을 흘린다.’,라는 지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나 와이즈는 왠지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진심이 가득 담긴 연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 한나 와이즈를 보며 바이올린 연주를 마무리하던 ‘그레이’이자 ‘서준’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장가]가 죽은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거라면…….

‘답장이 오면 어떨까?’

“컷, 오케이!”

서준이 바이올린 연주를 끝내자 사라 로트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서준이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내려다보았다.

아쉽다.

아직 벗어나지 않은 ‘그레이 바이니’도 그렇게 생각했다.

서준에게는 이 세계의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서준이 연기하는 ‘그레이 바이니’도 그걸 알고 있었다.

바로, 죽은 이후의 마음.

그리고 생각과 감정.

이전의 생에서 사랑하던 이들은 내가 죽은 후 어떻게 됐을까.

괴롭지는 않을까.

슬퍼하지는 않을까.

쓸쓸하지는 않을까.

이렇게나 많은 삶을 살았으면 무뎌질 만도 한데, 사랑과 애정은 언제나 ‘서준’을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선의 삶에 한정해서다.

‘악의 삶은 뭐…… 깔끔하게 잊었지.’

하여튼.

죽은 이후의 마음은, ‘서준’처럼 생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감정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음악으로 표현하는 음악가라서 그런가, ‘그레이 바이니’는 이 독특하고 특별한 감정에서 솟아오르는 악상을 이대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서준’도 같은 생각이었다.

“……서, 서준아?”

“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태우 형이 있었다. 서준을 살펴보는 눈빛에 걱정이 가득하다.

“서, 서준이 맞지?”

“? 네. 맞아요.”

서준의 대답에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집요하게 살펴보는 듯한 최태우였다. 그러고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안심한 얼굴로(아직 조금 걱정이 남아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태우 형의 모습에 조금 걱정이 됐지만, 에반이 옆에서 무어라 묻는 모습에 걱정을 덜었다.

서준은 사라 로트 감독에게로 향했다.

“감독님.”

“응? 아, 모니터링 하려고?”

사라 로트 감독이 활짝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옆에 있던 캐서린과 폴이 두 엄지를 계속 치켜올렸다.

“연주 좋았어. 녹음본 들어보고 괜찮으면 그대로 써도 될 것 같아.”

“엄청 좋았어! 준!”

“감사합니다. 고마워.”

서준이 빙그레 웃고는 말을 이었다.

“감독님. 한 곡 더 연주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한 번 더?”

사라 로트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으며 말했다.

“배우가 완성도를 높이겠다는데 반대할 감독은 없지. 괜찮아. NG도 없이 한 번에 오케이였으니까 시간도 많이 남았고.”

사라 로트 감독의 오해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한 번 더 연주한다는 게 아니라 다른 곡을 연주하고 싶어서요.”

“……다른 곡?”

이제야 제대로 알아들은 사라 로트 감독이 눈을 끔벅였다.

“네. 방금 떠오른 곡이 있어서요. 지금 촬영 장면에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방금?”

어쩐지 아까부터 서준이 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사라 로트 감독이었지만, 너무 놀라서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어느새 다가왔던 에밀리 조감독이 입을 쩌억 벌렸다. 캐서린과 폴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어…… 어…… 어떤 곡인데?”

당황하던 사라 로트 감독이 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저 바이올리니스트역을 맡은 배우의 치기 어린 말이라기에는 ‘서준 리’라는 배우가 너무나도 대단했다. 바이올린 실력이나 작곡 실력도 그렇지만, 연기나 작품에 관련해서 헛소리를 할 배우가 아니었다.

“자장가의 답장 같은 곡이에요.”

그 믿음에 걸맞게 서준은 차분히 자신이 떠올린 곡을 설명했다.

“자장가는 죽은 이들을 위한 곡이잖아요. 그러니까 반대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답장 같은 곡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죽은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슬픈 기억보다 자신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내용이 구체적이었다.

에밀리 조감독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준. 방금 떠올랐다고 하지 않았어?”

“? 네. 맞아요. 방금 떠올랐어요.”

와아…….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에밀리 조감독과 캐서린, 폴이 입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사이, 사라 로트 감독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럼 지금 연주할 수 있어, 준?”

“네.”

“설명은 좋아. 하지만 영화에 넣을 건지 안 넣을 건지는 곡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지?”

“네. 물론이죠!”

사라 로트 감독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영화에 어울리지 않은 곡이라면 서준이 먼저 반대할 거였다.

“그럼 지금 들어보자. 아, 곡 제목은 뭐야?”

그 물음에 바이올린을 챙긴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5. Good Night이에요.”

* * *

최태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안다호는 조니 스트럭의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당황하며 서준에게로 향했던 최태우가 안심한 듯, 하지만 표정을 연구하는 게 일인 에반 블록의 눈에는 아직 걱정이 어린 얼굴로 돌아왔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는 서준의 연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 할리우드 스타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던 최태우가 친절해 보이는 에반 블록의 얼굴에 말문을 열었다.

“아, 그게……조금 전에 서준이가 그레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요. 안 이사님께서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보라고 하셨거든요. 메소드 연기법에…… 그…… 문제가 좀 있잖습니까.”

“아하.”

최태우의 설명은 조금 부족했지만, 연기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분석가’ 에반 블록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조금 전 그 모습은 벗어나지 못했다기보다는 벗어나지 않았다, 라는 게 맞습니다. 준이 그레이 바이니의 입장에서 조금 더 좋은 전개를 떠올리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지금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고요.”

에반 블록의 말대로 사라 로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서준이 보였다.

“아, 그렇군요.”

그제야 최태우의 얼굴에서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이 보였다. 에반 블록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서준의 말대로 이번 매니저도 안다호 못지않게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준의 연기법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에게 제일 알맞은 연기법이라 문제가 될 리가 없거든요.”

그 단정적인 말에 최태우가 물었다.

“어…… 메소드는 몰입하면 위험하지 않나요? 너무 몰입하다 보면 배역과 자신을 혼동해서 최악의 상황엔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배우도 있었죠. 저도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고요.”

“……네?!”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놀라는 게 조금 늦었다. 최태우가 놀란 눈으로 에반 블록을 바라보았다. 에반 블록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만약의 일입니다. 만약의.”

에반 블록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건 꽤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쉐도우맨2 촬영 때, 라이언 감독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연기에 부족함을 느끼게 되면 메소드 연기법에 손을 댈 것 같다고, 그것도 아주 집요하게 말입니다.”

에반 블록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이후의 상황은 꽤 위험할 거고요. 제가 또 별명이 분석가일 정도로 파고드는 타입이라서.”

최태우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지금 메소드 연기를……?”

“아뇨.”

에반 블록이 웃었다.

“준 덕분에 알려진 연기 이론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고개를 갸웃하는 최태우에 에반 블록이 말을 이었다.

“준은 메소드 연기를 하지만 빠르게 몰입하고 자유자재로 벗어나는 타입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연기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타입이죠. 그걸 보니 이론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반 블록은 연기력으로 고민했던 옛날을 떠올렸다.

메소드 연기법이 끌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정말 어울리는 연기법일까.

성인 배우들에 비해 연기 이론을 깊게 공부하지 못한 어린 준이,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은 에반 블록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른 것처럼 연기 이론도 크게 나뉠 뿐이지, 사람마다 알맞은 연기법이 따로 있다는 걸 준을 보면서 깨닫게 됐죠.”

준은 준의 연기를, 데이비스는 데이비스의 연기를.

리첼은 리첼의 연기를. 스왈린은 스왈린의 연기를.

그리고 나는 나의 연기를.

에반 블록이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서 여전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역시.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방법은 분석이었다.

“준의 연기법은 거의 2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거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호가 걱정이 많아서 그래요.”

“……그렇군요.”

서준만큼 오랜 경력을 가진 배우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 됐다.

“촬영 재개하나 보네요.”

“아, 네!”

에반 블록의 말에 촬영장으로 시선을 돌린 최태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촬영 맞습니까?”

“……리허설인가?”

돌아가는 카메라 없이 바이올린을 든 서준만이 촬영 현장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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