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42화
가지고 왔던 선의 능력으로 조니 스트럭의 체내에 스며든 마약과 그 잔재, 중독성 등을 제거하고, 서준은 깨끗해진 정신세계 안에서 조니 스트럭이라는 사람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번 조니 스트럭의 인생이 빠르게 지나갔다.
평범하게 자라온 어릴 적, 배우로서의 삶, 고난과 실패와 좌절의 연속.
‘그래도 이번 일 빼고는 딱히 문제가 될 사건은 안 일으켰네.’
물론 마약은 불법이지만.
그건 미국의 법이 알아서 판결해 줄 거다.
아마도 쌓이고 쌓였던 것들이 술집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술기운, 거기다 마약과 만나 한 번에 폭발해 버렸던 게 아닐까.
물론, 모든 사람이 조니 스트럭과 같은 일을 겪었을 때, 이런 사건을 터뜨리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져온 악의 능력을 쓸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서준은 손바닥 안에서 불길하고 새까맣게 이글거리는 악의 능력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후유증이 남는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지금 쓰고 있는 [(악)나이트메어의 꿈산책]도 신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니 충분한 벌이 됐을 거다. 그리고 선의 능력으로 정신세계도 치료했으니 오랜만에 맑고 선명한 시선으로 자신이 벌인 사건과 이전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될 거고.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안전장치 하나쯤은 걸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서준은 판단했다.
‘그건 내일 할까.’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악)나이트메어의 꿈산책]이 조니 스트럭의 신체에 큰 후유증을 남기니, 서준은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새까만 기운이 잠든 조니 스트럭의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졌다.
무서운 악몽을 꾸는 듯, 식은땀을 흥건히 흘리며 끙끙 앓고 있던 조니 스트럭의 표정이 번쩍 눈을 떴다.
“헉! 허억!”
조니 스트럭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퀭해 보이던 얼굴이 어둠 때문인지 더욱 초췌해 보였고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가 흐릿했다.
그렇게 십여 초.
빠르게 들이마시고 내쉬던 숨소리가 천천히 진정되었다.
아주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기분이었다. 그동안 새까만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던 옛날의 기억과 추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마약에 손을 댄 이후, 이렇게 말끔한 정신이 된 적은 처음인 것 같다고 조니 스트럭은 생각했다. 너무 말끔해서 희미한 얼룩 하나까지도 떠오르는 기분.
천천히 돌아오던 조니 스트럭의 안색이 다시 한번 썰물에 쓸려가듯 새하얗게 변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며칠 전 사건부터 그동안 망가지는 자신을 바라보던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표정들까지.
자신을 보며 놀라 도망가는 사람들과 경계하는 경호원들의 표정 또한 생생할 정도로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몰아치는 무거운 현실에 조니 스트럭은 말을 잇지 못했다.
* * *
LA에서의 휴일 첫날.
서준은 오랜 친구이자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열심히 활동 중인 잭 스미스와 만났다.
“위험할 뻔했네.”
4월부터 시작해서 9월 말까지 진행 중인 정규시즌 중이었지만 오늘은 쉬는 날인 잭 스미스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경호팀이 있어서 괜찮았어.”
“그래서 따라오시는 거야?”
잭 스미스가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운전대를 잡은(잭 스미스의 차다) 서준이 힐긋 보고 웃고 말았다. 경호팀의 차량이었다.
“음. 아무래도 한동안은 이럴 것 같아.”
보통 서준이 외출할 때는 잘 따라오지 않는 편인데, 이번 사건이 있다 보니 한동안은 따라다닐 것 같았다.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으니 괜찮았다. 잭 스미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럼 어디 갈래?”
“씨 세이브 센터 가자.”
이제 우리와 로키는 없지만, 새겨놓은 문양에 마나를 충전해야 했다.
서준의 말에 잭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다음은 배팅장?”
“넌 쉬는 날에도 휘두르고 싶어?”
“너도 쉬는 날에 연기 연습하잖아.”
“아.”
서준은 단번에 납득했다.
그에 잭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서준도 곧 빵 터지고 말았다.
* * *
휴가 둘째 날.
“이모가 진짜 걱정했어!”
훌쩍 자랐지만, 여전히 다섯 살배기 꼬꼬마처럼 보이는 서준에 나라 킴이 다친 곳은 없는지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하하. 나 괜찮아.”
걱정 끼친 건 미안하지만, 이렇게 걱정을 받으니 그 속에 담긴 애정이 느껴져서 조금 좋기도 했다.
“경호 인력은 안 부족하고?”
부족하다고 하면 단번에 몇 배로 늘려줄 것만 같은 나라 이모(한인마켓 1위 킹즈마켓/킹즈 에이전시 사장)의 말에 서준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전혀 안 부족해.”
“아! 이런 건 서준이 너보다는 다호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넌 다 괜찮다고 하니까.”
서준의 말은 한 귀로 흘려 버린 나라 킴이 말했다.
확실히 다호 형이 자신보다 자신의 안전에 더 철저하기는 했지만.
“맞아! 서준아. 방탄차는 안 필요해? 이모가 알아보니까 총은 물론이고 유독가스랑 화재도 막아주는 차가 있대. 별도의 산소 공급 기능도 있어서 화학적 테러도 문제없고…….”
……나라 이모?
도대체 무슨 차를 사려는 건지.
나라 킴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서준은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 * *
이틀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오버 더 레인보우2]의 촬영이 재개되었다.
“다들 쉬었다 와서 그런지 얼굴이 좋은데?”
“그래요?”
사라 로트 감독의 말에 서준과 캐서린, 폴이 히죽 웃었다. 겨우 이틀이지만 확실히 쉬었다 오니 컨디션이 좋았다.
“그럼 오늘 촬영도 잘 부탁한다.”
“네!”
“걱정 마세요.”
빙그레 웃은 서준과 캐서린, 폴은 분장실로 향하며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각종 촬영 장비와 전선, 소품들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는 스태프들도 이틀 쉬어서 그런지 다들 힘이 넘치는 게 보였다.
게다가 이곳은 웨일 스튜디오에서 만든 세트장 내부.
구경하러 온 일반인들을 통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야외 촬영과 달리, 아예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만큼 스트레스가 덜하고 움직이기가 편했다.
“역시 세트장 촬영이 편하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캐서린의 말에 서준과 폴이 동의했다.
물론, 야외 촬영만큼의 그림을 뽑아내려면 세트장을 거의 실물처럼 지어야 했지만 웨일 스튜디오의 제작비를 보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어딜 봐도 진짜 같은 거리의 풍경에 폴이 말을 덧붙였다.
“거기다 1년 전부터 준비한 거라 퀄리티도 좋아.”
세트장을 둘러보던 서준도 폴과 같은 생각이었다.
“날씨도 적당히 어두워서 좋은 것 같아. CG 처리를 하나 싶었는데 그냥 해도 되겠어.”
서준의 말에 캐서린과 폴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외 세트장이라서 하늘은 자연 그대로였다. 비가 내릴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흐렸다.
“그러네. 촬영하기 딱 좋은 날씨야.”
“비가 내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낸 서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누구야?”
“벤자민 교수님하고 제이슨. 오늘 오기로 하셨거든.”
일정이 맞지 않아 휴일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 촬영장에 오기로 했다.
“오!”
서준의 말에 캐서린과 폴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두 사람도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지만.”
“준만큼 애제자는 아니지만 우리도 나름 제자긴 제자지.”
폴과 캐서린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마침 잘됐네. 오늘 촬영분에서 벤자민 교수님이 작곡하신 곡 연주하잖아.”
캐서린이 짝! 하고 손뼉을 치며 말하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 들으러 오신대.”
“교수님이랑 제이슨이 온다니까 꼭 10년 전 같다!”
“그러게. 그때도 촬영할 때 대부분 계셨는데.”
캐서린의 말에 폴이 웃으며 말했다. 서준도 10년 전 촬영 때가 떠올라 빙그레 웃었다.
* * *
“영화 촬영장은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제이슨의 말에 벤자민 교수가 동의했다. 10년 전 [오버 더 레인보우] 촬영 이후로 영화 촬영장에는 처음 들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많이 낯설지는 않구나.”
“그때의 기억이 워낙 인상 깊게 남아서겠죠.”
10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두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혹시, 벤자민 교수님이십니까?”
사라 로트 감독과 조감독과 인사를 나눈 후, 안면 있는 안다호 매니저를 찾아볼까 하던 두 사람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눈꼬리가 올라가려던 제이슨 무어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모를 수가 없는 남자에 벤자민 교수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 에반 블록 배우.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벤자민 교수와 악수를 나누며 에반 블록이 빙그레 웃었다. 그 후 제이슨 무어와도 악수를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오버 더 레인보우]의 오스카 시상식 뒤풀이 파티였던 것 같다. 서준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활동하고 있는 곳이 다르다 보니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
“오늘 촬영 구경하러 오셨습니까?”
“예. 에반 배우도?”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조금 걱정이 돼서요.”
에반 블록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준은 이런 사건이 처음일 테니까요. 캔자스시티에는 못 갔지만 LA라서 한번 와봤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서준의 바이올린 연주도 듣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건을 겪었던 서준과 캐서린, 폴의 모습이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세 아이 모두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에게 소중한 아이들이었으니까.
서로가 같은 마음인 걸 안, 벤자민 교수와 에반 블록이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분장을 끝내고 나오니 깜짝 손님 에반 블록이 있었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던 서준과 캐서린, 폴이 이내 활짝 웃고는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에반 블록과 반갑게 인사했다.
“에반. 촬영 끝나고 같이 식사해요.”
“그래. 그러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엔 촬영 일정이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서준과 두 아이는 얼른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가 서준과 함께 이번 촬영에서 연주할 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반 블록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가오는 매니저 안다호, 최태우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호. 준은 괜찮나요?”
“네. 평소랑 똑같습니다. 연기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두 바이올리니스트 앞에서 가볍게 연주해 보는 서준의 모습을 보던 안다호가 말을 덧붙였다.
“서준이가 진심으로 연기하면 못 알아보겠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최태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에반 블록은 웃고 말았다.
“그래도 준은 지인들에게 편한 모습을 보이니까요. 다호가 그렇게 봤다면 괜찮다는 거겠죠.”
“걱정 많이 하셨습니까?”
안도한 듯한 에반 블록의 표정에 안다호가 물었다.
“뭐, 이래저래 사고가 많이 터지는 곳이니까요.”
에반 블록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만큼 미움도 모이죠. 게다가 그 미움이 어디까지 악화할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한계를 모르는 미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미성년자라는, 한계이자 보호막을 벗어버린 지금은 더욱 그랬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극단적인 미움이 서준에게 닿지 않게 하는 것이 매니저의 일이었다.
“서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최태우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내뱉은 말에 안다호와 에반 블록이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다.
미움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랑이 서준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사랑이 서준을 미움으로부터 지켜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고 있는데, 눈이 마주쳤다.
만인의 스타, 서준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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