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41화
[오버 더 레인보우2] 팀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곧바로 LA에서의 촬영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고 이틀 후부터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촬영은 이틀 후에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 편히 쉬어.”
“네.”
사라 로트 감독의 말에 서준과 캐서린,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촬영 때 보자!”
“그래!”
손을 흔들며 캐서린과 폴이 각자의 숙소(아니면 집)로 향했고, 서준도 안다호와 최태우, 그리고 킹즈 에이전시 직원과 함께 마중 나온 차를 타고 LA에서 지낼 동안 머무를 숙소로 향했다.
“여기예요, 다호 형?”
“그래. 어때? 괜찮지?”
“넓어서 좋아요. 안에 영화관도 만들었다고 했죠?”
“그래. 쉬는 동안 편하게 봐.”
일반적인 호텔이나 숙소가 아닌 가정집 같은 2층 저택에 최태우가 입을 쩌억 벌렸다. 킹즈 에이전시의 두 직원과 안다호, 서준은 자기 집인 듯 편안한 얼굴로 캐리어를 끌고 입구로 향했다.
“안, 안 이사님. 여기가 숙소입니까?”
“예. 앞으로 서준이가 LA에서 촬영할 때도 많을 것 같고 놀러 올 때도 많을 것 같아서 아예 한 채 샀습니다. 매번 빌리는 것보다 사서 관리하는 게 편하니까요.”
“여기 주변 보안도 좋습니다.”
덧붙여 말하는 킹즈 에이전시 직원의 말에 최태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여긴 처음 와봐요.”
“준이 군대에 있는 동안 사서 리모델링한 집이거든요.”
웃으며 말할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거실이 보였다. 커다란 TV와 푹신한 소파, 중앙에 놓여 있는 테이블 등. 번쩍번쩍 빛나지는 않지만, 단정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하고 있는데 안다호가 말했다.
“태우 씨. 방은 편한 곳으로 고르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서준이가 LA에 촬영하러 올 때는 태우 씨가 여기서 함께 지내야 할 테니까 가구나 생활용품 같은 것도 편한 게 좋을 테니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
이제 앞으로 최태우 자신도 여기서 머물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 일단 집 구경부터 할까요?”
그렇게 말하며 안다호가 움직이자 서준과 최태우가 쪼르르 뒤따라갔다.
“청소는 관리회사가 따로 있어서 알아서 할 거야. 그래도 중요한 물건들은 따로 보관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태우 씨.”
“넵, 알겠습니다.”
넓은 주방과 커다란 식탁이 있는 다이닝룸부터 햇빛이 잘 들어올 것 같은 큰 창문이 있는 1층과 2층의 개인 방들, 그리고 운동 기구가 있는 체력단련실과 최고급 음향 장비가 설치된 영화관 등.
“뒷마당엔 수영장도 있어. 나무로 가려져 있어서 사생활 보호에도 좋고.”
정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저택이었다.
“여기 엄청 좋아요! 다호 형!”
우와 하고 눈을 빛내며 여기저기 바쁘게 구경하는 서준의 반응에 열심히 설계하고 꾸몄던 안다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빈방들은 용도를 정해서 조금씩 꾸며 나가면 될 거야. 태우 씨도 옆방에 서재 같은 걸 만들어도 되고요.”
“네, 넵!”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갈 것만 같은 스케일이었다.
“저녁 드세요!”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세 사람을 불렀다.
다이닝룸의 넓은 식탁에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한식 요리들이 따끈따끈하게 데워져 올라와 있었다.
서준과 안다호, 최태우, 킹즈 에이전시 직원 두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태우 형, 여기 저희 단골 한식집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그래?”
서준의 말에 기대하는 얼굴로 순두부찌개를 한입 먹어본 최태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최태우의 반응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한 숟갈 들었다. 단골 가게의 순두부찌개는 변함없이 맛있었다.
“이제 남은 촬영은 LA 안에서 움직인다고 하니까 편하게 쉬어.”
“네. 그럴게요. 다호 형이랑 태우 형은 뭐 할 거예요?”
“우린 회사 가봐야지.”
안다호는 최태우와 함께 킹즈 에이전시 사무실에 들를 예정이었다.
원래는 간단히 킹즈 에이전시의 직원들을 소개하고 그동안 서준이 했던 일들 그리고 안다호와 킹즈 에이전시가 서포터해왔던 방식을 간단히 소개하려고 했다.
“조니 스트럭 일도 있고.”
그런데 ‘조니 스트럭 사건’이 터지면서 실전 겸 업무도 체험하기로 한 것이었다.
‘조니 스트럭 사건’에서 서준이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엮여 있다 보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없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네.”
안다호의 미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2층 방으로 돌아온 서준은 캐리어에서 짐을 꺼내 정리한 후 휴대폰을 들었다.
<저녁 먹고 쉬는 중이야.
>엄마: 그래? 엄마랑 아빠도 방금 점심 먹었어.
>엄마: 푹 쉬고 촬영 열심히 해. 아들.
>아빠: 힘들면 다호 씨한테 바로 말하고.
<응!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간단히 연락한 후, 서준은 인터넷을 살펴보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니 스트럭 사건에 대해 아직도 떠들썩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특히 우려하는 건 재범이었다.
-일단 처벌은 당연한 거고. 문제는 재범이야.
=그러게. 이번에는 총기도, 흉기도 없었다지만 다음에도 없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내가 서준 리의 롤모델이다!’ 하는 착각에서 깨어나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그건 힘들겠지?
=연극 ‘거울’ 기억해? 마약까지 했다면 ‘거울의 진짜 주인공’이랑 비슷한 정신 상태일 것 같은데.
=……오…… 그럼 진짜 큰일이잖아?
물론,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는 서준이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건 괜찮지만 소중한 팬들과 가족, 지인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건 괜찮지 않았다.
서준은 조금 이르지만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침대에 누운 서준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생의 도서관이었다.
서준은 선의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악의 도서관에서 책 두 권을 뽑아 그 능력들을 몸에 새겼다. 그리고 악의 능력 중 하나를 발동했다.
[(악)나이트메어의 꿈 산책-중상급이 발동됩니다.]
[(악)나이트메어의 꿈 산책-중상급]
꿈속의 악마, 나이트메어의 이동수단입니다.
타깃의 꿈속에 들어가 타깃의 꿈과 정신을 조종합니다.
[주의] 현실의 신체에 영향을 줍니다.
‘선의 능력 중에도 이동 수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분풀이랄까.
어깨를 으쓱인 서준은 영체화 상태가 되어, 조니 스트럭과 대치했던 순간, 조니 스트럭의 몸 안으로 퍼트렸던 마기를 쫓아 날아갔다.
비행기로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간 서준은 캔자스시티의 구치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감되어 잠들어 있던 조니 스트럭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기운이 조니 스트럭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와…… 엉망이네.’
마약 중독자, 조니 스트럭의 꿈속은 온갖 색색의 얼룩과 무늬로 엉망진창이었고 진흙이나 슬라임같이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다. 서준은 그것들을 손짓으로 하나둘 치우며 조니 스트럭의 머릿속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야가 트이자 서준은 능력을 사용해 조니 스트럭의 과거를 살펴보았다.
‘갱생이 가능하다면…….’
선의 도서관의 능력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후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끔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약 갱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 악의 도서관의 능력으로 법적 처벌 이후에도 범죄를 저지르기는 힘든 상태로 살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럼 볼까.’
서준의 눈앞에 조지 스트럭의 과거가 펼쳐졌다.
20여 년 전.
조니 스트럭의 말대로 연기를 사랑하는 젊은 배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인터뷰를 하며 반짝이는 눈동자에 서준의 마음은 잠시 흔들렸다.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약한 서준이었다.
‘음. 이러면 안 되지.’
서준의 손짓에 재생속도를 몇 배로 설정한 것처럼 조니 스트럭의 인생이 빠르게 지나갔다.
연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던 청년의 눈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지쳐갔다. 그리고 끝내 사기와 사고, 커다란 사건들이 몇 번 일어나고 마약까지 접하고 나자, 조니 스트럭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조니 스트럭은 몇 번이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다시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망가져 버린 몸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몸 상태에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되었고 그렇게 죽지 못해 살기를 몇 년.
술집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신의 계시처럼 들린 건 우연일까.
그게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아니, 자신의 이야기였다.
‘서준 리가 날 기다리고 있어.’
서준 리의 라디오를 들으면, 서준 리가 얼마나 그 ‘롤모델’을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약으로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에 자신을 보며 놀랐다가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조니! 당신의 연기를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 하고 감격하는 서준 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준 리는 기꺼이 존경하는 자신에게 새로운 집과 어마어마한 부와 흥행할 작품을 내줄 터였다.
자신의 20년은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게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정으로, 돈과 명예와 인기로 가득한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조니 스트럭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서준 리가 캔자스시티에서 촬영한다는 소식에 조니 스트럭은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었다. 머리도 깔끔히 빗고 얼굴도 깨끗이 씻었다. 서준 리의 근처에는 당연히 카메라가 있을 테니, 최대한 멋지게 보여야 했다.
그사이에도 망가진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저절로 새하얀 가루 쪽으로 손이 뻗어졌다. 저것만 있으면 정신이 말끔해지고 몸 상태도 괜찮아지고…….
아니. 안 된다.
자신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서준 리를 만나러 가는데 약을 할 수는 없었다. 조니 스트럭은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참아내며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집 밖으로 나왔다.
걷고 또 걷고, 또 걸어.
서준 리가 있다는 연주홀에 도착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준 리가 나타났다. 할리우드의 슈퍼스타가 조니 스트럭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얼굴이 마치 자신을 알아본 것만 같았다.
‘어? 설마?! 당신은!’
놀라는 서준 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니 스트럭이 최대한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조니 스트럭은 알지 못했다. 마약에 절어 엉망이 된 얼굴을 그 의도를 따라주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마약에 전 뇌가 계속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모든 건 환상이었고 환각이었고 환청이었지만 조니 스트럭은 깨닫지 못했다.
“리! 나다!”
“네가 찾던 사람이 왔다!!”
그렇게 외치며 자신을 환하게 웃으며 반길 서준 리에게로, 조니 스트럭은 당당하게 걸어갔다.
* * *
“……일단 치료부터 하자.”
골이 아파져 오는 조니 스트럭의 정신 상태에 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가지고 온 선의 능력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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