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38화
“역시 올라왔네.”
세 사람 다 예상하고 있던 기사라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안다호와 최태우가 각자 킹즈 에이전시와 웨일 스튜디오에 연락하고 있을 때 서준은 기사와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살폈다.
[배우 서준 리, 촬영 도중 습격?!]
<조금 전, 캔자스시티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2’를 촬영하던 배우 서준 리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이……(하략)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서준 리의 사진)
(놀라 도망치는 사람들의 사진)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괴한의 사진)>
음.
자신이 괴한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어서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과 안전하게 피신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은 없었고 묘하게 자극적인 내용만 있었다.
‘뭐, 이래야 조회 수가 잘 나오기는 하겠지만.’
읽는 사람의 심장을 철렁이게 만드는 기사였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인데도 ‘촬영 도중’이라고 말한 건 실수일까, 일부러일까. 하여튼 그것 때문에 웨일 스튜디오가 욕을 먹고 있었다.
-내가 뭘 본 거야……?
-습격!? 스읍겨억!?!
-준은 괜찮아?? 괜찮은 거지??
=눈물 때문에 그ㄹ이 안 보여
-촬영 도중 습격이라니…… 웨일 스튜디오는 뭘 한 거야?
=동감. 안전이 최우선이잖아.
“기사 업로드했대.”
충격으로 가득한 댓글이 더 늘어나기 전에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물론, 이쪽에서 낸 기사였다.
[배우 서준 리, 촬영 후 습격 시도에 안전하게 대피!]
[배우 서준 리의 경호팀이 막았다!]
자극적으로 편집되어 있던 이전의 기사와는 달리, 당시의 상황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 기사들이었다.
촬영 후 숙소로 이동하기 직전에 일어났다는 것과 괴한에게 무기가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경호팀이 곧바로 제압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첨부된 사진들도 경호팀에서 촬영하고 있던 동영상을 캡처해서 올려놓았다.
-습격이라고 해서 막 달려든 줄 알았더니…… 거리가 좀 있었네?
=저거 사진 잘 보면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있는 경호원들임. 그래서 준에게 못 다가갔나 봄.
=대단하다. 바로 잡아내네.
-무기가 없어서 다행이야…….
=진짜 총 있었으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웨일 스튜디오는 연주홀 안에서 엑스트라 통제 중이었음.
=그쪽도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겠어.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범인은 누구래?
=그러게. 뭣 때문에 그랬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들은 그다음으로 범인을 궁금해했다. 범인의 동기도.
[괴한, 무명 배우 조니 스트럭으로 밝혀져!]
[내가 서준 리의 롤모델이었다! 라고 외쳐!]
“벌써 알아냈네요.”
“그러게.”
아무래도 범인을 경찰 쪽에 인계했다 보니 관련 정보를 기사에 싣지는 못했지만, 당시 있었던 사람들의 SNS로 괴한의 정체가 알려져 버렸다. 워낙 커다란 목소리였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거다.
-조니 스트럭? 그게 누구야?
-나 저기 있었음.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대피하고 생각해 보니까, 준의 롤모델 이야기인 것 같더라.
=준의 롤모델 목록에 조니 스트럭 있음.
=와씨. 그거 때문에 저런 짓까지 한다고?
=SNS에도 자기라고 말하는 사람들 많던데 직접 찾아갈 줄이야.
=+)그리고 약 한 것처럼 보였어. 눈이 완전 맛이 갔더라고.
=와…… 약쟁이였냐.
-여기 영상 올라옴!
=(링크)
그리고 영상까지 올라왔다.
[준!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레이 바이니의 모습을 한 채 빙그레 웃고 있는 준을 찍는 카메라. 얼마나 좋은지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은 카메라 무빙이 느껴지던 때,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뭐야, 저 사람!?’ 하는 팬의 목소리와 겁을 먹은 듯한 목소리들이 뒤따랐다. 곧 흔들리는 카메라에 주변에 있던 일반인들을 관계자 출입구로 들여보내는 경호원들의 모습이 비쳤다.
[몸 숙이시고 차 뒤쪽으로 가세요.]
[네, 네.]
서준도 그랬다.
당황할 법도 한데 침착한 얼굴로 먼저 주위에 있던 팬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는 괴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말로 화가 난 듯한 검은색 눈동자는 불타오르는 듯했다.
-ㄱㅆ) 이후 준은 차 타고 무사히 대피. 나머지 영상은 없어. 패닉 상태였는데, 준이 말 걸어줘서 그나마 정신 차릴 수 있었음.
-리 표정 완전 굳어 있네.
=많이 놀라고 화났나 보다. 그래도 침착해 보여.
=팬들 먼저 대피시키네(눈물)
-난 리가 활약할 줄 알았는데…… 막 영화처럼.
=?? 경호원이 있는데 왜??
=군대 다녀왔잖아. 운동도 잘하고.
=보디가드들이 있는데 나서면 괜히 방해만 됨.
“영화하고 현실은 다른데 말이야.”
서준이 활약할 줄 알았다는 댓글에 안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다호의 말에 동의하듯 최태우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영화하고 현실은 다르지만, 경호원이 없었다면 서준이 먼저 나서서 막았을 거다.
“한국 쪽은 괜찮으려나.”
“지금 오전이죠?”
“그렇지.”
오전부터 난리가 났을 한국을 떠올리니,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대응하고 있을 코코아엔터도 엄청 바쁠 거다.
“그래도 한국엔 우리가 먼저 기사를 올렸으니까 괜찮…….”
<<귀국하자!! 서준아!!>>
“……지 않네요.”
[새싹부터]의 메인화면을 차지한 굵은 궁서체의 문장에 최태우가 멈칫하자, 서준과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전 팬카페에 글 올릴게요.”
“그래.”
[배우 이서준,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 후 습격받을 뻔!]
[코코아엔터 측, 이서준 배우 피해 없이 무사!]
-아니.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습격이요??? 습격?!
=촬영 잘하라고 보냈더니?!!??
-ㅅㅂ 보자마자 욕함.
=나도 미국 습격하면 총밖에 안 떠올라서 진짜……!
-그래도 우린 습격받을 ‘뻔’이지 미국에선 습격받았다고 기사 났대.
=지금은 콬아가 수습한 듯.
-근데 진짜 이게 무슨 일이래…… 롤모델이 누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
=22 궁금했는데, 이젠 안 궁금함.
-서준아. 귀국하자.
=22 한국에서 찍어. CG 감안하고 볼게.
=33 한국에서 찍자.
안다호와 최태우가 기사와 댓글들을 확인하는 사이, 서준은 미리 적어두었던 ‘저 하나도 안 다치고 무사해요. 촬영 안전하게 끝까지 마무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라는 내용의 편지에, 숙소에서의 사진도 찍어 [새싹부터]에 남겼다.
-무사하다니 다행ㅠㅠㅠ
=죄송하다니ㅠㅠ 서준이가 잘못한 건 없지ㅠ
-촬영…… 어쩔 수 없네. 오래 기다려온 촬영이니까.
=ㅠ오버 더 레인보우기도 하고.
-몸 조심해. 서준아.
=22 안전이 제일이야ㅠㅠ
걱정과 사랑이 가득 담긴 댓글들에 서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이제는 살펴보기만 하면 될 것 같네.”
큰일인 만큼 화제야 오래 가겠지만 서준이나 작품에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 나머지 촬영도 내일로 미룬다니, 오늘은 편하게 쉬어, 서준아. 오늘 고생했어.”
“다호 형이랑 태우 형도 푹 쉬어요.”
서준은 다른 사람들보다 놀랐을 두 매니저에게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 * *
다음 날.
사건이 터졌어도 [오버 더 레인보우2]의 촬영은 계속됐다.
“지금부터는 더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한바탕 소동을 겪으며 하룻밤 사이 살이 쭉 빠진 담당자 넬슨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촬영은 호텔 내에서, 내일과 모레는 캔자스시티의 어느 시골집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두 곳 다 완벽한 통제가 가능했고, 나머지 촬영을 할 LA에 있는 스튜디오와 세트장은 더더욱 그랬다.
“다친 덴 없어요?”
“괜찮아요.”
서준은 물론이고, 함께 있었던 캐서린 밀러와 폴 오든도 스태프들의 걱정과 염려를 한몸에 받으며 분장을 받았다.
“진짜 괜찮은데 말이야.”
“그러니까.”
평소보다 더 편안한 마음이, 서준이 흘려보낸 선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폴 오든과 캐서린 밀러는 씩씩하게 촬영을 준비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NG 많이 내도 되니까 편하게 해.”
사건으로 인해 어린 배우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까 봐, 사라 로트 감독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디, 액션!”
캔자스시티의 한 호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 바이니가 묵고 있는 숙소의 문이 열렸다.
“그레이.”
나타난 인물은 그레이 바이니의 스케줄이나 컨디션을 돌봐주는 매니저였다.
매니저는 그레이와 함께 있는 다큐멘터리 촬영팀을 잠시 봤다가 그레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투어 수고했어요. 다들 정말 잘 들었다고, 감동했다는 말이 많아요. 저한테도 꼭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레이가 빙그레 웃었다.
만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이 다정한 매니저는 LA에 있을 어머니와 친구들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막 연주회도 끝나서 휴식 기간이지만…… 연주 제안이 하나 들어왔는데 한번 들어볼래요?”
매니저의 말에 그레이가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제안인데요?”
“LA에서 열리는 자선 연주회예요. 다른 연주자들도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 한두 곡 정도만 연주해 주면 될 것 같아요.”
자선 연주회. 한두 곡.
아직은,
아직은 괜찮지 않을까.
마지막 연주회에서 느낀 무거운 감정으로 인해, 바이올린은 더이상 연주하지 못할까 봐 무서우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그레이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레이에게 매니저가 말했다.
“연주가 힘들면 연주회만 관람해도 된다고 합니다.”
“관람만요?”
“네. 아무래도 자선 연주회다 보니 화제성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레이 바이니라면 그 화제성을 충분히 모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람은 할게요. 연주는…… 좀 있다가 결정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편하게 결정해 주세요. 그레이.”
매니저가 안도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매니저가 방 밖으로 나간 후, 그레이가 카메라 너머에 있는 조지를 보며 물었다.
“갑자기 스케줄이 생겼는데, 다큐멘터리 촬영은 괜찮아?”
“걱정 마.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도 그대로 찍어야 다큐멘터리지.”
그거야 그렇다.
“자선연주회를 마지막으로 촬영하면 그림도 좋을 것 같고.”
“아. 벌써 그렇게 된 거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겠다고 아침이 찾아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며칠 후면 촬영이 끝난다니. 일 때문이라지만 조지와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 왔어!”
레베카가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들어왔다.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레베카도 이제 돌아가겠네.”
연주회를 따라다니겠다던 레베카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그레이의 얼굴에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조지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레베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도 LA 자선연주회까지는 있을게! 마침 LA이기도 하고.”
“정말?”
“응! 아. 그리고 이거!”
레베카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종이봉투였는데, 꼭 초대장처럼 보였다.
“아버지랑 친한 분이 이 근처에 사시는데 그 집 애가 꼭 놀러 오라고 초대장을 보내줬어. 같이 가지 않을래, 그레이?”
아이가 손수 만든 듯한 초대장을 든 그레이가 눈을 끔벅였다.
“나도 가도 되는 거야?”
“친구는 누구든 환영이래!”
“그래도…….”
이제부터 며칠 동안은 쉬는 날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 촬영팀까지 있는데 가는 건 실례가 아닐까. 또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거기에 밀밭이 있는데 며칠 후면 수확할 예정이래. 황금빛 밀밭이 엄청 멋있다더라!”
“이 근처 밀밭이 유명하긴 하지. 영감을 얻을지도 모르고.”
“가자! 맛있는 것도 해준대!”
“며칠 색다른 곳에서 쉬는 것도 괜찮지 않아?”
마치 짠 듯, 이어지는 친구들의 말에 그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영감.
그레이는 문득 공원에서 열심히 써 내려갔던 악보가 떠올랐다. 그리고 머뭇거리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컷! 오케이!”
사라 로트 감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괜한 걱정을 했네.”
하하하.
멋진 세 배우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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