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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37화 (63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37화

아픔은 목 쪽에서 느껴졌다. 누군가가 목덜미를 잡아당긴 듯했다. 아주 잠깐 아픔과 일시적으로 새까맣게 변한 시야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달려들면 위험합니다.”

딱딱하고 낮은 목소리는 제법 익숙한 것 같았다.

앞 목의 압박감이 사라지자 최태우가 켁, 하고 숨을 내뱉었다. 밝아지는 시야에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올려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이런 건 경호팀에 맡겨주시죠.”

험상궂게 생긴 경호팀장이 씨익 웃었다.

* * *

조금 전.

서준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이제 숙소로 이동한다는 소식이 경호팀에게 전해졌다.

-최 매니저가 확인하러 나온다고 합니다.

연주홀의 관계자 전용 출입구에서부터 경호 대상이 탑승할 차량까지.

검은색 정장을 입고 듬성듬성 서 있는, 대놓고 ‘나 보디가드요.’ 하는 경호팀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반인 복장으로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는 경호팀장과 팀원들에게 무전이 전해졌다.

곧 출입구가 열리고 최태우가 나타나 정장을 입은 경호팀원들과 꾸벅 인사를 나눈 후, 탑승할 차량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일상복을 입은 경호팀장과 팀원들은 못 알아본 것 같았다. 확실히 서투른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성실한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 대상인 서준 리가 동료 배우들과 함께 나타났다. 일상복을 입고 있음에도 잘도 알아챈 매니저 안다호가 경호팀장을 보며 눈짓했다.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짓만으로 인사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준도 그러더니…….’

경호팀장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어떻게 분장을 해도 경호팀을 잘 알아보는 스타와 매니저였다.

무전이 들린 건 그때였다.

-요주의 인물 발견.

정장을 입은 팀원들과 일상복을 입은 경호팀장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호흡 하나까지도 곤두선 것 같았다.

곧바로 요주의 인물의 정보와 위치가 전해졌다.

-행색만 보면 약쟁이인 것 같습니다.

“무기는?”

가슴과 허리춤에 있는 총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일단 양손은 비어 있습니다만 겉옷을 입은 상태라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외의 수상한 거동자는 없습니다.

‘뭐, 그냥 근처를 지나가는 길이라면 좋겠지만…….’

여러 실전경험으로 단련된 경호팀장의 직감은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무전기로 새로운 정보가 전해졌다.

-요주의 인물 이동 중. 경호 대상 쪽입니다.

‘역시 그럴 린 없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편 경호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호 대상은 물론이고, 들뜬 얼굴로 경호 대상을 보러온 일반인들에게도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주의하면서.

“될 수 있으면 조용히 해결하자고.”

-라져.

경호 대상이 슈퍼스타인 만큼 안전은 물론이고 뒤처리도 중요했다. 경호팀의 대응 하나하나가 기사화될 수도 있었다.

‘물론, 위험한 상황이라면 앞뒤 가리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 사태까지는 되지 않았으면 싶다.

경호팀의 눈이 바빠졌다.

요주의 인물의 동행이 있는지, 있다면 공범인지 아닌지, 그 이외의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

“진짜 팬이에요! 준!”

“하하. 감사합니다.”

서준 리의 팬들은 그런 적이 없지만, 극성 팬들도 주의해야 했다.

바짝 긴장하는 경호팀과는 달리,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팬들과 웃고 있는 스타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즉시 제압할 수 있도록 평상복을 입은 경호팀원들이 아닌 척, 요주의 인물을 둘러쌌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결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경호팀장의 시야에 최태우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최태우의 고개가 향하는 쪽에 요주의 인물이 있었다. 최태우는 추레한 약쟁이의 몰골에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요주의 인물, 움직입니다.

무전과 함께, 물음표를 띄우며 끔벅이던 눈이 곧 바뀌었다.

‘음.’

제법 많이 겪어본지라 저 착하고 성실하지만 멍청한 신입 매니저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었다. 경호팀장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최태우 매니저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억!”

조금 빠르게 낚아챈 탓인지 대미지가 좀 크게 들어간 것 같았다.

‘뭐, 이 정도 충격이 있어야 몸에 새겨지는 법이지.’

속으로 중얼거린 경호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달려들면 위험합니다. 이런 건 경호팀에 맡겨주시죠.”

* * *

“오버 더 레인보우 정말로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미국의 새싹들을 보며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삼총사도 엄청 좋아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캐서린 밀러와 폴 오든도 환하게 웃었다.

그러던 중 서준은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응? 태우 형이 왜 경호팀장님이랑 있지?’

그것도 뒷덜미가 잡힌 채로.

서준이 의아해하던 중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리! 나다!”

비 한 번 내리지 않은 사막의 땅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지? 준과 아는 사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향했다가 금세 실망스럽게 변했다.

아직 여름인 8월인데 겉옷도 계절감에 맞지 않게 두꺼웠고, 머리는 엉망이었으며 눈도 퀭했다. 걸음걸이도 약인지 술인지, 하여튼 맨정신은 아닌 듯 비틀거렸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네가 찾던 사람이 왔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무척이나 컸다.

“뭐, 뭐야?”

“약 했나?”

그 심상치 않음에 일반인들이 주춤 물러섰다. 겁먹은 사람들에게 서준은 선기를 흘려보내 주었다. 경호원들이 약쟁이를 둘러쌌다. 남은 경호원들은 일반인들과 배우들을 피난시켰다.

“내가 네가 찾던 20년 전의 그 배우라고!”

약쟁이의 눈에는 경호원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오로지 직진. 서준에게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물러서세요.”

“기억나지?! 내 인터뷰를 봤잖아! 내가! 내가 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봤잖아! 이봐! 트라우마에 지지 마! 제인! 알지? 이 대사! 나지? 내가 맞잖아!!”

시퍼런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는 약쟁이는 앞을 가로막은 경호원들의 경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서준아. 차에 타자.”

안다호의 말에 주변을 살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 대피한 듯 텅 비어 있었다. 경호원들도 서준이 새겨놓은 능력이 있으니 총을 쓰더라도 총알이 알아서 피해 갈 터라, 안전했다.

서준이 차에 오르려던 사이에도 실랑이는 계속됐다.

“서준 리!! 나잖아! 내가 그 사람이잖아!”

“제압해!”

약쟁이의 몸이 경호원들과 부딪혔고, 무기가 없음을 확인한 경호원들은 날렵하게 약쟁이를 제압했다. 두 팔이 등 뒤로 꺾이고 바닥에 엎드리게 된 약쟁이가 몸을 꿈틀거리며 외쳤다.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아!? 니들은 손도 못 댈 슈퍼스타가 될 남자라고! 리!! 준!! 같이 영화를 찍자!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나는 스타가 될 수 있어! 어디 가는 거야!? 사람들한테 말해! 말하라고! 네 롤모델이 나라고! 이 조니 스트럭이라고!!”

* * *

“와아…… 뭐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폴 오든이 저도 모르게 뱉어냈다. 캐서린 밀러도 아직까지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안다호도, 뒤따라 탄 최태우도 잔뜩 굳은 표정이라 서준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선기를 흘려보냈다.

“괜찮아, 서준아?”

정신이 든 안다호가 묻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괜찮아요. 근데 저쪽은 괜찮을까요?”

“경호팀장님이 잘 정리하고 연락해 주실 거야.”

아직도 버럭 외치는 소리가 귀에 남는 것 같은지, 귀를 가볍게 두드린 캐서린이 물었다.

“근데 누구였어?”

“모르는 사람 같던데.”

“조니 스트럭이라고 하더라.”

조니 스트럭?

고개를 갸웃하는 친구들과 두 매니저의 모습에 서준이 설명을 덧붙였다.

“내 롤모델 목록 제일 마지막에 있던 사람 말이야.”

서준의 설명에 폴 오든과 캐서린 밀러가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살짝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와. 이렇게 찾아올 줄 몰랐는데…….”

캐서린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SNS에 자신이 서준 리의 롤모델이라고 올리는 사람은 있어도 직접 찾아올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린 안다호는 평소처럼 빠르게 대처해 나갔다. 캐서린과 폴에게 매니저와 연락하게 하고, 서준에게도 부모님께 연락하게 했다.

“일단 뒤처리는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아. 또 같은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말이야. 그리고 기사도 나갈 것 같으니까 미리 안심하게 연락드리고.”

“네.”

목격한 사람이 꽤 있었으니 이야기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킹즈 에이전시랑 코코아엔터에도 알리고, 웨일 스튜디오 쪽에도 알려야겠지.”

웨일 스튜디오 쪽은 그레이 바이니의 연주에 감탄한 엑스트라들을 관리하느라 아직 모를지도 몰랐다. 최태우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연락이 왔다.

“경호팀장님 연락 왔네. 방금 경찰 쪽으로 넘겼대. 무기는 없어서 다친 사람은 없대.”

“다행이네요.”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경호원분들 진짜 멋있더라.”

“평상복 입고 있는 분도 있던데 전혀 몰랐어.”

그 말에 서준이 문득 떠오른 것을 물었다.

“근데 태우 형은 왜 경호팀장님이랑 같이 있었어요?”

그 물음에 최태우가 흠칫 몸을 떨었다.

* * *

잠시 후.

숙소 서준의 방.

“위험할 뻔했습니다. 태우 씨.”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서준과 안다호가 그 모습에 쓰게 웃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안다호가 짐짓 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태우 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여긴 한국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나라예요. 방탄복을 입고 있는 경호팀도 위험할 수 있는데, 맨몸으로 달려들려고 했다니…….”

“한국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죠. 다호 형.”

칼이나 약품 같은 위험한 물건이 있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제가 위험할 것 같다고 막 달려들면 안 돼요.”

“으음…….”

어쩐지 한바탕 잔소리를 들은 최태우는 물론이고 안다호까지 눈을 데굴 굴리며 엄한 서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서준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달려들 거예요?”

“경호팀이 근처에 없을 때는 그래야지.”

“맞습니다. 어쩔 수 없을 때는 그래야죠.”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안다호와 그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최태우에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을 표정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여주세요.”

그냥 생의 도서관에서 도움이 될만한 능력을 가져와서 다호 형과 태우 형에게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걱정하는 서준의 마음을 알면서도 서준의 안전에서는 물러섬이 없는 안다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최태우를 바라보았다. 괜스레 찔린 최태우가 데굴 눈을 굴렸다.

“고마워요, 태우 형. 저 구해주려고 하신 거.”

“아니야. 나야말로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서준아. 죄송합니다. 안 이사님.”

“죄송하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습니까?”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가 눈을 번쩍였다.

“네!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경호 훈련을 받죠.”

“……예?”

최태우가 눈을 끔벅였다. 안다호가 인자하게 웃었다.

“원래는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경호팀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최태우가 자신의 뒷덜미를 낚아챘던 험상궂게 생긴 경호팀장을 떠올리고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앞으로도 할리우드 촬영은 많을 테니,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배우는 게 좋겠죠. 물론, 직접적인 경호보다는 대피법을 배울 겁니다.”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꼭 배우고 싶었다.

그때, 안다호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킹즈 에이전시: 기사 떴습니다!

>(링크)

안다호가 링크를 클릭했다. 서준과 최태우도 함께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배우 서준 리, 촬영 도중 습격?!]

아주 잠시지만,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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