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34화
[바이올리니스트 수빈 킴과 배우 서준 리를 위한 협주곡]-쿠퍼 기자
<4년 전, 훌륭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배우 서준 리가 작곡하고 연주했던 ‘두 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잘 알 것이다.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한 번쯤 연주해보는 곡으로, 제1 바이올린으로 배우 서준 리가 연주했다는 건 알지만 제2 바이올린인 빈의 정체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프로 바이올리니스트부터 배우 서준 리의 친구라는 이야기까지 있던 제2 바이올린 연주자, 빈BIN.
뉴욕 현악기 콩쿠르를 취재하고 있던 본 기자는 우연히 제2 바이올리니스트 빈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략)>
해당 게시글에 링크된 쿠퍼의 기사는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언어의 장벽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듯 한국어 댓글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와. 그러니까 벤자민 모튼이랑 제이슨 무어의 제자란 말이지??? 둘 다 세계급이잖아;;;
=그럼 바이올린 잘 할 만도 하네.
=ㄴㄴㄴ 이서준이랑 협주곡 할 때까지는 그냥 음악학원 다녔다고 함.
=222 ATR 콩쿠르 1등한 것도 두 사람한테 배우기 전임.
=33 그냥 재능만땅이었는데 이서준 소개로 만났다고 함.
-협주곡이 초 2 때 연주한 거라고????
=와. 난 취미지만 몇 년 배워도 저렇게 연주하기 힘든데;;;
=초2 재능 무엇...
=이서준도 어릴 때부터 천재적이더니 동생도 대단하네ㅎㄷㄷㄷ
=근데 친동생도, 사촌동생도 아니라는 거ㅋㅋㅋ
=222 친한 동생ㅋㅋ
-아니 다들 능력자네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읽어??
=번역기 돌림ㅎ
=222 ㅋㅋㅋㅋㅋ
-이번 뉴욕 콩쿠르도 대단하지. 이제 초 6인데 고등학생들 다 제치고 1등함.
=그냥 고등학생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온 고등학생ㅋㅋ
=바이올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고등학생들 중에 좀 유명한 애들 있어서 더 놀라고 있음. 진짜 갑자기 나타난 거.
-친한 형: 이서준 / 바이올린 선생님: 벤자민 모튼, 제이슨 무어.
=와... 감탄만 나오네.
=인맥 쩐다;;;
후배 기자와 선배 기자도 빠르게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클래식에 관련된 기사는 아무래도 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많다 보니, 영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거 빨리 올려야겠죠?”
“당연하지!”
선배 기자가 자리에 앉으며 외쳤다.
배우 이서준과도 관련된 소식이니 클래식 기자들만이 아니라 연예부 기자들도 끼어들 것이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많은 클릭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업로드해야 했다.
“벤자민 모튼하고 제이슨 무어에 대한 설명도 넣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대중들은 잘 모를 거 아니야.”
세계적인 음악가들이라고 해도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모를 수가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업적을 보여주며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김수빈을 제자로 삼았다!’라는 걸 알려줘야 했다.
“넵!”
잠시 후.
쿠퍼의 기사는 복사+붙여넣기식으로 기사화되었고, 순식간에 포털사이트 기사란이 김수빈과 이서준의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의외의 인맥!]
[배우 이서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의 친한 형!]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제2 바이올린 연주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벤자민 모튼과 제이슨 무어의 애제자, 한국인 김수빈!]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이서준?
=오버 더 레인보우2 이야기야? 한국인 나와??
=그레이 혼혈이라 반은 한국인.
=아니,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래서 김수빈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고???
=ㄴㄴ 현실 이야기임.
=최연소 뉴욕 현악기 콩쿠르 1등 > 벤자민, 제이슨 제자 > 이서준이랑 아는 사이 > 협주곡 제2 바이올린 연주자(초2 때)
=예?? 나만 안 믿김??
=아니. 다들 놀라고 있음ㅋㅋㅋ
-외국에서도 엄청 놀란듯ㅋㅋ 다들 WHAT?? 만 치고 있다.
=벤자민 모튼이랑 제이슨 무어의 제자라니까 놀랄 만도 하지. 한국에서는 [오버 더 레인보우]나 이서준 지인으로 유명하지만, 외국에서는 음악가로 엄청 유명함.
=22 아무래도 한국보다 클래식에 관심이 많으니까.
=물론 이서준 이야기도 있음ㅋㅋㅋ
-연주 들어보고 싶은데 없구나ㅠㅠ
=따로 활동하고 있는 건 없는듯.
=이제 초6이니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초6이됨ㅋㅋㅋ
자신의 기사 때문에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다는 사실에 쿠퍼가 입이 째져라 웃고 있을 때.
쿠퍼의 기사를 읽어보고 한국의 상황도 살펴보던 서준이 휴대폰을 들었다.
<수빈아. 어때? 괜찮아?
>김수빈: 응! 괜찮아!
>김수빈: 다들 놀라서 전화랑 메시지가 많이 오긴 하는데ㅋㅋ
>김수빈: 평소랑 비슷해!
다행이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동요를 줄여주는 능력과 악연을 피하게 해주는 능력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둘 다 중상급의 능력이니 웬만한 적의가 없다면 수빈이는 괜찮을 터였다.
>김수빈: 아, 서준이 형! 나도 임시 매니저 형 생겼다!
코코아엔터의 서포트도 충분한 것 같고.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들떠 보이는 수빈이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다행히 수빈이도 관심받는 걸 싫어하지 않는 듯 보였다.
“수빈이야?”
“네.”
방으로 들어오며 묻는 안다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 형이 생겼다고 엄청 좋아하고 있어요. 다호 형 같은 형이었으면 좋겠대요.”
“하하. 그래?”
그만한 칭찬도 없어,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따라 웃던 서준이 물었다.
“이제 출발한대요?”
“그래. 30분 뒤에 출발이야. 짐은 다 챙겼어?”
서준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에 묵직한 캐리어가 놓여있었다. 겨우 며칠이지만 생활감이 가득했던 숙소도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네.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확인하면 될 것 같아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행기로 가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니까 도착하면 푹 쉬어. 내일은 오후부터 촬영 있을 거래.”
“네. 그럴게요.”
일정을 설명해 준 안다호가 다시 밖으로 나가고 서준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환하게 떠 있을 한국과 달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는 저녁 식사도 끝난 시간이라 하늘이 새까만 상태였다.
잠시 별이 있나 하늘을 바라보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일정표를 꺼내 살폈다.
다음 촬영지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였고.
“시카고 다음이 캔자스시티였지.”
미주리주와 캔자스주 사이에 있는 캔자스 시티.
그리고 그다음이 마지막 촬영지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였다.
“이렇게 미국 횡단을 하네.”
동부 뉴욕에서부터 서부 로스앤젤레스까지.
비행기로 띄엄띄엄 건너긴 하지만 미대륙을 가로지르는 일정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 * *
다음 날.
일리노이주 시카고.
어젯밤 이동을 하고, 오전까지 푹 쉰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촬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시카고에 도착한 B팀 스태프들이 설치해둔 촬영 기기들을 점검하고 관객석을 채울 엑스트라들을 관리했다.
시카고에서도 변함없이 ‘그레이 바이니’의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옷이 조금…… 저희 쪽에서 빌려드릴게요. 저기 대기실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격식 있는 차림의 정장이 필수였지만, 입고 오지 않은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돌려보내서 관객석을 텅 비게 만들 수는 없으니,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팀 측에서 미리 준비해 둔 정장을 대여해 주었다.
“옷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상의만 입혀! 어차피 의자에 앉아서 하의는 안 나올 거니까!”
에밀리 조감독이 외쳤다.
그 모습이 상상이 돼 서준과 캐서린, 폴이 작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준비를 위한 시간이 지나고,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빛과 어둠의 경계선.
무대로 나가는 길 바로 앞에선 그레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손에 든 바이올린이 다른 때보다 무거웠다.
행복해 보이던 노인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실수투성이의 연주였고 보잘것없는 무대였다. 바이올린 연주에 방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떠드는 아이들도 있었고 탁 트인 공간이라 여러 잡음도 들렸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릿속에서 그날 그 모습이 떠나질 않는 걸까.
“그레이?”
조지의 목소리에 그레이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레이는 친구들과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아 이 자리에 섰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저기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에, 내 성공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응원에 보답해야 했다.
목에 맨 넥타이가 숨통을 꽉 조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한 그레이는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와아아아!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함성이 들렸다.
[그레이 바이니,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성공적인 연주회 가져!]
[다음 연주회는 캔자스시티!]
* * *
같은 날 저녁.
캔자스시티의 어느 술집.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의 제자이자 할리우드 배우 서준 리의 지인으로 밝혀진 바이올리니스트 수빈 킴의…….]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켜놓은 TV에서 짤막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게 뉴스에까지 나올 만한 일인가?”
술집 단골손님의 말에 알바생이 눈을 빛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떠드는 것이 알바생의 취미이자 삶의 낙이었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들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올랐는데, 손님들도 할리우드 스타 한둘쯤은 알고 있어서 호응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리우드 스타 서준 리가 연관된 일이잖아요. 마침 오버 더 레인보우2도 촬영하고 있고. 어쩌면 제작사에서 홍보 겸 내보내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거기 모회사가 마린이잖아요.”
수다쟁이 알바생은 입으로 열심히 떠들어대면서도 손은 능숙하게 투명한 유리컵을 닦고 있었다. 그 일 처리에 주방에 있던 사장도 별말 없이 내버려 두고 있는 상태였다.
“12살이라던데 영화 주인공이랑 나이도 비슷한 데다가, 벤자민 모튼하고 제이슨 무어라는 음악계의 유명인들과도 관련되어 있고, 실력도 대단하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어제는 이름도 모르는 애였는데 말이야. 오늘 딸이 하루 종일 떠들고 있다고.”
투덜대는 단골손님에 알바생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단골손님의 딸이 새싹이라는 건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 스타랑 관련되면 뭐든 유명해지는 거잖아요. 아저씨도 서준 리랑 아는 사이라고 하면 내일 아침 신문 첫 장에 딱 뜰걸요. 집 앞에 기자들이 득실거리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됐다.”
단골손님이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괜히 다들 스타랑 엮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아, 맞다. 그 사람이 나타나면 대박일 텐데!”
“그 사람?”
“서준 리가 배우가 된 계기랄까? 은인이랄까?”
“계기? 은인?”
딸아이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단골손님은 기억을 더듬었다.
“……라디오였던가?”
“네. 리가 어렸을 때, 단역배우 인터뷰 같은 걸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그게 딱 미국에 있을 때라 다들 미국 배우들 중에 누구일까, 추측하고 있거든요. 알아내면 대박일 거예요!”
“그게 그렇게 화제가 돼?”
“당연하죠! 할리우드 스타를 만들어낸 배우잖아요. 지금 배우가 아니더라도 리의 유명세만으로도 광고 한두 개쯤은 찍을 수 있을걸요. 그러다 리랑 같이 영화라도 찍으면 진짜 대박 나는 거고요.”
“허어. 그거 누군진 몰라도 인생 피겠군.”
“그렇다니까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알바생이 사장의 부름에 주방으로 향했다. 단골손님은 광고 후 시작하는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
[LA 다저스의 잭 스미스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잭 스미스 선수가 할리우드 스타 서준 리의 친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오늘도 영화 같은, 멋진 경기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술집 구석에서 술을 마시던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퀭한 눈빛을 하고 있는 남자는, 한때 배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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