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33화
[그레이 바이니, 클리블랜드에서 연주회 개최!]
뉴욕 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클리블랜드에서의 촬영도 홍보 기사가 떴다. 이번 홍보 기사에는 연주하는 그레이 바이니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포함되어 있어, [오버 더 레인보우2]에 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레이이이이이ㅠㅠ
=제이슨 무어 연주회 때도 봤지만ㅠㅠ 잘 컸어ㅠㅠ
=22 연주도 여전히 잘하겠지ㅠ
-뒷모습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네.
=ㅇㅇㅇ 나도 연주회 가고 싶다ㅠㅠㅠ
-그래서 굿모닝은 언제 올려주나요????
=음원 공개해라. 웨일 스튜디오!
=22 아침마다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다고.
=33 중간에 끊겨서 뒷부분이 궁금해요ㅠㅠ
라디오 방송 때 연주했던 [굿모닝]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나 진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굿모닝으로 알람 설정하니까 눈이 번쩍 떠지더라.
=22 보통 알람으로 설정해 놓으면 진짜 좋아하는 음악도 싫어지는데, 굿모닝은 다름. 진짜 기분 좋게 일어나지는 곡임.
=33 부제 왜 굿모닝으로 지었는지 알겠구요.
=빨리 음원 내줬으면ㅠㅠ완곡으로 듣고 싶다고ㅠㅠ
서준은 댓글들을 살펴보며 작게 웃었다.
듣는 사람들이 ‘좋은 아침’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곡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들어줘서 고마웠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굿모닝이 그 정도임? 난 잘 모르겠던데.
=22 곡이 좋긴 하지만. 평범한 바이올린 곡인 듯.
이해한다.
음악이라는 건 취향을 타는 법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먹방처럼 딱 어울리는 능력을 쓴 것도 아니고.’
작곡할 때 작곡에 관한 능력을 쓰고 연주할 때 선기를 쓰긴 했지만, 딱히 [아기 먹방]이나 [먹방2]처럼 듣는 사람에게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능력을 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제법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은 이서준 배우님께 정말 고마워하고 있음.
=왜?
=+)동생이 우울증이라서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씻고, 하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거든. 근데 굿모닝 들으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건 수월해짐. 옛날에는 일어나는 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가뿐하게 일어난대.
=오…… 음악 치료 같은 건가?
=+)그럴지도. 다 같이 아침 먹는 날이 늘어서 부모님도 나도 좋음ㅎㅎㅎ 얼른 완곡을 내주셨으면 함.
-윗글보고 언니한테 시도해 봤는데ㅠㅠㅠ언니는 평소랑 똑같다고 하더라ㅠ
=아ㅠㅠ 그건 안타깝네ㅠ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예전에 백호 부대 상담사 이야기 나왔을 때 이서준 배우라는 거 듣고 많이 슬펐다ㅠㅠ 엄마 우울증이라서 상담 부탁하고 싶었거든.
=나도 그랬어ㅠㅠ
=22 라디오 방송할 때도 댓글 적고 싶었는데, 다들 너무 행복해 보여서 말았어. 뭐, 댓글 적었어도 도와주긴 힘들었겠지만ㅠㅠ
=33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ㅠㅠ알 것 같다.
그런 글들이 조금씩이지만 보였다.
‘군대 목격담에도 좀 있었지.’
으음.
뭐, 세상 모든 존재들을 도와주겠다! 라는 건 아니지만, 자신과 인연이 닿는 존재들은 행복해졌으면 하는 게 서준의 마음이었다.
‘능력 쓰는 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고.’
적당한 능력만 찾을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연주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서준이었다.
* * *
다음 날.
촬영장소는 클리블랜드 옆에 위치한 이리호수가 보이는 공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통제구역입니다!”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공원의 일부분을 통제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전날, 그레이 바이니에 관한 기사가 나가서 그런지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통제구역이 넓어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 이상 잡음이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
통제구역을 쭉 돌아본 에밀리 조감독이 촬영 준비로 한창인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리호수가 보이는 곳.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푸른 잎의 나무들이 서 있는 촬영장에는 조명과 카메라, 음향기기가 설치되고 있었다.
“배우들은?”
이리저리 풍경을 살펴보고 있던 사라 로트 감독이 물었다. 에밀리 조감독이 연락받은 대로 대답했다.
“준은 끝나서 이제 곧 나온대요. 캐서린이랑 폴도 곧 끝나고요. 엑스트라분들은 준비 끝나고 대기하고 있어요. 연주자분도요.”
착오 없이 이어지는 촬영 준비에 사라 로트 감독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레이 바이니로 분장한 서준은 잠깐의 여유 시간 동안 오늘 함께 촬영할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배우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서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미국이다 보니 악수를 많이 하게 된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원을 지나가는 행인역을 맡은 엑스트라들이 깜짝 놀랐다가 얼른 손을 내밀어 서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와! 자랑해야지!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그레이 엄청 좋아해요!”
“저도요!”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 놀러 나온 역할인 어린 아역들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서준이 찡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래.”
“와아아!”
준비를 끝내고 오자마자 그 모습을 본 캐서린과 폴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슈퍼스타.”
“애들이 엄청 좋아하네.”
친구들의 말에 서준도 웃고 말았다.
엑스트라들과 인사를 나눈 서준은 마지막으로 오늘 촬영에서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이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름진 얼굴의 노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서준이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액션 연습 등의 이유로 손이 거친 배우들도 꽤 있었지만, 그런 거칠함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벌써 분장하셨나 보다.
“정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준 리 배우.”
진심으로 느껴지는 반가움에 서준도 빙그레 웃었다.
* * *
“레디, 액션!”
그레이 바이니가 카메라를 흘깃 보며 볼을 긁적였다.
“으음. 쉬는 날에도 카메라가 같이 다니는 거야?”
이제 제법 커다란 렌즈의 카메라들과 그 뒤에 서 있는 스태프들에게 익숙해졌다지만, 그건 연주회에 있을 동안의 일이었다. 이렇게 쉬는 날까지 따라붙을 줄은 몰랐다.
카메라 너머, 보이지 않는 조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큐멘터리잖아.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떻게 휴식 시간을 보내는지도 보여줘야지.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영감을 얻는다, 그런 이야기?”
“으응.”
영감이라…….
잠깐 그레이 바이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두 손을 만지작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안쓰러웠다.
“그레이! 우리 이리호수에 갈까?”
그레이의 옆에 있던 레베카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레베카의 손에는 클리블랜드 관광 팸플릿이 들려 있었다.
“나 아직 못 가 봤거든!”
레베카의 말에 딱히 목적지가 없었던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든 친구들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레이 바이니와 레베카, 그리고 조지와 다큐멘터리 촬영진이 이리호수 근처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레베카.”
“응?”
“너…….”
그레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정확히는 그들의 패션을 눈여겨보는 레베카가 신경이 쓰였다.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본다고 말했던 레베카였지만 그게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패션이 싫은 게 아니라 상사가 문제인 거니까…….’
하지만 자신이 참견해도 되는 일인가 싶어, 그레이는 말을 돌렸다.
레베카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바이올린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베카의 상사처럼 말이다.
“방송에 나와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조지가 알아서 편집해 주겠지!”
여전히 낙천적인 친구의 모습에 그레이가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곧 이리호수가 보이는 공원에 도착했다.
그레이가 푸른 물결의 호수를 둘러보았다.
투어 내내 연주회장과 호텔만 오가다가 탁 트인 호수를 보니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물 냄새와 풀 냄새가 코끝을 맴돌고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그레이와 레베카, 조지와 촬영팀은 호수가 보이는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걱정과 긴장으로 굳어있던 그레이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리자 조지가 조금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여기서 먹을까?”
“그래. 그러자!”
“그럼 내가 사 올…….”
“아냐. 우리가 갔다 올게. 넌 어제 연주하느라 힘들었잖아!”
그레이를 벤치에 앉힌 레베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그레이의 움직이는 시선과 발걸음 소리에 조지와 촬영팀의 스태프들 몇몇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점심을 사러 떠나버린 친구들과 스태프들.
카메라 뒤, 몇 명 남지 않은 스태프들을 보며 그레이가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조지가 없으니 낯설어졌다.
한숨을 삼키며 다시 이리호수를 바라보던 그레이 바이니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 뒤 스태프들이 그것을 주시했다.
‘……연주는 아니고.’
도레미파-솔라시-도-
중간중간 겹친 음이 들리기는 하지만, 바이올린의 음을 맞추는 소리였다.
“어…… 잠시 다녀와도 될까요?”
카메라 뒤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인 듯, 그레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슬럼프이긴 하지만 바이올린까지 싫어진 건 아니었다.
연주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는 그레이의 뒤를 카메라가 쫓았다.
그레이가 도착하기 전.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었다.
---.
이어지는 음이 조금 어설프다.
음을 맞출 때부터 두 개의 현을 겹쳐 연주했던 것을 보면 프로는 아닌 것 같았다.
가끔 삑사리도 들렸다. 깽깽거리는 소리가, 바이올린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가 않았다. 활도, 현도 이미 제 수명을 한참 넘기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했다.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바이올린 소리에 그레이는 조금 화가 났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누구길래 바이올린 관리를 이렇게 하는 걸까.
점점 가까워지는 바이올린 소리에, 그레이의 걸음은 조용하면서도 빨라졌다.
그레이는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멈추어 섰다.
와아아!
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모여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앙에 서 있는 연주자.
햇볕에 탄 주름진 얼굴. 거칠고 상처가 난 두 손. 빛바랜 옷. 낡은 신발. 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은 낡은 바이올린. 몇 가닥 끊어져 버린 활.
그러나 행복한 노인의 표정.
어설픈 다음 연주가 흘러나올 때까지,
그레이 바이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서준이 오하이오주에서 한창 촬영 중일 때,
한국.
[뉴욕 현악기 콩쿠르 1위 수상, 13살(만 12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최연소 수상자, 13살 김수빈!]
[현실 그레이 바이니?! 최연소 수상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오. 대단한데?
-김수빈 처음 듣는데? 콩쿠르 별로 안 나왔나 봄.
=초2 때 ATR 콩쿠르 나간 거 기사 있다. 거기서도 1등 했음.
=4년 만에 뉴욕이라닠ㅋㅋ재능ㅋㅋ
바이올린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최연소 1위’라는 말에 흥미가 생긴 사람들, 거기에 [오버 더 레인보우2] 소식에 다시 한번 바이올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기 시작한 상태이다 보니, 해당 기사들의 조회 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회 수가 올라가는 곳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정보를 캐냈다.
“뭐 있어?”
“아뇨. 전혀요.”
ATR 콩쿠르 우승 소식은 벌써 써먹은 지 오래였다.
“지금쯤이면 한국 들어왔을 텐데…… 인터뷰 되려나? 학교가 매실초라고 했지?”
“넵.”
“그럼 그쪽에 연락해 보자고.”
연예부 기자가 들었다면 거기 뚫기 힘든데, 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배우 이서준과 그 친구 박지오 선수의 출신 학교라서 그런지 개인정보 보호에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어?! 선배! 떴, 떴어…… 응?”
“뭐야? 떴다는 거야, 안 떴다는 거야?”
후배의 애매한 끝맺음에 선배 기자가 얼른 모니터에 달라붙었다.
누군가 써 놓은 게시글이었다.
[제목: 이거 김수빈 이야기 맞지???]
바이올리니스트 수빈 킴과 배우 서준 리를 위한 협주곡./>-쿠퍼 기자
……근데 서준이가 왜 나와??
????
후배 기자와 선배 기자가 눈을 끔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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