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31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배우 이서준이 작곡한 이 바이올린곡은 4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연주해 보는 곡이기도 했다. 피아노나 기타 등 다른 악기로 편곡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한 빈BIN은 누구인가.
-제이슨 무어 아님?
=그럼 제이슨 무어라고 적었겠지.
=그리고 스타일이 제이슨 무어 느낌은 아님.
-이서준 친구 아니야? 여울예중이나 미리내예고 바이올린 전공 학생.
=22 잘하는 거 보니 이걸 거 같은데?
-4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정체를 모른다니ㅎㄷㄷ
=나 같으면 내가 빈이라고 이마에 써놓고 다니겠다.
=22 진짜 동네방네 알리고 다님.
-이 정도 실력이면 지금쯤 유명해졌을 것 같은데. 누구 예상 가는 사람은 없음?
=근데 취미로 하는 거면 누군지 알 수가 없음.
=이 실력으로 취미라고??
=이서준도 취미.
=아.
=ㅋㅋㅋㅋㅋㅋㅋ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빈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근데 그게 8살짜리 꼬마라고?”
동료기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쿠퍼가 진지한 표정으로 설득하듯 말했다.
“생각해 봐. 12살에 18살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제치고 1위한 애야. 너도 들었잖아. 카테고리3 진출자들이랑 비교해 봐도 잘하는 거. 아니지. 애초에 12살짜리의 연주가 어른들 실력이랑 비교가 된다는 게 신기한 거잖아.”
쿠퍼가 침이 튀길 정도로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럼 8살 때도 실력이 엄청 났겠지! 게다가 음악 쪽은 진로를 빨리 정하잖아. 어린 천재가 드물긴 하지만 아주 없는 건 아니라고.”
“……그거야 그렇지만.”
동료기자도 지금 당장 생각나는 어린 천재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은 영화음악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세아 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걔도 서준 리랑 관련이 있네.’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린 동료기자가 말했다.
“그러면 어쩌려고?”
“일단 물어봐야지. 수빈 킴이 빈인지. 맞다면 인터뷰를 하고.”
“아니라면?”
“뭐, 어쩔 수 없지. 잠깐 민망해지고 마는 거니까. 근데 감이 좋아. 수빈 킴이 빈인 것 같아.”
어깨를 으쓱인 쿠퍼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받아놓은 수빈 킴의 아버지, 희상 킴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 * *
“벌써?”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전화를 받고 온 김희상이 쿠퍼 기자의 말을 전해주었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알았대?”
“그러게요. 팬분들이 알아낼 줄 알았는데…….”
“쿠퍼 기자가 서준이 팬이었대.”
아하.
다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팬이 알아내긴 했네.”
제이슨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서준도 웃고 말았다.
“기자분이 팬이실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이렇게 빨리 알아낼 줄도 몰랐구요.”
시상식이 끝나고 수빈이와 실컷 놀고 이제 막 저녁을 먹던 참이었다.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는 수빈이의 접시에 파릇파릇한 샐러드를 옮겨준 최수희가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맞다고 했지. 인터뷰해도 괜찮겠냐고 하던데, 그건 좀 생각해 본다고 대답했어.”
김희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를 해야 할까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번쯤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슨 무어가 입을 열자, 김희상과 최수희가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빈의 정체가 밝혀지면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걸 알아내기 위해 기자들이 많이 연락을 할 거란 말이죠. 한국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수업을 듣는 학생들처럼 김희상과 최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대중의 궁금증도 제법 해결돼서 아마 덜 시달릴 테니까요.”
“확실히…….”
물론, 그래도 찾아오는 기자들은 있겠지만 적당히 복사+붙여넣기를 하는 기자들도 많을 터였다.
“인터뷰를 한다면 아마 준과의 이야기를 주로 질문할 테니,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정해두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렇겠죠. 서준아. 다호 씨랑 킹즈 에이전시에 부탁 좀 해도 될까?”
벤자민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희상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은 흔쾌히 대답했다.
“괜찮아. 나랑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수빈이 일이잖아.”
“내일 오하이오주에서 촬영하잖아.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 그러지.”
서준은 내일 오전 뉴욕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갈 예정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진은 벌써 출발해 지금쯤 촬영 준비에 한창일 터였다.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태우 형도 있으니까 괜찮아.”
최태우가 들었다면 바짝 얼어붙었을 말이었다.
* * *
다음 날.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킹즈 에이전시 직원과 매니저 최태우, 그리고 배우 이서준까지 모두 무사히 클리블랜드에서 촬영하는 동안 머물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1초도 쉬지 않은 최태우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 그럼 전 도착했다고 촬영진에 연락하고 오겠습니다!”
“하하.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딱딱하게 굳어서 걸어가는 최태우의 모습에 킹즈 에이전시 직원과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안 이사님이 안 계셔서 긴장했나 보네요. 어깨에 힘 좀 빼도 될 텐데 말이에요.”
“그러게요.”
최태우가 들었다면, ‘내가 잘못하면 촬영을 망칠 수도 있잖아……!’하고 눈물을 주루룩 흘렸을 거다.
“준. 안 이사님께는 제가 연락할까요?”
“아뇨. 제가 할게요.”
지금 안다호는 뉴욕에 있었다.
좋은 기회라며, 몇 시간 정도는 혼자 일해보라고 말하며, 최태우에게 맡기고 김수빈의 인터뷰를 서포트하기 위해서였다.
<다호 형.
<저희 도착했어요.
>안다호: 그래.
>안다호: 여기도 이제 인터뷰 시작했어.
<수빈이 잘 부탁해요.
>걱정하지 마.
>(인터뷰 중인 수빈이 사진)
안다호가 보낸 사진 속, 의젓하게 앉아 있는 수빈이를 보며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사이, 촬영진과 연락한 최태우가 돌아왔다.
“촬영은 예정대로 오후부터 한다고 하는데…… 서준아. 컨디션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럼 좀 쉬다가 촬영장으로 가면 되겠다. 다음은…… 점심! 점심 먹어야지?”
허둥지둥하던 최태우의 모습에 서준과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웃고 말았다.
* * *
다음 촬영 장소는 클리블랜드의 한 연주홀.
‘그레이 바이니’의 연주회가 열릴 장소였다.
뉴욕에서의 촬영처럼 스태프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던 서준은 최태우와 함께 배우 분장실 겸 대기실로 향했다.
“준, 어서 와!”
먼저 도착해 있던 캐서린 밀러와 폴 오든이 서준을 반겼다.
휴일이었던 어제, 뉴욕에서 수빈이와 즐겁게 놀았던 서준과 달리, 스케줄도 약속도 없었던 캐서린과 폴은 촬영진과 함께 이동했었다.
“둘 다 빨리 왔네?”
가발을 써야 해서 일찍 온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캐서린과 폴이 웃으며 말했다.
“숙소에 있어도 할 일이 없어서.”
“나도. 호수 구경도 다 했어. 엄청 크더라.”
“이리호?”
“응.”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와 캐나다 사이에 있는 커다란 호수 중 하나였는데, 나중에 그 근처 공원에서 촬영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준! 벌써 왔네요!”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서준이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분장팀 스태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서준을 거울 앞 의자에 앉히고 가발을 씌우기 시작했다.
“오…….”
처음부터 보는 건 처음인 폴과 캐서린이 흥미로운 얼굴로 서준을 구경했다.
* *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에밀리 조감독의 목소리에 촬영장이 조용해졌다.
뉴욕 촬영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지금부터는 ‘다큐멘터리 촬영팀’으로서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라.’
분장을 끝낸 서준이 촬영 장소인 연주자 대기실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들을 둘러보았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가 카메라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인식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었다. 카메라를 쳐다보는 그 자체도 ‘실제 모습’이었으니까.
[흘러가다]에서 여행할 때 그리고 [바벨탑] 카메오 촬영 때, 카메라를 의식하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영화 촬영 내내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한껏 흥미로운 얼굴로 눈을 빛내고 있는 서준의 모습에 사라 로트 감독이 빙그레 웃었다. 저만큼 자신의 작품을 좋아해 주는 배우가 주인공이라니. 참 감독으로서 복 받은 것 같았다.
‘캐서린이랑 폴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레이 바이니’의 다큐멘터리인 만큼 분량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연인 작품에 출연하는 듯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다들 즐거움과 기대가 가득한 마음으로 촬영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데, 홀로 심각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메소드 연기…… 조심……!’
의지할 수 있는 안다호 이사님이 뉴욕에 남고, 혼자가 되어 긴장하고 있던 매니저 최태우였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서준으로서는 불타고 있는 최태우의 눈빛에 의아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레디, 액션!”
연주자 대기실.
평상복을 입고 있던 그레이 바이니가 어색한 얼굴로 카메라를 흘깃 바라보았다. 항상 홀로 있던 연주자 대기실을 가득 채운 카메라들과 조명, 스태프들이 낯설다는 표정이었다.
“으음. 이렇게 다 찍는 거야, 조지?”
카메라 건너편에서 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카메라는 없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해. 편하게.”
“……이렇게 많은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우린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소대로 행동하면 돼. 곧 익숙해질 거야.”
그레이가 볼을 긁적였다.
“이게 익숙해질까?”
혼잣말이 담기는 것도 모를 정도로 카메라가 낯선 그레이 바이니였다.
“그레이! 옷 들고 왔어!”
문이 열리고 레베카가 들어왔다. 손에는 잘 다림질된 검은색 정장이 들려 있었다. 그레이가 얼른 정장을 받아 들며 말했다.
“이런 거 안 해도 된다니까.”
“아니야. 내가 네 일정에 끼어든 거니까 이렇게라도 도와야지. 할 일도 없고. 더 도와줄 건 없어?”
휴가를 내고 할 일이 없었던 레베카는 그레이의 연주회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자비로 숙소도, 교통도 해결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끼어들어 미안하다며 잡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레이가 작게 웃었다.
여전히 착한 레베카였다.
“지금은 괜찮아.”
“그럼 필요하면 말해. 어? 촬영 중이었어?”
“이제 막 시작했어.”
모니터에 카메라 뒤로 시선을 주는 그레이와 레베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어지는 조지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카메라 건너편에 서 있는 조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영화를 볼 관객들도 카메라 뒤에 조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아, 그레이. 얼른 옷 갈아입어. 시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래. 알았어.”
레베카의 말에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조용하던 대기실이 시끌벅적해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 * *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레이의 앞에 조지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카메라 렌즈에 그레이가 어색한 듯 웃어 보이며 데굴데굴 시선을 피했다.
카메라가 수십 대 있어도 당황하지 않는 서준 리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미리 촬영 중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들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던 그레이는 잠시 멈칫했다가 멋쩍게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 바이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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