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30화
카테고리2의 결선 진출자들의 연주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가족과 지인들이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 진출자들을 만나러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활짝 웃고 있는 김희상과 최수희도 보였다.
벤자민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준. 너도 가 보렴.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교수님이랑 제이슨은요?”
“우리는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제이슨 무어가 기자들이나 음악계 관계자들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슬쩍 보니,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의 인터뷰를 따고 싶어 계속 힐긋힐긋 쳐다보는 기자들이 보였다.
딱히 수빈이가 두 사람에게 배웠다는 걸 숨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확실히 눈에 띌 것 같았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갔다 올게요.”
“빈한테 연주 잘 들었다고 전해주렴.”
“나도. 연습 때보다 잘했다고 전해줘.”
콩쿠르가 끝난 후에도 만날 테지만, 시상식 결과에 상관없이 잘 들었다는 감상을 말해주고 싶은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였다.
“네. 그럴게요.”
연주홀을 나온 서준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로 향했다.
카테고리2의 진출자들은 2명씩 3개의 대기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수빈이와 같은 대기실을 쓰는 진출자는 가족들과 함께 어디로 간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수빈아!/”
“/형!/”
벌써 김희상과 최수희에게 엄청난 칭찬을 받았는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히히히 웃고 있던 김수빈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는 서준을 보고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달려가 꼬옥 껴안았다.
수빈이의 격한 포옹에 꽃다발이 망가지지 않도록 팔을 들어 올린 서준이 웃으며 수빈이를 마주 안아주었다.
“/형 왔다고 아빠 버리는 거야……?/”
김희상이 허탈하게 말하자 최수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교수님이랑 제이슨은?/”
수빈이가 서준의 뒤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복도를 살폈다. 시끌벅적하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기다리던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교수님하고 제이슨한테 배운다는 건 비밀이니까 안 오셨어. 밖에 기자도 많거든./”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 되는 할리우드 스타인 서준 리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지만, 두 사람은 서준 같은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쉬워하는 수빈이의 표정에 서준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벤자민 교수님이 연주 정말 잘 들었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제이슨도 연습 때보다 잘했대. 진짜 멋지더라. 우리 수빈이./”
“/헤헤./”
꽃다발을 품에 안겨주는 서준에, 수빈이가 쑥스러우면서도 좋은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진! 사진 찍을까?/”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도 보여드려야지!/”
김희상과 최수희가 신나게 꽃다발을 든 김수빈을 찍어댔다. 서준과도 같이 찍고, 가족끼리 같이 찍고, 타이머를 맞춰 네 사람이 함께 찍기도 했다.
사진이 잘 나왔다며 바나나톡으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사진을 뿌리는 김희상 최수희 부부를 웃으며 바라보던 서준에게 김수빈이 속삭이듯 말했다.
“/서준이 형. 있잖아. 다음엔 교수님이랑 제이슨이랑 같이 찍고 싶은데, 교수님이랑 제이슨한테 바이올린 배운다고 말하면 안 돼?/”
“/으음./”
안되는 건 아니다.
그저 그 뒤에 일어날 일을 걱정할 뿐이었다.
“/안되는 건 아닌데, 교수님이랑 제이슨에게 배웠다고 하면 수빈이도 유명해질 텐데 괜찮겠어? 기자들이 막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그럴 텐데?/”
수빈이가 짐짓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난 커서 교수님이랑 제이슨처럼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거니까! 미리 연습하는 셈 치지 뭐!/”
그런 수빈이를 서준이 귀여운 듯 바라보았다.
“/형 이야기도 나올걸? 몇 년 전에 형이랑 찍은 너튜브 영상도 있잖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응, 그거./”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서준과 김수빈이 함께 연주해 너튜브에 올린 영상이었다. 김수빈이 초2 때였다.
“/거기에 빈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금세 추측하고 형 이야기도 매번 할 텐데, 괜찮겠어?/”
서준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이라는 이름보다 ‘배우 이서준의 동생 김수빈’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스페인에 있는 박지오도 초반에는 ‘할리우드 스타의 친구’로 유명했으니까.
“/음./”
수빈이가 고민하는 듯했다.
어느새 김희상과 최수희도 조용히 그런 수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을 것 같아./”
수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나도 이제 6학년이야. 형이 얼마나 유명한 배우인지도 알고 다들 얼마나 형에게 관심이 있는지도 아는걸./”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수빈이의 목소리에 서준과 김희상, 최수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이 형 인기를 생각하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숨길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힘들면 서준이 형이 도와줄 거잖아./”
히히, 웃는 동생의 얼굴에 서준도 웃고 말았다.
물론 두 팔 걷고 도와줄 거다.
수빈이가 생각하는 ‘도움’의 방법과 서준이 생각하는 ‘도움’의 방법은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삼촌이랑 숙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빈이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생각도 중요했다.
“/수빈이가 괜찮다면야 나는 괜찮아./”
“/코코아엔터에서 연주자 매니저 일도 맡아주려나?/”
최수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희상은 벌써 김수빈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 말해도 되지?/”
눈을 반짝이며 묻는 수빈이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와아!
이제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김수빈이 활짝 웃었다.
* * *
“어떻게 밝히기로 했는데?”
이야기를 들은 제이슨의 질문에 서준이 대답했다.
“오늘 시상식 끝나고 수상 인터뷰하면서 교수님하고 제이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제 이름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밝혀지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다호 형이 그랬거든요.”
“그렇군.”
제이슨 무어와 벤자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김수빈이 수상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팔불출 같은 모습을 자각한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인터뷰 기자는 누구로 하기로 했니?”
“쿠퍼 기자요. 저번에 수빈이랑 인터뷰했는데 편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도 수빈이가 말한 걸 잘 적어줬고요.”
“쿠퍼 기자라면 괜찮지.”
벤자민 교수가 부드럽게 웃었다.
* * *
카테고리3의 결선 진출자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얼떨결에 특종을 잡게 된 것을 모르는 클래식 기자 쿠퍼가 속으로 침음성을 내뱉었다. 저도 모르게 12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와 카테고리3(19세 이상) 진출자들의 연주를 비교하게 된다. 나이 차이가 엄청 나는데도 말이다.
‘심사위원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겠지.’
수빈 킴이 카테고리3에서 나왔더라도 수상이 가능했을 것 같다고.
‘어마어마한 재능이야.’
앞으로 수빈 킴이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카테고리3의 결선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곧바로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예전보다 빠르네.”
“그만큼 진출자들 사이의 실력이 차이가 났다는 거겠지.”
진출자들의 실력에 차이가 별로 없으면 심사위원들끼리 회의를 한다고 꽤 오래 걸렸을 텐데, 이렇게 빨리 결정이 났다는 이야기는 확실한 실력자가 있어 만장일치로 빠르게 1위가 결정됐다는 거였다.
그 만장일치를 받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누군지는 예상이 갔다. 카테고리2의 연주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수빈 킴의 인터뷰는 꼭 따야겠어.”
그리고 결과는 쿠퍼의 예상대로였다.
* * *
1위를 발표하는 시간.
카테고리1에서 13살의 바이올리니스트가 1위 트로피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은 카테고리2의 수상자가 올라올 차례였다.
“수빈 킴!”
이름이 불린 12살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어린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서준이 오늘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동생을 위해 박수를 쳤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 무어도 있는 힘껏 무대 위에 의젓하게 서 있는 제자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냈다.
트로피와 꽃다발이 수빈이에게 전해졌다. 얼굴 가득 웃음과 행복이 스며들어 있었다.
좀 더 길게 수빈이를 축하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카테고리3 1위 발표가 이어졌다.
“수상 소감 말하는 시간이 없어서 아쉽네요.”
“그러게 말이야.”
짝짝짝!
그렇게 모든 수상자가 트로피를 받고 뉴욕 현악기 콩쿠르가 끝이 났다.
수상하지 못한 진출자들은 가족과 함께 돌아갔고, 기자들은 인터뷰 한 줄이라도 따기 위해 심사위원이나 수상자에게 몰려들었다. 벤자민 교수와 제이슨을 노리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날카로운 제이슨 무어의 눈빛에 아쉬움만 삼킬 뿐이었다.
“킴! 인터뷰 가능할까요?”
그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은 바로 수빈 킴.
카테고리1의 1위보다 1살 어린데도 카테고리2의 1위를 한 재능 넘치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아무래도 수빈 킴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보호자인 부모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수빈 킴은 형으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 저 본선 2차 때 인터뷰 했던, 쿠퍼 기자입니다!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기다리고 있던 쿠퍼를 발견한 최수희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네. 그때 잘 적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인터뷰는 한 분하고만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죠!”
쉭쉭!
쿠퍼가 다른 기자들을 향해 손을 내젓자, 기자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미리미리 움직여서 눈도장 찍어놓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인터뷰를 따기 위해 흩어졌다.
“이쪽에 간이 인터뷰실이 있습니다!”
사진을 맡은 동료 기자와 신나게 간이 인터뷰실로 들어간 쿠퍼가 수빈 킴을 의자에 앉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수빈 킴의 형과 부모가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1위를 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연주할 때 열심히 연습했던 걸 전부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걸 심사위원분들이 알아주셨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뻐요.”
의젓하게 대답하는 수빈이의 모습을 보던 서준이 속삭였다.
“/떨지도 않고 잘하네. 수빈이./”
“/우리 아들이 좀./”
김희상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사이 최수희는 휴대폰으로 수빈이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
“누구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한국에서는 김대현 선생님께 배우고 있구요.”
쿠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낯선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김대현. 한국 이름은 성이 앞이고…… 철자는 어떻게 되지? 라고 생각하며.
“미국에서는 벤자민 교수님과 제이슨에게 배우고 있어요.”
“네에. 벤자민 교수님과 제이……슨……?”
뒤에 나오는 이름은 쉽구나, 생각하며 노트를 하는데 왠지 익숙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만 나오면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이 두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쿠퍼와 동료 기자가 떨리는 눈동자로 앞에 앉아 있는 어린 바이올리니스트를 보았다.
“……혹시 벤자민 모튼 교수님과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를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옛날부터 두 분께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었어요.”
……세상에!
그 두 사람이 함께 키우는 제자가 있었다니.
어쩐지 저 대단한 실력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 * *
“벤자민 교수님과 제이슨 무어의 제자라니…… 이건 특종이야!”
“근데 본선 인터뷰를 보면 한국에서만 지냈다고 했는데, 어떻게 두 사람과 인연이 닿은 거지?”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정리하던 중 그런 의문이 든 쿠퍼였다. 인터뷰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닐 거야. 아까 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벤자민 교수님과 제이슨 무어 옆에 앉아 있는 걸 봤거든.”
“으음.”
수빈 킴과 두 사람의 사이에 연결고리가 뻥 뚫려 있는 듯했다.
“누가 소개해 줬나?”
“그럴 확률이 제일 크지.”
한국인 음악가 중 누가 있더라.
머릿속으로 몇 명을 떠올려보던 중 문득 서준 리가 떠올랐다.
‘바이올린 연주도 잘하고 작곡도 잘하지만, 준은 배우잖…….’
쿠퍼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잠깐.”
“응?”
수빈 킴. 수빈. 빈…… 빈!
눈을 크게 뜬 쿠퍼가 얼른 너튜브에 접속했다.
구독 설정이 되어 있는 채널[JUN]에서 영상을 하나 클릭했다. 뜬금없이 재생되는 감미로운 바이올린 연주에 동료 기자가 눈을 끔벅였다.
“지금 뭐 해?”
“이것 봐.”
쿠퍼가 마우스휠을 아래로 내렸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제1 바이올린 연주자: 준 JUN>
<제2 바이올린 연주자: 빈 BIN>
“……여기 빈이 수빈 킴이 아닐까?”
이러면 연결고리가 생긴다. 수빈 킴과 벤자민 교수 사이의 연결고리가.
쿠퍼의 말에 동료 기자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 여기 날짜 안 보여? 이거 4년 전 영상이야. 수빈 킴이 지금 12살인데, 4년 전이면 8살이야. 이 연주가 8살짜리 꼬마의 연주라는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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