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24화
“아,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네요. 2시간이 금방 지나간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라디오를 듣고 계시는 팬분들과 청취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정유나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하는 라디오 출연이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배우라는 일이 이미 편집되고 완성된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일이다 보니 이렇게 실시간으로 만난 적이 드물었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저처럼 새싹분들과 청취자분들도 행복한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터진 너튜브 채널이 복구되고 채팅을 자제하고 있던 팬들이 아쉬움 가득한 댓글들을 남겼다.
“저도 아쉽지만, 다음은 오버 더 레인보우2로 찾아뵙겠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재미있는 작품 열심히 촬영할 테니까 지금까지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지금까지 보이는 라디오, 정유나의 이서준 배우와 함께였습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서준과 정유나가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며,
보이는 라디오, [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이서준 편]이 막을 내렸다.
* * *
[SBC 보이는 라디오, 정유나의 지.당.함. 2번이나 터져!]
[배우 이서준, “다음은 오버 더 레인보우2로 찾아뵙겠습니다!”]
[배우 이서준의 차기작은 오버 더 레인보우2!]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2 굿모닝의 공개는 언제?]
[마린사 ‘유니버스’의 오리지널 작품! ‘오버 더 레인보우2’!]
-오늘 재미있었다ㅠㅠ영상 업로드되면 25352번 봐야지ㅠ
=2번이나 터졌지만 그래도 복구가 빨리 돼서 좋았음.
=22 복구 안 됐으면 진짜 욕 한 바가지 하려고 했는데.
=근데 안 터질 수가 없었어. 오버 더 레인보우2 이야기에 바이올린 연주라니ㅠㅠ
-서준이한테 ‘잘자요’ 부탁하려고 했더니 차기작 발표+바이올린 연주에 못했다ㅠ 너무 놀라고 멋있어서 까먹음ㅋㅋㅠㅠ
=22 부탁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끝나버림.
=근데 2시간……ㅋ
=그냥 웃는 것만 봐도 재밌었어ㅠㅠ
=라디오 한 번 더 해주라ㅠ서준아ㅠㅠ
-오버 더 레인보우라니!! 듣다가 심장 멈추는 줄!
=ㅠㅠ그레이ㅠ삼총사 다시 모여서 너무 좋구여ㅠㅠ
=와…… 이게 2편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다들 굿모닝 중간에 멈췄을 때 대폭발ㅋㅋㅋ
=굿모닝 언제 공개해ㅠㅠ 곡 너무 좋더라ㅠ
=누가 연주 부분만 따서 올려놓는 거 아니야?
=저작권 괜찮냐.
-근데 나만 서준이 연주할 때 그레이 같다고 생각함?
=ㄴㄴ 그건 누가 봐도 그레이였음.
=이서준은 1년 넘게 활동 안 해도 연기력이 안 줄었네.
=22 진짜 어떤 배우가 생방송에서 저렇게 연기를 보여줰ㅋㅋㅋ
-바이올린 실력도 그대로야.
=진짜 서준 오빠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도 너무 멋있어ㅠㅠ
-아니ㅠ OTT 플랫폼 다 합치면 안 돼? 지금 국내, 해외 사이트 결제한 것만해도 4갠데 유니버스까지하면 5개야ㅠㅠ
=22 작품 찾기도 힘들다고ㅠ
=그렇다고 오버 더 레인보우2가 나온다니 결제 안 할 수도 없고.
-해외 기사 뜸.
=오버 더 레인보우2 발언했을 때부터 와르르 뜨기 시작함.
=해외도 2편이라고!? 하고 놀라고 있네ㅋㅋ
[오버 더 레인보우2]에 대한 이야기는 금세 퍼져, 해외까지 번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마린사도 [유니버스]와 함께 홍보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서준이 연주했던 [굿모닝]의 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적극적인 마린사의 홍보로 [굿모닝]을 듣던 사람들은 밝고 따뜻한 곡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가 어중간하게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응? 하며 재생버튼을 다시 확인하고는 했다.
그러고는 공개된 음원이 거기까지라는 사실에 울분을 터뜨렸다.
-왜 여기서 끝나:(
=오버 더 레인보우2 홍보라서 그런가 봐.
=아무리 홍보라고 해도 너무 하잖아. 좀 더 풀어라. 마린.
-리 군대 갔다고 하지 않았어? 웬 바이올린?
=한국 군대는 1년 4개월 복무고, 준은 복무를 다 끝내고 일주일 전에 제대했어. 그리고 바이올린은 차기작 홍보로 라디오에서 연주한 거고.
=차기작은 오버 더 레인보우2야!
몇 시간의 시차도, 전혀 다른 언어도 신경 쓰지 않고 너튜브 보이는 라디오를 시청했던 해외새싹들이 적극적으로 서준 리와 [오버 더 레인보우2]에 대해 설명하고 다녔다. 실시간으로 라디오 방송을 번역해 준 새싹들에게 감사하며.
* * *
“오버 더 레인보우2라니!”
뉴욕 현악기 콩쿠르 2차 본선을 취재하러 온 클래식 기자, 쿠퍼는 퀭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면서 감탄을 뱉어냈다.
그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바로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
‘직업까지 얻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전까지는 음악의 ‘ㅇ’도 관심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음악 쪽으로 듣는 귀는 제법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칭찬한 어린 연주자들이 점점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보이면서, 귀 좋은 클래식 기자로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쿠퍼는 얼른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서준 리의 연주 영상을 재생했다.
녹음실 같은 곳에서 연주하는 서준 리의 모습은, 서준 리가 아니라 그레이 바이니 그 자체여서 저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재능 있는 클래식 기자, 쿠퍼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는, 현실의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레이 바이니였다.
‘라디오에서 실연까지 했다니……!’
바쁜 본업 때문에 라디오를 보지 못했던 쿠퍼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서 뭐 해? 안 들어가?”
조금 늦게 도착한 사진 담당 동료가 쿠퍼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연주홀로 들어가던 바로 직전, 울린 알림 탓에 쿠퍼는 계속 로비에 서 있던 상태였다.
“아, 들어가야지. 준 영상 보던 중이었어.”
“준? 아, 서준 리?”
“어. 이번에 오버 더 레인보우2가 나온대.”
쿠퍼가 [오버 더 레인보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던 동료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오늘은 콩쿠르에 집중해야지.”
“뭐, 그렇지.”
한바탕 [오버 더 레인보우]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던 쿠퍼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늘 연주자들은 살펴봤어, 쿠퍼?”
“일단 여덟 명 정도. 오늘 연주 듣고 추릴 생각이야.”
쿠퍼가 동료에게 파인패드를 건네주었다.
2차 본선에 진출한 연주자들은 많았고, 인터뷰 시간은 한정돼 있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중요했다. 그래서 귀 좋기로 소문난 쿠퍼가 선택한 연주자들을 제1순위로 삼아 인터뷰하고 있었다.
어제는 카테고리1(13세 이하)의 2차 본선이었고 오늘은 카테고리2(18세 이하)의 2차 본선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연주자가 있어.”
“누구?”
기자들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은 동료가 파인패드를 통해, 2차 본선 진출자들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알려진 유망한 연주자들을 빼고는 다 낯선 얼굴들이었다.
“15번. 수빈 킴.”
쿠퍼의 말에 15번을 찾던 동료의 손이 멈추었다.
[15번]
[수빈 킴]
[만 12세]
“……이거 카테고리2 맞지? 1이 아니라.”
“그래. 물론 최소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12세도 카테고리2에 출전할 수 있긴 하지만, 본선까지 오는 건 아주아주 드문 일이지.”
“나이 때문에 주목한다는 거야?”
“나이도 나이지만 연주를 잘하더라고.”
쿠퍼는 수빈 킴의 연주 영상을 떠올렸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사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담긴 연주였어.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준이 떠오른달까.”
쿠퍼가 그레이 바이니 못지않게 좋아하는 연주자가 서준 리라는 걸 아는 동료가 탄성을 내뱉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엄청 잘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면 진작에 알려졌을 텐데? 나이도 어리니까 말이야. 왜 몰랐지?”
나이 어린 천재는 나라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마련이었다. 그게 독으로 작용해서 문제지만 말이다.
“자료도 찾아봤는데, 콩쿠르는 하나밖에 안 나갔더라고. 그것도 4년 전에. 연주 영상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4년 전 연주 영상이라…… 2차 본선까지 온 걸 보면 실력은 있나 본데?”
“그래. 결선까지는 못 가더라도 인터뷰할 가치는 있다고 봐.”
동료는 나중에 사진을 찍기 위해 수빈 킴의 얼굴을 잘 기억해 두었다. 물론, 카테고리2에서 이렇게 어린아이를 발견 못 하는 게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연주홀로 연주자의 가족들과 기자들, 심사위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곧 카테고리 2의 2차 본선이 시작되었다.
1번부터 차례대로 올라와 무대 위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18세 이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1년 1년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성장기다 보니 대부분 17세나 18세의 연주자들밖에 없었다.
“/다들 길쭉길쭉하네./”
“/그러게./”
새로운 연주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잠깐의 시간 동안, 김희상과 최수희가 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의 품에는 풍성한 꽃다발이 있었다.
“/수빈이 잘하겠지?/”
“/그럼 누구 아들인데!/”
김희상이 씨익 웃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못해도 돼. 즐겁게만 하면 되지./”
걱정하던 최수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15번의 차례가 되자 객석이 술렁였다. 걸을 때마다 뽀작뽀작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작은 연주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카테고리1과 2를 착각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저 애지?”
“어.”
플래시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묻는 동료에게 대답한 쿠퍼도 15번을 바라보았다. 영상만 보다가 무대 위에 선 걸 보니 더 작은 것 같았다. 그래도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관객들과 심사위원을 바라보는 것이 대담해 보였다.
어딘가를 본 수빈 킴이 작게 웃고는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그리고 크게 활을 내리그었다.
쿠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작은 몸이 만들어내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활기찬 선율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힘만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부드러워야 하는 부분은 부드럽게, 섬세해야 하는 부분은 섬세하게.
악보에 나온 지시들을 잊지 않은 연주였다.
그렇다고 악보에 나온 대로,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도 아니었다. 프로에 비해선 부족하지만, 나이치고는 아주 훌륭할 정도로 그 악보 안에 자신만의 색을 넣고 있었다.
‘아니, 나이는 상관없지.’
지금의 연주까지 들었던 연주가 14곡.
17세, 18세들이 연주했던 14곡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선율이었다. 아마 뒤에 나올 연주자들도 몇 명을 빼면 비교할 상대도 없을 거다.
그런 생각들 중에도 쿠퍼의 귀는 수빈 킴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쿠퍼뿐만이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심사위원들도 그랬다.
♪
경쾌한 선율을 마지막으로 수빈이가 활을 내려놓았다.
‘좋았어!’
콩쿠르라서 박수는 없었지만 괜찮았다. 스스로 즐거웠던 연주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쉽기는 하지만.’
실수는 안 했지만 끝나고 나니, 좀 더 이렇게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함박웃음을 지은 수빈이가 객석과 심사위원들을 보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무대 뒤로 향했다.
그런 수빈이를 바라보며 김희상과 최수희가 활짝 웃으며 소리 없는 박수를 보냈다.
“……쟤 결선 가겠지?”
“그렇겠지. 그리고 어쩌면…….”
더 대단한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다른 관객들이 그러하듯, 동료와 쿠퍼의 시선도 무대 뒤로 사라지는 수빈 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이틀 후.
결선진출자들의 명단이 발표됐다.
* * *
-서준이 형! 나 결선 나가!
“그래? 대단한데?”
-이히힛. 그리고 인터뷰도 했다!
서준이 웃으며 잔뜩 신이 난 수빈이와 통화했다.
-기자분이 수빈이 칭찬 엄청 하셨어.
-우리 아들이 잘하긴 했지. 귀여웠고.
-맞아. 영상 보내줄게. 연주도 정말 잘했어.
옆에 있는지 김희상 최수희 부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쪽도 엄청 들뜬 목소리였다.
“기사는 언제 나온대요?”
-내일이나 모레쯤 나온대.
-명함 받고 벤자민 교수님께 여쭈어보니까 좋은 기자분이라고 하시더라. 기사도 잘 쓰고 귀도 좋아서 좋은 연주자들을 잘 알아본다고.
-우리 수빈이 최고!
-으히히힣!
떠들썩한 목소리에 서준은 웃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결선이 아니라 미국 기사가 번역되어 한국에 뜰 것 같지는 않으니,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아! 서준이 형! 언제 와?
“모레 출발할 거야.”
-진짜? 와아!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어째 결선에 나간 것보다 더 기뻐 보이네. 아들.
-그러게. 그렇게 좋아?
-좋아!
환호하는 수빈이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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