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22화
[벌써 1부가 끝나가네요. 잠시 광고 듣고 2부로 돌아오겠습니다.]
DJ 정유나의 말이 끝나자, 광고가 흘러나왔다.
“좋은 1부였어.”
“그러게.”
송유정과 임예나가 크으, 감탄하다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연예란 기사들이 온통 서준의 이야기뿐이었다.
[배우 이서준이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6살 때?]
[이서준이 말한 무명 배우는 누구?]
[한국 독립영화제 당시 훈련소 생활 중!]
서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기사화되어 있었다. 기자들이 얼마나 신이 나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을지 훤히 보일 정도였다.
“이것도 있네. 연기의 신 후계자 드립.”
“으으. 엄청 귀여웠지.”
연기 잘한다는 말에는 곧잘 수긍하는 서준이지만, 그로서도 연기의 신의 후계자라는 말은 많이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잘 볼 수 없는, 부끄러워하는 서준의 모습에 새싹들이 얼마나 난리인지 [새싹부터]가 아주 활활 불타오르며 그 드립을 친 새싹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있었다.
음소거되어 광고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라이브 방송 화면에, 아직 조금 붉어진 얼굴의 서준이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크으. 지구마저 부숴 버릴 것만 같은 귀여움이다.
“보라 최고다. 진짜.”
“그러니까. 오늘 방송 끝나면 다시 봐야지.”
새싹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광고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유나의 지금 이서준 배우와 함께, 2부 시작합니다.]
* * *
“2부에서는 영화 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표절 사건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데다가, 이번 라디오 방송에서는 조금 비켜난 이야기니만큼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상업 영화가 아니라 독립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라고 물으셨네요.”
“예전부터 독립영화 출연에 관심이 좀 있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상업 영화만 찍어봐서 독립영화 촬영장의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화를 찍기 전에도 좋은 대본만 있으면 찍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대본을 발견해 버려서 그걸 찍게 됐죠.”
“오. 당시 독립영화를 계획 중이던 감독님들이 슬퍼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요. 어쩌면 그분들 영화에 이서준 씨가 출연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랬을 수도 있죠.”
정유나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독립영화 대신 골랐다는 영화가 뭔지 궁금하다고 하시는데요?”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생존자들이에요.”
-오!
-생존자들이면 뭐…….
-ㅇㅈㅇㅈ
-이런 비하인드 좋다.
-그럼 독립영화 먼저 골랐으면 생존자들 못 찍었겠네.
“네. 그렇죠. 아무래도 촬영 시기가 겹칠 테니까, 독립영화를 먼저 골랐으면 생존자들은 아쉽지만 못 찍었겠죠.”
“이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는가 봐요. 이서준 씨가 없는 생존자들이라니. 상상도 안 되는데요?”
정유나의 말에 청취자들이 격렬히 동의했다.
-ㅇㅇㅇㅇ
-현우야ㅠㅠㅠ
-서준이랑 데이비스 때문에 생존자들 이야기 수정돼서 명작 된 건데, 수정 안 됐으면 그저그런 재난 물이었을 듯. 감독판도 안나왔겠지ㅠㅠ
그사이, 서준의 말은 기자들의 손에 곧바로 기사화되고 있었다.
[배우 이서준, 생존자들 못 찍었을 수도?!]
[배우 이서준이 없는 생존자들?!]
-뭔데? 뭐야??
=지금 SBC 라디오에 이서준 출연 중.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음.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라디오를 켜는 중에도, 정유나와 서준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독립영화 화가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보통 주인공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영화들과 달리, 관찰자인 민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기미독립선언문이 나올 때까지는 그런 내용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었거든요.”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아마 화를 본 청취자 여러분들도 그랬을 거예요.”
-그건 아직도 소름ㅎㄷㄷㄷ
-오늘 화 봐야겠다ㅜㅜ갑자기 보고 싶네ㅠ
그렇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때, 정유나가 웃으며 말했다.
“화를 이야기하면서 워킹맨을 빠뜨릴 수는 없죠. 이서준 씨는 워킹맨 보셨어요?”
“네. 재방송으로 봤습니다.”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네요. 저는 12월 방송도 보고 4월 방송도 봤는데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ㅇㅇㅇㅇㅇ
-[배우 이서준 / [화] 선발대 운전자]
-진짜 4월 방송 보면서 경악했다.
“다들 그러시더라구요.”
격렬한 청취자들의 반응에 서준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운전석에서 그분이 보이시던가요?”
“아무래도 연기를 할 때 사소한 것도 관찰하다 보니, 무의식중에 자세히 살피게 되는 것 같아요.”
“직업병이시군요.”
-직업병ㅋㅋㅋ
이미 많이 우려먹었던 이야기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나누다 서준이 잠시 목을 축이던 사이, 정유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특별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
-특별 게스트?
“전화통화지만요. 여보세요?”
서준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라이브 방송에 비쳤다. 청취자들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1월 고연에서 이서준 배우와 화팀에게 도움을 받았던 아기엄마입니다!]
발랄한 여자의 목소리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채팅창이 !!!! 느낌표로 가득 찼고 순식간에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서준을 섭외하자마자 이 이벤트를 기획했던 정유나와 제작진이 소리 없이 이히히히 웃었다.
“지금 이서준 씨가 엄청 놀라신 얼굴인데요! 많이 놀라셨어요?”
“……네. 진짜 놀랐어요.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건강하시죠?”
[네! 저희 민지도, 아, 그때 구해주신 저희 아기 이름이에요! 민지도 건강하고 저도 이렇게 쌩쌩해요! 여보!]
[아, 안녕하세요. 이서준 배우님.]
물기가 가득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아내와 민지를 구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아…….]
[아니, 왜 울고 그래! 저도 정말 감사드려요. 직접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입대하셨을 줄이야! 그래도 이렇게나마 전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서준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벤치에 앉아 힘들어하던 분이 이렇게 밝은 분인지는 상상도 못 했다.
“아기도 어머님도 건강하셔서 다행이에요. 정말.”
[아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아, 잠시만요!]
전화 건너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과 정유나, 청취자들이 고개를 갸웃할 때,
[꺄아! 아넝!]
갑자기 들린 어린 목소리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유나가 입을 쩍 벌렸다. 라디오로 듣고 있던 청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민지도 감사 인사드리고 싶대요. 민지야.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마! 조아! 안넝!]
[고마워요!]
[고마어!!요!]
-!!!!
-ㅠㅠ비상이다ㅠㅠ
-민지야ㅠㅠ
-버스인데 왜 울려요ㅠㅠㅜ
-지하철인데 다 울어ㅠㅠ이거 듣나 봐ㅠㅠ
DJ 정유나도 예상 못 했는지 슬쩍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고, 눈가가 조금 붉어진 서준의 얼굴도 화면에 비쳤다.
[민지 벌써 15개월이에요!]
[압빠아!!]
[어이쿠! 우리 딸. 저기 가서 놀자.]
[방긋방긋 잘 웃고, 잠도 잘 자요. 아픈 곳도 하나도 없구요.]
행복한 가족의 목소리가 들리고, 발랄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먹먹해졌다.
[전부 배우님과 화팀 여러분 덕분이에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아까부터 계속 울고 있네ㅠㅠ
-건강해ㅠㅠ민지야ㅠㅠ
채팅창이 눈물로 가득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감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코를 훌쩍 들이마시던 사람들이 또다시 들려올 감동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기먹방이요! 정말이지. 그거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니까요! 잠도 잘 자고 말도 잘하고 안 아프고! 다 좋은데 민지가 밥을 안 먹는 거 있죠!]
진심이 가득 담긴 엄마의 한탄에 서준과 정유나가 저도 모르게 풉, 웃고 말았다. 청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앜ㅋㅋㅋㅋㅋ
-무슨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까 했더닠ㅋㅋㅋ
-아기먹방ㅋㅋㅋ
-알아요ㅠㅠ아기먹방 없었으면 진짜ㅠㅠㅠ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임ㅠㅠ 진짜 아기 먹방이 여러 사람 살렸어ㅠㅠ
그렇게 민지와 민지 엄마 아빠와의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한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정유나의 지.당.함.] 2부가 끝났다.
‘네가 있어서 내가 빛이 난다’는 의미를 담은 블루문의 [블루문]이 흘러나왔다.
* * *
“네. 3부에서는 모든 분들이 궁금해하시던 군대 이야기를 해볼 건데요. 와. 전 제가 군대 이야기를 궁금해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군대 생활 어떠셨나요?”
“다른 분들이랑 비슷하게 지냈어요. 훈련받고 임무하고 그렇게요. 배우라고 다른 건 없더라구요.”
서준의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 떴다.
-난 저렇게 안 지냈는데요???
-보통 사람이 관심병사 케어를 맡진 않지…….
-배우라고 다른 건 없다니……그냥 못 알아본 게 아닐까?
“관심병사 케어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았어요. 목격담들도 많이 올라왔고요. 백호 부대 이서준 병장님이 상담사로 아주 유명하던데요?”
정유나의 말에 서준이 하하 웃었다.
“아무래도 24시간 함께 있는 환경이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도와주셨고요. 물론, 거친 분들도 계셨는데, 몇몇 분들은 그저 갑자기 격리된 생활을 조금 힘들어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걸 조금 도와드렸을 뿐이에요.”
-우리 망나니 아들 사람 만들어준 이서준 병장님 감사합니다ㅠㅠ
-형이 사람이 되다니……이제 자기 빚, 자기가 갚는대……ㅠㅠ
-……자기 빚은 자기가 갚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음. 누군지 알겠다.
빠르게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며 서준은 자신과 함께 지냈던 관심병사들과 꼰대 장병들을 떠올렸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물론 태생적으로 성격이 더러운 인간들도 있었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으로 적응을 힘들어하는 장병들도 있었다. 워낙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문제인지도 모르는 후임도 있더라.
‘지금은 능력 덕분에 괜찮아졌지만…….’
또다시 어려운 일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새로운 병이 생기는 것까지는 서준이 막지 못한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길 바랐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있었죠.”
딴생각은 접어두고 방송에 집중한 서준이 웃으며, 산에서 훈련하던 중에 계속 동물들이 꼬이는(선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보며 ‘너……전생에 백설공주였냐?’ 하고 물었던 선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채팅창이 ‘백설공주ㅋㅋㅋ’로 가득 찼다.
* * *
“4부에서는 모두가 궁금하실 내용,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지금 차기작을 준비 중이신가요? 많은 분들이 차기작에 대해 궁금해하셨어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정유나의 말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있습니다.”
-헉!
-그럴 줄 알았음!!!
-전역하자마자ㅋㅋㅋ
-열일하는 서준이!!
정유나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서준이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미리 들었지만 그게 어떤 작품인지는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어떤 작품인지 청취자분들께 알려드릴 수 있나요?”
“네. 그럼요.”
-국내? 해외?
-드라마? 영화??
-뭐든 재미있을듯ㅠㅠㅠ
물음표가 가득한 채팅창에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함께 일할 영화제작사는 예전에 인연이 있었던 곳이에요. 그때도 참 재미있게 촬영했었는데 또 함께 일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영화!!!
[배우 이서준의 차기작은 영화!]
빠르게 뜬 기사에, 방영일이 겹쳐 시청률을 죄다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던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국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영화제작사들은 미친!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서준의 차기작이라니.
상영일이 겹치면 관심 밖으로 밀려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배우 소속사들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흥행 실패가 없는 이서준이 선택한 차기작이었다. 소속 배우들을 집어넣기엔 이렇게 좋은 작품도 없었다.
겨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드라마도 좋은데ㅠㅠ 오래 볼 수 있어서ㅠㅠ
-마린사면 벌써 홍보했을 것 같은데.
-다홍이려나? 사극!!!
-영화드림??? 이스케이프????
-베어라운드면 진짜ㅠㅠㅠ
정유나가 제작진에서 보여주는 댓글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아. 팬분들이 영화제작사까지 다 알고 계시네요. 전 마린사 빼고는 잘 모르는데…… 베어라운드에서는 어떤 영화를 찍으셨죠?”
“생존자들을 제작한 곳이에요.”
“아…….”
너튜브 라이브 영상에 비친 정유나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ㅋㅋ감독판 보셨구나ㅋㅋ
-근데 진짜 베어라운드면 생존자들(감독판) 같은 거 나올까 봐 무섭다;;;
-생존자들(감독판) 같은 거 나오면 좋겠다!!
“어딘가요? 그 제작사는?”
정유나의 물음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때, 배경음악으로 어떤 음악이 깔렸다. 바이올린 소리다.
-어? 이거??
청취자들은 들려오는 곡이 [오버 더 레인보우]의 OST,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걸 알아차렸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웨일 스튜디오입니다.”
……!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창이 순간, 얼어버린 듯 멈추었다.
청취자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새싹들이 웨일 스튜디오를 모를 리가 없었다. 무려 오스카상을 받게 해주었던 영화의 제작사가 아닌가!
‘설마, 설마……!’
침묵 사이로, 서준의 입에서 새싹들이 예상하던 말이 흘러나왔다.
“그레이 바이니의 2번째 이야기를 여러분께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
서준도 읽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오는 댓글들에,
결국 라이브 방송이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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