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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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맣던 너튜브 라이브 화면이 밝아지고 앉아있는 DJ 정유나의 모습이 비쳤다.
-10시! 시작한다!
-서준이는 어디썽?
-아직 소개 안 함.
조금 전보다도 더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들에 잠시 식겁하기도 했던 정유나지만, 콘서트다, 음악방송이다 생각하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 당신과 함께.]
♪
[어른이 된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어렸을 적의 추억들을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고. 그럴 때면 저는 어릴 적 앨범을 들여다봅니다. 유치가 빠진 채로 웃고 있는 사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부모님과 함께했던 졸업식 사진.]
이민준과 서은혜가 부드러운 정유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진들을 보면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던 기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르죠. 그리고 어느새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있을 겁니다.]
♪
[지금 이곳에는 그런 앨범 속 사진 같은 배우분이 계십니다. 이분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는 하죠. 어마어마한 첫 등장부터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 작품마다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감동과 벅참, 그리고 한국 영화사를 뒤집어 놓은 엄청난 기록들.]
응원봉을 흔들고 있던 송유정과 임예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마어마한 첫 등장은 쉐도우맨 말하는 거지?”
“아기 먹방 말하는 거 아닐까?”
“아. 그게 제일 어마어마하긴 하지.”
[그리고 그와 함께, 추억들도 떠오르고는 합니다. 친구와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던 것, 부모님과 함께 간 연극에서 여의주를 받았던 것, 가족들과 둘러앉아 드라마를 보며 울었던 것, 영화를 보고 기부를 했던 것, 공익 광고를 보고 도움을 받았던 것.]
이어지는 정유나의 말에 이미연과 박성아는 천천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봐와서 그런지 친근함이 남달랐다. 마치, 제 삶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빛바램 하나 없이 반짝이고 있는 듯한.
라디오 속 정유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마치 우리의 앨범 속에 큼지막한 사진을 한 장씩 남긴 듯, 추억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배우, 이서준 씨가 와주셨습니다.]
[정유나의 지금 ‘이서준 배우’와 함께, 시작합니다.]
둥둥!
[정유나의 지.당.함.] 오프닝 음악이 끝나고 타이밍 좋게 진 나트라의 OST가 흘러나왔다.
-오오오오!!!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역시 서준이 등장음악은 이거지!!
-서준이다!!!
-♡♡♡♡♡
너튜브 라이브 화면에 새하얀 헤드폰을 낀 서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변함없이 잘생긴 짧은 머리카락에 막 전역한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ㄱㅇㅇㅠㅠ
-라이브라니...생방송이라니ㅠㅠ
“어서 오세요. 이서준 씨.”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정유나에게 꾸벅 인사한 서준이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눈까지 휘어지며 반가운 듯 웃는 모습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청취자분들도 열렬히 환영해 주고 계시네요. 무려 1년 4개월의 공백기를 보내고 오셔서 그런가 봅니다.”
“음. 그렇다기엔 다들 두 달 전까지 모르고 계셨죠.”
웃으며 말하는 서준에 정유나와 청취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세상에. 지금 생각해도 그래요. 아마 청취자분들도 저랑 같은 마음일 겁니다. 우리나라 군대가 비밀 유지를 엄청 잘한다는 걸 깨닫는 경험이었어요.”
-진심 놀랐지.
-온 세상이 나한테 깜짝카메라 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영화 화를 찍어두고 입대하셨잖아요. 군대는 진짜 추측도 못 할 만큼의 화제성이어서 전 진짜 계속 활동 중이신 줄 알았어요.”
“네. 저도 후기들을 읽어봤는데, 모두 좋은 평가를 해주셨더라고요. 화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서준이 카메라를 보며 꾸벅 인사를 하자,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채팅창도 빠르게 움직였다. 사랑과 눈물이 가득했다.
DJ 정유나가 모니터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방송에서는 지난주 토요일에 미리 받았던 질문들을, 이서준 씨에게 질문할 예정입니다. 때마침 어울리는 질문이 있어요. ‘한국 독립영화제 참석하셨나요?’라고 물으셨네요. 워낙 일코가 대단하셔서 몰래 참석하셨을 것 같다고 궁금하시다네요.”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있을 때라서요. 휴가도 안 나와서 그때는 조금만 늦게 갈 걸 그랬나, 생각하기도 했죠.”
-훈련소ㅋㅋㅋ
-훈련소래ㅋㅋㅋ
-이서준도 늦게 갈걸, 하고 생각하는구나ㅋㅋ
“훈련소라니…… 실감이 나네요. 다른 질문도 있어요. ‘어째서 이렇게 빨리 입대할 생각을 했나요?’라고 물으셨네요. 아마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을 질문인 것 같습니다.”
“언제든 갈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매니저 형이 이왕이면 빨리 가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입대하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군대가 연예계 활동에 영향을 주긴 하죠. 이서준 씨는 매니저분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신가요?”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10년 넘게 함께 지내다 보니까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이유를 듣다 보면 납득이 가거든요. 매니저 형이 저를 생각해서 그런 의견을 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의견이 달랐던 적은 없으세요?”
“으음.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작품에 대한 의견은 제 말을 전적으로 들어주시고, 그 외에도 건강이나 위험할 때가 아니면 잘 들어주시는 편이라서요. 친형 같죠.”
SBC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너튜브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안다호가 감동받고 있을 때, 채팅창이 술렁였다.
-……우리 형은 안 그러는데?
-??그게 무슨 형이야??
-환상 속 형인가??
눈에 들어온 댓글에 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 청취자분이 그게 무슨 형이야, 라고 하시네요.”
정유나가 진심이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언니가 있어서 잘 아는데, 안 싸우면 형제자매가 아니죠.”
“그래도 나이 차이가 있으면 좀 덜하잖아요. 막둥이처럼. 저랑 매니저 형이랑 나이 차이가 좀 있거든요.”
“매니저분이랑은 언제 처음 만나셨는데요?”
“8살이요. 어린이 연극 봄 찍기 전이요.”
-ㅇㅈ
-취직했으면 적어도 이십 대일 텐데 8살 동생이면 귀엽겠네.
-8살 서준이ㅠㅠㅠ를 직접 보시다니ㅠㅠ
-부럽다ㅠㅠ 안 이사님ㅠㅠ
“8살이라. 엄청 어렸을 때네요.”
정유나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저 돌보느라 많이 고생했을 거예요. 매니저 형.”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안다호가 중얼거리는 동안, 정유나가 모니터에 떠오른 질문을 살펴보았다.
“8살 때 어린이 연극 봄을 했었고, 그 이전에 재수사 카메오, 쉐도우맨 2, 악령, 쉐도우맨1을 촬영하셨죠.”
-워...그게 8살 전이야?
-난 8살 때 뭐했냐ㅋㅋㅋ
-역시 서준이ㅠㅠ
-이래서 새싹부터가 새싹부터였구나ㅋㅋ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배우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네요.”
정유나가 말을 덧붙였다.
“보통 아역 배우들은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서준 씨도 블루문, 케빈 씨의 누나분이 오디션을 소개해 준 것이 계기였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게 정말 배우가 되고 싶었던 계기였나요? 아니면 배우 생활을 하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건가요? 라고 많이 질문해 주셨네요.”
“나라 이모에 대해 알고 있으신 분들이신 걸 보니, 질문하신 분들이 새싹분들인 것 같네요.”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 오디션은 배우 활동의 첫 시작이었을 뿐이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건 그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쉐도우맨1 오디션 이전이면…… 6살 때요?”
“네. 그쯤이요.”
정확히는 그보다 오래전에.
서준이 천천히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떤 무명 배우의 삶을 보게 됐어요.”
첫 생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던 저한테 굉장히 인상 깊었던 분이셨습니다. 무명 배우면서도 어렸던 제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연기를 사랑하셨는데, 도대체 연기가 뭐길래 저렇게 사랑하는 걸까? 하다가 관심을 가진 게 된 거예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배우 이서준의 이야기에 청취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벌써 관련된 기사가 떴는지, 늘어나는 청취율에 제작진들과 녹음을 보러온 라디오국 국장이 소리를 죽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건 다큐멘터리였나요? 무명 배우들의 삶을 담은?”
아니. 삶의 책이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어 서준은 기억을 더듬는 척하며 대답했다.
“그게……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안 나요. 책이었던 것도 같고, 신문 기사였던 것 같기도 하고, 라디오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냥 그때 느꼈던 감정만 생생할 뿐이에요. 다들 그런 기억이 있지 않나요? 굉장히 기뻤거나 굉장히 슬펐는데 원인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그런 기분입니다.”
-에이. 찾아보려고 했는데.
-누군지 궁금하다.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그 6살짜리를 이런 대스타가 되게 만들었을까.
-새싹의 은인이다ㅠㅠ
“그럼 어떤 배우분인지도 모르겠네요.”
“네. 그렇죠.”
“그분이랑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첫 생을?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대답 없는 서준에 정유나가 얼른 말을 이었다.
“제가 가수가 된 계기가 박유영 선생님이셨거든요. 나중에 꼭 만나서 인사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노래도 같이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이서준 씨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요. 인사도 하고 같이 작품 촬영도 하고요!”
첫 생과…… 인사도 하고 같이 촬영도 한다고?
첫 생이 이미 죽어버린 것을 알고 있는 서준으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네요.”
서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물론 글자로만 읽은 데다가 많이 삭아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별로 없었고, 삶의 끝까지 무명 배우였기에 연기력에 대해서는 조금 불안감이 들지만.
‘그렇게 연기를 사랑하던 첫 생과의 촬영이라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상기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서준의 모습에 DJ 정유나와 제작진, 최태우는 물론이고, 너튜브 라이브로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변한 서준의 분위기에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준이 얼마나 기대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배우가 그런 기쁜 표정을 짓는데, 팬들이 손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저 새싹, 앞으로 그분 찾기 시작합니다.(진지)
-6살 때면 미국에 있을 때겠지?
-USA 새싹들이 나설 때가 왔다!!
-TV, 책, 신문, 라디오 다 찾아보자!!!
-으아아아악!! 새싹부대!! 돌겨억!!
보이는 라디오를 보고 있던 새싹들이 응원봉을 들고 이불 먼지를 털듯 미국을 털어버리려고 할 때, 정유나가 물었다.
“찾으려고 해보시진 않으셨어요?”
그 물음에 서준이 아, 하고 채팅창을 보았다. 꼭 찾아주겠다는 진심이 가득한 새싹들의 댓글에 아주 잠깐 쓴웃음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첫 생의 몸은 이미 죽었고, 그 흔적도 자신의 꿈속(?)에만 남아 있었다.
찾으려고 해봐도 고생만 하고 찾지 못할 게 분명했다.
“저도 찾으려고 해봤는데 못 찾겠더라고요. 자료도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이 사람이다. 하는 분은 없었어요.”
오로지 사실만을 말하는 듯한 진실하면서도 아쉬움이 가득한 듯 시무룩한 서준의 연기에, 정유나와 청취자들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요. 스타 이서준의 계기가 된 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ㅠㅠ서준이도 몰라봤으면 못 찾겠다. 그냥 동서남북 절해야지.
-그 무명배우분도 꼭 행복하시길 바랄게요ㅠㅠ
-들숨에 연기력 날숨에 작품 흥행 얻으세요!
착한 새싹들의 댓글에, 그 무명 배우의 머나먼 환생체, 서준이 부드럽게 웃었다.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냥 지나가던 무명 배우의 인터뷰였는데, 제 상상 속에서 많이 미화가 됐던 건지도 몰라요. 어렸을 때니까요. 산타 할아버지도 믿을 때잖아요.”
“어렸을 때는 그럴 때가 종종 있죠. 작은 것도 크게 느껴지고.”
정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그분 연기의 신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후계자로 서준이를 찜해서 서준이 앞에만 나타난 거지ㅋㅋㅋ그래서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거야!
연기의 신이라니. 후계자라니.
사랑과 자랑이 듬뿍 담긴 새싹의 주접에 서준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는데, 마침 도움을 주겠다던 제작진이 그 댓글을 발견하고는 신나게 모니터에 댓글을 띄웠다.
……이게 도움인가 싶다.
정유나가 웃으며 모니터에 뜬 댓글을 읽었다.
“하하. 여기 팬분이 그러시네요. 연기의 신이 이서준 씨를 후계자로 찜해서 이서준 씨의 앞에만 나타났다고. 그래서 연기를 잘하는 거라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
말없이 붉어진 얼굴을 두 손바닥에 묻는 서준의 모습에 채팅창과 녹음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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