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20화 (62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20화

토요일 오전.

코코아엔터.

“그럼 오늘은,”

안다호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나갔다.

“서준이랑 태우 씨. 둘만 가 볼까요.”

허억!

최태우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자, 안다호가 웃었다.

문득 첫 서준의 스케줄을 맡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서준이 아직 어려서 서준의 부모님과 함께 다녔었는데, 서준도 이제 군대까지 다녀온 성인이니 괜찮을 터였다.

“서준이 집에 들러서 픽업하고 SBC로 가면 됩니다.”

“네, 네.”

“저도 다른 일 때문에 방송국 근처에 있을 거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요. 방송국 안이라 문제는 없겠지만 경호팀도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네.”

뒤따른 설명에 최태우가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본격적으로 서준의 매니저 일을 한다니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럼 서준이 잘 부탁합니다. 태우 씨.”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치 갓 들어온 신병마냥, 바짝 굳어 대답하는 최태우였다.

* * *

SBC 지하주차장을 지나, [정유나의 지.당.함] 녹음실로 향하는 길.

기합이 바짝 들어간 최태우가 눈에 불을 켜고 온 사방을 경계했고, 서준은 그런 최태우를 보며 작게 웃고 있었다.

“힘 좀 빼요. 태우 형.”

“응? 힘 빼고 있는데?”

어깨 담 걸릴 것 같은데요.

삐걱삐걱 움직이는 최태우에 서준이 다시 웃고 말았다.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그게…… 1팀 직원분들한테 방송국에 가면 피디들에게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들었거든. 근데 생각보다 조용하네?”

최태우는 생각과 달리 조용한 복도에 어깨에 들어있던 힘을 천천히 빼기 시작했다. 서준도 생각보다 조용한 방송국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러네요. 저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그게 아니라는 건 [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 라디오 녹음실에 와서야 알았다.

* * *

조금 전. SBC 방송국.

[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 라디오 녹음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방송을 앞두고 제작진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생방송을 이끌어갈 진행자, 가수 정유나는 안절부절못하고 계속 대본만 읽고 있었다. 아니,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유나 씨?”

“……아뇨. 전혀. 근데 괜찮아요. 저번 주에 기사 떴을 때부터 이래서.”

하.하.하.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정유나에 다른 제작진들도 비슷한 얼굴을 했다. 그들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꿈인가?’ 하고 생각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기사 많이 났더라구요.”

“일주일 내내 그랬잖아요. 홍보 기사 하나를 내면 수백 배로 불어나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니까요.”

진짜 홍보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여기저기서 홍보를 해주고 있었다. 왜 다들 스타 마케팅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은, 엄청난 화제성이었다.

“홍보가 많이 된 만큼 청취자들이 많겠지만, 조금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해요. 우리.”

“네!……우리요?”

“사실은 저도 떨려서 실수할 것 같거든요.”

피디의 진심이 담긴 말에 정유나가 작게 웃고 말았다.

“그럼 저희 음료수랑 간식 사 올게요!”

막내 작가의 말에 정유나와 이야기하고 있던 피디가 얼른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라디오국 국장이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건네준 카드였다.

“여기 카드. 종류별로 다 사 와.”

“오렌지 주스는 꼭 사고!”

이서준 배우가 좋아하는 음료도 잊지 않았다.

“옙!”

카드를 받은 막내 작가와 막내 스태프가 녹음실 밖으로 나와 1층 로비로 향했다.

“……근데 왠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오늘따라 복도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였다. 특정 목적지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묘하게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낯선 얼굴들이.

라디오국 직원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럼……?”

“그런 것 같은데…….”

드라마국과 예능국 사람들이었다.

두 막내와 눈이 마주친 드라마국 피디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피디의 손에는 제법 두꺼운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대본이려나?”

“예능 기획서일 수도 있고.”

[흘러가다]의 민희경 감독의 경험담처럼, ‘앗.실.수.’ 하고 어색한 연기를 보여주며, 이제 곧 도착할 귀한 손님의 걸음걸음마다 뿌릴 생각일지도 몰랐다.

“꽃길이 아니라 대본길인가…… 근데 바로 들킬 것 같은데.”

“그러게. 상대가 이서준 배우니까.”

연기력으로 탑을 찍은 배우의 눈에 몹쓸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치 게임 속 NPC처럼 제자리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드라마국, 예능국 사람들을 지나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오! 하고 기뻐하면 엘리베이터에 타려던 두 막내가 움직임을 멈췄다가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야생의 드라마국 국장과 예능국 국장이 나타났다.

히익!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방송국 꼴 잘 돌아간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탐탁지 않은 눈으로 직원들을 둘러보는 두 국장에, 막내 작가와 스태프가 조용히 숨을 죽이며 몸을 움츠렸다. 본인들의 상사는 아니지만 무섭다.

드라마국 국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괜히 방송국 이미지만 망치지 말고 다들 얼른 돌아가.”

“하지만 이서준 배우만 섭외하면…….”

“게다가 매니저가 새로 왔다는데…….”

“하지만이고 그치만이고. 라디오 녹음하러 왔는데 이렇게 죄다 몰려와서 자기 프로에 출연해 달라, 한 번만 읽어달라, 하면 이서준 배우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소속사는?”

“그리고 새 매니저면 뭐, 이서준 배우를 쉽게 꼬실 수 있을 것 같아? 그 이서준 배우 경력이 15년이라는 생각 못 하고?”

예능국 국장의 날카로운 말에 다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무리 이서준 배우가 결정권이 크다고 해도, 순서가 있지. 자기들 안 통하고 다이렉트로 이서준 배우한테 연락하면 기분 좋기도 하겠다.”

“밑에 애들이 그렇게 하면 난리 날 놈들이…….”

말끝을 흐린 두 국장이 힘이 쭉 빠진 직원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다 방송 잘돼보자고 한 일 아니겠나. 솔직히 두 국장도 욕심이 나긴 했다.

“거기 두 사람.”

“예? 예!?”

“지당함 스태프인가?”

“넵! 그렇습니다!”

갑자기 불린 두 막내가 바짝 굳어 대답했다.

“그럼 이거 좀 이서준 배우 매니저한테 전해줄 수 있겠어?”

“네?”

방법이 잘못됐다면 바꾸면 된다.

드라마국 국장이 피디들이 들고 있던 대본들을 몇 개 모아 막내 작가에게 건네주었다. 묵직한 무게에 막내 작가가 눈을 끔벅였다. 오호, 감탄을 뱉은 예능국 국장도 얼른 기획서를 모아왔다. 물음표만 띄우고 있던 피디들이 눈치 빠르게 들고 있던 종이들을 한곳에 모았다.

어느새 그 종이 뭉치들이 모두 막내들의 손에 들려졌다.

“그럼 부탁하지.”

으응?

두 국장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사라지자 피디들이 시끌벅적해졌다.

“꼭 좀 부탁할게.”

“우리 거 제일 위에 올려줘!”

“이거 앞장에 색칠을 할까? 눈에 띄라고.”

“펜…… 펜 있는 사람!”

잠시 후.

오렌지를 따러 오렌지농장에 갔나, 하고 막내들을 찾으러 나왔던 피디가 두 손 가득 종이 더미를 들고(이야기를 듣고 다른 피디들도 찾아왔다.) 울상을 짓고 있는 막내들의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 * *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몰려들면 불편하니까 이렇게 모아뒀습니다.”

방송국 이미지를 위해 자세한 뒷이야기를 숨기며 말하는 피디에 서준과 최태우는 테이블에 쌓여 있는 종이 더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만한 섭외 요청이면,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복도를 걸어오는데 한세월에 걸릴 터였다.

“이건 좀 있다 차로 옮겨둘게. 서준아.”

“네.”

최태우의 말에 대본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제작진들과 정유나와 함께 간단한 회의를 진행한 서준은 생방송 시간이 가까워지자 DJ 정유나와 함께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준의 손에는 제작진이 준 오렌지 주스가 들려 있었다.

“헤드폰 쓰시는 게 편하시면 쓰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흰색 헤드폰을 목에 건 서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디오 녹음실은 가수팀 녹음실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더 밝고 넓은 느낌이었다. 카메라도 군데군데 보였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모니터에는 세 개의 팝업창이 떠 있었는데, 하나는 메모장으로 녹음실 밖 제작진과 작가들이 서준과 DJ 정유나에게 보여줄 대본들이 올라올 예정이었고, 또 하나는 너튜브로 라이브 영상이 올라갈 너튜브 채널 [SBC]가, 마지막 하나는 SBC 라디오 앱이었다.

서준이 라디오 녹음실을 구경할 때, [지.당.함.] 제작진도 신기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영화 촬영 아니죠?”

“그러게. 막 영화 보고 있는 느낌이야.”

커다란 유리창 너머, 앉아 있는 서준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영화를 보러 온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저 헤드폰 우리 거 맞아요? 디자인이 달라 보이는데.”

뭔가,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달까.

이서준이 끼고 있어서 그런가? 메인작가가 고개를 갸웃하자, 피디가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새벽에 새로 들어온 거예요. 이서준 배우 덕분에. 저거 엄청 비싼 브랜드예요.”

“아하.”

메인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방송이 나가면 ‘이서준 헤드폰’으로, 광고 효과는 확실할 것 같았다.

그런데 피디의 말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마이크도 새로 바꿨어요.”

“……네?”

“음질 다르지 않아요? 이전 것도 좋은 마이크였는데 이건 더 좋더라고요. 그리고 모니터랑 책상이랑 의자도 바꿨어요. 그냥 녹음실 안에 있는 물건들은 전부 바꿨다고 보면 돼요. 오늘 새벽에 작업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허어.

고개를 끄덕이는 스태프들에 작가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그냥 광고판이 따로 없네요.”

“이서준 배우잖아요. 입고 나오기만 하면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제작진의 칭찬과 감탄에, 1팀과 안다호 이사에게 테이블에 쌓인 종이뭉치에 대한 보고하고 있던 최태우가 히죽 웃었다.

* * *

너튜브 채널 [SBC]에 영상이 하나 떴다.

[보이는 라디오/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with 배우 이서준)]

-떴다!!!

드디어 뜬 라이브 방송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지만 클릭을 해봐도 아직 새까만 영상에는 준비 중이라는 말만 떠 있었다.

-언제 시작함?

-10시 아직 남았음.

-지금 포털 시계로 기다리는 중.

-ㅋㅋㅋㅋ

-지금 TV랑 연결해서 보고 있다ㅎㅎㅎ

-22 좋은 건 크고 선명하게 봐야 됨.

-서준이를 라이브로 보다니……너무 좋구요ㅠㅠ

-너튜브 라이브도 종종 해줬으면.

-그러게ㅠㅠㅠ

-문자 보낼 수 있음?

-2 보낼 수 있긴 한데 못 볼 듯.

-33 모래사장의 모래 한 톨이 될 것 같다.

-근데 왜 다 여기 있음? SBC 라디오앱은?

-거기 벌써 터짐. 복구될 기미도 안 보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정유나가 모니터에 보이는 너튜브 댓글들을 읽어갔다. 이 정도 속도면 전부 읽지는 못해도 눈에 하나둘 정도는 들어올 것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왜 이렇게 빨라졌지?’

생방송 시간이 다가올수록 댓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뭐 하나 읽을 새도 없이 지나가는 댓글들에 정유나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정유나가 떨리는 눈으로 녹음실 밖에 앉아 있는 제작진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작진 쪽도 상상 이상의 속도에 당황한 듯했다.

서준도 댓글창을 보았다.

-쓸려갑니다~~~

-나도 못 보는데 서준이도 못 볼 듯ㅋㅋㅋㅋㅋ(안웃김)

-ㅇㅕㄱㅣㅇㅕ???

-살려줘~~~

-♡♡♡♡♡

-하트는 보이네♡♡♡

-방금 들어왔는데 이게 뭐야ㅋㅋㅋㅋ(안웃김)

-방송 안 터지는 것만 해도 어디야.

“방송 안 터지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시네요.”

“……그게 보이세요?”

서준의 말에 정유나가 눈을 끔벅였다. 밖에 있던 제작진도 들었는지 놀란 얼굴이었다.

“제가 동체 시력이 좀 좋아서요. 다는 못 읽어도 몇몇 개는 읽을 수 있어요.”

사실은 전부 읽을 수 있긴 하지만.

와아, 감탄하는 정유나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댓글은 제가 읽어볼게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전부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짧은 거 몇 개만 읽어주시면 돼요. 인상 깊은 댓글이 있다면 읽어주셔도 되고요.”

[저희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정유나와 제작진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도 너튜브 채팅창은 빠르게 갱신되고 있었다.

[이제 곧 생방송 시작합니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유나 씨도 서준 씨도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피디의 말에 웃으며 대답한 DJ 정유나와 서준은 방송 시작을 기다렸다.

[3초]

[2초]

제작진의 목소리에 따라 녹음실에 있는 붉은 전자시계도 1초 1초 변해갔다.

[09:59:59]

[10:00:00]

[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의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며, 서준의 첫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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