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19화 (61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19화

SBC 라디오, [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의 회의실.

모두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인 피디의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이서준 배우 전역한 거 방송 나왔으니까 이제 곧 연락이 올까요?”

“글쎄요. 오늘은 쉬고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쉬면…… 월요일에나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월요일.

많이 남은 시간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이서준 배우가 라디오에 나올까요? 방송에 나온다고 해도 TV에 나갈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은데…….”

끄응.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파급력이 큰 TV 쪽에 나갈 확률이 더 커 보였다.

“이서준 배우가 안 되면 바로 땜빵할 게스트를 찾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땜빵 찾는 거야 쉽죠.”

라디오 작가 경력이 제법 있는 메인작가가 말했다.

TV가 아닌 라디오지만, 신인 아이돌이나 이제 인기를 막 얻기 시작하는 연예인들을 섭외하는 건 쉬웠다. 그냥 목소리만 나가는 것도 아니고 라디오 방송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보이는 라디오’인 데다가, 라디오 방송 중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인기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청취율이 얼마나 나올지가 문제지.”

다들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취율이 높지 않았던 이전 프로그램이 끝나고 새롭게 편성된 지 몇 달. 다들 어떻게든 빠르게 자리를 잡길 바랐다.

“우리도 게스트를 미리 정해놓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게스트에 대해서 조사도 해야 하고 대본도 적어야 하는데, 두 손 놓고 이서준 배우의 답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메인작가는 물론이고 다른 제작진들까지 불안에 다리를 덜덜 떨어댔다.

“김 피디님은 게스트를 미리 정해뒀다고 하더라고요. 이서준 배우가 언제 섭외되든 다 밀어낼 생각이래요. 날짜도 코코아엔터에서 정할 수 있게 했다고 하던데요.”

“그럼 이서준 배우가 섭외되면, 그날 게스트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스케줄이 다른 날로 밀려나거나 취소되는 거겠지.”

“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래 이 세계가 그런 곳 아니겠나.

보통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비밀리에 입대했다가 갓 전역한 이서준 배우다. 기존 게스트를 밀어낸 논란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 클 거다.

“논란이 일어도 제작진 쪽으로 향하겠지. 뭐, 청취율만 잘 나오면 신경도 안 쓰겠지만.”

메인작가가 손에 쥔 펜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쪽이 더 좋은 방법이긴 해.”

“왜요?”

“이서준 배우가 섭외 안 될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거의 과자 안에 든 랍스터 함유량 정도의 확률일걸? 살짝 담갔다 빼는 정도의…… 알지? 우리처럼 진짜 텅 비워놓고 섭외하는 데는 거의 없을 거예요, 피디님.”

메인작가의 말에, 피디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그래도 그런 식으로 하면 게스트들이 조금…… 안타깝잖아요.”

이제 막 새 프로그램을 맡은 신입 피디는, 제게 한 번만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하던 신인 아이돌들, 무명 가수들, 그리고 그 매니저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권력이 자신의 것인 것마냥 우쭐해하겠지만 이 신입 피디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저희가 조금 고생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밖에 나갔다 오기만 하면 두 손 가득 온갖 가수들의 앨범을 거절도 못 하고 받아오고, 수많은 앨범과 음원 중 유명하진 않지만 좋은 음악을 고르는 피디의 모습을 알고 있는 제작진들이 피식 웃었다.

‘아직 신입이라서 그렇겠지만…….’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메인작가였다.

개편 때마다 갑질하는 피디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럼 화요일까지 기다려 보고 안 되면 새 게스트 찾아보기로 해요.”

“네. 그럼 내일 방송 회의를,”

그때,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던 피디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럴 린 없겠지만, 코코아엔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소리가 작아서 놓칠까 봐, 일부러 요란하고 크게 설정해 놓은 벨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와! 깜짝이야!”

“이제 폰 꺼놔도 되지 않아요?”

아주아주 낮은 확률로 이서준 배우가 섭외돼도, 전역 당일이며 토요일인 오늘 연락 올 것 같지는 않다는 제작진들의 말에, 피디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근데 어디서 온 거예요, 피디님?”

“그러게요. 오늘 연락 올 곳 없는데…….”

피디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화면에 적힌 글씨가 보였다. 피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헛것이 보이는가 싶었다.

눈을 찌푸리고 휴대폰을 바라보는 피디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메인작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벨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피디님, 전화 안 받으세……?”

피디에게 말을 걸던 메인작가도 휴대폰을 보고 그대로 멈추었다.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피디와 메인작가가 돌이 된 듯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의아한 기색으로 주춤주춤 휴대폰 쪽으로 움직였다. 밝은 화면에 뜬 글자가 보였다.

[코코아엔터]

“허억!”

화면에 뜬 이름에 다들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경악한 소리들에 입만 벌리고 있던 메인작가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아직도 멍한 얼굴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신입 피디의 어깨를 치며 외쳤다.

“피디님! 얼른 전화 받아요!”

“……헉! 여보세요!”

벌떡 일어난 피디가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의 말에 네네, 대답하는 피디의 모습을 메인작가와 제작진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스피커폰 모드로 바꿔서 같이 듣고 싶은데, 괜히 통화에 방해가 될까 봐 다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저 가만히 피디의 표정만 살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면 피디는 이미 재가 되어버렸을 거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 통화 내내, 피디의 표정은 잠깐의 흐림도 없이 계속 맑았다. 그에 따라 소풍 가기 전날, 일기예보를 보는 아이들처럼 제작진의 얼굴도 밝아졌다.

피디가 휴대폰을 내려놓자, 다들 눈을 반짝이며 피디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피디가 벅찬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출연한대요! 이서준 배우!”

와아아악!!

환호성을 지르는 제작진들에,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들이밀었던 옆 회의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야기는 금세 방송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기사화되는 데까지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배우 이서준, 이번 주 토요일 보이는 라디오 출연!]

[배우 이서준, 전역 후 첫 활동! SBC 보이는 라디오!]

[SBC ‘정유나의 지금 당신과 함께’ 이서준 편, 토요일 오전 10시 방송 예정!]

[SBC 정유나의 지.당.함., 당일 문자 폭발에 대비해 오늘 토요일 23:59분까지 질문 접수 중!]

-헐! 보라!

=보라! 보라!!!

=그냥 라디오면 아쉬울 뻔했는데 보라ㅠㅠㅠ

-서준이 라디오 처음이지?

=ㅇㅇㅇㅇㅇ

=다큐 내레이션 목소리도 좋았는데. 라디오라니ㅠㅠ

-10시에 하면…… 잘 자요? 해주나????

=허억! 상상만 해도 좋아서 죽음.ㅇ<-<

=안 돼! 보라는 보고 죽어!!! (멱살 잡음)

=아니ㅋㅋㅋ죽지 말라고 해야지ㅋㅋ

=서준이가 해주면 녹음해서 밤마다 듣는다.

=난 24시간 들을 거다.

=귀에서 피나겠다ㅋㅋㅋ

=너희 제대로 읽은 거야ㅠㅠ? 오전이야. 오후가 아니라ㅠㅠ

=……ㅅㅂ?

=난 오전에 잠.

=22 오전에 자면 되지.

=33 오전 10시에 자는 사람도 있어. 서준아.

=44 뉴욕은 밤이야.

=오. 뉴욕 살아?

=44+) 아니. 인천 살아ㅎㅎ

=ㅋㅋㅋㅋㅋ

-질문게시판 봤는데 너무 많더랔ㅋㅋ

=22 제작진 죽어 나갈 듯.

=근데 이게 당일날 문자로 들어왔으면 더 큰 일이었을 것 같다ㅋㅋㅋ

=한 글자 읽으면 새 문자가 오는 거 아님?ㅋㅋ

=+999999 (제작진: 질색)

-지당함 보라 SBC 라디오앱에서 하는데ㅋㅋ 댓글도 진짜 촤르르륵 올라갈 듯.

=라디오앱 터지는 거 아니냐.

=이건 200퍼 터짐.

=너튜브에서도 함. 걱정 마.

=너튜브 터지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근데 아닐 거라고는 못하겠다(진지)

-서준이 작품으로 볼 줄 알았는데ㅠㅠ방송이라서 너무 좋음ㅠㅠ

=작품도 좋지 않아?

=좋긴 한데 촬영, 공개까지 너무 오래 걸림ㅠ

=22 전역 후 첫 활동이 보라라 너무 좋다ㅠㅠ 게다가 생방송ㅠㅠ

=33 라이브라니……!

* * *

[정유나의 지.당.함.]의 메인작가와 제작진들, 그리고 잠시 고용한 작가들까지 모여 쓰나미처럼 계속 올라오는 질문들을 정리하고, 밀려 들어오는 광고들에 숟가락 하나라도 얹어보려는 사람들에 순한 피디가 식겁하며 뒷걸음질 치던 주말이 훌쩍 지나고.

월요일.

코코아엔터 회의실.

“방송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총 2시간 동안 4부로 진행할 계획이고.”

자신을 보고 있는 배우 이서준과 안다호 이사, 1팀 부팀장의 시선에, [정유나의 지.당.함.]에서 날아온 일정표를 살펴보던 최태우가 조금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중간중간 광고가 들어갈 예정이랍니다. 라디오 진행 중에는 쉐도우맨의 진 나트라 OST나 오버 더 레인보우의 곡들, 그리고 이서준 배우가 출연했던 블루문의 블루문이 삽입될 예정이고요.”

“질문지는 언제 주신다고 하셨어요?”

“내일 오전까지 정리해서 주시겠다고 합니다.”

서준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최태우의 모습을 보던 안다호가 1팀 부팀장과 눈이 마주치고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여기.”

최태우가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1팀에서 예상 질문들을 먼저 뽑아봤습니다. DJ인 정유나 씨도 안정적인 성격이라 튀는 질문은 안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준이 1팀에서 뽑은 예상 질문들을 살펴보았다.

요즘 듣는 음악, 읽는 책 등 취향에 대한 질문이나 영화 [화], [워킹맨!], 군대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빠질 수 없는 차기작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저도 질문 올라온 거 봤는데, 이대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서준의 칭찬에 최태우가 활짝 웃었다. 1팀 부팀장도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차기작 질문은, 웨일 스튜디오에서 어디까지 언급해도 된다고 했어요?”

차기작인 [오버 더 레인보우2].

현재 그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고 있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진행 중인 작품이었다. 바로 몇 주 후 8월이 촬영인데 소문조차 돌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출연하는 배우인 서준도 비밀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차기작도 아니고 무려 [오버 더 레인보우2]가 아닌가.

‘계약도 했으니까 정말 어쩔 수 없다면 숨겨야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차기작을 기다리는 새싹들에게, [오버 더 레인보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 배우의 의지를 들은 전담 1팀이 웨일 스튜디오에 연락했다.

“원래 홍보 예정은 촬영을 시작하는 8월부터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만,”

최태우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배우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때, 얼마나 기쁜지.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이서준 배우가 언급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와! 그럼?”

“네. 일정 부분까지 언급해도 된답니다. 홍보 잘 부탁한다고 웨일 스튜디오 홍보팀장님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새싹들과 [오버 더 레인보우]의 팬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