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617화 (6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17화

“여기.”

서준의 손이 닿은 병영식당 벽에 스르륵 반짝이는 문양이 생겨났다. 지금까지 지내면서 한 번도 그 문양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장현준이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부적이라기보다는 마법진 같습니다.”

“뭐,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벽에 팔찌 대봐.”

“아. 넵!”

장현준이 어제부터 목숨보다 소중히 아끼고 있는 부적 팔찌의 초록색 구슬을 벽에 갖다 댔다. 초록색 구슬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문양이 잠깐 빛났다.

진짜 마법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심장이 뛰었다.

“이, 이러면 된 겁니까? 이 병장님?”

“그래.”

서준이 마나로 가득 찬 문양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두세 달 간격으로 에너지가 바닥나는데, 현준이 넌 에너지 체크는 못 하니까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렇게 해주는 게 좋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도 가볼까?”

전역을 하루 앞둔 이서준 병장과 귀신을 보는 관심병사, 장현준 일병이 백호 부대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에너지 얼마나 남았어?”

서준의 물음에 장현준이 초록색 구슬에 손을 갖다 댔다.

[■■■■■□□□□□]

“반 정도 남았습니다.”

“그럼…….”

서준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에너지 채우는 것도 실습해 볼까.”

“네?”

장현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일 때, 서준은 백호 부대에 둘러놓았던 선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잡귀들을 유인할 약간의 마기를 흘려보냈다.

우우우-

일반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울림을 서준과 장현준은 확실하게 들었다.

“온다.”

근처에 있던 장병들이 7월답지 않은 약간의 서늘함을 느낄 때, 장현준은 자신의 설탕과자 같은 영혼과 아늑한 마기에 이끌려 몰려드는 잡귀들을 보며 식겁했다. 근처 잡귀들은 다 모인 것 같았다.

“허억……!”

장현준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평화로운 백호 부대.

자신만 홀로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니, 다행히도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이 병장님이 있었다.

“너, 너무 많습니다! 이 병장님!”

그런데 당황한 자신과 달리, 이 병장님은 다른 장병들처럼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이번 기회에 에너지도 모으고 정화 능력도 써보자. 한번 해봐야 다음에 당황하지 않고 쓰지.”

그래도 언데드형 몬스터나 고스트형 몬스터보다는 나은 풍경이 아닌가.

한때, 캐반트족 사제로 그 괴물들과 한바탕 전쟁도 벌였었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 그래도…….”

“해봐. 한번.”

당황하던 장현준이 웃으며 바라보는 서준의 모습에 숨을 훅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래. 무서워할 게 뭐가 있나.

백호 부대에 처음 왔을 때 봤던 풍경이나, 팔목에 있는 팔찌, 건물마다 새겨진 능력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존재가 와도 이 병장님이 이길 터였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후우.”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장현준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잡귀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니, 더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모습들이었다.

“음. 좀 춥지 않아?”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잡귀들은 연병장에 있던 장병들에게도 하나둘 달라붙기 시작했고, 조금 강한 잡귀들이 달라붙은 장병들은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물론, 가장 많은 관심을 차지한 건 장현준이었다.

그 설탕과자 바로 옆에는 서준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어떤 잡귀도 서준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마치, 발견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서준만이 딴 세계에 있는 것마냥 깨끗했다.

“저, 정화부터 쓸까요?”

“편한 대로 해.”

손에 조금 땀이 나면서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 병장님의 능력은 확실했다. 장현준이 만났던 그 누구보다도.

그러니까 이 부적의 힘도 아주 대단할 거다.

문득 영화 [악령]이 떠올랐다.

이서준이 연기했던 아기 무당과 아기 무당을 돕던 거대한 신.

자신과 이 병장님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스무 평생, 이렇게 많은 잡귀들이 몰려든 적이 없었는데, 왠지 마음은 평안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럼 흡수부터 하겠습니다!”

“그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넵!”

서준이 장현준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것도 같지만 묘하게 상기된 얼굴이 조금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서준도 지금이야 환생에도, 남들과 다른 능력에도 익숙해져서 적당히 조절하고 숨기며 무리 속에 속할 수 있었지만, 환생을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정도’를 몰랐었다.

초창기 삶의 책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그랬다.

환생한 ‘종족’이 가진 능력 이상을 사용하거나 ‘종족’이 가진 능력과는 전혀 다른 능력을 사용하거나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보일 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담긴 눈빛.

그리고 끝내 배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환생 초창기에는 좀 방황했었지.’

왜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 도대체 다시 태어나서 무엇을 하라는 건지, 이 환생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어떨 때는 일찌감치 삶을 포기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살려고 노력했다. 또 어떨 때는 세상을 구하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세상을 파괴하기도 했다.

서준이 장현준을 바라보았다.

장현준은 평생이 그런 혼란이 가득한 삶이었을 거다.

그때, 변화가 일어났다.

장현준과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부터였다.

가장 앞서서 날아오던 피투성이의 손이 그 한걸음의 경계를 넘는 순간, 순식간에 연기처럼 변해 사라졌다.

“어?!”

“구슬에 흡수된 거야.”

서준의 차분한 설명에 당황하던 장현준도 침착함을 되찾고 초록색 구슬을 만졌다. 아주 약간, 에너지가 채워진 것이 느껴졌다. 검푸른 구슬에서 흡수된 마기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과 만나 선기로 변해 초록색 구슬을 채운 것이었다.

“와아…….”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진짜로 되는구나.

이 병장님의 능력에는 계속 감탄만 나왔다.

신이 난 장현준은 계속해서 달려드는 잡귀들을 흡수했다.

하지만 한 걸음.

[(선/제작)루룸파꽃의 광합성]의 범위는 고작 그 정도의 거리라, 그 뒤에 있는 잡귀들까지는 퇴치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정화하겠습니다!”

서준이 장현준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에 작게 웃었다.

이해한다. 스무 평생 아무런 힘도 없이 시달려야 했던 존재들을 이제야 겨우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니까.

들뜬 얼굴을 보면 마법 주문처럼 ‘정화!’라고 외칠 법도 한데, 그래도 여기가 군대인 건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화.

장현준의 속삭임에 [(선/제작) 캐반트 사제의 정화구슬]이 새겨진 초록색 구슬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조금 날카롭지만 따뜻한 바람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앞서 사라지는 잡귀들을 보며 경계하듯 떨어져 있던 인간 형상의 귀신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오던 온갖 모습의 잡귀들도 마치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에 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연기 같은 것을 남기고 사라졌다.

완전한 소멸이었다.

소멸. 죽음.

사라지는 그것들을, 무한환생자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작품 때문에 그런가.’

그와 관련된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었다.

“이 병장님! 지금 보셨습니까?!”

장현준이 화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다 없어졌습니다!”

물론, 부대가 넓다 보니 전부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다른 장병들에게 붙어있던 잡귀들까지도. 비현실적이던 삶이, 더욱더 비현실적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뻤다.

“잘했어.”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가슴이 벅찬 장현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보 제1호가 된 부적 팔찌를 소중히 매만졌다.

“이 병장님. 저 전역하면 귀신 퇴치 일하면 어떻겠습니까? 막 엑소시스트처럼 말입니다.”

“나쁘진 않지만 그 정도로 퇴치할 귀신이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 그렇네요.”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은 느끼지 못하니 의뢰인도 별로 없을 거고, 퇴치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니 사기꾼이라도 들을지도 몰랐다.

에이.

상기된 얼굴의 장현준이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잡귀가 곳곳에 보이는 걸 보면 이 병장님이 힘을 쓰고 계시는 것도 아닐 텐데. 평생의 짐 같았던 잡귀들이 눈치를 보듯 자신에게 달라붙지 않고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평범하다.

울컥.

뱃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 뜨거운 것이 금세 눈물로 변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병장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뭘 해드리기에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었다.

진심이 가득한 감사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내 작품 나올 때마다 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건 당연히 할 겁니다!”

그 당연한 것이, 대중의 관심으로 빛나는 배우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역시 이 병장님은 대인배.

감동받아 훌쩍이는 장현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서준이 말했다.

“팔찌. 그렇게 쉽게 부서지진 않겠지만, 나중에 부서지면 연락해. 새로 만들어줄게.”

“안 부서지게 소중히! 대대로 간직하겠습니다!”

훗날, 증손주가 실수로 팔찌를 부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장현준이 믿음직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장현준에게 능력 쓰는 법을 알려주고 간부들과 다른 장병들과 인사를 나누며 백호 부대에서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

* * *

“이야…….”

연예부 기자의 입에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사람 진짜 많은데?”

“외국인들도 있어요. 선배.”

7월 14일.

8시도 안 된 이른 시각.

백호 부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넓은 공터는 연예부 기자들은 물론이고 방송국 카메라에, 꽃다발과 선물을 든 팬들까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외국인? 이서준 전역일 오늘 새벽에 알려주지 않았냐?”

“언제든 올 수 있게 7월 내내 한국에 있을 생각이었나 본데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몰려올 것을 대비해 최대한 늦게, 오늘 새벽에서야 전역한다고 알린 코코아엔터였는데, (방송국과 기자들도 밤새 달려왔다.)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외국팬들까지 있을 줄이야.

“대단하네.”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역시 이서준 팬이라서 그런가. 분위기도 좋고 묘하게 질서정연하지 않아요?”

“그러게.”

서준에게 직접 선물을 전달할 수 없다는 말에 아쉬워하면서도, 별 불만 없이 코코아엔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잘 전해주세요’라고 말하며 꽃다발과 선물을 주는 새싹들이 보였다. 한국인, 외국인할 것 없었다.

“생방송도 하나 봐요.”

“할리우드 스타가 비밀리에 군대 갔다가 제대하는 거니까 짧게라도 내보내려는 거겠지.”

삼사 지상파 방송국은 물론이고 종편까지 온 듯했다.

공터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두 기자는 계속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전역 날 모인 이서준의 팬들, 새싹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들, 취재하러 온 방송국과 기자들, 군백기를 걱정할 필요가 1도 없는 엄청난 관심들 등.

오늘이 배우 이서준의 전역 날임을 알고, 이곳의 소식이 궁금할 대중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회수를 위해 열심히 업로드했다.

그때.

공터로 들어오는 입구 쪽이 시끌벅적해졌다.

웅성웅성대는 사람들이 이내 와아아악!!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들은 사람들이 목을 쭈욱 빼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차 한 대가 공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서준인가?”

“그런가 본데?”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 사이를 통과한 차량은 인터뷰를 위해 준비된 자리의 배경으로 설치된 팬들이 준비해놓은 플래카드 뒤에 멈춰 섰다. 누가 내리는 것 같았다.

1년과도 같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플래카드 옆에서 군복을 입고 베레모까지 쓴 남자가 나타났다.

세상에……!

새싹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밤새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목격담과 함께 올라온 서준의 군대 사진도, 코코아엔터에서 올려준 사진도 매일같이 봤지만 역시 실제로 보는 느낌은 차원이 달랐다.

어른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서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감동마저 느껴졌다.

‘이런 서준이도 좋아……!’

배우 이서준의 등장에 아까보다도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서준아! 준! 외치는 목소리들에 주변을 둘러본 서준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백호!”

서준이 분대원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경례를 선보였다.

그 자연스러우면서도 각 잡힌 경례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고합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역 신고는 거의 없어지는 추세지만, 전역하는 연예인들은 빠지지 않고 하는 이벤트였다.

반짝이는 팬들의 눈빛과 번쩍이는 기자들의 카메라, 그리고 안다호가 생방송이라고 알려준 방송국 카메라들까지.

1년 4개월이라는 오랜 시간, 이런 직접적인 관심에 굶주려있던 서준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선기를 흘려보냈다.

“병장 이서준은 7월 14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효과는 대단했다.

……와씨. 미쳤다…….

어디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것 같았다.

“이에 신고합니다.”

모두 할 말을 잃고, 군 공백기가 뭐냐는 듯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슈퍼스타를 바라보았다. TV로 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백호.”

7월 14일.

서준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전역을 알렸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