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16화
아주 작게 빛나는 검은 빛.
장현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연약한 빛이었다.
“동동이가 알았나 봐.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그게 무슨……?”
“네가 말했잖아. 왠지 신검 때랑 훈련소 때는 잡귀가 전혀 안 보였다고.”
장현준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동동이가 한 게 아닐까 싶어. 동동이는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지.”
“……우리……동동이가요?”
힘겹게 내뱉은 목소리에는 의아함과 함께 물기가 서려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검은 털의 부드러움과 온기가 두 손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 날 발견한 정도면 널 무척 돕고 싶었나 봐.”
“하, 하지만 신검이나 훈련소 같은 것에 대해서 동동이가 알 리가 없는데…….”
“어디 신령한 영혼에게 찾아가서 물어본 게 아닐까? 현준이 네가 지금의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강원도에서 만난 ‘그것’(백구)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또 다른 도깨비나 신기하고 기이한 신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쩐지.
검고 풍성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현준이! 내가 지켜야 해! 방법 알려줘!!’ 하고 왕왕 짖는 동동이와 난감한 표정으로 동동이를 바라보다가 ‘으음. 그러면…… 이날하고 이날에 잡귀를 쫓아보렴. 잘하면 귀인하고 만날 수 있을 거란다.’ 하고 말하는 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장현준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동, 동동이가 여기 있습니까. 병장님?”
“있긴 하지만…… 지금은 힘을 다 써서 존재감이 희미해. 이제 떠나야 될 때지 않은가 싶네.”
장현준이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너무나도 희미해 능력이 부족한 장현준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동, 동동이가 어디에…….”
“이쯤인데…….”
서준은 장현준의 앞쪽, 허공을 감싸듯 두 손을 오므렸다.
“너무 작아서 안 보일 거야. 너무 흐릿한 데다가 널 보호하는 느낌이길래 놔뒀는데 그게 동동이였네.”
장현준이 울컥한 얼굴로 서준의 두 손안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말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동동아.
그 이름은 울음과 섞여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왜…… 왜 이런 곳에서 고생하고 있어…… 강아지별에서 편하게 지내야지…….”
이 병장님을 만난 게, 이 팔찌가 동동이 덕분이었다니.
“왜 여기서…… 고생하고 있어…….”
가족과도 같았던,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던 동동이.
죽고 나서도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장현준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병장님…….”
“응?”
“동동이가…… 너무 힘을 많이 썼다면…… 동동이의 영혼이 사라지는 건가요? 환생이나…… 천국 같은 데도 못 가는 건가요?”
걱정이 가득한 장현준의 물음에 서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경우에야 죽으면 곧바로 환생하지만, ‘이 세상’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랐다.
“나도 잘 모르지만 힘이 사라졌다고 해도 영혼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 환생할 차례라면 환생하게 되겠고 천국이라는 게 있으면 그곳에 가겠지.”
장현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감사합니다. 병장님 아니었으면…… 동동이가 절 도와주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
“뭘. 그냥 본 걸 말해준 것뿐인데. 동동이가 널 정말 좋아했나 보다. 이렇게 나를 찾아낼 정도면.”
서준의 말에 장현준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 * *
“팔찌는 내가 간부들한테 말해놓을게.”
군인은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없으니, 미리 말해두는 편이 좋았다.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면 괜찮을 거다.
“네. 감사합니다.”
부적 팔찌에, 동동이 이야기까지.
감사함에 계속 울었던 장현준이 진정한 얼굴로 감사를 전했다.
“음. 현준아.”
“예?”
“우리 부대 밥맛이 좋지?”
장현준이 신기한 듯 팔찌의 두 구슬을 만지고 있다가 서준의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예. 여기 오기 전 부대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그게 말이지. 내 능력 덕분이거든?”
서준의 말에 장현준이 눈을 끔벅였다.
“……밥맛을요? 그런 것도 가능하십니까?”
“사람의 감각을 예민하게 해주는 능력이야. 조리병들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밥맛이 좋아진 거지.”
장현준은 백호 부대 대원들이 궁금해했던 밥맛의 비밀이 바로 이서준 병장의 능력 덕분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러니 원인을 못 알아낼 만도 했다.
“그럼 식당에 부적을 붙여놓으셨습니까?”
“비슷하긴 해. 내일 식당가면 보여줄게.”
서준이 웃으며 본론을 말했다.
“내가 아까 내 능력을 쓸 때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예.”
고개를 끄덕이던 장현준의 머리가 순간 멈추었다.
능력, 에너지, 충전, 전역……
서준을 바라보는 장현준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그, 그럼…….”
“내가 전역하면 에너지를 주입 못 한다는 거지. 그럼 능력도 못 쓰게 되고.”
“……밥도 맛이 없어지겠군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이제 일병인 장현준은 제대할 때까지 1년가량이 남아 있었다. 전입하기 전, 부대에서 먹었던 음식들과 백호 부대의 음식들을 비교하면 눈앞이 저절로 깜깜해졌다.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그것 말고도 다른 능력들을 여기저기 썼거든.”
서준이 설명하는 능력들(스트레스 낮추기, 편안한 잠자리, 사고 없는 훈련 등)에 장현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다가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그랬군요.”
백호 부대가 편안한 게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현준이 네가 여기 있는 동안에, 그것들을 충전해 줬으면 한다는 거야. 전역 날에 완충하고 가긴 할 거지만.”
완충이라니.
서준의 말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은 장현준이 물었다.
“근데 충전은 어떻게 하는 건지…….”
“팔찌에 있는 구슬이랑 접촉만 하면 돼. 내일 식당에서 한번 해보자.”
그 말에 장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동안 살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고 느꼈지만 그중 오늘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정말로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리고…….”
묵주를 만지작거리던 장현준이 고개를 들었다. 서준이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닫고 있었다.
“가족 중에 현준이 네 체질과 비슷한 사람은 없다고 했었지?”
“네. 듣기로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네 아들딸에게 전해질 확률도 거의 없는 건데.”
……아들딸.
장현준은 덜컹 몸을 들썩였다.
가족. 자식.
기이한 능력을 가진 장현준에게는 꿈도 못 꿔 본 단어였다.
자신의 가족은 조부모가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익숙해진, 구슬들이 알알이 둘러진 묵주 팔찌를 만지는 장현준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어쩌면 정말 꿈에서만 바라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결혼한다는 전제하에서지만.”
“……예……예. 그렇죠.”
사랑. 결혼.
사춘기 소년처럼 상기된 얼굴의 장현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듣고 있는 건지는 장현준 자신도 잘 몰랐다.
“그 이후에는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 그럴 수도 있긴 하죠.”
장현준과 조부모도 몰랐던 아주 먼 조상들 중에 장현준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조상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할게.”
“부탁 말입니까? 말씀만 하세요! 뭐든지 괜찮습니다!”
눈을 반짝이는 장현준의 모습을 보며 웃던 서준이 말했다.
“나중에 네 후손들 중에 너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후손이요?
굉장히 먼 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장현준이 눈을 끔벅였다.
“화에서 그림 그렸던 언덕 알지?”
“아, 예! 붉은 꽃과 흰나비 말이죠?”
“그래. 거기.”
서준은 인간을 좋아하던 이름 없는 ‘그것’을 떠올렸다. 오랜 시간이 흘러, 정상적으로 태어날 ‘그것’이 좋은 인연을 만나 외롭지 않길 바랐다.
“만약 너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후손이 태어난다면 거기에 가줬으면 싶어.”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눈을 끔벅이는 장현준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현준이 네 영혼이 설탕과자라고 했잖아. 보통은 힘 쎈 주인이 있어서 신내림 같은 형식으로 지키는데 넌 주인이 없어서 안 된다고.”
“예. 그러셨죠. 힘 있는 영들이 탐낼 정도는 아니라고.”
“그 언덕에 힘 있는 영혼이 하나 있어. 산신령이랄까, 도깨비랄까. 그런 건데, 인간을 좋아해서 네 후손을 지켜줄 거야.”
장현준이 묵주를 한번 봤다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 영혼을 저에게 소개시켜 주시는 게 좀 더 편하지 않습니까?”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게, 아직 안 태어났거든.”
그 말에 장현준이 입을 쩍 벌렸다.
아직 안 태어난 도깨비인가, 산신령인가를 이 병장님은 어떻게 아시고 계시는 건지. 보면 볼수록 옛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신비한 존재인 것 같다.
“부탁해도 될까?”
서준의 물음에 장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힘 있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저야말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먼 미래에 이 병장님이 주신 이 팔찌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자식도 아니고, 손주도 아니고.
이어질지 안 이어질지도 모르는 먼 훗날의 후손이지만.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장현준은 제 후손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 뭐 필요한 건 없습니까?”
“필요한 거?”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신내림 받을 때 제사 같은 거 지내고 하지 않습니까. 제사상이라거나. 굿이라거나.”
아하.
열정적인 장현준의 모습에 서준이 으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럼 고기랑…… 나무원반?”
“……예? 잘못 들었습니다?”
서준의 말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한 장현준이 되물었다.
“강아지 장난감도 괜찮겠다. 그런 걸 좋아하거든.”
“……강아지 장난감……이요?”
“어. 소리나는 걸로.”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현준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리 머지않은 미래.
자신처럼 귀신을 봤다는 증조할아버지의 유언을 좇아, 강원도까지 온 장씨 가문의 후손이 새빨간 꽃들이 핀 언덕을 바라보았다. 고전 명작, 독립영화 [화]의 촬영지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인기 있는 관광지답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관광하러 온 사람들을 둘러보던 후손이 히히히낄낄낄 웃어대는 잡귀들에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 좀 할걸…….”
몇 년 전까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유품인 부적 팔찌 덕분에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자신의 실수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잡귀들에게 시달리다가, 얼마 전 증조할아버지의 유언을 발견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잡귀들을 애써 무시하며 후손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열었다. 안에 든 것들을 보니, 다시금 한숨이 나왔다.
“이럴 때는 보통 귀하거나 신비한 물건 같은 거 아니에요, 증조할아버지?”
나무원반과 강아지 장난감들.
삑삑거리는 장난감을 몇 번 눌러본 후손이 걸음을 옮겼다.
삑-삑-
헥-헥-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말은 그저 ‘이곳’에 ‘고기와 강아지 장난감’을 가지고 가라는 것뿐.
제사나(관광지에서 제사 지내는 걸 허락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도움을 줄 신령의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은 탓에 어떻게 찾아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삑삑삑-
헥헥헥-
반쯤 넋을 놓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언덕을 바라보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삑삑삑삑-
헥헥헥헥-
후손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을, 정확히는 손에 쥔 장난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에 후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얼핏 보면 평범한 진돗개처럼 보이는 ‘이 존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근처를 맴돌던 잡귀들도 어느새 사라진 상태이었다.
“……너……세요?”
“왕왕!”
넋이 나갈 것 같은 표정의 장씨 가문 후손을 바라보며 신나게 짖던 백구가 둔갑술을 풀었다.
제대로 자연의 기운을 모아 태어난 터라, 힘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여전히 서준과 함께 있었을 때의, 흰 두루마기를 입은 작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눈매도 서준과 똑 닮아 있었다.
‘그것’이 활짝 웃었다.
“안녕! 인간! 반가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