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15화
“백호!”
“백호.”
5주 만에 돌아온 백호 부대는 떠나기 전과 다름없었다.
‘마나는 아직 남아 있고.’
부대를 둘러보며 건물마다 새겨놓은 문양에 남아 있는 마나를 체크하던 이서준 병장은 곧바로 대대장실로 불려갔다. 평소와 같은 부대와 달리 만나는 간부들은 조금 살이 빠져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했다 치면 돼.”
서준의 말에 대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휴가도 정당한 사유였고. 솔직히 더 나갈 수도 있는데 안 나간 거였잖아. 이 병장은.”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말년휴가가 5주라 오래 쉬었다는 느낌이겠지만, 오히려 말년휴가 이전에 나갔던 휴가들이 너무 적었다. 나중에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덜 나간 것이었다.
“뭐, 우리 부대 규칙이 그렇다는데 어쩔 거야. 전시도 아니고 사고도 없는데 휴가 나간 애를 부를 수는 없잖아.”
대대장의 말에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꽤 시달렸을 거다. 전역하기 전에 축복이나 내려드려야겠다.
“이 병장이 그동안 병사들 케어해 줘서 문제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어. 다른 부대 대대장들도 같은 생각이고…….”
대대장이 눈을 데굴 굴리다 누가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추었다.
“말뚝 박을 생각은 없지?”
“예. 없습니다.”
깔끔한 서준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얼굴로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가 봐.”
꾸벅 인사를 하고 대대장실을 나가는 이서준 병장을 보며 대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병장 덕분에 평온하게 보냈던 1년 4개월.
앞으로 만날 관심병사들을 떠올리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하루 일과가 끝나고 휴식 시간.
서준의 복귀 소식에 부대가 떠들썩했다.
“아니, 동생이 이서준 배우도 못 알아보냐고 막……!”
“저도 누나가…… 휴가 내내 이 병장님 이야기만 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저랑 다른 분대라고 했는데도 계속 물어보시더라고요.”
서준의 입대가 밝혀진 후, 백호 부대 장병들도 엄청 시달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들 사인과 사진을 받으면 헤헤헤 웃어댔다.
“이걸로 컴퓨터……!”
“오. 컴퓨터 받기로 했냐?”
“어! 엑!”
누나에게서 최신형 컴퓨터를 받기로 한 5분대 분대원이 이서준 배우의 사인이 있는 사진을 들고 기뻐하다 조용히 들려오는 동기의 말에 기겁했다. 동기가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이 병장님! 얘가 병장님 싸인……!”
“으아아악!!”
으하하하.
여전히 분위기 좋은 백호 부대였다.
“……저……원래 이렇습니까?”
5주 사이 들어온 (배치된 곳이 백호 부대라고 들었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이등병들만 각 잡고 앉아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뭐, 그렇지. 너희도 이 병장님 보고 싶으면 가 봐.”
“아닙니다!”
5주간의 말년휴가를 보내고 온 터라,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서준 배우가 보고 싶긴 한데 저렇게 병장, 상병들이 가득한 곳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 * *
금세 하루가 지나고, 이제 전역도 이틀 남아 할 일도 없는 서준에게 장현준이 상담을 요청했다. 마침 장현준에게 선물을 주며 설명하려고 했던 서준은 기꺼이 승낙했다.
이서준 병장이 관심병사 케어 때마다 사용하는 병영 내 사무실.
장현준과 서준이 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가만히 있는 장현준에 서준은 ‘이제 이 사무실도 올 일이 없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잠시 후, 조용하던 장현준이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저한테 병장님처럼 능력이 있었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딱히 대답을 원하기보다는 그저 제 마음을 토해내고 싶은 듯한 목소리였다. 상담사, 이서준 병장이 장현준 일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아이. 그게 저였습니다.”
보통이라면 자라면서 귀신이 보이지 않는 척하며 어찌어찌 숨길 수 있었겠지만, 서준이 일전에 이야기했든 장현준은 꼬이는 체질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보이지 않는 척해도 장현준의 주변에는 항상 잡귀가 몰려들었고 기이한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런 모습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졌을 거다.
더욱이 과학의 발전이 눈부시며 기이한 존재들은 옛이야기나 미신으로 취급받는 현대에서는 말이다.
장현준의 부모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는 아들을, 자라면 자랄수록 아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납득할 수가 없었다.
‘쟤랑 도저히 못 살겠어요……!’
결국, 장현준을 거부했다.
조금 낡은 시골집.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던 어린 장현준은 자신의 양옆에 서서 두 손을 잡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온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 할머니랑 같이 살자. 아가.’
‘할아버지가 맛난 거 사 주마.’
따뜻하다.
주변에서 히히히 키키키 웃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양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걸 뒤덮는 듯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어린 장현준은 그 주름지고 거친 조부모의 손을 꽉 잡고 놓치지 않았다.
많은 나날을 겪었던 노인들은 기이한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장현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장현준도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
만화나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듯 아예 무시해보기도 했고, 귀신들의 한을 풀어주려고 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먹힌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제가 볼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 큰일 날 뻔했죠. 동동이가 없었으면…….”
“동동이?”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입니다. 제가 중학교 졸업할 때쯤에 하늘로 떠났지만요.”
‘동동이가 현준이 널 지켜줄 거다.’
할아버지가 짜리몽땅한 검은색 진돗개 새끼를 장현준에게 건넸다. 용한 스님이 절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 가장 기운이 좋은 녀석이라고 덧붙였다.
까만 진돗개, 동동이.
장현준의 첫 친구이자, 형제였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 중에 민감한 녀석들이 있긴 하지.”
“네. 동동이가 없었으면 여러 번 큰일 났을 겁니다.”
동동이와 함께 지내면서 장현준의 마음은 조금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 덕분에, 잡귀들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눈을 빛내며 신기해하는 기 센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동동이가 죽고 나서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견딜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있었으니까요.”
장현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이제부터는 모르겠습니다. 친구들도 각자의 삶이 있는 데다가 학교에서도 그렇게 잡귀가 꼬여서 난리였는데, 사회 생활하다가 큰 사고가 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꿈이니 미래이니.
장현준은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병장님이 부럽습니다.”
자신에게도 누군가 능력을 다루는 법을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부모가 자신을 버릴 일도 없었고, 조부모가 힘들게 자신을 키울 일도 없었을 거다. 평범하게 자라 이런저런 미래를 꿈꿨을 터였다.
장현준이 힘없이 웃었다.
“그냥…… 병장님 덕분에 편하게 지냈던 몇 달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투정 좀 부려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나도 그거 때문에 너 부르려고 했어.”
“네?”
서준이 웃으며 작은 종이봉투를 장현준에게 건넸다. 장현준이 의아해하며 받아 들었다.
“이건……?”
“열어봐.”
서준의 말에 장현준이 종이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팔찌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작고 동글동글한 검은색의 나무 구슬들이 원을 그리고 이어져 있는, 마치 묵주 같은 팔찌였다. 그중 두 개의 구슬은 나무가 아니라 다른 재질로 보였다. 색도 초록색과 검푸른색으로 다른 검은 나무 구슬들과는 달랐다.
웬 팔찌?
눈을 끔벅이는 장현준에게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부적이야.”
“……!”
부적.
장현준의 눈이 커졌다. 다시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검푸른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이 유달리 영롱했다.
“내가 만드는 부적은 다른 부적하고 다르게 에너지가 필요하거든?”
“에너지……말입니까?”
“그래, 건전지처럼.”
기운이니 뭐니, 신이한 설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비유가 너무 현대적이며 과학적이었다. 그래도 이해하기는 쉬웠다.
“이 부적에 에너지를 주입할 수 있는 건 나뿐인데, 에너지가 떨어질 때마다 나한테 올 수는 없잖아.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고.”
“네.”
“그래서 두 가지 기능을 넣었어.”
먼저 첫 번째.
서준이 검푸른색의 구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잡귀들의 힘을 흡수해서 부적에 필요한 에너지로 바꾸는 부적이야.”
“……그게 가능합니까?”
장현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엄청 센 녀석은 안되고 부적이 감당할 수 있는 작은 놈들만. 현준이 네가 저번에 휴가 나갔다 복귀했을 때, 달라붙어 왔던 잡귀들 정도면 무난히 흡수할 거야.”
[(선/제작)루룸파꽃의 광합성-중하급]
루룸파의 잎이 마기를 흡수합니다.
흡수한 마기가 빛과 만나 선기로 바뀝니다.
루룸파꽃은 검푸른 색의 꽃이 피어나는 식물로, 묘지에 묻은 시체가 마기를 만나 자연적으로 언데드들이 생겨나는 세계에 있던 식물이다.
마기를 선기로 바꾸는 능력이 있어, 공동묘지의 마기를 없애고 언데드가 생겨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무덤이 생기면 심는 식물이기도 했다.
능력의 뒷이야기는 말하지 않은 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
다음은 초록색 구슬.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정화……라고 할까. 너한테 직접 공격할 때나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싶을 때 사용하면 근처 잡귀들은 다 없어질 거야. 검푸른 색 구슬에서 바뀐 에너지가 여기로 흘러 들어가는 거지.”
[(선/제작) 캐반트 사제의 정화구슬- 중상급]
캐반트 종족 사제의 정화 능력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작동한 구슬은 일정 범위의 악한 기운들을 소멸시킵니다.
“이건 액티브라서 네가 생각하면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초록색 구슬 만져봐 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장현준이 서준의 말대로 초록색 구슬에 검지손가락을 댔다.
[■■■■■■■■■■]
머릿속에 어떤 것이 떠올랐다.
마치 게임 속에서 남은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만 같은…….
장현준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공포물이었던 인생의 장르가 갑자기 바뀐 듯싶었다.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현준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다 채워놨으니까 줄어들면 잡귀들을 흡수해서 채워 넣으면 돼. 작동법은 ‘정화’라는 단어를 강하게 생각하거나 초록색 구슬을 만지면 되고. 쉽지?”
서준은 친절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다른 구슬들은 그냥 장식품이니까 여기 색이 들어간 구슬 두 개만 잘 들고 있으면 돼. 팔찌가 불편하면 구슬만 따로 분리해서 다른 액세서리로 만들어도 좋고. 강도도 꽤 강하니까 부서질 일은 거의 없을 거야. 아,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른 구슬들처럼 검은색으로 보이니까 조심하고.”
……아…….
장현준이 울컥한 얼굴로 검은색 구슬들이 줄로 이어진 묵주를 매만졌다. 검은 구슬들 사이 검푸른 색 구슬과 초록색 구슬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이 병장님의 설명대로만 된다면.
장현준도 이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잡귀들을 검푸른 구슬로 흡수하고 멀리 떨어져 사고를 일으키는 잡귀들을 초록 구슬로 정화하고.
장현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조용한 평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어렸을 적.
특이한 힘을 가진 주인공을 가르치는 스승이 나오는 만화를 보며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자신에게도 그런 특별한 존재가 나타나 저와 조부모님께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고 말하며 능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는 꿈 같은 상상을.
‘이제 귀신 안 보여요! 할머니! 할아버지!’ 하고 외치는 상상을.
……이제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었다.
“정, 정말 고맙습니다. 병장님……”
“너도 그동안 고생 많았어.”
어느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히히 웃고 있던 장현준이 훌쩍 코를 들이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그거야 네가 내 후임이니까.”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작게는 가족, 친구들부터 크게는 전 세계의 새싹들까지. 자신과 연이 닿은 존재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서준이 장현준의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현준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이 병장님의 능력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동이가 있어서 말이야.”
“……예?”
……동동이?
눈을 동그랗게 뜬 장현준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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