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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11화 (61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11화

쿨럭거리는 최태우에게 안다호가 물잔을 내밀었다.

최태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잔을 잡아 한 번에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들어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제, 제, 제가요?”

……아닌가.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에 최태우 자신이 놀라고 말았다.

“네. 최 매니저님이요.”

안다호가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요동치던 최태우의 눈동자가 뱅그르르 돌아, 웃고 있는 서준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안다호 이사에게로 향했다. 손에 쥔 물잔이 안전띠라도 된 듯 식은땀 나는 두 손으로 꽉 잡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 이서준 배우님의 매니저는 안 이사님이시지 않습니까……?

안다호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직책이 직책이다 보니, 지금까지처럼 서준이를 잘 케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서준이가 군대에 있다 보니 별문제 없었지만, 전역 후에는 저 혼자 맡기는 힘들죠. 몇 달씩 걸리는 해외 촬영도 있을 테고 국내 촬영이라고 해도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할 테니까요.”

아.

최태우는 조금 전에 들었던 [오버 더 레인보우2]의 소식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역 전에도 이런 스케줄이 생기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작품들이 쏟아질 터.

지금도 바쁘게 일하며 배우팀을 컨트롤하고 있는 안다호 이사가 이전처럼 이서준 배우를 알뜰살뜰 돌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터였다.

그래. 안다호 이사님이 이서준 배우의 새 매니저를 찾는 것은 이해하겠다.

‘……근데 그게 왜 나지?’

최태우가 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저…… 제가 경력이 있긴 해도 그건 아이돌이었고…….”

그것도 무명의.

최태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2년 동안 담당했던 배우도 없었습니다만…….”

“아, 그건 일부러 그런 겁니다.”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일부러……요?”

“일종의 테스트랄까…… 경험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네요.”

안다호가 웃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처음 매니저 일을 설명할 때, 저희 쪽에서 공부하면 좋겠다고 했던 분야들, 기억하십니까?”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는 눈을 끔벅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 * *

그건 재작년 9월.

코코아엔터가 신사옥으로 완전히 이전하고 나서 처음 가졌던 신입매니저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무명 화가]와 [사랑방 화가]의 표절 문제로 바쁘긴 하지만, 정해져 있는 일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현 1팀 부팀장이 웃으며 새로 입사한 매니저들에게 대략적인 매니저 일들을 설명해 주고 배우 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팀 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다들 자료실을 정리하면서 각 배우별로 어울리는 작품들을 고르셨던 것 기억하시죠?”

설마 잊을 리가.

그걸로 지금 배우팀이 얼마나 떠들썩한데.

이서준 배우에게 어울리는 대본을 찾다가 표절 대본을 발견했던 최태우를 한번 바라본 매니저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배우분들에게 그 답변을 받아왔습니다. 함께 일할 매니저와 배우라면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게 좋아질 테니까요.”

부팀장이 나누어준 종이를 보며 매니저들은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배우들이 누군지를 살펴보았다.

작품 보는 눈이 좋은 매니저는 많은 배우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는 최태우도 종이에 적힌 ‘꼭 이런 배역을 해보고 싶다.’라고 적힌 제법 많은 배우들의 평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신입인 매니저들은 겨우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거나 아예 이름이 없기도 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신입들에 부팀장이 말했다.

“아쉬우신 분들은 각 팀 팀장을 통해서 다시 작품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다들 고개를 들어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추천 배역은 몇 번이고 다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자료를 토대로 여러 가지를 지켜본 다음, 배우 배정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는 직업이라 배우랑 매니저가 잘 맞지 않으면 배우에게도 매니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보통 소속사는 성격이 맞든 안 맞든 비어 있는 자리에 신입 매니저를 보낸다. 코코아엔터 가수팀도 그런 식으로 배정했다.

물론, 코코아엔터 배우팀도 인원이 많아지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지만, 여유가 있을 때까지는 개개인의 성향에 맞춰 배우를 배정할 예정이었다.

“정식 배정까지는 이 배우 저 배우 따라다닐 일이 많을 테니, 어떤 배우를 가장 잘 서포트할 수 있을까, 잘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들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온전히 선택권을 준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매니저의 의견도 고려해 준다니,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거.”

부팀장이 다른 종이들을 나누어주었다.

“매니저들이 배우들을 케어할 때, 공부했으면 하는 분야들을 모아봤습니다. 회사에서 학원비 지원도 해드려요.”

부팀장의 말에 매니저들과 최태우가 종이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응급조치부터 운동, 테이핑, 마사지, 호신술, 영양학, 심리학까지 다양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영어 같은 외국어도 있었다.

이걸 다……?

매니저들의 경악에 부팀장이 웃으며 부연설명을 했다.

“여러분들이 배우들을 케어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분야가 도움이 될지 모를 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 만든 가이드북 같은 겁니다. 참고만 하세요.”

후우-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어느새 친해진 매니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짜…… 이거 다 배우라고 할까 봐 얼마나 식겁했는지 몰라.”

“그래도 이거 테이핑은 좀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촬영하다가 발목 손목 삐끗하는 경우도 있구요.”

“글쎄…… 의료팀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여기 영어가 있는 걸 보면 다른 배우들도 할리우드에 도전할 것 같지 않아?”

“그럴지도.”

“심리학, 영양학은 왜 있는 거죠?”

“배우 멘탈 관리 아닐까요? 영양학은 다이어트나 체격 만들 때 필요할 수도 있고…… 배워두면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십 대로 이루어진 아이돌그룹을 케어하며 심리와 영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던 최태우의 말에 매니저의 반은 ‘진짜 배우려고요?’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반은 ‘전부는 힘들지만 몇 개 정도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예. 기억합니다.”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가이드북을 만든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고 배우신 분들이 서준이의 새 매니저 후보였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 배우들에게 더 신경을 쓸 것 같으니까요.”

그 후보 중 하나인 최태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다른 분들이 덜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눈에 보이는 증거랄까…… 저로서는 그런 게 있어야 서준이를 맡길 때 더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니, 눈에 보이는 것들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보들을 이곳저곳에 보내 경험하게 만들었죠.”

무명 배우의 오디션부터 신인 배우의 조연 촬영, 중견급 배우의 주연 촬영, 영화, 드라마, CF 등등. 가끔 팀장을 대동해 중요한 자리에 보내기도 하고 작가와 감독을 만나보게 하기도 하고.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촬영장의 분위기나 상대 배우들의 태도 등을 보고 받기도 하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제외하다 보니, 최 매니저님이 남으셨습니다.”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에 최태우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목록 중에 가장 많은 걸 배우기도 했고, 촬영 때도 잘 활용하셨더라고요.”

안다호는 최태우에 대한 보고서를 떠올렸다.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배우들의 연기 연습도 돕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틈틈이 식사나 간식을 꼭 챙기고, 엑스트라가 다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응급조치를 했다고 했다. 게다가 작품 보는 눈도 좋았고 촬영장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빨랐다.

‘총괄이사로서 이러면 안 되지만…….’

다른 배우에게 주기엔 아까운 매니저였다.

안다호가 작게 웃고는 말했다.

“원래는 서준이가 전역하고 나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오늘 보니 좀 초조하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그랬었다.

다른 매니저들은 다 담당 배우가 있는데 자신만 없어서 쉬는 날 회사에 나올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이서준 배우의 담당이 될 줄이야.

‘……이거 꿈인가?’

오늘 새벽, 배승원 배우를 데려다주고 집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꿈 같은 상황이 자신에게 생길 리가 없었다.

거의 기절할 것만 같은 최태우의 시야에 서준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저, 그런데…….”

서준과 안다호가 최태우를 바라보았다.

“이서준 배우님은…… 괜찮으십니까?”

최태우는 정말 좋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게 단 하루일지라도 이서준 배우를 돕고 싶었다.

“제가 매니저가 돼도…….”

그런데 서준은?

이서준 배우는 어떨까?

최태우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서준이 안다호에게 최태우가 매니저가 될 거라는 걸 들은 건 며칠 전이었다.

솔직히 누가 돼도 상관은 없었다.

입사한 매니저들(작년에 새로 들어온 매니저들도 있다)을 다 파악하기엔 시간도 짧았고, 자신보다 더 철저히 따져서 선택할 다호 형을 믿고 있기도 해서였다.

“최태우 매니저님이요?”

“그래.”

상관은 없지만…….

정말로 결정되어 버린 새 매니저에 마음이 어수선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보고서 끝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서준에 안다호가 미소를 지었다. 안다호도 서준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영어 실력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널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다호 형만큼은 아닐 거예요.”

“그건 그렇지.”

안다호의 수긍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안다호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가끔 연습실이랑 촬영장에 들를 거니까, 너무 지겨워하진 말고.”

“그럴 리가요.”

든 자린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오히려 다호 형이 없어서 어색할지도 모르는데, 지겨워할 리가.

서준이 다시금 웃었다.

그래. 그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다호 형이 아예 자신의 일에서 손을 떼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제야 서준은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최 매니저님이라니…… 신기하네요.”

“그러게. 인연은 인연인가 봐.”

표절 작품을 발견해 준 사람을 이렇게 다시 매니저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그것도 점수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팔랑팔랑.

보고서가 넘어갔다.

“좋은 분이네요. 작품도 잘 아시는 것 같고.”

“그렇긴 하지. 그래도 지내보다가 뭔가 안 맞는 것 같으면 나한테 말해. 다른 매니저 배정해 줄 테니까.”

남 주긴 아깝지만, 서준과 맞지 않는다면 본말전도였다.

냉정한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바꿀 수도 있어요?”

“당연하지. 내가 보기엔 좋은 매니저인 것 같아도 실제로 지내보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네 판단이 제일 중요해.”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한 매니저는 여전히 서준의 의견을 최우선시하고 있었다.

* * *

‘근데 최 매니저님도 내 의견 물어보시네.’

바꾸니 마니, 냉정하게 말했던 안다호도, 서준의 의견을 묻는 이번 질문이 제법 마음에 든 눈치였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저도 좋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

이서준 배우가 나를 형이라고 불러? 말도 편하게 하고?

기쁘긴 하지만 그래도 되나, 싶어 안다호 이사를 바라봤지만 이사님은 웃고만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서준에 최태우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예. 괜찮…….”

괜찮아?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나 싶어 말끝을 흐리는 최태우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잘 지내봐요. 태우 형.”

“그래……요…….”

음.

어색한 말투의 태우 형을 보니 서로 편하게 말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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