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09화
코코아엔터 1층 로비.
보통 때보다 조금 늦게 출근한 최태우가 피곤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최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지금 출근하세요?”
“아, 예. 촬영이 늦게 끝나서요.”
1층 카페에서 사 온 듯 양손에 커피 캐리어를 든 가수팀 직원이 최태우에게 인사했다. 자주 본 얼굴에 최태우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애들 데뷔조 들어갔다는 거 들으셨어요?”
“예. 들었습니다.”
“애들이 열심히 하더라구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옛날부터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애들입니다.”
이전에는 배우가 서준 밖에 없고 배우팀의 직원도 적어, 가수팀과 배우팀의 직원들이 제법 알고 지냈다. 하지만 재작년,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새로운 직원들이 제법 들어오면서 배우팀과 가수팀은 알고 지내기는커녕, 얼굴만 간신히 익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수팀에 제법 알려진 얼굴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여기 서 있는 최태우 매니저였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화]의 표절을 밝혀낸 사람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재작년 신사옥 이전과 함께 열렸던 오디션에서 합격한 연습생 중 아이돌 출신인 4명의 전前 매니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최태우가 아직도 담당한 배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입도 아닌데……’
재작년 9월에 입사한 후 재직한 지 벌써 2년이 가까워졌다.
경력이 있는 매니저들은 전부 담당 배우가 있고, 일을 배운 신입 매니저들도 하나둘 배우를 배정받는 상황에서, 경력 있는(아이돌이지만) 최태우는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은 정말 열심히, 잘하시는데…….’
가수팀 직원이 얼른 안쓰러운 표정을 지우고 최태우가 기뻐할 만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실력도 계속 늘고 있어요. 이번 월말 평가 점수도 괜찮았고요.”
“다행이네요.”
가수팀 직원의 말에 최태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오디션 때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오디션에 합격한 후 아이들이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며 가며(주로 식당) 보게 되니, 인맥으로 들어온 게 아닌데도 괜히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다른 연습생들이 보기에는, 함께 일한 전 매니저가 소속사 직원이라는 대단한 자리에 있는 거니 말이다.
‘배우팀이긴 하지만……’
서은찬 사장과 김상진 이사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네 명의 연습생과 최태우가 같은 일했던 사실을 알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알리기로 했다. 일단 최태우의 소속이 배우팀이기도 하고, 연습생들의 데뷔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회사는 그렇게 설렁설렁 데뷔시키는 곳이 아니다.’
김상진 이사는 그 사실을 직접 연습생들에게 전했다.
무려, 브라운블랙, 화이트, 레드크라운, 블루문을 성공시킨 곳.
올해 초 데뷔한 걸그룹 앰버마저 음원 사이트 1위를 달성시키고 신인답지 않은 인기를 끌게 만든 곳.
단 한 번의 실패도 없던 곳.
그곳이 바로 여기, 코코아엔터였다.
‘그러니 다음 그룹도 성공해야지. 제일 실력 좋은 녀석들만 뽑을 거다. 너희가 부족하면 예정된 다섯 명에서 인원이 줄 수도 있고, 새로운 연습생을 영입할 수도 있어.’
‘……저희가 다 잘하면 어떻게 됩니까?’
김상진 이사의 말에 침을 꼴깍 삼키던 연습생들이 용사를 바라보듯, 손을 번쩍 들고 묻는 전 아이돌그룹의 리더였던 연습생을 바라보았다.
김상진 이사가 씨익 웃었다.
‘그럼 데뷔조 자리가 늘어나겠지.’
연습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고 진짜 일곱 명으로 늘어날 줄이야……”
일이 늘어났다며 가수팀 직원이 앓는 소리를 뱉었다. 하지만 표정은 밝았다. 아무래도 직접 연습생들을 만나다 보니 정이 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4명은 다 뽑혔잖아요. 재능만 보면 왜 지금까지 묻혀 있나 싶어요. 전 소속사에서는 뭘 했는지…….”
“하하. 그렇죠.”
“아, 죄송합니다!”
전 매니저였던 최태우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직원이 얼른 사과했다. 최태우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소속사의 행태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인걸요.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고, 오히려 잘못 배워서 나쁜 버릇도 있었다고 하던데……선생님들 덕분에 고쳤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애들이 열심히 한 걸요. 버릇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위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1층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일곱 명 다 데뷔했으면 좋겠네요. 저희 회사에선 없었지만, 가끔 데뷔 직전에 엎어지거나 멤버가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막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가수팀 직원과 최태우의 눈이 커졌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안다호 이사였다.
……아니, 왜 여기 안다호 이사님이?!
두 직원의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안, 안녕하세요! 안 이사님! 아, 저, 쿠키를! 사는 걸! 깜빡했네요! 먼저 올라가세요!!”
하고 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을 벗어나는 가수팀 직원을 부럽게 바라보던 최태우가 ‘안 타십니까? 최 매니저님?’ 하고 부르는 안다호 이사의 목소리에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안,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예. 최 매니저님도……”
무언가 떠오른 듯 안다호가 말을 멈추었다.
잠깐의 침묵에 최태우는 슬며시 안다호 이사를 살폈다.
이사님의 손에 바이올린이라니. 저런 걸 필요로 하고, 이사님이 직접 들게 만들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서준 배우가 왔구나!
“최 매니저님.”
“아. 예!”
얼굴이나 볼 수 있을까, 조금 들뜨려던 최태우가 안다호의 부름에 얼른 대답했다.
“오늘 쉬는 날 아니셨던가요. 배승원 배우, 새벽까지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아, 예! 그게……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회사에?
안다호가 최태우의 안색을 살폈다. 피곤이 그득하다.
일에 열심히며 열정적인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쉴 때는 쉬어 줘야 했다.
“잘 쉬는 것도 일입니다. 최 매니저님. 운전을 맡았을 때는 더더욱 말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최태우가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배우를 배정받지 못해서 요즘 조금…… 아니, 꽤 초조한 상태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졸음운전이라도 했다가는 자신만이 아니라 배우, 그리고 상대방까지도 말려들 수 있었다.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잠시 생각하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다음 달에 말해주려고 했는데, 오늘 말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다음부터는 제대로 쉬시고…… 오늘은 잠시 따라오시죠.”
“예? 예. 알겠습니다.”
안다호의 말에 최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살폈다. 5층. 가수팀 녹음실이 있는 층이었다.
“배승원 배우 촬영은 어땠습니까?”
“아, 몇 번 NG가 나긴 했지만 잘 끝났습니다. 휴식도 충분히 취하면서 촬영해서 배승원 배우 컨디션도 괜찮았고, 이후 스케줄도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과 녹음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던 최태우가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3팀 예상과 달리, 감독님과 작가님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두 분 다 억양이 강하셔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 자세히 들어보면 작품에 도움이 되는 의견 충돌이었습니다.”
“배우들 의견도 잘 받아들이시던가요?”
“예. 애드리브도 어느 정도 허용하시던……”
최태우의 보고는 3 녹음실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 * *
[3 녹음실]
“안녕하세요!”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블루문 멤버들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오는 안다호를 보며 인사했다. 서준이 있는 곳엔 항상 있는 안다호 이사님이라, 예상하고 있어서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조용할 줄 알았던 녹음실이 어수선하자, 잠시 놀랐던 안다호가 얼굴들을 확인하고는 웃고 말았다.
“이제 곧 컴백이던가?”
“네. 쉬는 시간이라 구경하러 왔습니다. 괜찮을까요?”
“서준이가 괜찮다면야, 괜찮지.”
고개를 끄덕인 안다호는 녹음을 도와줄 엔지니어([화]의 내레이션 녹음을 도와주었다.)와도 인사를 나눈 후, 서준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여기 바이올린.”
“고마워요. 다호 형.”
바이올린을 받아들던 서준이 안다호의 뒤에 서 있던 최태우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어? 최 매니저님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씩씩한 인사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한바탕 인사가 끝나고, 바이올린을 든 서준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의 내레이션 녹음으로 황도윤을 도왔을 때 들어왔었던 녹음실이라서 그런가, 유리 벽 너머에 서 있는 블루문 멤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제법 익숙한 느낌이었다.
“바이올린 좀 살펴볼게요.”
-그래.
블루문 멤버들과 안다호, 최태우가 자리를 잡고 앉는 사이, 서준은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괜찮네. 음도 맞고.’
회사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바이올린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질도 좋았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역시 우리 회사, 랄까.’
서준이 작게 웃으며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그리고 손을 풀기 위해 가볍게 연주를 시작했다. 바이올린의 현을 짚는 왼손 손가락들이 춤을 추듯 빠르게 움직였고, 활을 잡은 오른손이 노를 젓듯 크게 움직였다.
‘하나, 둘-’
간을 보듯 천천히 움직이던 선율이 이윽고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 연주하는 바이올린인데도 어느새 몇 년을 다룬 것처럼 길을 들인 듯, 바이올린의 선율에선 서준의 색이 듬뿍 묻어나오고 있었다.
--!
화려한 클라이맥스로 연습을 끝낸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연습 끝났어요. 녹음 시작해도 될 것 같아요.”
* * *
심장을 꽉 조이는 강렬한 선율부터 어깨의 힘이 저절로 풀어지는 느릿하고 안정적인 선율까지. 극과 극의 오가는 연주에 감탄하고 있던 블루문 멤버들이 서준의 말에 한탄 같은 감상을 토해냈다.
“연습…… 저게 연습이래요. 형들.”
“하.하.하.”
“……나 바이올린 배울까 했는데 관둬야겠어.”
“근데 무슨 곡이지? 듣기 좋던데.”
“그러게요. 다음 곡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정은성이 안다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이크를 통해 서준에게 물었다.
“조금 전 그거 무슨 곡이야?”
-응?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정은성이 버튼을 누르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다음 곡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알아두게.”
-이거 그냥 막 연주한 건데?
……?
침묵이 내려앉은 녹음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말하자면 즉흥곡?
엔지니어와 최태우가 입을 쩌억 벌리고, 블루문 멤버들이 하아, 탄식했다. 안다호만 작게 웃고 있었다.
“……저 재능덩어리.”
“저렇게 살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게요.”
“누나. 녹음했어요?”
백이현의 물음에 엔지니어가 고개를 저었다.
“못했지. 연습이라고 하는 바람에.”
정은성이 서준에게 물었다.
“그 즉흥곡 나중에 연주해 줄 수 있어?”
-그래.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 산뜻한 서준의 대답에 김시훈이 이마를 짚었다.
“……미치겠다. 즉흥곡이라면서 다 기억하나 봐.”
“서준이 기억력이야 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보다 오히려 우리가 기억 못할 것 같지 않아?”
“그러게요. 서준이가 다른 곡을 들려줘도 ‘이거였다!’ 할 것 같은데…….”
박이든의 말에 블루문 멤버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럴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녹음해도 될까?”
“아! 네!”
잠시 뒤로 물러나 있던 안다호의 말에 정은성이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작게 웃은 안다호가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서준아. 이제 녹음 시작할게.”
-네.
바이올린에 턱을 괸 서준이 후우, 숨을 내쉬고 시선을 들었다. 녹음 준비를 끝낸 엔지니어가 그 모습을 보고 신호를 보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공간.
서준의 왼손이 가볍게 바이올린의 현을 짚었고 오른손의 활이 느긋하게 움직였다. 부드러운 선율을 시작으로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니.
서준이 아니었다.
훌륭하게 자란,
그레이 바이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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