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08화
“아직 플랫폼은 출시 안 됐죠?”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기획서를 넘기며 대답했다.
“올해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다는데 아직 자세한 날짜는 안 나왔어.”
“인터넷에도 언제 나오냐고 성화던데…….”
[마린사, OTT 플랫폼 출시 예정]이라는 기사에 달린 ‘제발 내 돈 좀 가져가!’ 하고 돈을 흔드는 짤들이 떠오른 서준이 작게 웃었다.
“다른 플랫폼 작품들도 내려오고 있으니까 더 그렇겠지.”
안다호의 말대로, [플러스+]와 같은 다른 OTT 플랫폼에서 계약이 끝난 마린사 작품들이 하나둘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더더욱 난리였다.
-ㅅㅂ 쉐도우맨 어디 갔어?
-레드본! 레드본! 레드본 내놓으라고……!
-오버 더 레인보우……ㅠㅠㅠ
-근데 ‘우리는 지금/바다에 있다’는 왜 없어진 거야? 그거 TV다큐잖아?
=그거 만든 방송국이 마린 자회사라서.
=ㅅㅂ. 그냥 다 마린사 건가 보네.
=22 내가 보던 거 다 마린사 건가 봄. 다 사라졌어ㅠㅠ
-생존자들(베어라운드 작품)만 살아남은 듯.
=ㅋㅋㅋㅠㅠㅠ
계약 종료된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며 ‘이게 마린사 작품이었어?!’ 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준이 [오버 더 레인보우2]의 기획서 속에서 ‘당사 OTT 플랫폼에서 출시할 예정’이라고 적힌 부분을 읽으며 말했다.
“이러다가 오버 더 레인보우2 촬영 끝나고 같이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서준을 찾아왔던 마린사 직원들을 떠올려보면 올해 상반기에 바로 출시할 것처럼 보였는데, 기술적 문제인지 아니면 회사 내부적 문제인지 출시가 늦어지고 있었다.
‘뭐, 오버 더 레인보우2하고 같이 나오면 우리야 좋지.’
플랫폼 출시와 함께 나오는 오리지날 작품은 아무래도 플랫폼 홍보를 위해서도 전방위적으로 홍보를 할 테니 말이다. 전역 후 서준의 첫 작품으로 주목도는 충분할 터였다.
“이름은 정해졌대요?”
OTT 플랫폼이 출시된다는 기사는 봤지만 아직 플랫폼 이름을 보지 못했다.
“유니버스라고 하던데.”
“유니버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다시금 읊조렸다.
Universe 우주, 은하.
영화와 영화를 연결해 [어셈블] 같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영화사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서준은 마린사와 관련된 회사들을 떠올려보았다.
[쉐도우맨]이나 [어셈블]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 배급하는 마린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 배급하는 시즌 스튜디오.
[오버 더 레인보우] 같은 음악 영화나 로맨스 코미디 영화 등을 제작, 배급하는 웨일 스튜디오.
TV다큐멘터리 [지금 우리는/바다에 있다]를 제작했던 ABS방송국.
‘우주’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각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준비가 오래 걸리는 것도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오버 더 레인보우2는 플랫폼 출시랑은 상관없이 일정대로 촬영할 테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다호가 말을 이었다.
“촬영은 예정대로 8월부터 시작할 거고, 뉴욕에서 시작해서 LA까지 이동할 거래. 감독은 1편과 마찬가지로 사라 로트 감독님, 조감독은 에밀리 이스…….”
안다호의 설명을 들으며 서준도 일정을 체크했다.
뉴욕이 위치한 미국 동부부터 LA가 있는 미국 서부까지, 이동 거리가 길었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할 예정이라서 그런지, 세트장보다는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모양이었다.
“마지막 촬영장은 LA음대 브레드홀이야.”
“아. 거기요.”
아주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장소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LA음대 브레드홀은 [오버 더 레인보우]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던 연주홀이었다. 서준이 처음 바이올린을 들고 오른 무대이기도 했다.
“좋네요. 거기가 마지막이라니 1편하고 연관성도 있고요. 이번에도 기념 티켓 같은 기념품 만든대요?”
“글쎄. 플랫폼에 올라갈 작품이라 힘들지 않을까 싶네.”
“아, 그러네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게 아니었지.’
영화관에서 보는 게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보는 거라 기념품을 판매하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1편 기념 티켓 참 좋았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었지.”
서준과 안다호는 그때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안다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작곡은 어떻게 됐어?”
작곡.
이번에 촬영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2]에 [오버 더 레인보우1]의 엔딩크레딧에 들어갔던 서준의 [(꿈 요정, 고블린,)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처럼 자작곡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엔딩크레딧이 아니라 영화 속에 담고 싶습니다.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준이 가능하다면‘ 부탁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작년, 서준의 스케줄이 내년 7월까지 꽉 차 있다는 걸 들은 웨일 스튜디오의 직원 넬슨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는 대답과 함께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였다.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과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만 봐도 준의 작곡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넬슨은 여전히 인기 많은 두 곡을 이야기하며 들뜬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준이, 아니 그레이 바이니가 작곡하는 모습도 촬영하고 직접 연주로도 들려주는 겁니다. 진짜 다큐멘터리 같으면서도 영화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안다호는 그 이야기를 군대에 있는 서준에게 전달해 주었고, 서준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서준의 자작곡 세 곡과 이번 영화에도 기꺼이 함께하기로 한 벤자민 모튼 교수의 곡들이 [오버 더 레인보우2]에 들어가게 되었다.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 곡은 마무리했고 두 곡은 휴가 내에 마무리하려고요. 집에서 녹음해 봤는데 들어볼래요, 다호 형?”
“그래. 그러자.”
서준이 안다호 이사의 사무실에 있는 스피커와 자신의 휴대폰을 연결했다.
음질 좋은 스피커에서 서준이 휴가 나온 첫날, 집에서 연주했던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2]가 흘러나왔다.
대화가 오가던 사무실에 잔잔한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졌다.
제대로 방음이 된 녹음실이 아니라 연습실에서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그런지 울림이 약간 있었지만, 부드럽고 잔잔한 선율에 저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감상하게 된다.
음악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안다호였지만, 바이올린 실력도, 곡도 나무랄 데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도 서준은 놓치지 않았다.
“좋네. 어떤 장면인지 딱 떠오르는 것 같아.”
영화에 삽입되는 음악을 작곡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장면과 잘 어우러지나?’였다. 음악이 주제인 영화라면 더욱 그랬다.
“그렇죠?”
그 점을 놓치지 않은 서준이 안다호의 감상에 환하게 웃었다.
“이 곡은 먼저 웨일 스튜디오에 보낼까?”
다시 한번 더 반복되는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안다호가 말했다.
서준의 군 복무가 밝혀졌던 그 날.
머나먼 미국에서 연락이 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안! 준이 군 복무 중이라는 뉴스가……!’
‘사실입니다. 7월까지 있다던 스케줄도 군대 때문이었습니다.’
‘OMG……!’
얼마나 놀랐는지, 숨넘어가는 게 전화 너머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긴, 촬영을 앞둔 배우가 군대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이라도 놀랄 것 같았다. 게다가 미국과 한국의 군대는 달라서, 미국인인 넬슨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한국인과 크게 다를 터였다.
‘촬, 촬영은 예정대로 되겠죠? 어디 다친 곳은 없고요? 작곡은 괜찮습니까? 시간은 충분합니까? 군대라니…… 세상에……!’
당황하는 넬슨에게 안다호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넬슨은 괜찮은 것 같던데, 다른 팀원들은 좀 걱정하는 듯하더라고. 한 곡이라도 먼저 보내주면 그쪽도 안심하고 촬영 준비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대로 녹음해서 보내는 건 어때요? 가수팀에 바이올린 있죠, 형?”
“웬만한 악기는 다 있지.”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가수팀에 연락했다.
“녹음실 비어 있대.”
“그럼 지금 가요.”
“그러자.”
실행력 하나는 확실한 배우와 매니저였다.
* * *
10층에 있는 안다호 이사 사무실을 나온 서준과 안다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8, 9층은 배우팀이, 7층은 홍보팀 등 사무실이, 6층은 식당이 있었고, 그 아래로 (1층을 빼고) 지하층까지 모두 가수팀이 사용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은 지하에 있다네. 3번 녹음실에 있어. 내가 가지고 올게.”
“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음실이 있는 5층에서 내린 서준은 안다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으로 향하는 것을 잠시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재작년 신사옥으로 이전했을 당시, 블루문 멤버들과 한 번 가수팀 사무실들을 구경했던 이후로는 처음 오는 것 같았다.
방음이 특히 중요한 곳이니만큼 사방이 조용했다.
“어, 이서준!”
“서준아.”
“욥! 군인 아저씨!”
……아주 잠깐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녹음실 문이 열리고 블루문 멤버들이 나타났다. 녹음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준이라는 소리에 블루문 멤버들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서준이 웃으며 멤버들을 반겼다. (군인 아저씨라고 부른 박이든은 옆구리를 꾸욱 눌러주었다.) 서준이 휴가 나올 때마다 블루문의 스케줄 겹쳐서 실제로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녹음하고 있었어요?”
“어. 좀 있으면 컴백이라서. 서준이 넌?”
옆구리 아프다며 낑낑거리는 박이든을 무시한, 리더 최재원이 웃으며 되물었다.
“저도 녹음이요.”
“……헐! 데뷔함?”
박이든이 살아나 소리쳤다.
“서준이가 데뷔하면…… 큰일인데?”
“일단 화제성에서 다른 팀은 다 죽을 것 같지?”
“우리 컴백 날짜는 피해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오버스럽게 웅성웅성대는 블루문 멤버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었다.
“데뷔는 아니고, 바이올린곡 녹음하러 왔어요.”
“오! 바이올린!”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 같이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걷던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다들 왜 따라와?”
“우리 쉬는 시간임.”
“구경하려고.”
서준의 물음에 동갑내기 박이든과 정은성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다른 멤버 형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어깨를 으쓱인 서준이 멤버들과 함께 3 녹음실로 걸음을 옮겼다.
“군대는 어때? 지낼 만해?”
“으. 나도 몇 년 뒤에 가야 하는데……!”
“우리 동반 입대할까요?”
“아니지. 돌아가면서 입대를 해야 그룹에 군백기가 안 생겨.”
블루문 멤버들이 재잘댔다.
간간이 질문에 대답하던 서준은 혼자 다니는 것과 멤버들끼리 다닐 때의 차이가 바로 이 시끄러움의 차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내년에 보이그룹 데뷔한대.”
“그래요?”
이건 처음 듣는 소식이다.
서준의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김시훈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올해 초에 걸그룹 데뷔했잖아. 앰버.”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모집했던 여자 연습생들이 올해 초, ‘앰버’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는 건 서준도 알고 있었다.
“걔들하고 같이 들어온 남자 연습생들이 내년에 데뷔한대.”
“좀 싱숭생숭하긴 한데, 내년이면 우리도 데뷔한 지 5년이니까.”
백이현의 말에 정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 보이그룹이 나올 때도 됐죠.”
“다 순하고 착해서 좋더라고. 근데 또 연습은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하고.”
“우리 회사가 멤버 보는 눈은 좋다니까요!”
“음. 이든아. 그거 자화자찬 아니야?”
“그러게. 돌려서 칭찬하기?”
최재원의 말에 백이현이 웃으며 거들자, 얼굴이 새빨개진 박이든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닌데…… 솔직히 우리 소속사 사람들 중에 사고 치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그건 그래.”
블루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준은 그 남자 연습생들 중에 누가 있는지를 떠올렸다. [화]의 표절을 발견했던 매니저, 최태우가 전 회사에서 담당했던 아이돌 멤버들.
“은성아. 누구누구인지 알아? 데뷔조.”
“그러니까……”
정은성이 이야기해 주는 일곱 명의 연습생들 중 익숙한 이름들을 들으며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아주 다행히도, 네 명 다 데뷔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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