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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07화 (60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07화

배우 이서준이 군 복무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바로 얼마 전.

서준의 지인들 중 몇몇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모르고 있던 사람이 더 많았다.

특히, 입대 바로 직전까지 함께 행동했던 [화]팀.

5주라는 긴 말년휴가를 나온 서준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이기도 했다.

“군대라니!!”

작은 고깃집 하나를 통째로 빌린 [화]팀은 말년이라 조금 자라긴 했지만 민간인의 머리스타일보다는 짧은, 서준의 머리에 크게 탄성을 흘렸다.

그중에는 작년 유학을 갔다가 잠시 귀국한 유서영도 있었고, [화] 개봉 이후 중년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김성식과 정은미도 있었다. 오랜만에 [화]팀 전원이 모인 것이었다.

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게 안.

오랜만에 만나는 팀원들을 보며 서준이 말했다.

“늦게 말해서 죄송해요. 최대한 아는 사람이 적어야 비밀 유지가 될 것 같아서 말이에요.”

“잘했어. 안 숨겼으면 누가 말해도 진작 말했을 거야.”

“그게 얘라고 단언한다. 얼마 전에도 술 마시고…….”

“와아아악!!”

옆에 앉은 친구에게 달려드는 선배의 모습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화]팀은 화기애애했다.

“근데 얼마 전에 알아서 그런가, 아직 이등병 같고 그러네.”

“그러게. 벌써 병장이라니…….”

황도윤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고 황지윤과 김세연이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알았으면 면회 갔을 텐데, 아쉽네.”

“괜찮아요.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짧게 근황을 이야기하는 동안 고기가 다 구워지고, 본격적으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진짜 그 이 상병이 서준이 너야?”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관심병사 케어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고생했다. 야.”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더라구요.”

“하긴. 서준이는 뭐랄까. 잔잔한 카리스마가 있잖아.”

“맞아요. 특히 연기할 때! 주변까지 장악하는 압도감이 있잖아요.”

“……어떻게 상담했는지 궁금해지는데…….”

“악역 같은 캐릭터에 빙의해서 연기했으면 단번에 말 들었을 것 같지 않아요?”

“그치? 막 살인범 캐릭터나…….”

“서준이가 표정 굳히고 총 들이밀면서 ‘……병장님.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지켜보겠습니다.’ 하고 싸늘하게 말하면 그냥 두손 두발 다 들어야죠.”

“말로 했어요. 말로. 그리고 총 가지고 그러면 큰일 나요.”

바로 영창행이다.

서준의 말에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성격 좋은 서준을 알기에 주고받은 농담이었다.

박우진이 소주를 마시며 말했다.

“우린 너 촬영하는 줄 알았어. 미국에서.”

“맞아! 얼마나 비밀 유지가 필요하면 그럴까 싶어서 다들 입 꼭 다물고 있었다니까.”

“근데 설마 군대일 줄이야…….”

“그건 진짜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거예요.”

아직 서준의 입대가 밝혀지기 바로 전날, 귀국했던 유서영이 킥킥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알았을 땐 꿈인 줄 알았다니까.”

“저도요. 그리고 서로 확인 전화 했잖아요.”

서준과 팀원들은 생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영 누나. 프랑스는 어때요?”

“잘 적응했어. 마테오도 많이 도와주고 교수님도 좋으신 분이고. 그러다보니 1년이 순식간에 지나더라. 아, 이번에 마테오 작업을 도와주기로 했어.”

[화] 때와는 반대인 상황에 다들 흥미로운 얼굴로 유서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동양화가 약간 가미된 작업이라서 나도 공부 중이야. 일단은 자료 모으고 번역하고 있어.”

서양화가 전공인 유서영이지만, 이번 작업이 앞으로의 작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 팔 걷고 돕는 중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동양화를 공부해 볼까 싶었다.

유서영 외에도 팀원들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화]의 촬영 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당시 3학년이었던 황도윤은 올해 2월 졸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당시 1, 2학년이었던 연기과 학생들은 새 학년으로 올라가거나 입대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배우 김성식과 정은미도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통에 바쁘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미술과 학생들과 음악과 학생들도 각자 진로를 정하고 졸업을 했거나 졸업 유예를 하거나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어 있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아직도 술은 마시지 못하는 18살 권세아가 말했다.

“전…… 백수예요.”

“……응?”

맥주를 마시던 서준이 손을 멈추었다.

“우리도 백수야.”

“놀고먹기 딱 좋더라…… 가끔 엄마한테 등짝도 맞고…….”

박우진 등 영화과 졸업자들과 무대미술과 선배들의 말에 서준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드리워졌다. 요새 취업난이 심하다고 하더니…… 예체능 계열은 더 어렵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서준 표정에 일부러 심각한 척, 시무룩한 척 표정을 짓고 있던 황지윤과 김세연, 그리고 팀원들이 부들부들 떨다가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핳.

커다란 웃음소리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농담이야. 농담. 진짜 백수는 아니고.”

황지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영화제작사 만들 거야.”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화, 제작사요?”

“응. 이번에 화로 돈 엄청 벌었거든.”

그건 안다.

코코아엔터와 서준에게 들어온 수익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서준이 너도 알다시피 독립영화라서 제작비도 별로 안 들었잖아.”

“근데 전국 상영관에 걸리고 수출까지 했지!”

황지윤의 말에 김세연이 신나게 덧붙였다.

평범한 상업영화라도 흥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화제성과 수익이었는데, 그보다 제작비가 훨씬 적은 독립영화라면 어떨까. 두말할 필요도 없는 어마어마한 대흥행이었다.

그에 [화]팀은 학교에서 받은 지원금의 세 배를 학교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기사까지 났다.

“그냥 두기에는 엄청 큰돈이더라고.”

이대로 안정적으로 투자하면 앞으로의 나날이 평화롭고 좋겠지만, [화]팀 팀원들은 호기로 가득한 20대의 청년들이었다.

황지윤과 팀원들이 활짝 웃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기엔 충분한 금액이지.”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그래서 다 같이 영화제작사를 만들기로 한 거야.”

맞춘 듯 이어 말하는 [화]팀 팀원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영화과 팀원들은 아주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했고, 음악과나 미술과처럼 자신의 진로가 정해진 팀원들은 투자만 하기로 했다.

“세아는 음악과지만 이미 영화음악으로 진로를 정해서, 우리 제작사 음악팀으로 합류하기로 했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세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황지윤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경험을 쌓을 거야. 실패해도 괜찮겠지만 최대한 제작비 정도는 확보할 수 있어야겠지.”

“그렇게 다들 경험이 쌓이면 상업영화를 제작하고!”

“그리고 흥행! 세계 진출!”

“영화제 싹쓸이!!”

“기다려라! 오스카! 칸! 베를린! 베니스!”

와아아아!

미래를 꿈꾸는 [화]팀 팀원들에 서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덩달아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듯했다.

“와아! 진짜 멋진데요!”

“그치?”

영화과 팀원들이 이히히 웃었다.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저도 투자해도 되나요?”

“당연하지!”

서준의 물음에 팀원들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너도 화팀이잖아.”

“빠지면 안 되죠. 이서준 투자자님!”

아하하하.

웃음소리로 가게 안이 가득 찼다.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은 누구 대본으로 만들까 회의 중이야.”

“집에서 읽고 있어서 딱 백수 취급 받기 쉬워. 등짝이 남아나질 않아…… 흑.”

“아, 투자자님도 읽어보실?”

“네. 주시면 읽어볼게요.”

영화과 팀원들이 들뜬 얼굴로 우르르 [화] 단톡방에 자기 작품들을 업로드했다. ‘완성_4_5_6_최종_최최종_진짜 파이널.hwp’이라고 적힌 제목들의 작품들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회사 설립은 8월쯤 할 건데, 올래?”

“파티하자!”

“아, 죄송해요. 8월이면 못 갈 것 같아요. 스케줄이 있어서요.”

“스케줄?”

아쉬워하며 말하는 서준에 팀원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 전역하고 미국에서 영화촬영 하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짜?”

“진짜요.”

“정말로?”

“정말로요.”

“거짓말 아니지?”

“……양치기 소년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네요.”

연기라는 티가 나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서준에 다들 빵 터졌다.

“하긴, 이제 비밀리에 갈 곳도 없네.”

“맞아요. 군대를 두 번 갈 것도 아니고.”

“으으으. 생각만 해도 싫다.”

몸서리치는 군필자들의 뒤로 하고, 권세아가 들뜬 얼굴로 물었다.

“무슨 영화 찍으시는데요? 새 작품이에요? 아니면…….”

“시리즈야.”

허억!

다들 헛숨을 들이켰다. 배우 이서준의 시리즈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었다.

“……뭐, 뭐, 뭔데?”

마린사의 팬인 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준의 입에서 ‘ㅅ’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나오길 바랐다.

“오버 더 레인보우요.”

……헐!

권세아와 음악과 팀원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쉐도우맨 시리즈]는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놀랄 만한 일이었다.

무려 오스카 수상작의 속편이 아닌가!

경악하는 팀원들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아시죠? 이거 비밀이에요.”

읍읍!

팀원들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거 딱 망하기 좋은 회산데?”

서준에게서 [화]팀이 만들 영화제작사의 이야기를 들은 안다호가 냉정하게 평가했다.

“아. 다호 혀엉……!”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다가 제대로 약점을 찔린 듯, 자신을 부르는 서준에 안다호가 킬킬 웃었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지.”

“뭐어, 그렇긴 하죠.”

서준이 소파 위로 늘어졌다.

친분으로 시작했다가 파탄 나는 회사가 한둘이겠는가.

게다가 [화]팀은 무려 서른 명이 넘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면 파벌이 생길 거고 파벌 싸움이 심해지면 결국 망하겠지.”

“……해피엔딩은요?”

“적당한 시기에 각자 독립하는 거?”

안다호가 웃으며 설명했다.

“보통 회사는 대표가 중심이 돼서 아랫사람들이 파벌을 생성해도 괜찮은데, 화팀은 다들 대표 격이잖아.”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대표라고 말하긴 힘들긴 하죠.”

“그럼 중재할 사람도 없을 거고. 있어도 큰 힘을 발휘하긴 힘들겠지.”

그렇게되면 작은 싸움은 큰 싸움으로 변하고 파벌을 만들고 이내 서로 상종도 하지 않는 상황까지 치달을 터였다.

“그전에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제작사에도, 팀원들에게도 좋은 일이야.”

“……그건 그렇겠네요.”

서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호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투자는?”

“할 거예요. 벌써 한다고 이야기도 했고요.”

서준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이런 식의 제작사가 엄청 잘될 수도 있고요. 우리 팀원들이라면 잘할 거라고 믿어요.”

“그래. 그럼.”

안다호가 가볍게 승낙하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좀 더 설득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거예요?”

“이제 곧 전역이겠다, 서준이 너도 슬슬 돈 관리도 스스로 해야지. 물론 전문가한테 맡기는 부분도 있겠지만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을 테니까 말이야. 이번 기회에 투자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

음. 돈 관리라.

지금까지는 미성년자이기도 해서 부모님께 맡겨뒀던 서준이었다.

맛있는 음식 이외에는 물욕도 따로 없었다. 전부 작품 욕심, 연기 욕심으로 향한 것처럼 말이다.

‘카드도 있고, 필요한 건 다 사주시기도 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대로 계속 부모님께 맡겨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때.

“다른 투자도 생각해 보고. 영화나 드라마 쪽은 어때? 네가 투자하면 제작비가 부족해서 못 만드는 좋은 작품들을 만들 수도 있을 텐데.”

그래.

이제는 배워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영화, 드라마, 좋은 작품이란 소리에 홀랑 넘어가 버린 서준이었다.

자신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기쁘다는 듯한 서준의 얼굴에 웃음을 삼킨 안다호가 말을 이었다.

“부모님이랑도 이야기해야 할 텐데, 어려울 것 같으면 내가 말씀드리고.”

“아뇨. 괜찮아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자식이 번 돈이 자신의 돈인 줄 아는 부모도 있다지만, 자신의 부모님은 그럴 분들이 아니셨다. 진짜 한 푼도 안 건드리고 관리하고 계실 거다. 다호 형도 그걸 알아서 이야기를 꺼낸 걸 거고.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에 들어가 볼까?”

“네.”

서준과 안다호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오버 더 레인보우2] 대본과 기획서를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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