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05화
대대장실부터 병영 2층에 있는 4분대 내무반까지.
“이 병장!”
“서준아!”
“야! 너!?”
“병장님!”
중대장이며 소대장이며 다른 분대 장병들이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잡혀 이야기를 나누느라 평소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려 겨우겨우 4분대 내무반에 도착한 서준을 본 분대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이 병장님!”
새끼 새가 어미 새 기다리듯 내무반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다들 상기된 얼굴로 얼른 서준에게 다가갔다. 연예인을 처음 보는 분대원들의 얼굴에 감탄과 탄성이 가득했다.
“우리 이 병장님이 배우셨다니……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대대장실로 가시고 나서 식당이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모릅니다. 병장님.”
서준이 대대장실에 가 있는 동안, 납득한 모양인지 제법 침착……
“이렇게 보니 아우라가!”
“이게 슈퍼스타 아우라입니까!”
하지는 않았다.
꽤 떠들썩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유쾌한 분대원들의 모습에 서준이 가볍게 웃었다.
“어쩐지 그래서 그렇게 연기를 잘하셨군요.”
“놀리는 것도 수준급이다 했습니다.”
분대원들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왜 몰라봤을까. 이런 잘생긴 얼굴이 두 명 있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다.
“근데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내가 배우 이서준이다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내가 누군지 알아? 의 기출변형도 아니고.”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면서 뻔뻔한 표정 연기와 능청스러운 목소리 연기까지 더하는 서준의 모습에 분대원들이 킥킥 웃어댔다. 배우란 걸 알고 보니 몰랐던 게 이상할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하긴. 이 병장님은 말 안 하면 안 했지,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할 성격은 아니시죠.”
“아니, 나도 필요할 때는 말해.”
작품이나 연기와 관련 있을 때는, 오히려 ‘배우 이서준’이라는 이름을 아주 잘 활용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니까.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긴 군대니까 그런 거지.”
여기서는 ‘배우 이서준’이라는 이름이 이용당할 수도 있고, 다른 장병들과 알게 모르게 차별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 차별은 이후 논란이 될지도 몰랐다.
서준이 내뱉지 않은 뒷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분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 병장님이 배우인 걸 알아도, 뭐랄까. 되게 편하네요.”
이렇게 평상시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욱 그랬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서준 배우가 군대에 들어온 게 아니라, 그냥 이 병장님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느낌입니다.”
그동안 함께 지낸 ‘이서준 병장’과의 기억에 ‘배우 이서준’이 연결되다 보니, 보다 가깝게 느껴진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 봐도 연예인이었지 말입니다.”
“왜 몰라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부 ‘배우 이서준’인데, 왜 당시에는 떠올리지 못했을까.
서준의 능력을 모르는 분대원들로서는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아, 그럼 상담도…….”
한 분대원이 입을 열자 시선이 쏠렸다.
“제가 그쪽은 잘 모르지만, 막 연기하다 보면 여러 가지 성격의 인물들을 분석하지 않습니까. 영화나 드라마에는 온갖 성격이 다 나오니까 그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도움이 됐지.”
주로 도움이 된 건 생의 도서관의 능력이었지만, 작품 속 캐릭터를 분석하는 능력도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다.
‘그리고 배우기도 했고.’
현실은 영화보다 더 하다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있더라.
그 다양하고 이해 못 할 성격을 생생하게 겪어보니,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오오! 그렇군요.”
“난 이 병장님 의대생인 줄 알았는데…….”
“저도요. 심리 관련 학과나 그런 쪽인 줄 알았습니다.”
“전 사이비 쪽…….”
한 분대원이 내뱉은 진심 반 농담 반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함께 지내던 장병이 슈퍼스타라는 게 밝혀졌어도 군대의 하루는 계획대로 돌아갔다.
물론 간부, 병사할 것 없이 어수선해서 주의가 필요한, 위험성이 큰 훈련은 뒤로 미루긴 했지만 말이다.
“이럴 때 사고 나면 큰일이지.”
대대장의 말에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배우 이서준, 군 복무 중!]이라고 떴는데, 오후에 [배우 이서준 소속 부대에서 사고?!]라는 기사가 뜨면 난리가 날 거다.
대대장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인터넷 상황이 보였다.
[배우 이서준이 소속된 백호 부대는?]
[백호 부대 출신 유명인은?]
[백호 부대 복무 중인 배우 이서준 사진!]
[배우 이서준, 현 백호 부대 1중대 1소대 4분대 소속!]
어디 한 군데 ‘백호’가 빠진 기사가 없어, 저도 모르게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서준 병장의 전역까지 이제 6주.
그때까지 이렇게 떠들썩할 거라는 걸 생각하면 속이 쓰려왔다.
“……그래도 이제 알려져서 다행이네.”
입대 때부터 알려졌다면(그렇다면 백호 부대에는 오지도 않았겠지만), 밖에서 배우 이서준이 화제가 될 때마다 덩달아 백호 부대도 언급됐을 거다. 그러면 1년 4개월 내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겠지. 좋은 일로든, 안 좋은 일로든.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던 대대장이 고개를 돌려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위쪽은 어때? 아직 관련 기사는 없는 것 같은데…….”
“그쪽도 당황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주시하고 있던 배우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입대했으니까 말입니다.”
배우 이서준의 신검 기사가 났던 게 재작년이었다. 그 이후부터 이서준이 언제 입대 신청을 할까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미 입대를 하고 전역까지 6주 남았단다.
지금 군 관계자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아니, 왜 몰랐지?’
아무리 비밀리에 입대했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입대의 기초 정보가 되는 신검 자료도 있는 데다가 주민등록번호라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번호도 있었다. 조금만 검색해도 이서준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전혀 몰랐다.
사람의 실수든, 기계의 오류든. 그 어느 곳보다 실수가 없어야 하며 보안상 철저해야 하는 곳이 군대였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아랫사람만 탓할 상황은 아니었다.
윗분들도 ‘관심병사를 케어하고 있는’ 신통방통한 ‘이서준 병장’에 대해 듣거나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었다. 그 이서준이 이 이서준이었다니…….
알고 있었는데, 몰랐습니다.
라는 말만큼 정확한 말도 없을 터였다.
하여튼, 이서준의 군 복무에 놀라는 사람들의 옆에서 함께 놀라며 ‘헉! 우리도 몰랐음! 방금 알았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믿어도 문제였다.
일반인도 아니고 슈퍼스타의 입대였다. 그것도 벌써 1년이나 지난. 군 보안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아주 큰 구멍이 있다는 것만 알려질 터였다.
-군피셜 아직 안 뜸??
=군대도 몰랐던 거 아님??ㅋㅋㅋ
=ㅋㅋ그럴 리가 있겠냐ㅋㅋ
=22 손으로 서류 작성하고 잃어버리는 시대도 아니고ㅋㅋ
=33 데이터베이스에 검색만 해도 나오겠다ㅋㅋ
얼떨결에 정답을 말한 댓글을 보고 얼마나 식겁하고 있을지.
괜히 대대장까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몰랐다고 말할 수 없으니 남은 건, ‘뭐어……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비밀로 한 것뿐임. 절대 1년 넘게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님;;;’이라는 뜻을 담아 보기 좋게 둘러대는 것뿐이었다.
때마침, 기사가 떴다.
[국방부, “배우 이서준, 군 복무 중 맞아. 연예인이라도 일반 장병과 똑같은 군인일 뿐이라 언급하지 않았을 뿐.”]
[국방부, “조용히 군 복무 중인 이서준 병장에게 격려 부탁.”]
* * *
점심시간.
식당에 모인 장병들의 시선이 4분대로 모였다. 다들 제법 진정했는지 아침때처럼 경악하며 놀라는 모습은 없었지만, 여전히 4분대 이서준 병장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제 취재나 인터뷰나…… 홍보 영상 같은 거 찍으러 오지 않겠습니까?”
서준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아는 장현준이 너무 일찍 밝힌 게 아니냐는 뜻을 담아 물었다.
“아, 그건 괜찮아.”
서준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나 휴가 모아뒀거든. 그거 쓰면 돼.”
그 말에 가장 오래 서준과 지내고 있는 분대장(상병)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병장님 포상 휴가 꽤 받았었죠. 특급전사도 따시고…… 근데 휴가는 그렇게 자주 안 나가셨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 중요할 때만 나갔지. 꼭 봐야 하는 영화 상영할 때나 생일날에. 그래서 많이 남았어.”
서준의 말에 분대원들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중요할 때의 기준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만.”
“왜 몰랐지.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시는데…….”
“영화는 둘째치고, 이서준 배우가 생일 인증 사진을 올렸을 때, 때마침 병장님이 휴가를 나갔다는 걸 깨달았다면 연관시킬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남자 연예인 사진은 찾아보진 않지.”
“예. 그렇죠.”
“당연한 말씀!”
“……전 봤습니다아…….”
고개를 주억거리는 4분대 대원들의 목소리 사이로, 거의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 식당에서 서준을 제일 먼저 알아본 3분대 최 상병이었다.
“이 병장님 인증 사진 봤는데…… 작품도 엄청 봤는데…… 못 알아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병장님……!”
영화 팬으로서, 마린사 팬으로서 정말 정말 미안했다.
바로 옆에 좋아하는 배우가 있었는데 못 알아보다니. 그것도 1년 가까이.
서준이 슬퍼하는 최 병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 능력 때문이니까.’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너만 못 알아본 거 아닌걸.”
“그래도……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거짓말 아니고, 영화 재미있게 봤습니다…… 진짜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양심이 찔렸다.
계속 사과하는 최 병장에 서준이 조금 당황하다 달래듯 말했다.
“괜찮다니까. 그것보다 사인 안 필요해? 해줄까?”
“감사합니다!”
“……너 바뀌는 거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이서준 병장이 이서준 배우였다는 사실에 아침부터 멍하니 있던 최 상병이 뭘 하나, 찾아왔던 김 병장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언제 슬퍼했냐는 듯 헤헤 웃는 최 병장의 뒷덜미를 끌고 자리를 떠났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저희도 죄송…….”
“아, 괜찮다니까.”
4분대 대원들까지 사과를 시작하려고 하자, 서준이 얼른 말을 끊었다. 웃음기 서린 표정이 이쪽은 반쯤 장난처럼 보였다.
“이 병장님 당황하시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킬킬 웃는 4분대 대원들의 모습에 서준도 웃고 말았다.
평화로운 점심 식사는 계속 이어졌다.
“근데 휴가 얼마나 남으셨길래 괜찮다는 겁니까?”
장현준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오른손을 펼쳤다. 다들 눈을 끔벅였다.
펼쳐진 손가락은 다섯 개.
……5일?
“5주.”
……5주?
……5주우?!
장현준과 분대원들의 눈과 입이 쩌억 벌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분대 대원들도 너무 놀라 먹던 음식이 목에 걸린 듯 쿨럭, 기침을 내뱉었다.
“예에?!”
“오, 오, 오, 오 주요?!”
“아예 안 쓰셨습니까?!”
“아니, 아니…… 5주가 가능한 숫자입니까?”
“다른 부대는 모르겠는데 우리 부대는 되더라고. 그래서 모았지.”
“헐…… 미친…….”
아니, 무슨…… 5분만 참으면 두 배로 주는 마시멜로 테스트도 아니고…… 어떻게 휴가를 참지?
다들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서준 병장을 바라보았다.
전역 날까지 6주가 남았는데 남은 휴가가 5주면, 실질적인 군 복무일은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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