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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03화 (60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03화

마지막으로 보내는 평온한 밤.

서준은 두 손을 모았다가 책을 펼치듯 펼쳤다. 양손 손바닥에 새겨진 문양에서 빛고 함께 평평하고 널찍한 돌판이 나타났다. 서준이 볼펜으로 써 내려갔던 기록석의 파편이었다.

<이서준의 지인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배우 이서준과 군인 이서준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준은 기록석의 파편에 쓰여진 문장에 손을 댔다.

스으윽-

글씨 위를 손으로 쓸 듯 지나가니, 한 글자 한 글자 지워지기 시작했다. 글자가 사라진 기록석의 파편은 흠 하나 없는 평평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서준의 손에 의해 마지막 글자까지 지워졌을 때,

[(선)기록석의 파편에 새겨진 세계의 기록이 삭제됩니다.]

딱.

지금까지 별개의 존재였던 ‘배우 이서준’과 ‘군인 이서준’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 * *

빠-빠-빠빠빠-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난 장병들은 씻고 정리한 후 아침 점호를 마치고 구보까지 끝낸 후 아침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매일 반복되는 군 생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하루하루라서 그런지, 장병들은 오늘도 어제처럼 익숙하고 변함없는 하루를 보낼 것이라 생각하며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역시 맛있어.”

오늘도 특식 같은 아침을 먹으며 감탄하는 장병들. 서준이 속한 4분대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바깥 음식보다 맛있습니다.”

새로 들어온 이등병의 말에 다들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 밥이 바깥 음식보다 맛있다니, 인정하기 싫은 말이면서도 막상 입에 넣어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군대 밥 그렇게 맛없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다른 곳은 맛없어. 여기만 이런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전역하면 밥은 그리워질 것 같지 않냐?”

“…….”

다들 말없이 동의했다.

장현준은 반찬을 집어 먹으며 분대원들과 이 병장님을 살폈다. 아직 아무도 이 병장님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직 때가 아닌가? 싶을 때.

“이 병장님! 이번에 영화 개봉한 거 있잖습니……?”

식사를 마친 옆 분대의 박 상병님(영화를 좋아해 이 병장님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이 이 병장님에게 말을 걸려다가, ‘어?’ 하고 고개를 돌린 이 병장님의 얼굴을 보더니 경악한 얼굴로 식판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와장창창!

커다란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다들 놀라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호 부대는 이서준 병장이 온 이후부터 이 정도로 큰 소리가 날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장병들이 벌떡 일어나 상황을 살피는 사이, 홀로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장현준 일병이 두근두근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었다.

식판을 떨어뜨린 박 상병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말 잘 통하는 이 병장님과 얼마 전 개봉해 흥행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했다.

이서준 사단의 이다진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였는데, 박스오피스 1위에 화제성 1위까지 대단히 흥행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직도 떠들썩한 아카데미 수상작인 [민들레]도 더해서, ‘이서준 사단 배우들에게는 확실히 뭔가 있다.’라는 주제로 열심히 떠들려고 했는데,

‘……왜 이서준이 여기 있지?’

왜 그 사단의 본인이 여기 있는 것인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봐도 닮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잘생긴 외모와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이서준…….”

……배우? 병장님?

뭐라고 불러야 하나, 혼란이 가득한 박 상병의 어깨를 옆 분대 병장이 가볍게 두드렸다. 아무리 프리한 분위기의 백호 부대라지만 상급자의 이름을 막 부르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너 인마. 왜 그래? 미안하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봐.”

“……김, 김 병장님. 이, 이 병장님이……!”

박 상병이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서준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확 접어버릴까, 하던 김 병장의 귀로 박 상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 배우이신 것 같습니다……!”

“……뭐?”

“배우! 배우 이서준 말입니다! 아카데미 수상자! 칸 영화제 수상자! 쉐도우맨의 진 나트라! 생존자들! 흘러가다! 화!”

“? 그게 뭔 미친 소리야.”

김 병장이 인상을 쓰며 이 병장을 바라보았다.

서로 다른 분대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자대 배치돼 오래도록 봐왔던 이 병장이었다. 이야기도 많이 나눴던 사이인데, 이서준 병장이 이서준 배우라면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하물며 이름도 같지 않나.

“아무리 내가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도 이서준은 알아보……엉?”

……어엉?

김 병장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박 상병과 김 병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장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들고 있던 숟가락과 젓가락이 떨어진 것도 모른 채 떨리는 눈으로 하하, 웃고 있는 이서준 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돌았다.

맞는데? 맞는 것 같은데? 아니 근데 진짜로? 이서준 병장님이잖아? 헐. 이름 똑같아. 아니, 그건 알고 있었는데…… 미친! 왜 몰랐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그런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았다.

4분대 대원들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서준이 웃고 말았다.

능력은 어젯밤에 해제했지만,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익숙해져 버려서 어떤 계기가 없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모양이었는데, 박 상병이 그 계기가 되어준 듯했다.

서준의 여유로운 웃음을 마주한 장병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이, 이서준 병장님!”

식당 문이 열리고 서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 대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간부들도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 * *

밝혀진 서준의 정체로 백호 부대가 떠들썩할 무렵.

어느 가정집의 거실.

아침 식사를 하고 앨범을 정리하던 엄마가 남자에게 말했다.

“군대 있을 때 사진은 없니?”

“잠깐만.”

석 달 전, 전역한 남자가 엄마의 말에 방으로 들어갔다.

“으음. 아기였을 때는 오빠도 귀엽긴 귀여웠구나.”

오늘 개교기념일인, 중 2인 여동생은 엄마의 옆에서 옛날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

방에서 나온 남자가 사진을 건네주었다.

“다들 훤칠하니 잘 생겼네?”

“그렇지?”

백호 부대 4분대, 열 명의 분대원들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뭐, 군대 생활은 떠올리기 싫지만 분대원들은 밖에서도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

특히 이 상병.

여동생이 있으면 소개시켜 주고 싶은…….

“에이. 다 아저씬데!”

……이 상병이 불쌍하니, 그러지 말자.

아저씨, 아저씨거리는 여동생의 모습에 남자는 속으로 이 상병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입을 열었다.

“오빠한테 아저씨가 뭐냐, 아저씨가.”

“군대 갔다 오면 다 아저씨지!”

“…….”

그래, 뭐.

중학생한테는 다 아저씨로 보이겠지.

그래도 아저씨라는 단어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좋아하는 이서준도 군대 갔다 오면 아저씨 될걸.”

“미쳤어어어!? 우리 서준 오빠는 안 그렇거드은!!”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는 여동생에 남자도 엄마도 아이고, 하며 귀를 틀어막았다.

“……엄마. 쟤 성악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복식호흡이 완전 제대로다.

“헹!”

하고 콧바람을 내쉰 여동생이 남자가 들고 온 사진을 살폈다. 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 비슷비슷하게 보이……응?

여동생이 ‘……응?’ 하고 사진에 들어갈 정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을 찌푸렸다가 깜빡였다가 사진을 멀리했다가 가까이했다가 아주 분주했다.

엄마가 그런 여동생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라고 하더니 왜 저런대?”

엄마의 물음에 남자가 웃었다. 솔직히 사진을 들고 올 때부터 저럴 줄 예상하고 있었다. 방을 잘생긴 연예인으로 도배해놓은 여동생이 놓칠 리가 없었다.

“잘생긴 애가 한 명 있거든.”

“그래?”

“어. 우리 부대에서 제일 잘생긴 녀석이 우리 분대였어. 성격도 좋아서 우리 부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간부들도 엄청 좋아하고.”

엄마와 남자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 여동생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사진을 전등에 비춰보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햇빛에 비춰보기까지 했다.

“정신 사납다. 딸. 이제 앉아.”

“그래. 그 정도 봤으면 됐잖아.”

엄마와 남자의 말에 사진을 천천히 내린 여동생이 멍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뭐, 조금 사납긴 해도 늦둥이라 귀여워했던 어린 여동생의 눈동자에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기대감이 서린 것을 알아챈 남자가 눈을 끔벅였다.

“왜, 왜 그러는데?”

당황한 남자에게 여동생이 후우후우, 침착하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나도 이해해, 오빠.”

“……어?”

오빠란 단어가 이렇게 소름 돋는 단어였나.

여동생의 목소리에 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한테나 말하면 안 된다는 거, 알아. 아주 잘 알아. 근데 난 가족이잖아. 아니, 그래. 가족이라도 기밀 유지가 필요했을 거야. 군대가 그런 곳이잖아. 그래도 나한테만 살짝 알려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남자가 알 수 없는 여동생의 말에 눈을 끔벅였다.

여동생은 자신이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긴가민가할 정도로 정신이 혼란하긴 했지만,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알았어도 비밀로 했을 거고, 아무거나 막 부탁하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그렇게 개념이 없는 팬이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배신감이 들지만…… 면회 때 만날 수도 있었지만…… 편지랑 선물도 보낼 수 있었지만……! 뭐, 괜찮아. 응. 괜찮고말고.”

자신의 멍하게 바라보는 엄마와 남자를 눈치채지 못한 여동생이,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본론을 말했다.

“사인받았지?”

“어?”

“사인, 받았지? 받았을 거야. 내 방에 도배된 사진들을 알고 있는 오빠가,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오빠가…… 안 받아왔을 리가 없어. 무려 1년이 넘게 같이 지냈을 텐데…… 그렇지?”

목소리는 차분한데, 눈에 광기가 도는 듯했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에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사인?”

여동생은 눈을 번뜩이며 사진을 내밀며 한 사람을 가리켰다. 부대에서 가장 잘생긴 이 상병이었다. 지금은 병장이려나?

“이 사람, 서준 오빠잖아.”

……?

남자가 눈을 끔뻑였다.

“네가 얠 어떻게 알아?”

“뭐?”

“네가 이서준 상병을 어떻게 아냐고.”

“……무슨 소리야? 한국에 서준 오빠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머? 그러네? 이서준 배우 아니야? 군대 갔어?”

“그런가 봐! 나도 지금 알았어. 잠깐, 엄마. 상병이면 언제 간 거야?”

“보자. 한 1년 전에 갔을걸.”

“헐! 그렇게 오래전에?!”

엄마와 여동생의 대화에 남자가 다시 사진을 보았다.

두 사람의 말대로 군복을 입은 배우 이서준이 거기에 있었다. 근데 얜 이 상병이잖아?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배우 이서준이었고, 상병 이서준이었다.

……헐. 미친. 왜 못 알아봤을까.

그제야 깨달은 남자가 입을 쩌억 벌렸다.

“오빠. 오빠. 사인받아왔지?”

새싹인 여동생은 물론이고, [봄이 돌아왔다]를 재미있게 본 엄마마저도 기대감이 서린 눈빛이었다. 그에 남자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 *

그날 오전, 비슷한 상황이 전국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다.

백호 부대에서 군 생활을 보낸 사람들 중, 어쩌다 배우 이서준의 사진을 본 이들은 ‘어디서 봤는데……?’ 생각하다가 ‘헐! 이 상병이잖아?!’ 하고 깨닫고 군대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한 다음 ‘……미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인터넷에도 ‘나 이서준이랑 같은 부대에서……’라는 류의 글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서준이 군대????

-뭔 개소리???

-ㅁㅊ. 기사 떴음.

그와 동시에 코코아엔터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도 떴다.

[(단독)배우 이서준, 비밀리에 입대! 현재 군 생활 중!]

한국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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