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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02화 (60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02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현준에 서준이 픽 웃었다.

최상급 능력으로 세계의 기록을 수정한 [(선)기록석의 파편]은 별문제가 없었다.

장현준이 전입한 4월부터 5월 말인 지금까지 서준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럼 어째서 지금에서야 장현준은 배우 이서준과 군인 이서준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된 걸까.

‘이제 해제할 생각이었으니까.’

당연히 능력의 주인인 서준의 의도 때문이었다.

서준의 능력, 즉 생의 도서관의 능력은 서준의 마나로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예외적으로 촬영된 영상 속 능력들은 서준이 마나를 보충해 주지 않아도 몇십 년이고 그 능력을 발휘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새겨진 능력도, 집에 새겨진 능력도 마나가 떨어질 때마다 보충해 주지 않으면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지오한테 준 모래시계도…….’

박지오와 만난 지도 꽤 됐으니 박지오에게 선물해 줬던 모래시계도 그 힘을 다해 평범한 모래시계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최상급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안다호에게 선물한, 최상급 능력인 [(선)파르비타의 나침반]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쪽은 서준이 휴가를 나갈 때마다 상태를 살펴보고 마나를 보충하고 있어 문제는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서준의 마나는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전기처럼 꼭 필요한 에너지였다.

그리고 또 다른 최상급 능력인 [(선)기록석의 파편].

마나를 보충하면 되는 [제작 타입]능력들과 달리, 그저 발동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첫 발동에 엄청난 마나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정량의 마나가 필요했다.

‘마치 에어컨 같달까.’

처음 켤 때는 에너지가 엄청 들지만 유지할 때는 적당량만 소모되는.

여튼, 처음 [(선)기록석의 파편]을 발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정량의 마나가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마나를 줄이고 있었지.’

최상급이었던 능력이 천천히 상급으로, 중상급으로 줄어들 정도의 에너지만을 보내주고 있었다. 장현준 같이 기감이 좋은 사람들은(물론 몇 안 되겠지만) 제법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 곧 전역이었으니까.

‘이제 두 달…… 아니, 한 달 반 남았나?’

슬슬 자신이 군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물론, 전역할 때까지 계속 숨기고 있다가 전역하고 나서 능력을 해제하는 방법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의구심을 같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이서준이…… 군대에 갔었다고?

-그리고 벌써 전역했다고???

-기사는 1도 없었는데???

-아무리 비밀리에 갔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물론 서준과 같이 군 생활을 한 장병들의 증언이나 사진 자료가 있을 테고, 군 데이터베이스에도 서준의 군 생활 기록이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잠잠했잖아?

-22 나 같으면 가족한테는 말했다.

-어떻게 몇백 명 넘게 지내는데 전역할 때까지 1명도 입을 안 연 거야?

-연예인 특혜라도 받은 거 아님?

너무 완벽하게 지켜진 비밀은 오히려 대중들의 의심만 불태울 터였다. 그리고 의심은 논란이 되고 논란은 문제가 될 거다. 더욱이 문제의 중심이 지금까지 논란이 한 번도 없었던 슈퍼스타라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온갖 증거물을 들이밀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올 테고 조회수를 뽑아먹기 위해 기사들도 쏟아질 테고. 작품 활동을 할 때면 매번 빠지지 않고 그 이야기가 언급될 게 뻔했다.

‘그러다 잘못하면 군대 2번 갈 수도 있고.’

뭐, 생의 도서관의 능력 덕분에 군 생활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2번 가는 건 좀…….’

그래서 전역 날까지 능력으로 비밀을 유지하기보다는, 전역 한두 달쯤 전에 [(선)기록석의 파편]을 해제해서 ‘미친!! 이서준 지금 군대에 있음!!’을 대중들에게 알릴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기자들이나 방송국들이 알아서 그동안 서준이 군 생활을 잘해왔다는 것을 알려줄 거고, 이미 전역한 선임들의 인터뷰, 그리고 이제 휴가를 나갈 후임들의 인터뷰가 서준의 군 생활의 증언이 되어줄 거다.

그 시작이 최상급이었던 능력의 등급을 낮추는 것.

[[(선)기록석의 파편-최상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기록석의 파편(상급)이 발동합니다.]

[[(선)기록석의 파편-상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기록석의 파편(중상급)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중상급이 된 능력의 빈틈을 장현준이 알아차린 것이었다.

“어…….”

장현준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인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아니, 이해는커녕 뇌가 움직이기를 거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멍한 모습이었다.

눈을 데굴 굴린 서준이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장현준에게는 보이지 않게 마기를 풀어냈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싸늘한 기운에 장현준은 정신이 번쩍 든 표정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이래서…….”

차가운 손길이 장현준의 어깨에 닿았다. 온기 한 점 없는 눈빛에 살이 베일 것만 같았다.

완전히 달라진 이 병장님의 분위기에 장현준은 침도 못 삼키고 떨리는 눈동자로 이 병장을 바라보았다.

“감 좋은 녀석들은 싫다니까.”

주변과 격리된 듯,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유일하게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장현준의 눈에 빛이 돌았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장현준 자신에게 이런 힘이 있는 이유가 무얼까 하고.

한창 호르몬이 날뛰던 사춘기.

장현준은 무시무시한 이면 세계가 있고, 그 이면 세계에서 현실 세계를 침략할지도 모르며 특별한 힘을 가진 자신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종종…… 아니, 자주 하고는 했다.

“내 정체를 알아차렸으니,”

뱀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장현준의 상상은 깊이를 더해갔다.

적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할까.

이런저런 상상을 했던 장현준이지만, 설마 그 ‘적’이 자신을 도와준 이 병장님이었다니!

아직도 부대를 감싸던 흑과 백의 기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신으로서는 따라 할 수도 없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이 병장님이 슈퍼스타 이서준이었다니!!

‘어떻게 이겨!?’

인지도만 봐도 장현준의 말을 믿고 도와줄 사람은 1도 없을 거다.

현실 세계는 망했다. 침략당한 줄도 모르고 있어.

“입막음을 해야겠지?”

그저 말을 한 것뿐인데도, 목 바로 아래에 날카로운 칼이 들이밀어 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베일 것처럼 차가운 기운에 등까지 서늘했다.

장현준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마른침을 삼킬 여유도 없었다. 그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아래만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때,

“-라는 건 농담.”

‘농담☆’하고 별이 떠 있는 것 같은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상쾌한 목소리에 바닥만 내려다보며 떨고 있던 장현준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이 병장님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입술을 꾹 다문 채 움찔움찔대고 있었다. 잘 보니 웃음을 참는 듯했다.

……웃음? 참아?

장현준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이해하려는 순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한 서준이 으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현준잌ㅋㅋ 너…… 진짜…… 으하하핰!!”

장현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시원하게 웃는 서준의 모습에 장현준은 아차 싶었다. 목부터 얼굴 끝까지 피부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어졌다.

“으아아악!! 병장니임!!”

“으하하하!!”

깜빡했다.

이서준 병장님의 취미이자 특기가 사람 놀리기였다는 걸!

* * *

“……진짜 아니시죠?”

“아니라니까.”

사과의 의미로 PX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장현준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투덜댔다.

“근데 왜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놀리십니까. 진짜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영화를 볼 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임팩트가 더했다. 이래서 다들 연극을 보러 가는구나, 싶었다.

……다음에 연극을 하시면 꼭 보러 가야지.

티켓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재능 낭빕니다. 그거. 왜 그 멋진 연기력을 남 놀리는 데 쓰십니까.”

“그게 말이지…….”

서준이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처절하고 슬픈 과거를 이야기하며 듣는 사람들의 눈물을 뽑아낼 법한 목소리 연기였지만, 서준은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목소리만 듣고 ‘슬픈 사연이 있구나.’하고 또다시 혹할 뻔했던 장현준이 짜게 식은 눈으로 그런 서준을 바라보았다. 역시 연기력 낭비다.

“내가 연기를 못한 지 1년 6개월이 넘었거든. 대본 읽기랑 영화 감상으로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서준의 입장에서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세상에.

벌써 1년 6개월 동안 연기를 안 했다니! 아직도 2달이나 남았다니!

서준이 끄응 앓듯 말했다.

“손발이 다 근질거린다고. 이렇게라도 풀어줘야지. 내 군 생활의 소소한 재미랄까.”

그래도 문제가 될 정도로 놀리지는 않았다.

“넌 특이한 케이스니까 약간 판타지를 더해봤는데, 먹힐 줄이야…… 옛날에 그런 상상을 많이 했나 봐?”

“……예. 엄청 했죠.”

흑역사를 꺼내는 서준에 장현준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서준이 킬킬 웃었다. 즐거워 보이는 서준에 장현준도 웃고 말았다.

‘그래서 그렇게 진심으로 놀리셨구나.’

장현준이야 한두 달밖에 안 지났지만, 이 병장과 오래 지냈던 장병들은 이 병장의 장난에 한두 번 당한 게 아니었다. 연예인 하라는 소리가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천하의 이서준이 연기하는 상황이니, 긴가민가하면서도 몇 번이고 속아 넘어갈 수밖에…….’

“다시 말하지만 연기력 낭빕니다. 병장님.”

장현준의 진심 어린 말에 서준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하하 웃었다.

그런 이 병장님을 바라보던 장현준의 머릿속은 진정된 듯하면서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동안 왜 몰랐는지 이상할 정도로 이서준 병장님은 그냥 배우 이서준이었다. 잘생긴 외모도 그랬고 목소리도 그랬고. 소문처럼 운동신경도, 성격도 정말 좋았다.

그래.

이서준 병장님이 배우 이서준이라는 건 어찌어찌 납득했다.

근데 또 희한한 기분이었다.

군대 선임이 슈퍼스타라니.

해외여행 중에 만나 친하게 지낸 지인이 알고 보니 할리우드 스타였다는 것만큼이나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바로 옆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 같지는 않은 기분이랄까…… 아니, 역시 이 병장님!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기분이랄까.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했다.

“편하게 생각해.”

서준의 말에, 장현준이 몸을 움찔 떨었다.

설마…… 생각도 읽으시나?

“안 읽어.”

“지금 읽잖습니까!?”

기겁한 장현준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너 얼굴에 다 드러나.”

장현준이 얼른 얼굴을 매만졌다. 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리숙한 그 모습에 서준이 다시 웃었다.

“편하게 생각해. 지금은 그냥 군인이니까.”

“그게 편하게 생각하라고 해도 되나요. 휴식기 중이라고 생각한 배우가 군대에 있는데…… 그것도 제 선임으로!”

“휴식기 중이란 건 어떻게 알았어?”

“그…… 저도 병장님 팬이고 제 친구도 엄청 팬입니다.”

쑥스러운 듯 배우의 앞에서 팬이라고 말한 장현준이 기억을 더듬었다.

서준의 팬이 된 계기는 [악령].

자신에게 붙은 귀신들도 아기무당이 퇴마해 줬으면 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영화라는 걸 알아서 금방 포기했지만.

‘근데 진짜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6살 꼬마 배우와 이서준 병장님을 떠올린 장현준은 이내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더 놀랄 것도 없었다. 이 병장님인 이서준 배우는 신기한 힘까지 가지고 있지 않나. 반쯤 해탈한 장현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병장님.”

“응?”

“그동안 정체를 숨기고 계셨던 것 같은데…… 제가 알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그 능력에 막 문제가 있다거나?”

“아냐. 이제 슬슬 알리려고 생각 중이었어.”

걱정하는 장현준에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 대답에 장현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 달라붙은 잡귀를 퇴치하다가 서준의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걱정했다.

“안팎으로 난리 나겠네요. 아, 병장님. 저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친구들 거랑 할머니, 할아버지 것만 해주시면…… 내의원 지금도 엄청 좋아하십니다.”

“하하. 그래.”

이 병장과 장 일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대원들이 보였다.

“백호!”

“백호.”

서준의 자연스럽고도 멋들어진 경례에 분대원들이 오오, 감탄하는 모습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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