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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00화 (60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00화

이등병 장현준이 중대장의 차에 올랐다.

일단 짐 챙겨오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이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중대장이 시동을 걸고 말했다.

“벨트 매.”

“넵!”

하고 대답하긴 했는데, 안전벨트를 꽂는 쪽에 머리가 반쯤 뭉개진 잡귀가 킥킥거리며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대로 꽂았다가는 흰자밖에 없는 눈깔을 통과할 게 뻔했다. 물론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터라 촉감도 느껴지지 않고 별다른 이상도 없겠지만, 기분이 더러웠다.

몇 주간 이런 꼴을 안 봐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다시 익숙해져야겠지…….’

장현준이 눈을 찌푸리며 안전벨트의 끝을 버클에 단숨에 집어넣었다. 진짜 느껴질 리도 없건만, 잡귀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손의 느낌이 이상했다.

잡귀가 킬킬킬 웃었다. 한 놈이 아니었다. 서라운드 스피커도 아니면서 킬킬 끼끼 킥킥 이히히 웃음소리도 다양했다.

“뭐 문제 있어?”

“아닙니다!”

중대장이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잠깐 허공에 시선을 줬던 장현준을 바라보았다.

부대를 나온 차는 곧장 어디론가 출발했다.

각 잡고 앉아 있던 장현준은 편히 쉬라는 중대장의 말에 몸의 긴장을 풀었다.

“갑자기 내보낸다고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마라.”

“아닙니다!”

중대장이 픽 웃고는 말을 이었다.

“네 잘못은 아니지만…… 너희 분대 애들이 너무 마음고생 하는 것 같더라고.”

“……네. 알고 있습니다.”

장현준이 부대원들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일주일째까지도 다들 기분 탓이다, 누가 장난친 거다 하며 이해해 주었다. 장현준의 이야기를 듣고도 고생 많았다며 말해줬던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미지의 존재는 공포로 다가오게 마련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과 악몽이 3주째 이어지자 부대원들은 누가 보기에도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다.

“……이해합니다.”

나중에 다시 이 부대로 돌아올 수 있다면 꼭 고맙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운전하던 중대장이 힐끗 장현준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있고?”

“……예! 다들 기가 세서 영향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장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없는 친구들은 장현준이 ‘평범한’ 일상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그건 다행이네.”

중대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어떠냐? 기가 세, 아니면 약해?”

장현준이 운전하는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운전석 바로 앞 보닛에 앉아 시야를 방해하려는 잡귀, 뒷좌석에 앉아 중대장의 눈을 가리려는 듯한 귀신, 양쪽에서 쑥 나와 운전대를 잡은 중대장의 팔을 자국이 남을 정도로 꽈악 잡는 창백한 팔까지.

분대원들이라면 당연히 오싹함을 느낄 텐데, 콧노래까지 부르는 중대장은 1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세십니다.”

“그렇지? 내가 살면서 귀신 같은 걸 본 적이 없어.”

중대장이 킬킬 웃으며 점집에 들를 때마다 들었던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가는지 안 궁금하냐?”

“궁금합니다.”

“지금 가는 부대가 좀 유명한 부대야.”

유명한 부대? TV에라도 나온 부대인 건가?

장현준이 중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밥이 맛있어.”

“……잘 못 들었습니다?”

당황하는 장현준에 중대장이 킬킬 웃었다.

“밥이 맛있다고. 다른 부대에 소문이 날 정도니까 얼마나 맛있겠어. 소문으로는 연대장님도 오셨다던데…… 네 입맛에도 맞을걸? 나도 온 김에 점심 먹고 가야지.

그 느긋한 말에 갑자기 전출되어 어떤 부대에 가게 될지 긴장하고 있던 장현준은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맛있습니까?”

“그렇다니까. 저번에 먹어봤는데 장난 아니더라고. 그때 메뉴가 돈가스였는데 튀김이며 고기며 소스까지 장난 아니더라. 돈가스 좋아하냐?”

“넵. 좋아합니다.”

하하.

차 안이 옅은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갱생 시설로 유명하지.”

마치 어렸을 적, 돈가스 먹으러 가자고 엄마 손 잡고 따라갔더니 치과였던 것과 비슷한 충격에 장현준이 입을 쩌억 벌렸다.

갱생 시설이라니.

그것도 군대의.

듣기만 해도 오싹했다.

저절로 떠오르는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심하다고 하던데…….’

크게 요동치는 눈동자로 입만 벙긋거리는 장현준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던 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갱생 시설이라는 건 장난이고. 지내기엔 우리 부대보다 좋을걸?”

“……예 ……예?”

“좋은 곳이라고. 거기에 실력 좋은 상담사가 있거든.”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에 아주 조금 안도한 장현준에게 중대장이 설명을 계속했다.

“이 병장이라고. 얘가 일병 때부터 유명했어. 꼰대질하는 놈들도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관심병사도 한 사람 몫 다하게 만들고. 강압적인 행위가 있나 24시간 붙어서 살펴도 봤다는데 그런 건 일절 없었다고 하더라.”

중대장이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너희 분대에 최 상병 있지?”

“예.”

“걔도 여기 왔었어. 걔가 이등병 때 X나 미친 짓을 하고 다녔거든. 진짜 미친 건지, 현역 부적합 심사받으려고 미친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장현준이 눈을 끔벅였다.

그가 아는 최 상병은 분대장으로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장현준을 격려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여튼 걔도 여기 갔다 와서 사람 됐다는 거 아니냐. 우리 부대뿐만이 아니야. 소문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사단에서도 온다고 하더라고.”

중대장이 운전대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런 ‘특별상황’에 대해서만큼은 전출 전입이 빨라졌어. 선조치 후보고랄까. 전입 전출 티오 확인하고 보낼 날짜 정하고 하는 사이에 관심병사가 사고라도 치면 큰일이니까 말이야.”

“……그게 가능합니까?”

“군대잖아. 진급에 영향을 주는데 뭘 못하겠어.”

“……아뇨. 상담 말입니다.”

“아, 상담? 그건 잘 몰라. 그쪽 부대에도 아는 사람은 없을걸. 그래서 지금 이 병장 잡으려고 하고 있는데,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

진짜 아까워, 하고 중대장이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믿어야 할지 고민하던 장현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저는…….”

“그래. 너는 좀 상황이 다르긴 하지.”

진짜 귀신을 보는 건지, 정신병인 건지.

지금까지 부드럽게 이어졌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정신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더욱 안타까웠다. 중대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가 보는 거야. 여기서도 안 되면…… 그땐 전역해야지. 뭐, 너한텐 전역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만은.”

“아닙니다!”

“자식. 아니기는…… 이제 슬슬 다 와 간다. 내릴 준비해.”

픽 웃으며 말하는 중대장에, ‘진짠데 말입니다……’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현준은 새로 전입할 부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장현준의 눈만 점점 커지다가 크게 요동쳤다.

아마도 이제 도착할 군부대가 있을 곳의 하늘.

그곳에서 새하얀 기운과 새까만 기운이 섞일 듯 섞이지 않을 듯 뭉쳐져 있었다. 마치 군부대를 감싸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보기만 해도 오싹한 새까만 기운보다 따스해 보이는 새하얀 기운이 더 많았다.

“거기 뭐가 있어?”

“그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온갖 잡귀와 다양한 기운들과 이상 현상을 보고 듣고 느꼈던 장현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장현준으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새하얗고 새까만게…….”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오. 그게 보여?”

운전하고 있던 중대장이 오호, 감탄했다.

그 태평한 모습에 장현준은 순간 중대장도 이 광경을 볼 수 있나, 싶었다.

“너 미래도 막 보고 그러냐?”

“……예?”

……아닌 것 같았다.

당황한 장현준에게 중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백호 부대잖아.”

친절히 설명도 덧붙였다.

“하얀 털에 검은 무늬.”

점점 가까워지는 부대.

새하얗고 새까만 기운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는 거지. 안 물려가게 정신 단단히 차려.”

킬킬 웃으며 농담하는 중대장과 달리, 그 말을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장현준은 꿀꺽 침을 삼켰다.

* * *

위병소를 통과하고, 차에서 내린 중대장과 장현준이 병영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락은 미리 해놨으니까…….”

중대장의 말을 들으면서도 장현준의 시선은 계속 주변을 돌아다녔다.

허공을 돌아다니는 장현준의 시선에 중대장이 으음, 침음성을 뱉으며 장현준이 소속되어 있던 분대원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좀 소름 돋기는 하네.’

넋이 나간 얼굴로 이리저리 살펴보는 장현준의 모습은 무서울 법도 했다.

물론, 지금 중대장보다 더 무서워하고 있는 건 장현준이었지만 말이다.

‘뭐야…… 이건 도대체…… 뭐냐고!!’

실체가 없는 기운인데도 그 힘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얀색의 기운은 따스하고 포근하며 친근한 느낌이 들고 검은색의 기운은 소름이 돋고 섬뜩하며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도 죽음과 가까운 꺼림칙한 기운이라, 장현준은 반사적으로 허공에 떠 있던 검은색 기운을 피했다. 그 이상한 몸짓에 중대장은 ‘얘 괜찮은가. 더 심해진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괜찮냐? 지금 귀신 보이고 그래?”

“……어?”

그러고 보니, 위병소를 지나 군부대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잡귀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이상한 기운들에 다 도망친 것 같았다.

‘나도 가고 싶다. 도망.’

울음을 삼키며 이병 장현준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떨떠름한 표정의 중대장이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장현준은 연신 고개를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잡귀가 나은가, 이 이상한 기운들이 나은가.’ 고민했다.

‘이 부대에 있으면 잡귀는 안 만날 것 같지만…….’

검은색 기운은 잡귀보다 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때,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는 백호 부대 장병들이 장현준의 눈에 들어왔다.

다들 새하얀 기운과 새까만 기운을 스쳐 지나가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중 한 무리가 병영으로 이동하는 중대장과 장현준을 발견한 듯 보였다. 다수의 사람이 한 사람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장현준은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인지, 잠깐 놀란 듯하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대를 감싸고 있던 새하얀 기운과 새까만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장현준은 걸음까지 멈추고 멍하니 그걸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부대 내에 흘러 다니고 있던 두 기운이 진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헛것처럼.

그러자 도망쳤던 잡귀들이 다시 나타나는 듯 멀리서 낄낄낄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장현준이 떨리는 눈으로 아까 그 사람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벌써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봐도 그 사람이 이 두 기운에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중, 중대장님.”

장현준이 영혼이 빠져나간 듯,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며 저만치 걸어가던 중대장을 불렀다.

“어, 왜?”

“……저희 그냥 돌아가면 안 됩니까?”

여기 X나 무서운 사람이 있어요.

* * *

“이 병장님. 또 왔나 봅니다.”

그 말에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던 분대원들이 다들 병영 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듯 걷는 남자와 어리숙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꼰대……는 아니고 관심병산가?”

“진짜 끊임없이 오네. 우리 이 병장님만 고생이시지.”

“그래도 이제 좀 줄지 않았습니까.”

“근데 저분은 왜 저렇게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겁니까?”

그러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쁘게 살피는 남자의 모습에 분대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이에 있던 이서준 병장이 턱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저 인간은 선기와 마기를 제법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곳저곳 새겨놓기는 했지.’

밥 맛있게 먹으려고 식당에, 잠 잘 자려고 병영에,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초소와 탄약고, 무기고에. 그것 말고도 부대 여기저기에 선의 도서관의 능력, 악의 도서관의 능력 할 것 없이 쓸 만한 건 이것저것 새겨넣었다.

‘집보다 더 많이 새겼지…….’

그리고 서준은 그 문양들에서 넘쳐 흘러나온 기운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 인간들은 느끼지 못할 정도니까.’

만약 느낀다고 해도 그저 조금 피곤하다고 느낄 정도의 미세한 마기라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곧바로 마기보다 많이 모여 있는 선기가 치료해 주기도 하고.

‘근데 이제부터는 신경 써야겠는걸.’

아마 이번 생에 만날 인간들 중 가장 기감이 뛰어난 인간일 거라고 생각되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군대에는 별의별 인간들이 모인다고 하더니 실감이 됐다.

‘불편해 보이니까 갈무리해야겠다.’

그런 서준의 의지에, 군부대를 감싸고 있던 선기와 마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공을 보며 놀라는 남자의 모습에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무슨 문제 때문에 전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현준을 위해 친절하게 기운을 갈무리해 준 병장, 이서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분대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오히려 그 보통 사람답지 않은 능력에, 정말 호랑이 아가리에라도 들어온 듯, 차라리 기절하고 싶어 하는 장현준의 마음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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