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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99화 (59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99화

[안녕하십니까. 배우 김종호입니다.]

무대 위.

김종호가 트로피를 잡고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한국어로 인사한 김종호는 제법 유창한 영어로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잘하고 있는데 왜 미국에서 새롭게 도전하냐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자리를 잡으면 겁이 많아지거든요.]

김종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8년 전, 여기 서 있던 배우, 서준 리 덕분입니다.]

모두 김종호와 같은 나라에서 왔던 어린 배우를 떠올렸다.

[누가 해냈다는 기록이 있으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것보다, 작고 희미하지만 그래도 등대의 빛이 보이는 쪽이 조금 더 헤쳐 나가기 쉬운 법이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최초’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종호가 트로피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서준 리가 저에게 그런 등대이며 최초였습니다. 준의 열정와 연기에 대한 마음은, 제가 이 상을 향해 도전하게 만들어주었죠.]

김종호가 빙그레 웃었다.

[제 롤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누군가 묻겠죠. 롤모델이라기엔 너무 어린 거 아니냐고. 글쎄요. 제 눈엔 아주 훌륭한 배우밖에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와아아아!!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TV 화면 너머까지 전해질 정도의 커다란 소리였다.

“크흠. 크흐흠.”

그리고 헛기침 소리도 들렸다.

“뭐야. 감기 걸렸어? 따뜻한 물이라도 줘?”

헛기침을 하는 김종호를 보며 이지석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 앞에 앉아있던 서준과 박도훈, 이다진이 작게 웃었다.

“이제 그만 보고 밥 먹자.”

“한 번만 더 보고. 우리 형 말 참 잘하네! 솔직히 말해봐. 수상 소감 준비해 뒀지? 아니면 이렇게 술술 나올 리가 없는데!”

이지석이 김종호를 놀리며 리모컨으로 다시 시상식 장면을 재생했다. 무대 위, 눈가가 조금 붉어진 김종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이 자식아! 그만하라고!”

“으하하하!”

아하하핳.

서준과 박도훈, 이다진이 투닥거리는 김종호와 이지석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이서준 사단은 수상 축하 파티 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이지석의 집에 모인 상태였다.

“수상 축하드려요. 삼촌.”

“축하드려요!”

아카데미 시상식 날에도 전했던 축하지만, 서준과 배우들은 한 번 더 축하의 말을 전했다. 김종호가 작게 웃으며 고맙다, 하고 대답했다.

“삼촌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박도훈이 요리를 앞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새로운 곳에서 도전하고 멋진 결과까지 보여주셨잖아요.”

앞접시를 건네받으며 서준과 이다진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김종호가 웃으며 말했다.

“다 서준이 덕분이지.”

“아니에요. 다 삼촌이 한 거죠.”

“아니야. 서준이가 아니었으면 나도 그냥 한국에서만 활동했을 거야. 시상식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고 자리를 잡으면 도전하는 데 겁이 나거든. 서준이가 최초가 되어 주었으니까, 도전할 수 있었던 거야.”

김종호의 말에 서준이 쑥스러운 얼굴로 웃고 말았다.

* * *

식사를 하면서도 서준과 이다진, 박도훈은 자신이 상이라도 받은 양 신나게 떠들어 댔다.

“기사도 엄청 났어요. 뉴스에도 계속 나오고.”

“그리고 서준이를 롤모델이라고 말한 게 되게 멋있었대요! 나이에 상관없이 한 사람의 배우로 생각하는 모습이!”

“지석이 형도, 다들 아쉽다고 하던데요. 조연상이 하나 더 있었으면 당연히 형이 받았을 거래요.”

김종호와 이지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다 봤어. 진짜 기사 많이 나오더라.”

“근데 우리 기사 말고는 전부 서준이 기사던데?”

잘 익은 갈비찜 하나를 집던 서준이 하하 웃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을 주제로 만든 영화 ‘민들레’ 각본상, 남우조연상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 배우 김종호!]

[배우 김종호, 오스카 남우조연상 수상!]

[배우 김종호, 이지석, 아카데미 시상식 뒤풀이 파티에!]

[새로운 할리우드 스타! 배우 김종호, 이지석!]

이라는 기사들과 함께,

[3월 1일부터 3월 10일까지, 영화관에서 ‘화’ 상영!]

[오스카 최초 수상자, 배우 이서준의 생일을 맞아 팬들이 나섰다!]

[배우 이서준 팬카페 ‘새싹부터’, 수익금과 기부금은 독립유공자들에게!]

[삼일절부터 3월 10일까지! 태극기 게양!]

이라는 기사들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다른 기사들은 아예 보이지를 않았다.

“어제도 엄청 기사 올라왔잖아요. 서준이 인증 사진.”

박도훈의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자신의 생일이었던 어제.

[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인증 사진을 찍어, 생일 축하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새싹부터]에 올렸었다.

“모자를 쓰고 있어도 알아보시더라구요. 머리 자른 거.”

12시 땡 할 때부터 서준의 답장을 기다렸던 새싹들은 업로드되자마자 게시글을 클릭했다가 꺄아아아악! 현실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니, 머리 잘랐어?!

-뭐지?! 뭔데……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거지?!

-하악하악!! 서준인데…… 서준인데 뭔가 다르다?!

-일코…… 일코 아닌데??? (내가 알아볼 수 있으니) 서준인데??

-짧은 머리도 잘 어울려!!(통곡)

-사진! 사진 더 올려주라!! 서준아!!

-이제 오빠라고 불러야 하니!?!?

-차기작 존버…… 차기작…… 존버어어!

-22 차기작 뭔지는 몰라도 감독님 작가님께 미리 동서남북 그랜절 올림 (궁서체)

-다들 존댓말 내다버렷엌ㅋㅋㅋ

[새싹부터]가 생긴 이후 가장 과격한 날이 아니었나 싶다고 카페관리자 ‘흙흙’과 ‘햇빛빛’, ‘물뿌리개’는 생각했다.

“머리 자른 것만 알아챈 건 아닌 것 같던데…….”

새싹들의 댓글을 봤던 이지석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입대한 이후로 변한 서준의 분위기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근데 다들 차기작 이야기만 하지 군대 갔다고는 생각도 못 하는 눈치더라고요.”

박도훈의 말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여전히 능력은 잘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이어지던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이다진이 짝!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이제 수상 축하 파티하죠!”

……뭐?

김종호와 이지석이 그 말에 눈을 끔벅였다. 아까 인사로 끝난 거 아니었어?

그사이 서준은 테이블의 중앙을 치우고 박도훈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케이크를 올려두었다.

“어, 나도 뭐 할까?”

“형은 앉아 있어요. 형도 민들레에 출연했으니까 축하받아야죠.”

“맞아요!”

서준과 이다진의 말에, 이지석이 그럴까? 하고 히죽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냥 식사만 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 우리 케이크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잠시 후,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위로 여러 개의 초가 꽂혔다. 환한 얼굴의 서준과 이다진, 박도훈이 짝짝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수상 축하합니다! 수상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종호 삼촌! 지석이 형(오빠)! 수상 축하합니다!”

빵! 빵!

터지는 폭죽에 파티의 주인공, 김종호와 이지석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축하드려요! 삼촌!”

“고맙다.”

“지석이 형. 이거 트로피요. 형 팬분들이 드리는 거예요. 다들 정말 축하드린대요.”

“아…… 고마워…….”

이지석이 오스카 상을 닮은 트로피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종호 형이 받아서 기쁘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트로피로 약간 있던 아쉬움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준비한 선물을 전하자, 이다진이 다시 짝! 손뼉을 쳤다.

“자! 다음은 서준이 생일 파티! 도훈 오빠! 새 케이크!”

……응?

케이크를 자르려던 서준이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 수상 축하 파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제 생일 파티요?”

미리 알고 있었던 듯 김종호와 이지석이 숨겨두었던 생일 선물을 꺼내며 웃었다.

“그래. 어제 생일이었는데 전화만 했잖아.”

“하루 지났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생일 파티는 해야지!”

서준은 오늘 수상 축하 파티만 있는 줄 알았고, 김종호와 이지석은 서준의 생일 파티만 있는 줄 알았다.

세 배우를 감쪽같이 속인 이다진과 박도훈이 웃으며 테이블 위에 새 케이크를 올려두었다. 22살인 서준의 나이에 맞춰, 긴 초가 2개 짧은 초가 2개 꽂혀 있었다.

“그럼 다시 노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서준이의~”

하고 네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케이크를 앞에 둔 서준이 빵 터지고 말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네 배우들도 이어지는 축하 파티가 웃긴 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고마워요. 다들.”

“으하핳. 앞으로도 즐겁게 연기해. 서준아.”

“그래. 항상 재미있게.”

“네. 그럴게요.”

후우, 하고 촛불을 끈 서준이 활짝 웃었다.

* * *

꽃들이 만개한 4월.

“이병! 장! 현! 준!”

이등병, 장현준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굳어 서 있었다. 장현준의 앞에는 중대장과 대대장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대장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장현준을 한 번, 중대장을 한 번 바라보았다. 요 1년 동안 별문제 없었던 부대 상황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던 미간 사이의 주름이 다시 생겨날 듯했다.

“……아직 3주밖에 안 지났잖아?”

“그런데 다른 부대원들이 미칠 지경이랍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답니다.”

중대장도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하자, 대대장이 장현준을 바라보았다.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얼굴의 장현준은 굳은 그 자세로 연신 식은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물론,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얼굴로 사고를 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장현준은 보이는 모습대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훈련소에서의 평가도 좋았고 부대에도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

나흘 정도는.

대대장이 후우, 한숨을 내쉬고 팔짱을 꼈다.

이런 골칫거리는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에, 이병 장현준은 저도 모르게 씁쓸해지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 ……귀신을 본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걸 그렇게 시원하게 대답하지 말라고.

대대장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고, 중대장이 설명했다.

“얘가 자꾸 허공을 보고 헛소리도 좀 하고, 폴터가이스트 현상도 일어나는 것 같다고 분대원들이 미칠 지경이랍니다.”

“폴터가이스트?”

“그 왜……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거나 부서지거나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잘 정돈돼 있던 관물함이 몇 번 엉망이 됐다고, 그것도 귀신들이 그런 거라고 다들 미칠 지경이랍니다.”

몇 번은 착각이라고 넘어갔지만 그게 3주째 이어지면 미칠 지경이 된다. 훈련에 영향을 끼칠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몇 명은 악몽도 꾼답니다.”

“누가 장난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아니랍니다.”

대대장과 중대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장현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낄낄거리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귀를 맴돌고 있었고 눈이 닿는 곳곳에 기괴한 형상들이 보이고 있었다. 스무 평생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들리고 보였던 헛것들이었다.

‘아, 평생은 아닌가.’

신기하게도, 신검 때와 훈련소에 있던 기간,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고 한 나흘 동안은 일반인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었다.

그 ‘평범’이 얼마나 좋았던지.

‘말뚝 박을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

조부모에게도 군대가 잘 맞는 것 같다며 귀신들이 전혀 안 보인다고 기뻐하며 말했는데, 마치 장현준을 놀리는 듯 그다음 날부터 다시 귀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인데…….’

입대 전의 자신이라면 안 보이는 듯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텐데, 몇 주간 안 보였다고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흠칫 놀라거나 시선을 주고 말대꾸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잡귀들은 몇 주간의 침묵에 화가 난 듯 이런저런 사고까지 쳤다.

“장현준?”

“?! 이병! 장! 현! 준!”

잠깐의 ‘평범’을 그리워하고 있던 장현준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이야기가 끝났는지 대대장과 중대장이 장현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대장이 말했다.

“전출이다. 짐 챙겨.”

“……잘 못 들었습니다?”

장현준이 눈을 끔벅였다.

……이렇게 갑자기?

게다가 전역이 아니라…… 전출?

귀신이 본다고 서류에 적지는 못할 테니, 정신병력 등으로 현역 부적합 심사를 받아 그대로 전역할 줄 알았다.

‘물론 전역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입대하고 느꼈던 그 잠깐의 ‘평범’의 실마리가 아직 군대에 남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던 장현준에게는 전출 쪽이 더 기쁜 소식이기는 했다.

“일단 해볼 건 다 해봐야지. 짐 챙겨. 바로 간다.”

“……예. 알겠습니다!”

중대장의 말에 얼떨떨한 얼굴로 씩씩하게 대답한 장현준이 대대장실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저런 증상도 고칠 수 있으려나?”

“일단 맡겨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근데 이 병장 말뚝 안 박는대? 이제 전역 몇 달 안 남았잖아.”

“열심히 꼬시고 있다는데 그런 기미는 전혀 안 보인답니다.”

“아이고.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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