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96화
[한예대 영화과 표절 사건의 원본이 ‘화’였다?!]
[독립영화 ‘화’, 표절 사건으로 제작도 못 할 뻔!]
[황지윤 감독 수상 소감 중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표절 사건 암시?]
어두운 방.
소주병과 쓰레기로 발 디딜 곳이 없는 곳에 휴대폰 불빛만이 빛나고 있었다. 오성태가 초췌한 얼굴로 인터넷을 둘러보았다. 표절범을 비웃는 댓글들이 망막에 새겨진 것처럼 남았다.
‘X발……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는데……!’
표절 사건 이후, 기사가 터진 것만 빼면 코코아엔터에서도 황지윤에게서도 다른 조치가 없는 상황이라서 오성태는 안심하고 있었다.
다들 자신이 표절범이라고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사건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황지윤밖에 없었다. 그러니 황지윤이 졸업하고 나면 다시 복학할 생각이었다. 1, 2년이면 잠잠해질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됐는데……!’
황지윤이 [무명 화가]의 원본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독립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흥행기준이 고작 몇만 명인 독립영화가 아닌가.
그런데 설마…….
“이서준 그 새X는 왜……!!”
배우 이서준이 출연할 줄이야.
오성태가 이를 악물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서준의 출연으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금세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던 표절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화]의 흥행으로 더 크게 더 멀리 번져 나가고 있었다.
오해라고 말하기에는 황지윤과 싸웠을 당시 지켜봤던 눈이 너무 많았고, 코코아엔터는 결정적인 증거물인 [사랑방 화가]를 들고 있었다.
오성태가 입술을 깨물며 기름진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열이 뻗쳤다. X발. 어떻게 중2가 적은 내용과 자신이 적은 내용이 비슷할 수가 있나. 자신의 실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내가 황지윤보다 못하다고?!’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오성태는 열등감에 시뻘게진 눈동자로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독립영화 [화]가 흥행하면서 기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기사들을 쏟아냈다.
제목에 이름만 써넣어도 조회 수가 올라가는 슈퍼스타 이서준에 대한 기사, 독립영화 [화]에 대한 기사, 영화과 학생들의 인터뷰 등. 한국은 [화]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X발. 나도 이서준만 있었으면…… 이서준만 있었으면……!’
황지윤 따윈 문제도 아니었을 거다.
황지윤이 성공한 원인은 오로지 이서준 때문이었다.
이서준의 움직이게 한 게 황지윤의 대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오성태가 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X발! 이게 다 내 거였는데……!”
[독립영화 ‘화’의 황지윤 감독과의 인터뷰(전문)]이라는 기사가 [독립영화 ‘무명 화가’의 오성태 감독과의 인터뷰(전문)]이 될 수 있었다. 황지윤에게로 쏟아지는 찬사와 감탄, 러브콜이 오성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아니, 자신의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에 오성태가 훅훅,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이름만 언급되지 않았지, 인터뷰 속 자신을 가리키는 내용에 욕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그중 몇몇 인터뷰는…… X발…… 저와 같이 다니던 무리들 중 일부인 것 같았다.
4월 한국 독립영화제 이후, 친하게 지내던 무리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알고 지내던 영화계 관계자들도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전화도 받지 않았다.
“X발…… 나만 표절했냐고……!”
낄낄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오성태는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았다. 왜 나만…… 왜 나만……!
이제 한 학기밖에 남지 않았던 졸업도 글렀다. 감히 [화]를 표절할 뻔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영원히 한예대 영화과의 전설로 남을 터였다.
그렇다고 현장 경험을 쌓아서 곧바로 영화계에 들어간다?
잡일 스태프로서는 참여할 수 있겠으나, 자신의 이름을 대놓고 활동하다 보면 얼마 안 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터였다. 영화계는 그만큼 좁고 소문도 빨랐다.
어느 누가 표절 사건의 범인이었던, 그것도 한국 독립영화계에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화]를 표절했던 오성태를 써주겠나. 오히려 ‘이것도 표절 아니야?’ 하고 의심을 할 터였다.
오성태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휴대폰을 잡은 손이 벌벌 떨렸다. 오성태가 얼른 옆에 있던 소주병을 집어 단숨에 들이켰다. 답답한 속이 알코올로 불타는 것 같았다.
“X발…… 지가 대본 간수를 잘할 것이지……!”
끝까지 모든 잘못을 황지윤의 탓으로 돌리는 오성태는 온종일 휴대폰에 뜬 기사들을 보고 욕설을 주절거리고 술을 마시고 잠들기를 반복하며 폐인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 *
“나 그거 보고 진짜 엄청 울었어.”
“저도요. 문서 발견될 때까지 아버지가 어디서 뭘 했는지도 모르셨다니…….”
“돌아가신 것도 확실히 모르고 그냥 행방불명으로 처리됐다고 하더라.”
[화]팀 팀원들은 한창 얼마 전에 올라온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LA에 사는 한식당 사장의 아버지에 관한 일이었다.
평생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것을 모르고 살다가 얼마 전에야 알게 된 노인은 영화 [화]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 영화 진짜 잘 만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서 다행이지.”
“우리도 우리지만 지윤이가 큰일 했어.”
“오오오! 황 감독님!!”
팀원들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던 황지윤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오성태 본 적 있어?”
그 물음에 [화]팀 팀원들이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못 봤어.”
“작년에 휴학한 건 들었는데, 올해는 아예 안 왔더라?”
“그 선배 1학기만 더 하면 졸업 아니었나?”
“맞을걸요. 제가 빨리 졸업하라고 얼마나 빌었는데요.”
팀원들의 이야기에 김세연이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 퇴학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더라.”
“하긴. 이름만 안 나왔지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지 뭐. 학생 때도 후배들 작품 표절하고 다니는데, 진짜 감독이 되면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표절했겠어.”
“그러니까. 나 진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인간만은 감독 안 되길 기도했다니까.”
“나도. 떡잎만 봐도 노란데…… 감독이 되면, 그러다 유명해지기라도 하면…… 어휴. 안 봐도 뻔하다니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미래를 떠올린 황지윤과 김세연, 영화과 학생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좋은 날인데 오성태 이야기는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은 벌써 도착했대!”
김세연의 말에 시간을 확인한 황지윤과 팀원들이 얼른 걸음을 옮겼다.
[ATR 미술관-특별전시회장]
약속 장소인 미술관 로비로 들어가니, 따뜻한 공기와 함께 황지윤과 김세연, 팀원들을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팀 팀원들로 올해 2월 졸업한 박우진과 선배들(무대미술과도 있다)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에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너희 곧 졸업이지?”
“네. 10월도 벌써 반이나 지났으니까…… 얼마 안 남았죠.”
황지윤의 대답에 박우진과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곧 11월이라니…… 1년이 훌쩍 지나갔네.”
“그러게. 다 같이 강원도에서 촬영한 게 엊그제 같은데…….”
1년 내내 바쁘게 지낸 탓인지, 정말로 화살같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박우진과 선배가 추억을 더듬는 것처럼 황지윤과 김세연도 1년 전 일들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잠시 후.
“다들 오셨나요?”
ATR미술관 직원이 황지윤에게 물었다.
환지윤이 로비 안을 둘러보았다. 촬영팀, 음향팀, 조명팀을 맡아줬던 영화과 학생들. 권세아와 음악과 학생들, 미술과 학생들. 김성식, 정은미와 황도윤 그리고 연기과 학생들. 소품팀이었던 무대미술과 학생들까지.
오늘 못 온다는 서준과 몇몇 팀원들 그리고 유학 간 유서영을 빼면 모두 도착했다.
“네. 다 왔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미술관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화]팀 팀원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번 특별전시회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의지와 정신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그림과 조각, 판화 등의 예술 작품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 작품은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화]팀 팀원들이 걸음을 옮겼다. 김세연이 속삭였다.
“미술은 잘 모르는데, 박력 장난 아니다.”
“그러게.”
일반인도 그런데, 미술과 학생들은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가 여러분의 작품이 전시된 곳입니다.”
직원이 웃으며 벽을 가리켰다. 아니, 벽이 아니었다. 모니터였다. 커다란 모니터들이 빈틈없이 연결되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곧, 화면에 새하얀 눈밭과 붉은 꽃, 그리고 두루마기를 걸친 서준이 나타났다.
풀샷으로 찍은 장면이라 멀게만 보이지만 화면이 크고 넓어서 그런지 마치 ‘민한’이 된 듯,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짜…… 촬영 때 그 느낌인데?”
“그러게.”
황도윤과 황지윤의 말처럼, 당시 촬영 현장에 있었던 그 느낌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해졌다. 당시 있었던 [화]팀 팀원들도 우와, 하고 감탄했다.
그런 반응에 만족스럽게 웃은 직원이 말을 이었다.
“영상은 편집 없이 리얼타임으로 재생될 예정이며,”
그 설명 그대로 영화보다 느린 속도로 서준이 꽃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바람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추위도 느껴지는 듯했다.
“음악도 넣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석에 앉아 영화 [화]를 보는 것과는 다른 현장감이 느껴졌다.
“다들 넋 놓고 보겠다.”
“그러게요.”
자신이 ‘민한’이 된 것처럼, 그렇게 숨을 죽이고 넋을 놓고 볼 듯싶었다.
“……우리 작품이……미술관에 걸릴지는 몰랐는데…….”
“그러게요…….”
이 장면을 만드느라 가장 고생했던 미술과 학생들의 눈이 촉촉이 젖어갔다. 한쪽, 작품 설명에도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더욱 감격한 듯 보였다.
“앗. 서영이한테도 보여줘야지!”
“지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하는 미술과 학생들의 모습에 [화]팀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음 날.
ATR미술관 특별전시회가 개막했다.
* * *
“특별전시회 가 봤는데 엄청 좋던데요?”
“그건 또 언제 갔어?”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으며 물었다. 이틀 전에 휴가를 나왔는데, 벌써 전시회까지 갔을 줄이야.
서준이 하하 웃었다.
“민들레 보고 바로 갔죠. 보니까 다들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몇 번이고 계속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12월.
김종호와 이지석이 조연으로 출연한 미국영화 [민들레]의 개봉에 맞춰 서준은 휴가를 나온 상태였다.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전시회를 시작하자마자, 영화에 나온 장면을 미술관에 걸어도 되는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현대미술이라는 게 범위를 한정 지을 수가 없으니 금세 사라졌다.
동물 사체나 공장에서 만들어낸 물건, 아무 처리도 안 한 생과일 등을 작품이라고 말하며 전시하는 예술가들도 있는데, 왜 영화 장면은 안 되느냐는 반박글들이 많았다.
-동물 사체나 공산품은 예술이라는 생각 1도 안 듦.
=22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33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화가 더 ‘예술’이라고 생각함.
그런 대중들의 생각은 그대로 특별전시회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눈 위에 그린 그림을 담은 포스터도 인기가 많고, 다른 미술관에서도 전시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해외에서도 제안 많이 들어오고 있어.”
[화]팀 팀원들이 다들 학생이다 보니, 투자자로서 [화]와 관련된 일정들을 관리하게 된 안다호가 말했다.
“잘됐네요!”
서준과 안다호가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영화는 어땠어?”
“재미있었어요. 한국 이민자 가정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이민자 가정들이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고민들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어요. 종호 삼촌이랑 지석이 형 연기도 정말 좋았고요. 다른 배우분들도 되게 잘 어울렸어요.”
“나도 봤는데 좋더라. 세대 간의 갈등도 잘 보여주고.”
“맞아요. 어느 나라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세대 갈등하고 이민자들이 겪을 수 있는 갈등을 과하지 않게 잘 섞어서 연출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도 화제라고 하던데요.”
“나도 들었어. 개봉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라.”
안다호도 킹즈 에이전시에서 전해 들은 바가 있어 서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작게 웃었다.
“어쩐지…… 종호 삼촌이랑 지석이 형. 엄청 바빠질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야.”
* * *
서준이 부대 복귀하고 얼마 후.
서준과 안다호의 예상처럼, 한국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 ‘민들레’의 김종호,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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