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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89화 (58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89화

코코아엔터 회의실.

[배우 이서준, 9중 충돌 사고에 휩쓸릴 뻔!] 등의 어그로를 잔뜩 끄는 기사를 살펴보고 있던 안다호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의 안내로 회의실로 들어오는 두 사람. 오늘 만나기로 한 웨일 스튜디오의 직원이었다.

그중 상사로 보이는 남자가 안다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다호가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하하. 반갑습니다. 안.”

“오랜만입니다. 넬슨.”

웨일 스튜디오에서 온 두 사람 중 하나는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함께 일했던 담당자, 넬슨이었다. 지금은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넬슨과 직원이 자리에 앉았다.

“안이 그레이 바이니의 이름을 빌리고 싶다고 연락을 한 게 벌써 1년 전이군요. 설명은 들었지만 그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넬슨의 말에 안다호도 웃고 말았다.

“저도 그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준은 여전히 연주를 잘하더군요.”

가벼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코코아엔터 직원이 마실 것을 내오고 문이 닫혔다. 넬슨이 웃으며 말했다.

“작년 여름 일로 덩달아 영화 쪽도 다시 화제가 되면서, 저희 쪽에서 이야기 하나가 나왔습니다. 아니, 그전부터 조금씩 나오기는 했지만, 작년 여름 준의 오케스트라 참여로 정식으로 기획안까지 만들어졌죠.”

안다호가 넬슨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웨일 스튜디오의 연락에 안다호는 물론이고 1팀 전원이 같은 추측을 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후속작이군요.”

넬슨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저희 웨일 스튜디오에서는 그레이 바이니의 다음 이야기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나쁠 건 없었다.

서준도 [오버 더 레인보우]와 ‘그레이 바이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쉐도우맨 시리즈]로 시리즈 화의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말이지.’

안다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다.

“물론, 시나리오를 쓰시는 분들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겠지만…… 저희로서는 제대로 된 시나리오가 나올지 걱정입니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월드투어를 갖는 모습의 그레이 바이니가 등장하지 않았나.

그런 장면과 이어지는 2편인데, 영화에 꼭 필요한 기승전결의 이야기, 그러니까 위기와 고난 등을 넣기엔 조금 힘들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기념 티켓의 감동을 이길…… 아니, 최소한 비슷할 정도의 감동을 느낄 시나리오를 만들긴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안다호의 말에 넬슨이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포머 징크스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소포머 징크스.

성공한 영화들의 후속작이 첫 작보다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그렇지 않은 영화들도 있지만, 대부분 1편보다 2편이 못한 건 사실입니다. 저희도 우려하고 있고요.”

넬슨이 부하직원에게서 서류를 받아 안다호에게 내밀었다. 안다호가 종이를 살펴보았다.

“먼저 후속작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후속작의 감독은 1편과 같은 사라 로트 감독님이 맡을 예정입니다. 레베카 역을 맡았던, 캐서린 밀러 배우와 조지 역을 맡았던 폴 오든 배우도 그대로입니다.”

으음.

넬슨의 설명을 들으며 서류를 읽고 있던 안다호가 눈을 빛냈다.

“이건…… 특이하군요.”

“예. 그래서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넬슨이 웃으며 말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후속작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입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정말로 있는 현실인 것처럼 표현하는 장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조명을 배제하고 자연광만을 사용해서 일부 장면이 어둡게 나오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핸드헬드 기법(그래서 화면이 흔들릴 때가 있다)이 사용되기도 하는 촬영 방식이었다.

“보통은 공포영화에서 사용되는 장르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파운드 푸티지((사람은 없고) 발견된 영상)’라는 이름까지 있을 정도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공포물이었다.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사람들과 괴이한 현상들을 촬영하는데, 조명을 쓰지 않아 배경은 어둡고, 손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있어 화면은 흔들린다.

보통이라면 단점이 될 그런 장면들이, 공포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특히 공포, 두려움) 표현 방식이 된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공포가 극대화되어 관객들에게까지 전해진다.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딘가에 있을 이야기’라는 최대한의 현실감을 줄 수 있는 게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장점이죠.”

넬슨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을 연주회에 끌어들인 것처럼 말입니다. 홍보차 올렸던 버스킹 영상들도 그렇고요.”

잠시 생각하던 안다호가 작게 웃고 말았다.

“준이 작년 여름에 그레이 바이니의 이름을 쓴 게 계기가 된 거군요.”

제이슨 무어의 연주회 이후, 서준 리와 함께 ‘그레이 바이니’의 이름이 언급됐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모르는 사람들은 ‘G.B.’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네.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현실에 그레이 바이니가 나타난 거나 다름없었죠. 사람들 반응도 좋았고요.”

넬슨이 뒷장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안다호가 종이를 넘겼다.

“물론 공포영화가 아니라 배우들이 카메라를 직접 들지는 않을 겁니다. 말하자면, 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 바이니의 다큐멘터리가 되겠네요. 보통 TV에서 하는 유명인들의 다큐멘터리처럼 공연을 준비하는 장면도 넣고 공연 장면도 넣고. 인터뷰도 간간이 할 예정입니다.”

어떤 방식인지 알 것 같았다.

‘근데…….’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영화관에 올리기엔 볼륨이 작은 거 아닙니까?”

극적인 장면도 넣기야 하겠지만, 너무 단조로운 게 아닌가 싶었다.

어디 록 밴드나 아이돌 그룹 같은 다 인원의 출연도 아니고 그저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 그것도 사고를 치면서 돌아다닐 것 같지도 않은 성격의.

분량도, 규모도 영화로 만들기엔 부족한 듯 보였다.

‘물론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쎄.

[오버 더 레인보우]의 후속작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었다.

안다호의 물음에 넬슨이 대답했다.

“후속작은 영화관에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주 잠깐.

안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린사에서 OTT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군요.”

안다호의 말에 넬슨의 옆에 앉은 부하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넬슨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놀라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직 출시일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준비 중에 있습니다.”

OTT 플랫폼.

플러스+처럼, 인터넷을 통해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 콘텐츠인 서비스니, 웨일 스튜디오의 역량으로는 부족했다. 안다호가 자연스럽게 웨일 스튜디오의 모기업인 ‘마린사’를 떠올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린사.

[레드본], [어셈블], [쉐도우맨] 등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명가, ‘시즌 스튜디오’와 ‘웨일 스튜디오’ 등의 제작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미국의 거대 미디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잠시 마린사와 그 자회사들이 제작한 영화들을 떠올려 본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마린사라면 콘텐츠가 부족한 건 않겠고…… 사람들을 끌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한 거겠군요. 거기에 무작정, 성공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보다는 기존 흥행작의 팬들을 먼저 모을 생각이겠고요.”

“정,확합니다.”

넬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식은땀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오리지날 작품들도 준비 중입니다만, 저희는 오버 더 레인보우의 후속작이라면 그 어떤 작품보다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후속작의 내용이라면 OTT에 잘 어울리긴 합니다. 준도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찍어본 적이 없으니, 좋아할 테고 말입니다.”

안다호의 말에 넬슨과 부하직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게다가 내년이 마침 오버 더 레인보우의 10주년이기도 하고, 플러스와의 계약도 끝나는 시기라서 플랫폼 출시일에 맞춰 촬영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거대한 경쟁자의 등장에 플러스+도 큰일일 거다.

‘서준이 미국 작품도 생존자들을 빼면 전부 계약이 끝나는 대로 이동할 거고…….’

일단 [화]의 OTT 계약은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촬영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할 수 있으면 바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넬슨이 급하게 한국에 온 이유기도 했다.

“준과 친한 한국 배우들이 지금 미국에서 촬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속작 내용 중에 버스킹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에 두 한국 배우가 잠깐 출연해 주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한국 배우가 세 명이나 출연하니 홍보도 알아서 될 거고, 그 세 배우를 좋아하는 한국인 팬들도 가입을 하겠지, 라는 게 마린사의 생각이었다.

“그쪽 작품 촬영이 8월에 끝난다고 하니, 그 안에 버스킹 장면만이라도 촬영하고 싶습니다. 평범하게 배우를 섭외하는 것보다는 근처에서 촬영하고 있던, 이라는 수식어가 더 기삿거리가 될 테고 말입니다.”

넬슨의 기대 어린 얼굴에 안다호가 속으로 쓰게 웃고 말았다.

“죄송하지만…….”

불길한 서두에, 넬슨과 부하직원의 눈동자가 작게 요동쳤다.

“준은 일정이 꽉 차서 촬영이 불가능합니다.”

잠시 당황하던 넬슨이 얼른 입을 열었다.

“급하게 촬영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국 배우들의 출연도 그랬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거니까요. 일정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죠! 그저 내년 출시될 저희 플랫폼에 맞춰 업로드할 수 있기만 하면…….”

안다호의 쓴웃음에 넬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언제 시간이 납니까?”

“내년 8월부터입니다.”

……!

생각보다 긴 시간에 넬슨과 부하직원은 입만 벙긋거렸다.

* * *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냐.”

귀를 파면서 말하는 이지석에 대본을 읽고 있던 김종호가 픽 웃었다.

“안 씻어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형인 줄 알아?”

“……뭐?”

투닥대는 두 배우에 매니저, 김상우와 윤성오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컨디션은 좋네. 두 사람 모두.”

“그러게요. 긴장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에요.”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 배우가 따로 있긴 하지만, 조연으로 나오는 김종호와 이지석의 분량도 꽤 많았다.

“김종호 배우님도 ONE보다 많죠?”

“아무래도 ONE은 인원 수도, 액션 씬도 많았으니까.”

그에 비해, 이번 영화 [민들레]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영화라 인물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사도 많고 나오는 장면도 많았다.

“그럼 우리 형님 잘 부탁한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윤성오의 어깨를 두드린 김상우가 자리를 옮겼다.

용감하게도 [민들레] 오디션을 지원하고 합격까지 해서 함께 미국에 온 소속사 배우를 케어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이지석의 매니저, 윤성오가 김종호의 관리까지 맡게 되었다.

‘뭐, 케어랄 것도 없지만.’

투닥거리던 것도 잠시.

어느새 대본을 들고 감독에게로 다가가 조금 후에 찍을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지석과 김종호의 모습에 윤성오가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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