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88화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불행에 더욱 민감하게 마련이었다.
물론 TV 속에 나오는 불행한 사건 사고에도 충분히 공감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 친구, 친척, 이웃, 가족 등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불행을 겪으면 그보다 훨씬 민감하고 절절히 느꼈다.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구한 의인을, 그의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했냐고 걱정하는 것처럼.
그리고 서로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어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큰일이 있을 때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는 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 위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것에 새싹들과 서준에게 친근감을 가진 시청자들은 놀라고 말았다.
[소방차들이 도착한 곳은]
[○○터널 9중 충돌 사고 현장]
-아니……ㅠㅠㅠ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지금 마음이 너무 복잡함.
-저 연기 속에 서준이가 있을 뻔했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22 몰랐을 때는 사고 피해서 다행이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심장이 철렁함ㅠㅠㅠ
뒤늦게 걱정과 안도감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걱정을 날려버리려는 듯, 화면이 다시 바뀌며 멀쩡하게 서 있는 서준과 일행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곧 구급차가 도착했다.
[끝까지 환자를 살피는 이서준 배우와 ‘화’ 촬영팀]
이동식 침대에 누워 구급차로 이동하는 임산부에게 휴대폰을 쥐여주고 무어라 말하는 서준의 모습이 비쳤다.
[저를 도와준 학생이 그랬어요. 자신들이 아기를 구한 줄 알았는데, 아기가 자신들을 구했다고 말이에요.]
-이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은 몰랐다ㅠㅠ
-착한 일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ㅜ
-아기ㅠㅠ너무 고맙다ㅠㅠ
구급차가 떠나고 잠시 지켜보던 서준과 [화] 선발대가 다시 승합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그 학생분이 이서준 배우셨다고요?!”
아늑한 분위기의 방 안.
남편이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저희 아내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도와준 학생분이 되게 잘생겼다고 하더라구요. 목소리도 좋구요. 이서준 배우였으니까 그럴 만도 했네요.”
-이서준이라니까 납득ㅋㅋㅠㅠㅠ
-ㅠㅠㅋㅋ갑자기 웃기기냐고ㅋㅋ
-근데 아내분은?ㅠㅠㅠ? 어디계셔??
“아.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남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뭔데???뭐야???
-ㅠㅠ워킹맨 예능 아니냐고ㅠㅠ
-오늘은 아닌 듯ㅠ
“아내 예정일이 독립영화제랑 겹치는 바람에 못 갔어요. 영화 꼭 보겠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화팀 여러분.”
-ㅠㅠ깜짝 놀랐잖아요ㅠㅠ
-22 큰일이라도 난 줄ㅠ
“진짜 보고 싶었는데…… VOD로 나오면 아내랑 딸이랑 바로 보겠습니다!”
-딸……? 딸이요?
-헐헐!!
[딸이요?]
제작진의 물음에 남편이 바보처럼 히히히 웃었다.
“네! 영화제 개막식 날 저희 딸이 태어났습니다! 한예대 학생분들 덕분에 아픈 곳 하나 없이, 아주 튼튼합니다!”
-축하드려요!!
-오늘 계속 운다ㅠㅠ
-ㅠㅠㅠㅠ
화면이 바뀌고.
투명한 유리창 건너, 조그마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잠들어있는 갓난아기가 보였다. 남편이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내도 지금 마음 편히 몸조리하고 있고, 딸도 저렇게 건강합니다. 이서준 배우님과 화팀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남편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깜깜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그런 아빠를 위로하는 듯 잠들어있던 아기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헤벌쭉 따라 웃던 남편이 울컥한 듯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마터면, 딸의 저 웃음도 아내의 미소도 다시는 못 볼 뻔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ㅠㅠㅠㅠ
-아기 너무 귀엽다ㅠㅠ 나도 모르게 웃음ㅠ
-건강해야 돼ㅠ 어머님도요ㅠㅠ
화면이 바뀌고, 황지윤 감독이 나타났다.
“진짜 저희가 한 일은 별로 없어요. 서준이가, 이서준 배우가 그때 아내분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쳐 버렸을 거예요. 그럼, 저희도 아기도 아내분도…… 큰일이 났겠죠.”
황지윤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이서준 배우가 말했던 것처럼, 저희가 아기를 구하고 아기가 저희를 구한 거죠. 으음. 좋은 일을 하면 돌아온다고 하던데, 그게 좀 빨리 돌아온 것 같습니다. 촬영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고요.”
-1초 만에 돌아온 보답.
-22 지금까지 이렇게 빠른 은혜 갚기는 없었다!
-너도나도 행복한, 꽉 막힌 해피엔딩 너무 좋구요ㅠ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음ㅠ
다시 화면이 바뀌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게소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유난히 한 남학생에게 따라붙었다.
-이서준이네.
-서준이!!
-패턴 파악함!!
-ㅋㅋㅋ
“촬영하는 동안 재미있는 일은 없었어요?”
“없긴요! 많았죠!”
통편집되었던 [화]팀 팀원들과 [워킹맨] 멤버들의 잡담이 방송되었다.
식사 당번이나 청소 당번 같은 소소한 이야기부터 백구 이야기와 촬영 때 이야기까지.
영화 촬영을 하러 간 평범한(?) 대학생들의 이야기였지만, 그 대학생들 중에 배우 이서준이 있다는 사실에 시청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기에 서준이가 있었다니 듣기만 해도 재밌네ㅋㅋ
-22 진짜 대학생 같음.
-대학생이야ㅋㅋ
-이서준도 식사당번, 청소 당번 했을까?
-그랬을 듯. 운전도 했잖아.
-오…… 그러네. 연예인이라고 티 안 내나 봄.
-서준인 그런 이야기 1도 없음.
-맞아! 우리 서준인 아예 목격담이 없어!
-……ㅋㅠㅠㅠㅋ
이야기 사이사이, 팀원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들도 보여주었다.
[프리스비 하는 백구와 이서준 배우와 화 촬영팀]
-아침 산책이라니…… 되게 성실하다. (아침 11시에 일어나는 사람)
-시골 강아지 되게 프리하넼ㅋㅋ첨 보는 사람 따라감ㅋㅋㅋ
-이서준도ㅋㅋ 강아지는 왜 데려온 거얔ㅋ
-프리스비하는 영상 퀄리티 쩐다ㅋㅋ 무슨 휴대폰이지??
-……저건 찍는 사람이 촬영팀이라 가능한 퀄리티.
-……글쿤.
간간이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먹으며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서준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진지한 분위기다.
[이서준 / 배우]
[(박영진 팀 (최소희 외 3명)이 만든 돈가스를 먹으며 간식 고르는 중]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함]
-ㅋㅋㅋㅋ
-외 3명이 뭐야 외 3명잌ㅋㅋㅋ
-원래는 ‘박영진팀’만 넣으려다가 최소희(새싹 1기)가 자기 이름도 넣어달라고 한게 아닐까?
-ㅋㅋ그런 것 같닼ㅋㅋ
-(울고 있는 정훈 / 제육볶음팀 / 새싹 3기)
-ㅋㅋㅋㅋ
-간식ㅋㅋ휴게소하면 간식이긴 하지ㅋㅋ
-나도 밥 먹으면서 간식 뭐 먹을지 생각함ㅎㅎ
-점심 먹으면서 저녁 메뉴 생각하잖아요? 다들??
-근데 저렇게 진지할 일이냐고ㅋㅋ
곧 SNS를 보고 온 손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밥을 다 먹은 [화]팀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서준이 팀원들과 웃고 떠들며 간식 코너로 가 간식을 사는 모습이 보였다.
휴게소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가게 직원들도 의심은커녕 신경도 쓰지 않는 상황이 아주 편안하고 익숙해 보였다.
-……저기 나 있다. 서준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감.
-몰랐어?
-1도 몰랐음……;;;
알차게 간식 코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서준이 두 손 무겁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 버스에 타지 않은 팀원들에게 간식을 나눠주었다.
-이제 곧 저 간식들 이서준 픽으로 올라오겠네.
-ㅋㅋㅋㅋ
드론 카메라로 [화]팀의 모습이 보였다.
인원 체크를 끝낸 차량들이 휴게소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끝으로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4개월 후]
방송 첫 부분의 기사들이 역순으로 화면에 나타났다.
[워킹맨! 휴게소에서 만난 한예대 의인들!]
[한예대 의인들의 영화, ‘화’ 개막작으로 선정!]
[배우 이서준, 독립영화 ‘화’ 출연!]
-진짜 놀랐지……
-난 지금도 안 믿김.
-22 영화를 안 봐서 그런가.
-33 영화 찍은 건 좋은데 우리도 좀 알려달라구요ㅠㅠ
-44 개봉해! (짝!) 개봉해! (짝!)
-55 믿는다. 콬아!!!
[한국 독립영화제 폐막식]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여져 있는 아래,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해 한국 독립영화제 명예의 대상은!”
터지는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에 TV 화면까지 번쩍번쩍했다.
-기자 엄청 간 모양이네.
-이서준이잖아. 상 받아도 기삿거리. 상 못 받아도 기삿거리지.
-22 학생들 인터뷰도 딸 수 있고.
“황지윤 감독님의 화! 입니다!”
커다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단상 위에 오르는 황지윤 감독의 모습이 비쳤다.
“안녕하세요. 화의 감독 황지윤입니다. 저희 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트로피와 꽃다발을 든 황지윤이 웃으며 말했다.
“화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려왔던 작품입니다. 완성하기까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이렇게 멋진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지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조감독으로 함께해준 김세연 님, 촬영팀 박우진 님…….”
황지윤은 한 명 한 명 빠르게 이름을 불러나갔다.
“배우팀 황도윤 님, 김성식 님, 정은미 님 그리고,”
황지윤이 웃었다.
“나 진 님.”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다시 봐도 웃김ㅋㅋ
-코코아엔터 홈페이지에 프로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ㅋㅋ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황지윤 감독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화’의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막이 사라지고, 떠들썩한 [워킹맨!] 멤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 진짜 심장 멎을 뻔.”
“저도요. 기사 잘못 읽은 줄 알았다니까요!”
“서준이라니! 서준이가 있었다니!”
“우리 진짜 레이더 있는 거 아니야? 이번에 휴게소 정한 거 누구예요?”
그렇게 오프닝 토크로 ‘휴게소 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게스트들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남은 분량을 채운 [워킹맨!]은 다음 주 예고편을 내보내며 끝이 났다.
-상까지 받다니! 완벽했다!
-22 진짜 12월 방송까지만 해도 와, 대단하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음.
-진짜 아까 이서준 운전석에서 내릴 때, 엄청 놀람.
-나도. 선발대에 있더라도 이서준이 운전할 거라고는 생각 1도 안 했음;;;
그때였다.
[워킹맨!]이 끝나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떠들썩한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고 있던 사람들의 귀에 묵직하고 느릿한 음악이 들려왔다. 어쩐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선율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TV에서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가운 풍경 속. 산과 밭을 가로지르는 길.
그 끝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옛 자동차가 달려온다. 그리고 텅 빈 밭에 홀로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옷은 조선시대나 입었을 법한 한복이다.
-? 이거 무슨 광고임?
-광고……보다는 홍보영상 아님? 영화나 드라마.
-……헐?! 이거?!
-뭔데요??
남자가 눈을 끔벅이며 자동차를 바라본다. 잠시 창백한 얼굴이 창문으로 보인 듯하다. 곧 장면이 바뀌어 한복을 입은 남자와 중년인이 무언가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비쳤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듯 들려오던 음악이 한순간, 극적으로 밝아졌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 것처럼 커져갔다.
따단!
두 사람의 앞에 있는 것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서양식 저택.
그 위에 붓글씨로 그림처럼 [화]라는 글자가 그려졌다.
[화]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름이 지나간다.
[감독 황지윤]
[주연 나 진(이서준), 황도윤]
그리고, 새로운 글자가 새겨진다.
[8월 15일 대개봉!]
-……!!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였다.
* * *
코코아엔터.
배우팀, 안다호 이사 사무실.
벽에 걸린 TV에서 나오는 [화]의 광고영상에 안다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계약이 순조롭게 끝나 타이밍 좋게 올릴 수 있었다.
“개봉 날짜도 좋고.”
작게 웃은 안다호가 확보된 상영관 수를 확인했다. 먼저 계약된 작품들이 있어서 확보한 상영관은 적지만, 천천히 늘려가면 될 터였다.
안다호가 TV를 끄고 퇴근하기 위해 짐을 챙기려던 찰나, 전화가 울렸다.
-안 이사님. 1팀입니다.
배우 쪽을 총괄하는 안다호 이사가 바쁠 때, 안다호 대신 배우 이서준 전담 1팀을 관리하고 있는 부팀장이었다.
“네. 부팀장님.”
-조금 전에 웨일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팀장의 말에 안다호는 생각에 잠겼다.
웨일 스튜디오라면 서준과 함께 작업했던 제작사 중 하나였다.
‘새 작품이라면 먼저 대본이나 시놉시스를 보냈을 텐데…… 이렇게 연락을 할 정도라면…….’
그 정도로 서준이 필요한 영화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무슨 일 때문이라고 하던가요?”
-오버 더 레인보우와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역시.
그 말에 안다호가 책상 위에 놓여있던 달력을 넘겼다.
“알겠습니다. 약속 잡아보도록 하죠. 언제가 괜찮답니까?”
-그게…… 내일도 괜찮다고 합니다.
“……네?”
일주일 후의 스케줄을 살피던 안다호가 멈칫했다.
-웨일 스튜디오 기획팀장이, 지금 한국에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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