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87화
[배우 김종호, 이지석 오늘 출국!]
[할리우드 영화 촬영을 위해 김종호, 이지석 출국!]
[배우 김종호, 이지석, “촬영 잘하고 오겠습니다.”]
한예대 내 카페, 구석진 곳에서 오늘 뜬 기사를 살펴보고 있던 (서준과 화에 관한 기사는 너무 많아서 그냥 넘겼다.) 김세연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으아…… 힘들다.”
“왔어?”
오늘도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온 영화과 4학년, 황지윤이었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황지윤이 지친 얼굴로 에너지를 흡입하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흡입했다.
“와…… 벌써 일주일이나 흘렀는데 전혀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여.”
한국 독립영화제에서 [화]가 상영되고 서준이 출연한 것이 밝혀지고. 거기에 [워킹맨!]까지 엮이자 불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한예대에서도, 영화과 선후배들에게서도, 교수들에게서도 관심이 쏟아졌다. 물론, 다른 과인 [화]팀 팀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연락도 엄청 오지?”
“응. 특히 배급사 쪽에서.”
독립영화 [화]는 앞으로의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제법 생기가 도는 황지윤이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저으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작은 독립영화관에서 개봉했겠지만…….”
“서준이가 출연했으니 무리지. 지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그 작은 상영관으로는 감당 못 해.”
김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만 인터넷을 살펴봐도 [화]가 언제 개봉하는지, 플러스+에는 언제 올라오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잠깐 둘러본 [새싹부터]는 아주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관심 가지고 있다며?”
“응. 그렇대. 서준이 해외팬들이 내 생각보다 많더라. 티켓파워라는 게 이런 건가 봐.”
“그러게. 진짜 출연만 해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배우가 있구나.”
보장된 관람객과 해외 수출까지.
거기다 투자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들고 가 상영하기만 하면 되는 [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어, 여러 배급사에서 연락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계약은 코코아엔터에서 도와주기로 했어.”
“다행이네!”
그리고 또 다른 불길이 생겨나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영화 평이 좋더라.”
“그치?”
황지윤과 김세연이 히히 웃었다.
어제 [화]의 마지막 상영으로 [화]를 본 사람들이 늘었다. 한국인이라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내용인 덕분에 좋은 평이 담긴 후기가 가득했다. 그 후기들에 기대하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상…… 기대해도 되려나?”
“당연하지! 난 엄청 기대하고 있어! 벌써 팀원들하고 파티할 준비도 끝냈다고! 졸업한 선배들까지 다 모일 수 있대!”
김세연의 말에 황지윤이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도 같이 파티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그러게.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할리…… 아…….”
서준이 할리우드에 있다고 알고 있는 두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작게 웃었다.
“거기도 맛있는 거 많이 있겠지?”
“그렇겠지.”
* * *
집이 시끌벅적했다.
늦게까지 자던 남자가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TV 소리가 들려왔다.
[지난주, 막을 내린 한국 독립영화제에서 황지윤 감독이 연출하고 이서준 배우와 황도윤 배우가 출연한 영화 ‘화’가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우수상에는 김수한 감독의 영화……]
남자는 유명한 영화가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지만, 저 영화제는 워낙 떠들썩해서 알고 있었다.
“근데 지난주 끝난 걸 오늘까지 방송하네. 아, 이번 주에 워킹맨 하지?”
그건 꼭 봐야지.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부엌을 바라보았다.
“뭘 아침부터 이렇게 준비해?”
“네 동생이 입이 짧잖니. 휴가 나올 때마다 비쩍 말라서 오고. 휴가 때만이라도 많이 먹여둬야지.”
슬그머니 잘 구워진 고기로 손을 뻗어 한 점 집어먹은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거나 잘 먹는 자신이라도 군대 밥은 조금…… 자신이 이런데 입 짧은 동생 놈은 그 이상일 터였다.
“그래도 이제 상병 됐으니까 익숙해졌겠지.”
익숙……보다는 체념인가.
2년 전 군 생활을 떠올린 형이 하하, 해탈한 듯 웃으며 다시 고기로 손을 뻗었다. 오늘따라 양념이 잘 밴 것 같다.
“그만 좀 집어먹어!”
“악!”
짜악!
등짝이 불타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동생이 집 앞에 도착했는지, 띠띠띠띠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하긴, 휴가 나올 때마다 살이 쭉 빠져 있는 아들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문이 열리고 군복을 입은 동생이 들어왔다.
어서 와! 아들! 하고 두 팔 벌려 마주 앉으려던 엄마가 멈칫 멈춰 섰다. 소파에 드러누워 왔냐, 하고 말하려던 형도 멈칫했다.
어쩐지 현관에 서 있는 동생의 모습이 낯설다.
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살쪘냐?”
* * *
엄마와 형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밥을 먹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매번 비쩍 말라 와서, 허겁지겁 고기를 흡입하던 동생이 오늘은 얌전히 밥을 먹고 있었다.
“보니까 살찐 게 아니라, 혈색이 좋아졌네.”
“그러게.”
저번 휴가 때까지만 해도 칙칙하던 동생의 얼굴에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제야 좀 익숙해졌냐? 아니, 이건 익숙해진다고 될 일이 아닌데…… 설마 너도 몰랐던 군대 체질이 깨어난 거야?”
“……그런 거니?”
그런 어이없는 질문을 하게 될 정도로, 동생의 변화는 대단했다. 학교 과제에 치여 살 때보다 더 보기 좋으니, 엄마는 심란했다.
“요즘 군 식단 개선한다고 하더니…… 그것 때문인가?”
“에이. 엄만 그걸 믿어? 그런 거 다 언론플레이지. 실제로 보면 하나도 안 변했을걸?”
양념이 잘 밴 고기를 씹어먹던 동생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우리 부대 밥이 맛있어졌거든. 내 입에도 잘 맞아.”
“……엄마. 얘 혀가 맛이 갔나 봐.”
엄마가 형의 등짝을 내리쳤다. 악! 형이 꿈틀꿈틀대다가 진정했다.
“……그래. 대한민국에 부대가 몇 개인데 맛있는 곳이 없겠냐. 근데 너희 부대 밥은 진짜 맛없다며?”
동생도 그게 참 의아했다.
“얼마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거든? 진짜 맛없었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근데 지난주부터 맛이 확 변했어.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음식들인데 맛은 엄청 좋아졌다?”
음식 맛의 변화가 있던 첫날.
‘……야. 이게 왜 맛이 있냐……?’
병영식당에서는 한바탕 소란까지 일어났었다. 형처럼 ‘이제 내 혀까지 돌아버렸구나!’ 하는 반응도 꽤 있었다. 동생도 잠시, 몸이 살기 위해 뇌가 미각 신경을 바꿔버린 줄 알았다.
‘뭐, 엄마 밥이 맛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여튼, 그 이후로 밥맛이 좋아졌다. 입 짧은 자신도 잘 먹을 만큼.
“조리병 새로 들어온 거 아니야? 요리 잘하는 녀석으로?”
“아니, 그쪽은 변한 게 없어. 그대로야.”
그래서 더 놀라웠다.
요리하는 사람도, 재료도, 조리기구도 변함없는데 밥맛만 좋아졌다.
건너건너 듣기로는 조리병들의 미각이 예민해졌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그게 갑자기 좋아질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그때쯤부터인가? 잠도 잘 오더라.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고. 예전엔 좀 답답했는데, 요즘은 스트레스도 별로 안 쌓이는 것 같고.”
“……얘 완전 군대 체질 다 됐네.”
“……그러게.”
형과 엄마는 여유로워 보이는 동생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지난주부터 그랬다고? 뭐 계기가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니면 달라진 거라던가.”
달라진 거라…….
형의 질문에 동생이 기억을 더듬었다.
“군대가 매일 똑같지 뭐. 달라진 거라고는 후임 들어온 거? 아, 지난주에 신병 들어왔거든. 근데 우리 소대에 들어온 애가 완전 잘생겼어. 처음 봤을 때 연예인인 줄 알았다니까. 이름도 이서…….”
“아니, 신병은 됐고. 그것 말고는?”
“없지. 전혀 없어서 부대에서도 완전 난리야.”
떠들썩한 현 상황의 원인이,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대대 내에 온갖 능력들을 새겨놓은, 이병 이서준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는 형제가 열심히 떠들어댔다.
* * *
[SBC 워킹맨! 오늘 오후 ‘휴게소 식당 대결-특별편’ 방영!]
[워킹맨! 한국 독립영화제, 대상 [화]팀을 만나다!]
[워킹맨! 예상치 못한 특별한 만남?!]
-오늘. 한다. 워킹맨. 한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래서 이서준 찾았대?
=단체 컷이 너무 작아서ㅋㅋ 못 찾았대ㅋㅋ
=게다가 겨울이라 다들 두껍게 입고 있어서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보임ㅠㅠ
=윗댓…… 열심히 찾았구나?ㅋㅋ
-또 희한하게 만났네. 서준이랑 워킹맨.
=ㅋㅋ진짜 이쯤되면 레이더 있는 거 아니냐고. 이서준 레이더ㅋㅋ
=예능국 피디: 우리도 좀 빌려줬으면…….
=새싹: 우리도…….
=드라마국 피디: 우리도 좀…….
-근데 레이더치고는 너무 시간 간격이 큰 거 아님? 올해는 2번 만났지만, 그전에는 몇 년 걸렸잖아.
=아예 못 만나는 것보단 낫지.
=222 다른 예능들은 전국을 돌아다녀도 못 만남.
-이번에도 <이서준 배우 보신 분?> 나오려나?
=제작진도 못 찾았는데?
=ㅋㅋㅋㅋㅋㅋ
-건너건너 듣기로는 SBC 난리였다고 하더라.
=그런 것 같네. 광고가 장난 아님.
=왜 이렇게 많아;;;
=근데 나 같아도 넣을 것 같음. 둘러보니까 다 이거 보고 있는 것 같은데?
=222 시청률 장난 아니겠다.
-드디어 광고 끝!! 시작한다!
[4월의 어느 날.]
새까만 화면에 자막이 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터넷 기사 제목이 화면 위로 두둥! 나타났다.
[배우 이서준, 독립영화 ‘화’ 출연!]
그 위에 새로운 기사 제목이 차례차례로 나타났다.
[한예대 의인들의 영화, ‘화’ 개막작으로 선정!]
[워킹맨! 휴게소에서 만난 한예대 의인들!]
그리고 한 댓글이 나타났다.
[근데 이서준이 화에 출연했으면…… 워킹맨에도 나온 거 아니야?]
화면에 자막이 떴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못 찾았습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사과ㅋㅋㅋ
[그래서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즐거운 음악과 함께, 테이프를 되감는다.
4월 방송분, 3월 방송분, 2월, 1월, 12월. 빠르게 시간이 되돌아갔다.
도착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투덜대는 워킹맨 멤버들의 옷차림에서 겨울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12월에 방송됐던 장면과는 조금 다르게 편집된 장면들이 요약한 듯 짧게 이어졌다. 12월에 본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새로 보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게.
[그때, 들어오는 차량들!]
관광버스와 9인승 승합차와 트럭이 휴게소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에 서준이가……!
-와…… 알고 봐도 신기하닼ㅋㅋ
[그런데 떠나려고 한다!?]
-이서준이 간다…… 시청률이 떠나가……
-ㅋㅋ그러네ㅋㅋ
-박영진이랑 정훈이 안 뛰어나갔으면 오늘 이렇게 볼 일도 없었을 듯.
-222 이때 그냥 갔으면 진짜ㅋㅋ 제작진 절해야함ㅋㅋ
[알고 보니 영화 촬영하러 온 한예대 학생들!]
-영화 잘 봤어요ㅠㅠㅠ 계속 울었어요ㅠㅠ
-그걸 본 사람이 여기 있네?
-22 어떻게 봤어요? 티켓도 없던데;;;
-근데 클로즈업은 안 해주네?
-우리가 서준이를 찾아야 하는 건가?!
-+_+ 찾아주마!
“이 글…… 여러분 이야기 아니에요?”
[그리고]
[한 달 전.]
빠른 편집으로 보여주던 방송이 제 속도를 찾았다.
12월 방송 때처럼 마치 영화같이, 뉴스 아나운서들의 말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기적입니다……]
[모두 구조됐으나 많은……]
[구조 작업을 진행 중……]
[00터널에서 9중 충돌 사고가……]
[어어?! 저 차 왜 저래!?]
그때의 긴박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연출에 시청자들이 집중했다.
곧 세 대의 관광버스와 9인승 승합차가 터널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승합차에 노란색 원이 그려졌다.
-……왜 여기서부터 보여줘?
-설마 이서준이 선발대에 있었다고?
-헐. 그런가 봐……!
세 대의 관광버스와 승합차가 길을 따라 달렸다.
곧 12월 방송분을 봤던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도로에 승합차가 멈춰 섰다. 세 대의 관광버스는 그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승합차 운전석에서 누군가 내렸다.
황지윤 감독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처럼 깔렸다.
[운전하던 팀원이 길가에 앉아 있는 아내분을 발견하고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던 모양이에요.]
-저 사람인가 봄.
-대단하네…….
그를 강조하듯 두 번, 다른 각도로 운전석에서 내리는 남자를 보여주던 화면이 천천히 확대됐다. 화질이 낮고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얼굴의 윤곽은 얼추 보였다.
그리고 화면이 분할되며, 바로 옆에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났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단정한 차림으로 눈을 빛내고 있는 남자.
[배우 이서준 / [화] 선발대 운전자]
[참고 이미지: SBC드라마 [바벨탑]]
-……!!!
-헐!! 미친!!
-뭐야……!!
-저 사람이 서준이였어!?!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 이서준이 다급하게 임산부에게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으로 [황지윤 감독]이라는 자막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여자도 보였다.
-……와…….
그저 감탄만 흘러나왔다.
분명히 몇 번이고 봤던 영상인데도, 그저 등장인물 한 명의 정체를 알게 된 것뿐인데 처음 보는 영상처럼 느껴졌다.
영상 속 서준은 임산부의 앞에 쭈그려 앉아 상태를 살펴보는 듯했다. 황지윤 감독과 황도윤 배우 등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2월 방송분보다 좀 더 길어진 영상이었지만 다들 감탄하며 보기 바빴다.
-……설마 이서준이 선발대였을 줄이야…….
-그것도 제일 먼저 환자 발견한 운전자임!
그때 소리가 들렸다.
소방차와 구급차의 소리였다. 서준과 사람들의 시선이 도로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는 차량들. 곧이어 사람들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서준이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낮은 화질이지만 놀라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뒷내용을 알고 있던 시청자들이 떠들어댔다.
-○○터널 사고 소식 들은 듯.
-진짜 저때 안 멈췄으면 같이 사고에 휘말렸을걸.
-게다가 옆에 관광버스 3대가 있어서 완전…….
-22 다시 봐도 아찔하다.
-자자자ㅏㅈ자잠깐만;;; 나 방금 엄청 무서운 생각을 한 것 같은데;;;
-ㅅㅂ 나도ㅠㅠㅠ
-헐. 그럼 이서준 엄청 큰일 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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