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81화
“올해는 출품작 수가 많네요.”
한국 독립영화제의 단편 영화 출품이 끝나고 장편 영화 출품 기간이 시작되었다. 밀려드는 작품들 수가 예상보다 많았다.
“워킹맨 덕분에 홍보가 잘돼서 그렇지. 만들어 둔 거 있으면 다 냈을걸.”
“요새도 홍보 기사 내고 있죠? 한예대 의인들요.”
“그게 제일 효과가 좋으니까. 기자들도 조회 수가 좋으니 열심히 쓰고 있고.”
출품작 서류를 체크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그 학생들 작품은 출품했대?”
“아, 네. 접수 시작하고 2시간 후쯤 들어왔대요.”
“다행이네. 출품 안 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했는데.”
“맞아. 홍보까지 다 해놨는데 정작 출품을 안 하면 큰일이긴 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심사위원들이 그 작품 보고 있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홍보의 중심이 될 영화니까.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야 홍보에 쓰든지 말든지 하지.”
“영화가 좋으면 상도 주고.”
“상까지 받으면 진짜 영화 같겠어요.”
“난 오히려 뒷말 들을까 봐 걱정이던데.”
“그럴 것 같긴 해.”
접수팀의 수다가 이어지는 동안, 한예대 의인들의 영화 [화]를 보고 있던 심사위원들과 한국 독립영화제 관계자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
가장 젊은 홍보팀 팀장이 상스러운 욕이 나올 것 같아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부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어느덧 영화가 끝나고 엔딩 스크롤이 올라갔다.
낯선 이름들 속, 오래되어 낯설지만 그래도 깊이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보였다. 확인 사살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회의실.
침묵이 흘렀다.
“……이거……어떻게 하죠?”
그 물음에 독립영화협회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이번 독립영화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회의부터 합시다.”
* * *
[한예대 의인들이 만든 영화, 한국 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
[한국 독립영화제, 7일에서 10일로 기간 연장!]
[독립영화협회, 이번 영화제 참가 상영관 2배로 늘려!]
시간이 흘러 4월 중순.
10일 동안 진행될 한국 독립영화제의 첫날이 밝았다.
한 남자가 셀카봉에 카메라를 끼우고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이야…… 이 영화제에 매년 참석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래서 주최 측에서 기간과 상영관을 늘린 모양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투로 혼잣말을 하는 남자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몇몇 사람들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맞지?”
“어어. 맞아.”
몇몇이 얼른 너튜브를 켰다. 바로 앞에서 촬영하는 남자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휴대폰 화면에 나타났다. 그 옆으로 댓글들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영화객도 꽤 유명해진 듯. 여기 현장인데 다들 알아차렸어ㅋㅋ
-22 구독자만 해도ㅋㅋ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많이 알 듯.
-다 이서준 덕분이지. 조회수 많은 영상들 전부 이서준 작품이잖아ㅋㅋ
“맞습니다. 제 리뷰 영상를 조회 수대로 줄 세우면 그냥 이서준 배우 필모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니까요. 이서준 배우 없었으면 어떻게 밥 먹고 살았을지…… 아득해집니다.”
-ㅋㅋㅋㅋㅋ
-다른 리뷰도 재미있음ㅋㅋ
“해외에서 시청해 주시는 여러분들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 라이브 영상은 이후 편집되어 자막과 함께 업로드됩니다.”
하고 말한 영화객이 유창한 영어로 다시 한번 안내했다.
-근데 우리나라 독립영화제인데 외국인이 관심 있을까?
-그러게. 선댄스처럼 유명한 독립영화제는 아니잖아.
-선댄스는 뭐예요?
“선댄스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독립영화제입니다. 미국 유타주에서 개최하죠. 선댄스 영화제에서 나온 유명한 감독들과 배우들이 많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선댄스는 1985년에 시작됐는데 한국 독립영화제는 1976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헐. 우리가 더 빨랐네?
-그전에도 독립영화제는 있었음. 선댄스 영화제가 잘해서 성공한 거임.
“네. 그렇습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발굴한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독립영화제로 알려지기 시작한 거죠.”
영화객의 입에서 나온 거장의 이름에 시청자들이 ‘오, 그럴 만하네.’ 하고 댓글을 썼고, 현장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박물관에서 유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는 도슨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ㅋㅋ무슨 미술관 온 것 같다ㅋㅋ
-나도 지금 이어폰 끼고 듣고 있음ㅋㅋ
“예.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아무래도 일반인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라이브를 시청하시는 분들 중에도 오늘 처음 독립영화제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실 테니, 처음 온 듯 천천히 둘러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워킹맨이 원인인 듯.
-222 요새 홍보 기사도 많이 나오잖아.
“저도 봤습니다. 워킹맨. 연출이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 오늘 개막작을 설명해 드렸나요?”
-ㄴㄴㄴㄴ
-하지만 알지.
-22 기사를 그렇게 냈는걸ㅋㅋ
“네. 그렇죠. 영화 소개까지는 안 나왔지만요.”
영화객이 팸플릿을 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우르르 팸플릿을 펼쳤다.
-플래시몹이냐고ㅋㅋ
-되게 재미있어 보인다ㅋㅋㅋ
-선생님 아님? 선생님ㅋㅋ
-???: 156페이지 펼치고, 오늘은 4월 3일이니까. 12번 읽어보자.
-ㅋㅋㅋㅋㅋ
영화객과 주변 사람들,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먼저 팸플릿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에는 영화제에 대해 짧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기념품을 주는 이벤트들도 있고, 배우나 감독들과 만날 수 있는 행사들도 있네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많이 참가해주세요.”
영화객이 팸플릿을 넘기자 다른 사람들의 팸플릿도 넘어갔다.
“개막작과 폐막작 설명도 짧게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심사위원들이 뽑은 추천작이고, 이후 영화제 기간 동안 6회 상영됩니다. 보통 2, 3회 정도인데 상영관이 2배로 늘어서 그런지 많이 늘었네요. 어떤 작품이 좋을지 몰라서 헤매는 분들은 개막작과 폐막작을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럼 이동해 볼까요?”
-어디 가시는데요?
“개막식을 보러 갑니다. 아, 개막식은 이미 표가 매진됐으니 표가 없으신 분들은 다른 영화를 보셔야 할 겁니다.”
영화객을 따라 주섬주섬 움직이려던 사람들이 그 말에 아앗, 하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앗. 선생님 따라갈 뻔;;;
-여기 다 그럼ㅋㅋ
-나도 이동한다니까 짐 싸고 있었는데ㅋㅋ 개막식 표는 없어ㅋㅋ
-???: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진짜 도슨트냐고ㅋㅋㅋ
하하, 웃은 영화객이 걸음을 옮겼다. 아쉬움 가득한 눈빛들이 따라붙었다가 이내 휴대폰 화면으로 이동했다. 휴대폰 화면 속 영화객이 말했다.
“오늘 개막식은 압구정 CCV에서 열리고 식 이후 곧바로 개막작이 상영됩니다. 바로 워킹맨에 출연했던 한예대 학생분들의 작품이죠.”
-홍보 때문에 개막작으로 넣었나?
-작품이 좋아서 넣은 거 아닐까요?
-뭐, 제일 좋은 건 아니더라도 나쁜 수준은 아닌 듯.
“일단 봐야 알겠지만, 전 조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예대. 우리나라 최고의 예대잖아요. 그래서 다른 한예대 학생들 작품도 나중에 관람할 예정입니다.”
-저 내일 갈 건데 영화 추천 좀 해주세요!
“일단 상영작은 다 좋을 겁니다. 단편 1,632편, 장편 223편의 출품작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고르고 고른 128개의 작품이니까요.”
-물론 독립영화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음.
-진짜 갈립니다. 영화 소개 잘 보고 가세요.
-영화 소개 보고 가도 반전 있으면 숨겨서 어떤 내용인지 잘 모름.
영화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예를 들어 생존자들 감독판. 영화 소개만 보고는 결말이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거든요.”
-진짜 상상도 못 했음.
-이야…… PTSD 돋는 것 같은데ㅠ
“그래도 재미있을 겁니다. 감독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게 독립영화의 매력이니까요.”
-개막작은 어떤 줄거리임?
“제목은 화. 포스터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영화객이 시청자들에게 포스터를 보여주었다.
대문이 굳게 닫혀 있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서양식 2층 저택의 사진. 눈이 내린 듯 배경이 새하얬다.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붓글씨로 [화]라고 적혀 있었다.
-화면…… 불인가?
-그림도 있음. 꽃도 있고.
-분노가 아닐까?
-아님 그냥 캐릭터 이름이 화라든가.
-여튼 포스터 때깔 좋네. 영상미는 좋을 듯.
“영화 소개는 간단합니다. 한양에서 요양하러 온 무명 화가를 돌보게 된 산골짜기 농민, 민한의 이야기랍니다.”
-한양이라면 좀 옛날이야기인 듯.
-서양식 저택인 거 보면 개항 후?
-화가 그림이었군요.
-소개만 보면 잔잔히 흘러갈 것 같다.
-농민이 화가한테 그림 배워서 천재 화가 될 듯.
-22 벌써 영화 한 편 뚝딱.
“어떤 내용일지는 잠시 후, 짧게 리뷰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아, 개막식 행사 촬영은 이미 허락받았습니다.”
-어그로 차단.
-ㅋㅋㅋㅋ
영화객이 CCV 상영관 중 개막식이 열릴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얼굴이 최대한 나오지 않게 촬영하던 영화객이 처음으로 사람들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물론, 일반석이 아니라 배우, 감독 등 영화관계자들이 있는 초대석 쪽이었다.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 한 분 한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분은…….”
영화객이 배우와 감독, 작가 등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출연한 작품이나 경력 등을 설명했다.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을 눈치챈 배우들이 넉살 좋게 인사를 했다.
“오. 김종호 배우입니다. 딱히 설명해 드릴 필요는 없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참여한 배우니까요! 그리고 함께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김종호 배우와 함께 영화 ONE에 출연했던 이지석 배우, 이번 영화에서 악역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낸 박도훈 배우, 드라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다진 배우까지. 이서준 사단이네요!”
개막식장 안으로 들어오던 네 배우가 자신들을 찍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에 빙그레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짧게 환호성이 나왔다.
-근데 이서준이 없음.
-곧 들어오는 거 아님?
“그러게요. 좀 기다려 볼까요?”
하지만 영화객과 시청자들의 기대와 달리, 개막식이 시작할 때까지도 이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라이브에 찾아온 새싹들과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안 오나 봄.
-뭐, 맨날 같이 다닐 수는 없지.
-이서준 없는 이서준 사단ㅋㅋㅋ
[지금부터 한국 독립영화제 개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영화객이 앞의 단상 쪽으로 카메라를 고정했다.
단상 위로 한국 독립영화제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부터 독립영화에 많은 관심을 쏟아부었던 배우와 감독, 독립영화협회장 등이 나와 개막 선언, 폐막식에 있을 수상 부문 소개, 독립영화의 미래 등을 짧게 이야기를 하고 얼른 내려갔다.
들뜬 걸음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한국 독립영화제에 제법 참석해 본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렇게 짧게 끝나요?
-ㄴㄴ 나 작년에도 봤는데 네 배는 길었음.
-22 누가 짧게 하라고 건의한 거 아님?
-누군진 몰라도 잘했다.
-ㅋㅋㅋㅋ
-근데 다들 독립영화 정말로 좋아하나 보다. 다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
-22 마치 복권 당첨된 것 같은 얼굴.
영화객도 같은 생각이었다.
여느 때보다 관계자들의 표정이 좋았다. 들썩들썩한 분위기와 빠른 진행에, 문득 개막작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작품인가?’
기대가 한층 쌓였다.
-오. 한예대 의인들 올라온다!
무대 위로 개막작 [화]를 연출한 감독 황지윤과 배우 황도윤, 김성식, 정은미가 올라왔다. 한예대 의인들을 본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저 배우가 주인공인가?
-화가는 누구야?
“안녕하세요. 영화 화의 감독 황지윤입니다.”
마이크를 잡은 황지윤 감독이 입을 열었다. 상기된 얼굴과 반짝이는 눈에서 기쁨과 벅참이 보였다.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오랫동안 꿈꿔온 작품이 있죠.”
황지윤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께 보여드릴 영화, 화는 제가 중학생 때부터 떠올렸던 작품입니다. 어떤 감독님은 작품이 완벽해질 때까지 촬영을 미루시지만, 저는 맛있는 건 제일 먼저 먹어서 그런지 첫 장편 작품을 꼭 이 작품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죠. 특히 배우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안 계신 분도요.”
엑스트라를 말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서준 사단과 주최 측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배우분들과 함께, 고생한 촬영팀, 소품팀, 음향팀, 조명팀, 음악팀 팀원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쪽에서 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화]팀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든 작품입니다. 실력은 조금 부족할지 모르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황지윤 감독과 배우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개막작, 화를 관람하시겠습니다.]
단상 위에 있던 사람들이 내려가고 올라와 있던 물건들도 치워졌다. 개막작을 관람할 시간이었다.
분주한 가운데, 영화객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영화 끝나고 곧바로 짧게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넵!
-빨리 와요!
-리뷰 듣고 볼지 말지 결정해야겠다.
-22
-난 미리 사놔야겠음. 개막작이면 볼만하겠지.
-개막장이 아니라?
-ㅇ 하나로 달라지는 단어의 신비ㅋㅋ
곧 상영관이 어두워졌다. 카메라를 끈 영화객이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크린에 빛이 비치고.
한국을 아주 들썩거리게 만들 영화 [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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