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80화
>황지윤 : [화] 가편집 시사회 합니다.
>황지윤 : 날짜) 3월 8일
>황지윤 : 장소) 한예대 영화과 영상시청실 2.
“어? 서준아!”
서준이 영상시청실의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려던 때, 미술팀장 유서영이 미술팀과 함께 걸어왔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고 미술팀 팀원들도 반갑게 서준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들어가는 거야? 다른 애들은?”
[화]팀의 스태프로 참여했던 연기과 1학년, 아니, 올해 2학년으로 올라간 서준의 동기들을 뜻했다.
“아직 수업이 안 끝나서요.”
“응? OT면 빠져도 되지 않아?”
“전공 수업이라서요.”
“아…….”
“교수님들 수업에 빠지면 큰일이지.”
“얼굴 알고 계시면 더 큰 일이고.”
“우리도 어제 그랬잖아. 서로 다 알고 있지? 그럼 수업 시작하자. 라고 하시더니 진짜 꽉 채워서 수업하시고.”
그랬지, 하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서준이 넌? 수업 안 들어가?”
“아, 전 휴학했어요.”
“……휴학?!”
유서영과 미술팀의 눈을 크게 떠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아…… 영화 촬영해?”
“기사는 못 봤는데…….”
서준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영상시청실의 문이 열렸다. 방음을 위해 두껍게 만들어진 문을 연 사람은 황도윤이었다.
“오. 다들 왔네? 근데 왜 안 들어와?”
“이제 막 들어가려고 했어요. 형은 어디 가세요?”
“영화 보면서 먹을 간식이나 사 올까 하고.”
“아. 그럼 저도 같이 갈까요?”
“아냐. 다른 애들한테 연락했어. 들어가 봐.”
활짝 웃은 황도윤이 서준과 미술팀을 영상시청실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서준이 영상시청실 안을 둘러보았다. 앞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에 계단식으로 놓여져 있는 푹신한 의자들. 마치 자그마한 영화관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다 같이 왔네.”
“앞에서 만났어.”
미리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던 영화과 학생들이 서준과 미술팀을 반갑게 맞았다.
“여기 앉아. 여기.”
“여기가 명당이야.”
그동안 여기서 수업을 들은 경험으로 서준과 미술팀에 스크린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알려주는 영화과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먼저 도착해 있던 학생들이 있었다. 강원도 촬영까지는 따라오지 못했지만, 12월부터 편집이 끝날 때까지 권세아와 함께 음악을 녹음했던 음악팀이었다.
“……세상에…….”
음악팀은 눈도 깜짝 안 하고 서준을 보고 있었다.
음악을 넣을 부분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화]의 영상들을 보기도 했고, 음악 녹음도 코코아엔터에서 해서 출연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니, 이제야 정말로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서준 오빠.”
“안녕. 세아야. 안녕하세요.”
“안, 안녕하세요!”
진짜 배우 이서준이었다.
어디서 ‘미쳤다……’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서준을 처음 봤을 때, 자신들이 그런 마음이었다.
서준과 유서영과 미술팀이 자리에 앉았다.
“내레이션 녹음이랑 음악 녹음 코코아엔터에서 했다며?”
“네. 가수팀이 쓰는 녹음실이 있어서요.”
서준의 대답에 권세아와 음악팀이 녹음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코코아엔터의 녹음실은 녹음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사용할 수 있어서 편했다. 게다가 유명 아이돌들이 녹음하는 곳이라 시설도 좋았다.
바로 작년에 블루문이 녹음했던 곳이라는 엔지니어의 설명에 음악팀 중 몇몇(블루문 팬이다)은 얼마 동안은 숨도 못 쉬기도 했다.
“어땠어?”
권세아와 음악팀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음악은 아직 못 들었구요.”
아…….
묘하게 안심이 되면서도 긴장되는 말이었다. 이제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듣는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내레이션은 좋았어요.”
황도윤, 황지윤 남매와 김세연과 함께, 여러 가지 버전으로 녹음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오. 기대되는데?”
박우진 등 영화과 학생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잠시 후.
무대미술과 학생들이 들어오고, 중년배우 김성석과 정은미가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두 손 가득 간식을 사 온 황도윤과 연기과 학생들이 영상시청실로 들어왔다.
“팝콘!”
“음료수 있어요!”
각자 영화를 보면서 먹을 간식을 챙기고 자리에 앉았다.
“다 도착했어?”
“응.”
김세연과 함께 뒤쪽 사무실에서 나온 황지윤의 물음에 황도윤이 대답했다.
단상 위로 올라간 황지윤이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기대를 감추지 않는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감독 황지윤입니다.”
오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2월 이후로는 거의 만나지 못한 팀원들이지만, 어색함은 잠시였다. 다시 시끌벅적했던 11월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황지윤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가편집본을 상영하게 돼서 좋네요. 이제 종이를 나눠드릴 텐데 가편집본에서 마음에 든 장면, 마음에 안 든 장면을 적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안 든 장면 없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
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쾌한 팀원들에 황지윤도 웃으며 말했다.
“뭐든 편하게 적어주세요. 아, 그리고 영상 시청 후에 회식 있는 거 잊지 마시고요.”
“오오오!!”
“어째 아까보다 박수 소리가 큰데?”
박우진의 말에 다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김세연과 영화과 학생 몇몇이 펜과 종이를 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여기 종이랑 펜. 익명이니까 이름은 쓰지 말고.”
서준도 종이와 펜을 받았다.
황도윤이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 대강의 흐름을 봤지만, 가편집본에서는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종이에 적히는 평가로 또 한 번 바뀔 수도 있었다.
‘물론 선택하는 건 감독이지만.’
황지윤과 김세연도 자리에 앉자, 떠들썩한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황지윤은 리모컨으로 영상시청실의 모든 조명을 끄고, 다른 리모컨으로 빔프로젝터를 켰다.
천장에서 출발한 밝은 빛이 스크린에 닿았다.
후우.
긴장감에 깊은숨을 내쉬는 황지윤이 스크린에 떠오른 화면을 보며 리모컨의 재생 버튼을 눌렸다.
* * *
“와…… 나 계속 울었어.”
“저도요.”
“이렇게 편집된 거 보니까 장난 아니에요.”
“음악도 그래. 진짜 잘 어울리더라.”
한예대 근처 작은 고깃집.
아예 가게를 통째로 대여한 [화]팀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영화 [화]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물론, 손은 빠르게 잘 달구어진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고 있었다.
“내레이션이 진짜…….”
“담담하니까 내가 더 울컥하더라.”
울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닌 듯, 눈가가 벌겋게 변한 팀원들이 많았다.
“도윤 선배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 줄은 처음 알았어.”
“맞아.”
“나도 그래.”
“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리자, 황도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으하하하. 웃음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고기가 다 익자,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상추!”
“양파 있어요?”
“여기 잔 3개만!”
음악팀이 멍한 얼굴로 [화]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상추! 라고 외치면 채소는 안 먹는 육식파 테이블에서 상추를 건네주고 양파! 라고 외치면 반찬코너에서 리필하고 있던 팀원이 한 그릇 더 퍼서 전달해 주고, 잔 3개! 라고 외치면 컵과 가까이 앉아 있던 팀원이 조금의 지체도 없이 전달해 주었다.
없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술과 음료수, 고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세아야. 이분들 왜 이렇게…… 잘 맞아?”
“하핳. 그게요. 아, 여기 소금 있어요.”
옆 테이블에서 소금을 찾자, 권세아 또한 익숙하게 소금을 건네주었다. 11월 한 달 동안 익숙해진 [화]팀의 단합력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배를 채우고 난 후, 다시 한번 [화]에 대한 감상으로 떠들썩해졌다.
“근데 저 너무 넋 놓고 보느라 종이에 적는 거 깜빡했어요.”
“나도.”
“맞아. 적을 정신도 없었어.”
“어쩐지, 다들 백지더라.”
김세연의 말에 팀원들이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지금이라도 말해봐.”
황지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모로 꼬았다.
“으으음. 다 좋아서요. 마음에 안 들었던 장면은 없던데요?”
“나도.”
“저도요.”
가볍게 대답하는 것 같지만 다들 진심이었다.
“아니, 다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해? 서준아, 너는 어때?”
팀원들의 극찬에도 왠지 더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초조해하던 황지윤의 물음에 고기를 굽고 있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다 좋던데요? 편집도 좋고 영상도 좋고, 눈 밟는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음향도 잘 어우러지고 배경 음악도 정말 좋았어요.”
확실히 권세아가 이쪽에 재능이 있나 보다.
약할 때는 약하게, 강할 때는 강하게. 그러면서도 영상보다 튀지 않게 아주 잘 작곡했다.
서준의 대답에 음악팀이 앉은 테이블에서 짧게 환호성이 들렸다.
“아니. 그럼 이대로 영화제에 출품해?”
“네.”
“그래요.”
“그래.”
한없이 낙천적인 대답에 황지윤이 머리를 싸맸다.
“너희 너무 태평한 거 아니냐고!”
하하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에 대한 이야기와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서준의 휴학 이야기도 나왔다.
“서준이 너 휴학했어?”
“네. 일이 좀 있어서. 그래서 영화제 참석도 못 할 것 같아요.”
눈을 동그랗게 떴던 팀원들이 눈알을 데굴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
서준이 황지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팀원들이 속닥거렸다. 묘하게 들뜬 표정들이었다.
“서준이 비밀리에 영화 찍는 건가?!”
“‘슈’로 시작해서 ‘로’로 끝나는 장르로?”
“‘쉐’로 시작해서 ‘맨’으로 끝나는 영화, 후속작으로요!?”
서준 리의 나이를 보면 한 번쯤은 할 것 같다는, 소문만 무성한 슈퍼 히어로 영화.
나온다면 앞 시리즈와 이어지는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하는 쉐도우맨 후속작.
그리고 마린사 시즌2를 시작하면서 새로 나오기 시작한 히어로들.
마린사 팬들이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입 다물고 있자.”
“응!”
“네!”
다들 기사가 나올 때까지 비밀로 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설마 그 시간이 1년이 넘을 거라고는, 그리고 영화 촬영 때문이 아니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 * *
3월 10일.
자정부터 SNS가 떠들썩했다. 미리 [새싹부터]를 살펴보던 기자들이 올린 기사들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 뭔 날이야?
=이서준 생일.
=아하.
-올해는 뭘 하려나?
=이번엔 소소하게 간대. 생일 축하 메시지+기부
=하지만 금액은 소소하지 않지.
=생일 축하 메시지도 전혀 소소하지 않은데?
=22 벌써 실검 올랐구요.
=33 하루 종일 있을 듯.
=ㅋㅋㅋㅋㅋ
-이서준 팬들 어디다가 기부함?
=그건 왜?
=이서준 팬들이 기부하는 곳은 문제가 없는 곳이라서. 나도 기부하려고.
=22 다들 무슨 금융감독원급으로 살펴보더라;;;
=믿을 만한 곳이 없으면 아예 시설에 직접 기부하던데?
=대단하네……
-이번 기부는 환경 보호하고 어린이 보호쪽. 바벨탑 연설이랑 숲 속의 병아리반 때문이래.
=글쿤. 어린이 보호 쪽으로 알아봐야겠다.
=22
=난 환경 보호.
<서준아! 생일 축하해!>
팬카페 대문부터 서준의 생일 축하로 가득한 [새싹부터]는 게시판들도 서준에게 보내는 축하의 편지들로 가득했다.
서준은 빙그레 웃으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답장을 써 내려갔다.
* * *
3월 15일.
육군훈련소로 향하는 차 안에 묘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평상시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가끔 대화가 멈출 때마다 묘한 침묵이 남았다.
>미나 : 잘 다녀와.
>지윤 : 몸 조심하고!
>지후 : 휴가 나오면 보자.
>지오 : 잘 다녀와라!
소꿉친구들 이외에도 많은 지인들에게서 쏟아지는 메시지. 에반 블록과 리첼 힐 등 할리우드 지인들도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서준은 답장으로 보내다가 앞좌석을 살펴보았다. 아빠도 엄마도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가장 걱정 없는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빨리 도착했네.”
훈련소 근처.
아직 쌀쌀한 날씨에 겉옷을 입은 오늘 입대하는 청년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짝 깎은 머리를 숨기기 위해 모자를 쓴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홀로 있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감정에 잠겨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눈치였다.
서준과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길에 점심을 먹은 서준과 부부는 좀 더 오래, 작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민준과 서은혜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 이제 1년 4개월 동안은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생일이 지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입대라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먹먹했다.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 잘 다녀올게.”
“……그래. 요샌 휴대폰도 쓸 수 있다니까. 연락하고.”
“응. 자주 할게.”
“면회 자주 올게. 아들.”
“응. 기다리고 있을게.”
서준은 그 말속에 담긴 걱정을 달게 받아들였다.
잠시 후.
“입영 장병들 집합!”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외침에, 밖에 있던 청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서준도 모자를 벗고 짐을 챙겨 들었다가, 다시 바닥에 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사이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부모님이 보였다.
서준이 뒤돌아볼 줄은 몰랐던지 얼른 눈물을 닦아내려고 웃으려는 모습에, 서준은 활짝 웃으며 어느새 자신보다 작아진 부모님을 꼬옥 껴안았다.
“몸조심해서, 건강하게 다녀올게. 엄마 아빠.”
눈물이 목까지 차오른 것 같아, 이민준과 서은혜는 ‘그래.’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서준을 꼭 껴안았다.
한 번 더 집합하라는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짐을 들고 다시 한번 부모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연병장으로 내려왔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바짝 깎은 머리의 서준만 계속 바라보느라, 서은혜와 이민준은 다른 사람들이 서준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입소식이 시작되고 자잘한 행사를 거쳐 여기까지 함께 와준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때가 되었다.
“부모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그 누구보다 반듯한 모습으로 거수경례를 한 서준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1년 4개월.
이서준의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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