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576화 (57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76화

“영화 촬영 끝났지?”

안다호의 물음에 오랜만에 코코아엔터에 들른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네. 서울에서 찍어야 하는 것도 다 찍었어요. 이제 편집하고 도윤이 형이 내레이션만 넣으면 돼요. 그게 꽤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말이에요.”

“첫 영화니까 감독님이 많이 고민하시겠지.”

대본의 순서대로 편집해 보기도 하고, 순서를 바꿔서 편집해 보기도 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을 빼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장면을 넣기도 하면서 황지윤 감독은 천천히 [화]를 완성해 나갈 터였다.

“그래도 영화제 제출 마감 전에는 끝날 거예요. 아, 그리고 나중에 도윤이 형 내레이션 연습, 돕기로 했어요.”

“그래?”

하긴, 서준은 다큐멘터리 [지금 우리는/바다에 있다]에서 내레이션을 해본 적이 있으니 제법 도움이 될 것 같긴 했다.

“뭐, 영화 내레이션이랑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그래서 더 기대돼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눈을 빛내는 서준에 안다호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찍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연습을 돕는 것뿐일 텐데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엘리베이터가 8층, 배우들의 연습실에서 멈추었다.

서준이 흥미로운 얼굴로 문에 달린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가장 큰 연습실에서 코코아엔터 소속 배우들이 연기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다들 눈도 깜빡하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에 서준의 마음까지 들썩였다.

“자, 수업 방해하면 안 되지.”

안다호가 웃으며 연습실로 이끌자, 서준이 아쉬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어때요?”

“잘하고 있어. 내년부터는 오디션도 본격적으로 볼 거고 매니저들도 붙을 거야.”

연기팀을 총괄하는 이사 안다호가 말을 이었다.

“서준이 네 새 매니저는, 네가 군대 다녀올 동안 뽑아서 가르치려고. 눈 여겨둔 사람들도 있고.”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안다호는 서준이 활동하지 않는 1년 4개월 동안, 새 매니저 후보들을 뽑아 여기저기 많은 경험을 하게 한 후, 그중 가장 어울리는 후보를 서준의 매니저로 배정할 생각이었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호 형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을 매니저로 붙여줄 테니 걱정 따윈 없었다.

한 달 만에 자신의 연습실에 온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려 주위를 살폈다. 깔끔하게 치워진 연습실. 떨어진 종이 한 장 없다. 서준이 시무룩해졌다.

“진짜 깔끔하게 치웠네요. 다호 형.”

대본이 하나도 없다.

시놉시스 비스무리한 것도 없다.

“마음에 드는 작품 있으면 촬영한다고 미룰 거잖아. 얼른 군대 다녀와서 촬영해.”

의자를 옮기며 말하는 안다호에 천장에 설치된 스크린을 내리고 있던 서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생각이 전해졌는지, 눈이 마주친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웃고 말았다.

“입대 신청, 다음 주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네. 맞아요.”

“입대 날짜 정해지면 바로 알려주고…… 그러고 보니 그전에 워킹맨 방송을 하네. 참 어떻게 그렇게 자주 만나는지…….”

그러게 말이다.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젓는 안다호에 서준이 킥킥 웃었다.

“그럼 재미있게 봐.”

“네.”

안다호가 연습실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자, 서준은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늘은 여기 연습실에서 투표할 영화들을 볼 생각이었다.

집 연습실에서 보는 것도 좋았지만, 가끔은 장소를 바꿔가며 보는 것도 좋았다.

“오늘 볼 게…….”

손에 든 리모콘으로 재생 버튼을 누른 서준은 스크린에 비치는 영화를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 * *

SBC 예능국.

[워킹맨!] 제작진은 마지막 편집 전 [휴게소 식당 편]을 함께 보고 있었다. 다음 방송을 기획하느라 편집본은 처음 보는 작가가 입을 열었다.

“한예대 학생들 장면 많이 빠졌네요.”

아무도 없을 때 첫 손님으로 와서 [워킹맨!] 멤버들과 이것저것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한예대 학생들이었는데, 분량은 다른 손님들보다는 많았지만 예상보다는 적은 정도였다.

그 말에 전민재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재미있는 장면도 많이 나왔고, 중요한 건 주차장 장면이랑 터널 사고랑 관련된 일이라서. 지방 방송은 다 뺐지.”

백구 이야기라든가. 촬영할 때 있었던 일이라든가.

[워킹맨!] 멤버들이 흩어져 한예대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소소한 장면은 대부분 잘려 나갔다.

전 피디의 말에 다들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상할 것은 없다.

원래 12시간 넘게 촬영해도 재미없는 부분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다쳐내고 90분 분량으로 만들어내는 게 방송이었으니까 말이다.

“한예대 학생들 인터뷰는?”

“아, 그게 인터뷰는 해줬는데, 이서준 배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황도윤 학생도?”

“네.”

제작진의 입에서 아쉬움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른 과 학생들은 진짜 모를 수도 있지만, 황도윤 학생이 연기과 학생회장이라서 조금 기대했는데……”

머리를 벅벅 긁은 전민재 피디가 아쉬움을 뒤로 넘기고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홍보는 해주자고. 무슨 영화제였더라?”

“한국 독립영화제요. 4월에 있어요.”

“그럼 그것도 자료화면으로 조금 넣어두자.”

홍보한다고 얼마나 관심을 끌겠냐마는, 열정이 가득하던 한예대 학생들이나 영화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 일터였다.

“그럼 편집은 이대로 가는 걸로 하고.”

“네.”

“아, 그리고 미방송 촬영분은 남겨둬.”

책상 위 종이들을 정리하며 별생각 없이 말하는 전민재 피디.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받으면 자료화면으로 쓸 수도 있으니까.”

설마, 그게 신의 한 수가 될 줄은 전민재 피디도, 제작진도 전혀 알지 못했다.

* * *

일요일 오후.

[화]팀 단톡방이 들썩였다.

>오늘 워킹맨 방송!

>우리 얼마나 나왔으려나!

>꽤 오래 나오지 않을까요?

곧 SBC [워킹맨!]이 방송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나오면 서준이 들키는 거 아니에요?

>글쎄. 현장에서도 안 들켜서…… 안 들킬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봐도ㅋㅋ왜 숨겼는지 모르겠어ㅋㅋ

>밝혀질 때는 엄청 난리 나겠어요.

>아, 서준이 너 신검 했다며!

서른두 명이 있는 단톡방은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서준의 신검 이야기였다가, 곧 다가올 시험 이야기였다가, 졸업하는 4학년들 이야기였다가, 이제 4학년이 되어 졸작을 만들어야 하는 3학년들의 한탄이었다가, [워킹맨!] 인터뷰로 받은 상품권 이야기였다가.

>인터뷰가 필요하면 서준이가 직접 하겠지, 하고 안 했지.

>저도요!

>끈질기게 물어볼 줄 알았는데, 모른다고 하니까 그냥 넘어가더라.

>ㅇㅇㅇㅇ

시끌벅적하던 단톡방이 잠잠해진 것은 [워킹맨!]이 시작하고 나서였다.

“서준아. 시작한다.”

“응.”

휴대폰에서 시선을 뗀 서준이 TV를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서은혜와 이민준도 서준과 [화]팀이 나온다는 소식에 흥미로운 얼굴로 [워킹맨!]을 보고 있었다.

* * *

-저번 주 돈가스 VS 제육볶음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이야ㅋㅋㅋ

-22 한 주로 끝나나 했더니ㅋㅋ

지난주 방송된 [워킹맨!]

오프닝에서 돈가스와 제육볶음 중 좋아하는 음식을 골랐던 [워킹맨!] 멤버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져 각 요리의 재료를 게임으로 얻고 마지막 게임에서 그 요리를 완성하는 미션을 진행했었다.

그렇게 승리한 제육볶음팀과 패배한 돈가스팀에게 청천벽력 같은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촬영에서는 진짜 식당에서 영업해 보겠습니다.”

……?!

잠시 이해 못 하다가 뭐어어?! 하고 기겁하는 멤버들의 모습으로 지난주 [워킹맨!]이 끝났다.

그리고 오늘.

“이제 식당 영업까지 하라고?!”

저번 편과 이어진 [워킹맨!- 휴게소 식당 대결 편]은 멤버들의 우렁찬 외침으로 시작되었다.

“아니, 봤잖아. 양파 잘리지도 않은 거? 그걸 팔라고?!”

“이 겉은 다 타버리고 속은 거의 육회나 다름없는 돈가스가 정말로 시청자분들의 입에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전 피디님!?”

로 시작된 멤버들의 아우성은 얼마 안 가 멈추었다. 이래 봤자 씨도 안 먹힌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진짜로 우린 못 해…….”

“레시피와 만드는 방법은 셰프님이 가르쳐 주실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식당까지 같이 가실 거예요.”

5성급 호텔 셰프!

구세주의 등장에 멤버들이 있는 힘껏 박수를 쳤다.

경력 많은 셰프는 요리 잘하는 멤버와 못하는 멤버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일을 맡겼다.

-정훈ㅋㅋ 돈가스 고기만 두드리고 있어ㅋㅋ

-힘 봐라ㅋㅋ아주 종이가 될 것 같은데ㅋㅋ고기는 1도 안 씹히는 돈가스냐고ㅋㅋㅋ

-박영진 양배추 잘린 거ㅋㅋ왜 전등에 비춰보는 건데ㅋㅋ

-222 저런 건 보통 무 썰 때 하는 거 아니야?ㅋㅋ

-박영진 쫓겨나서ㅋㅋ 소스 휘젓고 있음ㅋㅋ

그리고 멤버들이 일주일 동안 각자의 집에서 연습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한 우물만 파니, 실력이 나아짐.

-메모)한 우물만 파자.

-ㅋㅋ아니, 멤버들은 팀원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곸ㅋㅋ

-22 보통 한 우물만 파면 큰일 나지ㅋㅋ

-33 양배추 썰기만 잘하면 뭐해요ㅋㅋ돈가스를 못 만드는데ㅋㅋ

-양배추 냠냠.

만만의 준비를 한 멤버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제법 큰 규모에 놀란 멤버들은 곧장 영업 준비에 들어갔다.

“아니, 우린 쫓고 쫓기는, 추격전 하는 프로잖아? 이젠 요리도 해야 해?!”

하고 외치던 박영진은 최소희의 말에 조용히 다시 소스를 젓기 시작했다.

요리도 요리지만, 멤버들은 오디오가 비지 않게 신경 썼다.

“맛이야 셰프님 레시피라 괜찮지만…… 만드는 게 우리잖아.”

“……그건 그렇지.”

-그건 그렇지.

-맛있는 레시피야 인터넷에 많지만…… 내 손이 고자인걸.

-엄청 간단한 레시피도 내가 하면 망하더라.

-22 넣으라는 대로 넣는데…… 희한해……

일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워킹맨!] 방송이 이어졌다.

“……근데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야?”

[휴게소 소장님도 처음 보는 한적함!]이라는 자막과 함께, 각 구역에 설치된 카메라 화면이 보였다. 진짜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고요함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손님이 없어서 망하나 보다.

-ㅋㅋㅋㅋㅋ

-그건 아닐 듯. 손님 많았다던데?

-이제 SNS로 홍보할 듯.

[제작진! 긴급회의 후 SNS 홍보 결정!]이라는 자막이 뜨고 웅성웅성할 때, 드론 카메라에 휴게소로 들어오는 차들이 보였다. [워킹맨!] 멤버들이 반색하는 모습이 화면에 드러났다.

-오오!

-왔다!

-근데 다 일행인가?

-관광버스에 탑차에 승합차까지. 희한한 조합이네.

>우리 나왔다!!

>이렇게 보니ㅋㅋ 웃김ㅋㅋ

>어쩐지ㅋㅋ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그냥 갈 것 같으니까 달려오짘ㅋ

<워킹맨도 많이 당황했겠어요ㅋㅋ

때마침, 버스에서 내린 팀원들이 드론을 보더니 다시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 저 때 엄청 뿌듯했는데.

<ㅋ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이제야 상황을 알게 된 서준과 [화]팀이, 열심히 촬영하라고 비켜주자고 말했던 촬영팀 4학년의 메시지에 웃음을 터뜨렸다.

“어, 어?! 저 손님들 다시 버스에 타는데?!”

진심이 가득한, 제작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허둥지둥대는 멤버들, 그리고 앞치마를 펄럭이며 달려가는 박영진과 정훈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빵 터졌다.

-아니ㅋㅋ저 손님들은 왜 돌아가는 건데ㅋㅋ

-???: 어? 여기 망했나?

-ㅋ근데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ㅋㅋ나라도 그냥 갈 듯ㅋ

-고기 많이 드릴게요ㅋㅋ

-5성급 호텔 셰프님 있어요ㅋㅋ

-근데 만드는 건 워킹맨ㅋㅋㅋ

박영진과 정훈의 간절한 외침을 들어준 손님들이 차에서 내렸다. 추운 겨울바람에 겉옷으로 꽁꽁 싸매고 휴게소 식당으로 이동했다.

텅 비어있던 식당이 떠들썩해지고, 주방 안에 있던 [워킹맨!] 멤버들도 바빠졌다. 첫 손님부터 단체 손님이었지만,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음식은 금방금방 나왔다.

“영화 촬영인 줄 알았다고요?”

요리 중에는 예능 촬영인 걸 잠시 잊을 정도로 집중하던 멤버들이 밖으로 나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국예술대 학생들/영화 촬영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자막이 나타났다.

-오…… 영화 촬영팀이었구나. 대학생인 듯.

-그래서 영화 촬영인 줄 알고 비켜줬구나. 다들 착한 듯.

-의도는 착했지만ㅋㅋㅋㅋ

-한예대면 이서준 학교 아님?

-학생들끼리하는 영화 촬영인데, 이서준이 있겠냐?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나왔다.

“이 글…… 여러분 이야기 아니에요?”

최소희의 휴대폰 화면을 본 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목: 고연에서 제 아내와 아이를 도와주신 분들을 찾습니다.]

-아! 나 저거 알아!

-저게 뭔데?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화면이 바뀌었다.

SBC 뉴스였다.

[기적입니다. 많은 사상자를 낼 거라고 추측하던 ○○터널 9중 충돌 사고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터널에 있던 요구조자들은 모두 구조됐으나 많은 중상자들이……]

[현재 ○○터널에서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려……]

[○○터널에서 9중 충돌 사고가 일어났습……]

단정하게 입은 아나운서들의 말에 따라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어어?! 저 차 왜 저래!?]

한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터널 사고 직전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영화 연출이에요?

-……이거 워킹맨 맞지?

CCTV 화면으로 ○○터널 앞이 보였다. 평화롭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려는 세 대의 관광버스가 보인다. 앞서 사고 장면에 나왔고 뉴스에서 줄곧 이야기하며 안타까움을 더했던 효도 관광버스라는 걸 시청자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마치 되감기를 한 듯, 그 세 대의 버스는 앞이 아닌 뒤쪽으로 이동했다. 터널에서 도로로, 도로에서 시내로, 세 대의 버스는 뒤로 이동했다.

-근데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

-그러게……?

화면이 잠시 멈췄다 다시 움직였다.

이제 관광버스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 함께 달리고 있던 승합차 위로 노란색 원이 생겼다. 이 차를 주목하라는 듯 보였다.

승합차는 관광버스와 같은 목적지로 가는 듯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그대로 터널로 들어가 9중 충돌 사고에 휩쓸릴 것 같았다.

-어? 멈췄다.

승합차가 도롯가에 멈추자, 승합차를 쫓던 CCTV 화면도 멈추었다. 관광버스는 그대로 계속 움직이고 있어 곧 CCTV 앵글 안에서 사라졌다.

멈춘 승합차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화질이 나빴지만 상황은 충분히 보였다.

나무 아래 벤치로 달려가는 두 사람.

그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벤치에 앉은 사람 앞에 쭈그려 앉고, 남은 한 사람이 다시 차로 뛰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CCTV 화면이 몇 배속으로 재생되었다.

승합차에 있던 사람들과 주변에 있던 주민들이 벤치로 몰려왔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웅크린 채 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 아픈가?

-그러게.

그때, 소리가 들렸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급박한 소리에, 두 사람이 도로를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구급차 온 듯.

그런데 한 대가 아니었다.

여러 대의 소방차와 구급차들이 승합차를 지나쳐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눈을 끔벅였다. 화면 속 승합차에서 내린 사람들도 같은 마음인지 멀어져가는 소방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왜 그냥 지나가……! 헉!

문득,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앞서 보여줬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헐. 미친!

-뭐야 이게……

그 생각을 확신시켜 주듯, 화면은 소방차들을 따라 움직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터널 9중 충돌 사고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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