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74화
“서준아! 안녕!”
“잘하고 왔냐?”
약 4주 만의 등교. 친구들이 서준을 반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준이 미국에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영화 [화] 촬영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응. 엄청 재미있었어.”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서준의 모습에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영화도 대박이겠네.”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눈에 보인다. 보여.”
“나도 촬영만 아니었으면 참가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들을 수업은 연기과 1학년 전공 수업으로 역대 영화제 수상작들에 대한 분석과 평론, 대중들의 반응들에 대해 알아보는 강의였다.
영화의 어떤 점들이 심사위원에 마음에 들어 상을 받게 됐는지, 심사위원에 따라 심사 기준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평론가들에게 극찬받았지만 그다지 흥행하지 않았던 영화와 평론가들의 반응은 별로였지만 크게 흥행한 영화들을 알아보기도 했다. 물론 평론가들과 흥행, 두 가지를 모두 잡은 영화들도 빠짐없이 알아보았다.
그런 것들을 알아보면서 학생들의 작품 보는 눈을 키워주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였다. 영화감독 못지않게 작품을 잘 선택해야 하는 것이 배우니까 말이다.
‘9월이 칸이었고 10월이 베니스.’
프린트를 팔랑팔랑 넘기는 서준에게 김주경이 말했다.
“11월은 베를린이었어. 이번 달부턴 아카데미래.”
수업은 3대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 위주로 진행되었다.
다른 영화제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3대 영화제와 아카데미 수상작이 다른 영화제들의 상을 싹쓸이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카데미라…….”
“서준이 영화도 나오겠네.”
김주경과 양주희의 말에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친구들이 작게 웃었다.
“칸 때도 나왔지. 흘러가다.”
친구가 나온 영화로 수업을 한다니, 정말 재미있는 일이면서도 감탄이 나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덧 수업 시간이 되었다. 강의실의 문이 열리고 연기과 교수가 들어왔다.
“자, 다 왔나요? 그럼 수업 시작할게요.”
약 4주 만의 수업에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 * *
“진짜 워킹맨이랑 서준이 너랑 뭐 있는 거 아니야?”
“그러게. 어떻게 그렇게 딱 만날 수가 있지?”
점심시간.
학교 근처 철판 닭갈비집에, 세 명씩 두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서준과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촤아악! 뜨거운 철판 위에서 빨간 양념의 닭갈비가 맛있게 익어갔다.
“그래도 이번엔 정체 안 밝혔다며?”
“응.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겨울이라 옷을 두껍게 입은 데다가 팀원들도 많아서 그런지 못 알아보시더라.”
물론 숨 쉬듯 일코하는 서준과 무의식중에 서준을 숨긴 팀원들의 탓도 있었다.
“워킹맨…… 나중에 알고 되게 아쉬워하겠네.”
“그러게. 언제쯤 밝혀지려나? 화 개봉하고 난 후에?”
“방송하면 알아보는 서준이 팬분들이 있지 않을까?”
또 한 번 난리 날 것 같은 상황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닭갈비가 타지 않게 나무 주걱으로 휘젓던 전성민이 물었다.
“그럼 이제 다른 스케줄은 없는 거야?”
“일단, 화 촬영이 조금 남았어. 근데 그건 하루만 촬영하면 되는 거라 금방 끝나.”
다 익은 닭갈비를 보고 가스 불을 낮춘 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신검을 받아야 해. 올해는 12월 10일까지더라고.”
……오…….
닭갈비를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던 친구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신검, 정확히는 병역판정검사.
이 신체검사로 1급부터 7급까지 나누어지며, 후에 어떤 곳에서 복무를 할지 정해진다.
물론 만 19세가 된 다른 아이들도 받긴 했지만, 서준이 신검을 받는다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거 앞에 사람 많으면 오래 걸리더라.”
“맞아. 일찍 가는 게 좋아.”
일찌감치 끝낸 전성민과 강재한, 한지호가 말을 보탰다.
“근데 서준이 신검받는 거, 기사 나는 거 아니야?”
“그러게. 평소처럼 일코해도 컴퓨터엔 다 뜨잖아. 서준이라는 거.”
“신검 때문에 기사가 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준이잖아.”
응응.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청은 언제야?”
“입대는 언제 하려고?”
“신청은 12월 중순이고 입대는 내년 3월에 하려고.”
어느새 철판 위에 닭갈비가 줄어들고 고슬고슬한 밥이 등장했다. 두 나무 주걱을 경건하게 든 한식 자격증 소유자 서준과 이런저런 모임으로 다져진 실력자 양주희가 철판 위 밥을 볶기 시작했다.
휙휙, 능숙한 솜씨에 새하얀 밥알들이 붉은 양념과 자잘하게 남은 닭갈비와 이리저리 섞였다. 약간의 눌은 맛도 느껴지도록 나무 주걱으로 밥알들을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함께 뒤섞이던 참기름과 김가루의 고소한 향이 퍼졌다.
“치즈도 올릴까?”
“그래!”
곧 잘 볶아진 볶음밥 위에 치즈가 올라갔다. 녹기 시작하는 치즈에 여섯 아이의 입에서 오오, 감탄이 흘러나왔다.
한국인의 디저트, 볶음밥을 먹으며 서준과 아이들이 수다를 떨었다.
“그럼 신검 다음엔?”
“영화를 봐야 해.”
“영화?”
서준의 대답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화라면 나올 때마다 보잖아.”
“그러게. 맨날 챙겨보면서.”
“아, 11월에 못 본 거 보려고?”
“하긴 촬영한다고 제대로 볼 시간도 없었겠네.”
서준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것도 그런데…… 이번에 투표를 하거든.”
“투표?”
“응. 아카데미 시상식 투표.”
……!!
아이들의 입으로 향하던 숟가락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추었다. 치즈가 늘어난 그 상태로 손을 멈춘 아이들은 정말로 놀란 듯, 입과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
“……오스카?”
“응. 이번에 아카데미 회원이 됐어.”
……세상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숟가락을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서준이 웃으며 볶음밥을 입에 넣자, 아이들도 무의식중에 서준을 따라 자신의 숟가락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었다. 천천히 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잘 생각해 보면 너무 늦은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서준이가 아카데미 상 받은 게 초등학생 때였잖아!”
“투표를 했어도 진작 했어야 했던 거 아니야?”
남우주연상 수상자이니만큼 곧바로 아카데미 회원이 됐을 터였고, 투표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그전부터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왜 이제 된거임?”
한지호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자격은 충분한데 나이 때문에 늦어졌어. 영화 중에는 청소년이 못 보는 영화도 있잖아. 그럼 전체관람가나 12세 관람가 영화에만 투표할 수 있을 거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겠지.”
물론 겨우 한 표지만, 한 표 차이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성인만 투표할 수 있대.”
“하긴, 그것도 그렇겠다.”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이 올해부터 수상작을 뽑는 데 힘을 보태게 된 아카데미 회원을 바라보았다.
“이야. 후광 보이는 것 같은데…….”
“진짜 대단하다. 한국인 회원으로는 최연소 아니야?”
“그러게. 얜 나이만 되면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나중엔 영화제 심사위원도 하는 거 아니야?”
“진짜 그럴 듯.”
친구들과 함께 감탄하던 강재한이 문득 든 생각에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것도 서준이 네가 투표할 수 있겠네?”
“그거?”
“ONE 말이야. 김종호 선배님이랑 이지석 선배님이 출연한 영화.”
……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 * *
“귀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이서준 회원님.”
할리우드 영화 [ONE]에 출연했던 단역 배우, 이지석이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이건 뇌물, 아니, 선물입니다요.”
잘 익은 소고기들을 앞접시에 내려놓는 이지석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에, 서준이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씰룩거리다, 크흠,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뭐, 영화가 재미있긴 했는데요.”
“그치? 재미있었지?”
“근데 경찰 역으로 나왔던 배우분의 연기가 조금…….”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서준의 모습에 경찰 역으로 나왔던 배우, 이지석이 과장된 표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그 표정에 김종호와 박도훈, 이다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농담이에요. 농담. 엄청 잘했어요, 형. 완전 최고!”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말하는 서준에 이지석이 씨익 웃었다.
“그럼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기승전투표로 흘러가는 이지석의 말에 다들 빵 터졌다. 함께 웃던 이지석이 불판 위에 때깔 좋은 소고기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농담이고. 소신껏 투표해. 아카데미 후보 영화에 출연했다는 타이틀이 갖고 싶긴 하지만,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정말 소신껏 투표할게요.”
한 점의 사심도 없는 소신 투표를 하겠다며, 결백한 얼굴로 말하는 서준에 이지석이 슬그머니 말을 고쳤다.
“……그……약간의 사심은 괜찮을 것 같다. 서준아.”
으하하하.
다시 한번 거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이곳은 이지석의 집.
오랜만에 이서준 사단이 모였다.
“촬영은 잘했고?”
김종호의 물음에 서준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미있었어요. 상업영화랑 달라서 손이 모자라면 음향팀 일도 좀 하고 조명팀 일도 좀 하고 소품팀 일도 하고…… 그랬어요.”
“독립영화가 그런 느낌이긴 하지.”
각자 자신들이 독립영화를 찍었을 때를 떠올렸다. 재미있을 때도 있었지만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던 촬영도 있었다.
“무명 때는 그런 자리 하나가 귀했으니까 했지, 지금 하라면 못하지.”
“맞아. 맞아.”
김종호의 말에 이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도훈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이번에 찍은 영화는 언제 어디서 상영하는 거야?”
“첫 상영은 아마 한국 독립영화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관에서는 상영 안 해?”
이다진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아직 배급사가 없어서 정해진 일정은 없어요.”
“아, 맞아. 나 진으로 참여했다고 했지.”
나 진이라니.
그 이름과 아주 연관이 깊은 이다진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박도훈도 청룡님을 떠올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나면 다들 서준인 거 알아서 금방 영화관에 걸릴 것 같은데?”
“맞아요.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플러스에서 나설 수도 있구요.”
“요즘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도 확장하는 추세니까…… 그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플러스에서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을까요? 테이크 마이 머니! 하면서요.”
박도훈과 이다진의 대화에 서준은 스케일이 할리우드급이었던 플러스 한국 지사장을 떠올렸다. 왠지 정말로 그럴 것 같았다.
“한국 독립영화제면 4월인가?”
“어. 그럴걸.”
그사이, 김종호와 이지석은 휴대폰으로 스케줄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이네. 영화제 끝나고 가면 되겠다.”
“그러게.”
김종호와 이지석의 말에 박도훈이 물었다.
“둘 다 무슨 일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오디션 본 영화 있잖아. 그거 4월 말에 크랭크인이거든. 근데 영화제는 4월 중순에 끝나니까 볼 수 있을 것 같아.”
“서준이 영화니까 스크린으로 봐야지.”
“그럼 다 같이 보러 가요!”
이다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지석이 입을 열었다.
“서준이 너도 같이…… 아, 촬영팀이랑 같이 움직이려나?”
“아, 저는 못 갈 수도 있어요.”
응?
네 배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대를 3월에 할 생각이라서요.”
그렇다면 4월에 있을 한국 독립영화제에는 참석 못 하게 된다.
서준의 말에 네 배우가 탄성을 흘렸다.
“내년에 갈 거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들으니까 실감이 나네.”
“그러게요. 진짜 가는구나.”
“근데 서준아. 왜 1, 2월에 안 가고 3월이야?”
이지석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3월 10일이 제 생일이잖아요. 생일 축하해 주시는 새싹분들한테 답장하고 입대하려고요.”
매년 열리는 배우 이서준의 생일 이벤트.
규모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새싹부터]가 생긴 날부터 매년 빠짐없이 이어진 행사였다.
새싹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처럼, 서준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매년 답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년에는 생일에 맞춰서 휴가 나와야지.’
그래야 답장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빙그레 웃은 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투표도 있고요. 첫 투표니까 2차까지 하고 싶어서요.”
“아, 하긴 2차 투표는 2월에 있지.”
서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기사도 없던데, 군대 가는 거 팬분들한테 언제 알릴 거야?”
“그냥 안 알리고 최대한 조용히 가려고요. 새싹분들은 휴식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휴식기가 좀 길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동안 열심히 활동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4월에 상영하는 영화도 있고요.”
“으음…… 근데 숨긴다고 숨겨질지 모르겠네.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들키지 않을까?”
박도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배우들의 모습에, 일반인들은 모르는 능력을 가진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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