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73화
[제목 : 고연에서 제 아내와 아이를 도와주신 분들을 찾습니다.]
<안녕하세요. 내년 4월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예비아빠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11월 1일에 제 아내와 배 속의 아이를 도와주신 분들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로 시작한 글을 최소희가 읽어 내려갔다.
“아내는 너무 정신이 없었던 터라 주위 상황을 잘 살펴보지 못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주변 분들에게 물어물어 이제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오오!
[화]팀 팀원들은 물론이고 [워킹맨!] 멤버들과 제작진까지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최소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전민재 피디와 작가들은 갑작스럽게 굴러들어온 대어에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11월 1일 오후, 고연에서 9인승 승합차를 타고 계셨던, 차에 담요와 핫팩을 가지고 있었던, 대학생들처럼 보였던 분들을 찾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아내도 배 속의 아이도 무사하다는 소식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꼭, 꼭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오오!
다시 한번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거 여러분 맞죠?”
“정확히는 선발대지만…… 맞는 것 같습니다!”
최소희의 말에 팀원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분이랑 아기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러게. 계속 걱정했었는데!”
거짓 한점 없는 학생들의 대화에 [워킹맨!] 제작진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이야기를 슬쩍 예고편으로 내보내면 이번 편 시청률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일단 그 근처 CCTV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확인 작업은 필요했다. 겸사겸사 방송으로 내보낼 장면도 확보하고.
“그러게요. 근데 벌써 월말이라 남아 있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찾아보자고.”
제작진 쪽에서 몇 명이 벌떡 일어났다. 이 게시글과 관련된 CCTV 자료와 목격자들의 인터뷰를 따야 했다. 한시가 급했다.
“이야. 좋은 일 하셨네요.”
“어떻게 된 거예요? 자세히 이야기 좀 해주세요.”
[워킹맨!]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팀원들의 시선이 선발대에게로 향했다. 이 영화 촬영팀의 감독이라고 소개했던 황지윤이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촬영 장소로 가던 길이었어요. 운전하던 팀원이 길가에 앉아 있는 아내분을 발견하고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던 모양이에요. 저희는 전혀 몰랐어요. 그냥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마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셨을 거예요.”
황도윤과 선발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친구가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우더니, 저분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면서 같이 가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가 봤더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어요.”
숨을 죽이고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황지윤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다음엔 남편분한테 연락드리고 차에 있던 담요랑 핫팩 가져오고 구급차를 부른 것밖에는 없어요.”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맞아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게시글 보니까 구급차 올 때까지 계속 아내분 달래줬다면서요.”
[워킹맨!] 멤버들이 열렬히 선발대를 칭찬했다. 금방이라도 박수가 터져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짝짝짝! 박수가 나왔다.
함께 감탄하던 전민재 피디가 ‘그 운전하던 학생분 인터뷰 좀……’ 하고 입을 열려고 할 때, 드론 카메라 촬영감독이 전민재 피디에게 말했다.
“피디님. 지금 차들 들어오고 있습니다. 계속 들어오는데요?”
“……아…….”
SNS 홍보!
그걸 본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민재 피디가 잠시 고민했다.
이쪽도 물론 대어이기는 하지만 SNS를 보고 여기까지 찾아온 시청자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원래 이번 편의 주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얼마나 오고 있어?”
“꽤 많이요.”
크으. 전민재 피디와 작가들의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멤버들 중 하나를 빼서 이 영화 촬영팀의 인터뷰를 맡기고 싶었는데,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영상편지만 찍자. 연락처 알아두면 나중에 인터뷰해도 될 테니까.”
전민재 피디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손님들이 오신다는 소식에 [워킹맨!] 멤버들이 [화]팀 팀원들에게 인사하고는 허둥지둥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우리도 이제 갈까?”
“간식 사도 돼요?”
“아니, 또 먹어?”
“여기 존맛.”
진지한 표정으로 엄지를 척 들어 올리는 후배의 모습에 선배들도 맛이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새로 온 손님들이 오기 전에 바깥 푸드코트에서 간식을 사러 이동했다.
팀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고 마지막으로 식당을 둘러보던 황지윤이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작가 한 명이 다가왔다.
“감독님,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인터뷰요?”
“아, 인터뷰라기보다 영상편지? 랄까. 게시글 올리신 남편분하고 아내분께 답장 같은 걸 찍으면 어떨까 싶어서요.”
황지윤의 시선이 문득, 문밖 모자를 쓰고 있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가 작가에게로 향했다.
아내분과 아이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짧은 영상편지를 남긴 황지윤에게 작가가 물었다.
“아 참, 대학생이면 어디 대학이세요?”
“한국예술대에요.”
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예대의 등장에 작가와 카메라맨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화제덩어리인 학생들이었다.
“여기서 워킹맨 촬영한다고?”
“오! 이건가 봐! 돈가스 VS 제육볶음!”
그사이, 하나둘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럼 감독님. 조심해서 가세요.”
“작가님도 촬영 잘하세요.”
황지윤을 떠나보낸 작가가 카메라맨과 함께 제작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SNS 홍보를 보고 온 손님들로 자리가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근데 김 작가. 한예대면 거기 아니야? 이서준 배우 다니는데.”
“어, 그러네요?”
영화 촬영이라면 배우로 출연한 연기과 학생들도 있을 거고, 그러면 이서준 배우랑도 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대학 먼저 물어볼걸!”
그 이야기를 들은 전민재 피디와 메인작가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도 못 잡겠지?”
“저기 출발하네요.”
창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관광버스와 트럭과 승합차가 보였다. 전민재 피디가 목덜미를 매만졌다.
“근데 있잖아.”
“네.”
“뭔가…… 아주 굉장히 큰 걸 놓친 기분이지 않아?”
“피디님도요? 저도 그래요.”
마지막으로 떠나는 승합차를 보며 [워킹맨!] 제작진은 영 찝찝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 * *
“영상 편지 내가 해도 괜찮았어?”
“네. 지윤 누나도 도와주셨잖아요.”
황지윤의 물음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버터 감자를 입에 넣으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무사하다는 소식만 들어도 괜찮아요.”
“그러게. 이렇게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안심은 되네.”
그때를 떠올린 선발대가 동의했다.
“근데 서준이를 숨길 필요가 있었어?”
서준의 옆에 앉아 구운 오징어를 먹던 황도윤이 입을 열었다.
“나 진으로 이름을 올린 이유가 간섭 때문이잖아. 이제 촬영도 거의 다 끝났으니까 상관없지 않아?”
……그러네?
서준과 황지윤과 선발대가 눈을 끔벅였다.
“아니, 뭐랄까…… 무의식중에 그렇게 됐달까…….”
“맞아. 서준이 존재감도 옅었고…….”
“계속 같이 있다 보니까 그냥 후배1 같아서…….”
“저도 딱히 제가 등장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서 조용히 있었어요.”
[워킹맨!]으로서는 가슴을 칠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화]팀은 그랬다. 당사자인 서준이 밝히지 않는데, 먼저 말할 이유는 없었다.
“후발대 애들도 숨길 줄은 몰랐는데…….”
“우리 단합 완전 잘되는 듯.”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화]팀은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올 때처럼 큰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안다호 : 오는 중이야?
<네. 한 20분 후면 서울이에요.
물론 목적지인 한예대까지 가려면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아, 다호 형.
<고연에서 있었던 일, 글 올라온 거 알아요?
>안다호 : 알아. 모니터링 중이었어.
>안다호 : 너 서울 오면 말해주려고 했지.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있었구나.
<전 조금 전에 들었어요.
>안다호 : 그래?
>안다호 : 그 게시글이 원래 너희 팀이 도와줬던 날, 며칠 뒤에 올라왔거든.
>안다호 : 최대한 빨리 보답하고 싶으셨나 봐.
처음 글이 올라온 건 약 3주 전이라는 소리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이제야 알았을까.’
촬영 때문에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조금 드물긴 했지만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안다호 : 근데 그때 마침 그 주변에서
>안다호 : 기적적으로 상태가 나아진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거야.
>안다호 : 원인을 몰라서 더 난리였지.
……오. 그랬었지.
그 기적의 원인인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그 이야기로 한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떠들썩하긴 했다. 기적이 일어난 병원들을 찾아온 환자들이 있을 정도로. 숙소에서도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안다호 : 그것 때문에 묻혔다가 이제야 발견된 거야.
>안다호 : 남편분도 당황하셨는지 추가 글도 쓰셨더라.
>안다호 : (링크)
[제목: 고연에서 제 아내와 아이를 도와주신 분들을 찾습니다ㅠㅠ(2)]
<……○○터널 사고날 입니다…… ○○터널을 지나려던 예정이었는데, 제 아내를 도와주신다고 멈춘 바람에, 간발의 차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신기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안다호 : 추가글 때문에 화제가 되기 시작했어.
은인들을 정말로 찾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안다호 : 촬영 끝나면 황 감독님이 연락해 보면 좋을 것 같더라고.
>안다호 : 황 감독님도 아셔?
<네.
>안다호 : 그럼 스케줄 맞춰서 연락하는 게 좋겠다.
>안다호 : 인터뷰할지도 모르니까.
>안다호 : 서준이 너까지 언급할지 안 할지도 결정해야 하고.
아.
서준이 눈을 데굴 굴리고 휴대폰을 두드렸다.
<그게요. 다호 형.
<벌써 인터뷰했어요.
<그리고 저희 워킹맨에 나올지도 몰라요.
제작진 반응으로 봐선 100% 나올 것 같았다.
그 메시지를 끝으로 휴대폰이 잠잠했다.
오지 않는 답장에 서준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고장 난 건 아닌데? 고개를 갸웃하는데 답장이 왔다.
>안다호 : ……어쩌다?
어쩐지 ‘……’에 많은 감정이 담긴 것 같아, 서준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그럼 나중에 보자!”
“조심해서 가세요!”
“잘 가!”
한예대 앞에서 내린 [화]팀은 다른 짐은 나중에 치우기로 하고 각자의 짐을 챙겨 흩어졌다.
“다녀왔습니다.”
약 4주 만에 돌아온 집.
변함없는 풍경에 있는 줄도 몰랐던 피곤이 몰려왔다. 제법 쉬면서 촬영을 하긴 했지만 역시 집만큼 편안한 곳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흐느적거릴 것 같은 서준의 귀에 다정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서준아. 고생했어!”
“피곤하지.”
엄마 아빠였다. 짐가방을 내려놓은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아빠도 있었네? 회사는?”
“너 온다고 해서 일찍 퇴근했지. 나머진 희상이가 할 거야.”
이민준의 말에 서준이 킥킥 웃었다.
“밥은? 배는 안 고파?”
“휴게소에서 잔뜩 먹어서 괜찮아.”
서준은 익숙하게 짐을 정리했다. 빨래할 옷과 수건들은 세탁기에 넣고 다른 물건들도 제자리에 두고, 대본이나 콘티도 책장에 잘 꽂아두었다.
깨끗하게 씻고 거실로 나오니, 알록달록한 과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배가 부르다고 했지만, 부모로서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으리라.
기다리고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서준아. 딸기 먹어봐. 달달하고 맛있어.”
“그러네. 맛있어.”
잘 익은 딸기를 먹는 아들을 부부가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영상통화를 자주 하긴 했지만 역시 실물로 보는 게 가장 좋았다.
“촬영은 어땠어? 재미있었어?”
“밥은 잘 챙겨 먹었고?”
“재미있었어. 밥도 잘 챙겨 먹었고. 마지막 날에는 고기 파티도 했어. 아, 오는 길에 워킹맨 촬영하는 거 봤다?”
“워킹맨? 출연한 거야?”
“그게 휴게소에서 음식을 파는 중이었나 봐…….”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온 서준과 부부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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