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572화 (57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72화

서울과 강원도를 잇는 고속도로 휴게소.

SBC 일요일 예능, [워킹맨!]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젠 요리도 해야 해?!”

“오빠. 이거나 저어요.”

박영진이 커다란 국자를 들고 제작진을 보며 외치자, 최소희가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국자를 다시 부글부글 끓는 소스 통으로 옮겨주었다. 박영진이 열심히 소스를 저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이걸 돈 받고 판다고?”

“왜요? 맛있지 않아요? 전 맛있던데.”

오늘 파는 돈가스를 세 접시나 비웠던 정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맛이야 셰프님 레시피라 괜찮지만…… 만드는 게 우리잖아.”

“……그건 그렇지.”

멤버들과 제작진이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다가 손님들 밀려오면 요리가 제대로 될지도 모르겠고.”

“걱정 마세요. 제가 매의 눈으로 살펴볼 테니까요.”

오늘 돈가스와 제육볶음의 레시피를 가르쳐 준 오성급 호텔 주방장을 맡고 있는 셰프가 믿음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장사할 때쯤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휴게소에 사람이 드물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전민재 피디의 말에 돈가스 팀과 제육볶음 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장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워킹맨!-휴게소 식당 대결 편].

“……근데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앞치마를 꽉 졸라매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워킹맨!] 멤버들이 개미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휴게소 풍경에 말문을 잃었다.

언제나 차가 지나다니는 고속도로 특성상 누구 하나라도 중간에 들릴 법도 한데, 주차장에 차가 하나도 없었다. 완전 허허벌판.

“아니, 어떻게 화장실 가는 사람도 없어?”

“그러게요.”

20분 정도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손님의 ㅅ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워킹맨!] 제작진도 당황했다. 점심시간에 온다면 몰려들 손님들에게도, 장사를 하는 다른 식당에도 피해를 줄까 봐 일부러 점심과 저녁의 중간, 애매한 시간대로 왔더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저번에 왔을 때는 꽤 있었지?”

“네. 생각보다 많았어요.”

답사 왔을 때는 제법 끊임없이 손님들이 있었다. 멤버들이 소화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소장님도 이렇게 사람 없던 적은 처음이랍니다.”

조연출의 말에 전민재 피디가 잠시 인상을 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SNS에 여기서 촬영한다고 알리자. 그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들르겠지.”

“넵!”

아무것도 모르고 휴게소에 들른 손님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을 찍고, 홍보 없이 그 손님들의 입과 SNS로 [워킹맨!] 촬영 사실이 알려지길 바랐던 제작진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텅 빈 휴게소를 계속 찍고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제작진 쪽에서 홍보를 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편이 나았다.

“영업시간, 마지막 주문받는 시간 확실하게 적어놓고.”

“넵!”

“멤버들한테도 말…….”

“피디님!”

회의를 하고 있던 전민재 피디와 작가들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드론 카메라로 휴게소 입구를 찍고 있던 촬영감독이었다.

“손님 들어옵니다! 단체인 것 같아요. 관광버스 한 대, 트럭 한 대, 승합차 한 대입니다!”

“오!”

기쁜 소식이었다.

화색이 된 전민재 피디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곧바로 멤버들에게 알리고 촬영 시작하자.”

“어, SNS는 어쩌죠?”

“올렸어?”

“네.”

“그럼 됐어. 리액션은 이 팀만 찍어도 될 거야.”

“근데 버스에 트럭에 승합차라니, 되게 희한한 조합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관광버스면 단체 여행일 거고, 트럭이면 일하는 중일 거고, 승합차면 가족 여행쯤 될 텐데. 이렇게 세 대가 모여 있으니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특이하면 좋지. 방송 내보내기에도 좋고.”

제작진이 간단한 회의를 할 무렵, 소식을 들은 [워킹맨!] 멤버들이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단체 손님이라니!”

“밑반찬 준비나 해!”

휴게소가 시끌벅적해지는 사이, 하늘 위에서 찍는 드론 카메라에 휴게소로 들어온 세 대의 각기 다른 차량이 흰색 선에 맞춰 주차하는 것이 보였다.

승합차에 있던 황지윤이 버스에 있는 김세연에게 연락했다.

“애매하긴 한데, 여기서 밥 먹고 가자.”

-그래!

버스의 문이 열렸다. 하나둘 팀원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아까 들렸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몇몇은 쫘악, 기지개를 켰다. 자연스럽게 하늘을 보게 되었다.

“어?”

“왜 그래요?”

“저기 드론이 있어.”

팀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하늘 위 새가 아닌 새까만 기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장난감은 아니죠?”

“어, 카메라 달린 것 같은데.”

“크기나 모양으로 봐서는 쿼드콥터 같고……”

“아니, 그걸 또 왜 분석하고 있어요?”

미술과 학생들이 떨리는 눈빛으로, 저게 어떤 드론이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영화과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상세한 모델명까지 언급되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촬영하나?”

“아, 그래서 사람이 없는 거 아니야?”

“헐. 그럼 우리도 그냥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영화 촬영이나 드라마 촬영이라면 여기에 서 있는 자체가 방해일 수도 있었다. 촬영 도중 난입한 외부인(그것도 단체)이라니, 자신들의 일이라면 아찔했다.

“어쩔 수 없지. 밥은 다음 휴게소에서 먹자.”

“그러죠, 뭐.”

촬영팀 4학년의 말에 다들 다시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겉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승합차에서 내리려던 서준과 황지윤, 다른 팀원들도 연락을 받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같은 업계 사람들이 잘, 무사히 촬영하길 바라는 마음씨 좋은 촬영팀 4학년이 흐뭇하게 웃으며 버스에 올랐다.

“어, 어?! 저 손님들 다시 버스에 타는데?!”

그런 좋은 의도와는 달리 당황한 제작진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멤버들도 깜짝 놀라 밖으로 튀어나왔다.

“뭐라고? 그냥 간다고!?”

“왜! 갑자기 왜!”

“저희도 몰라요! 드론 보더니 갑자기 다시 버스에 탔어요!”

“형! 영진이 형! 빨리 가서 손님들 데려와요!”

“어? 어? 내가?”

“여기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오빠잖아요! 빨리요!”

“이러다 오늘 촬영분도 안 나오겠다! 빨리!”

SNS 홍보 소식을 모르는 멤버들이 다급하게 박영진을 찾았다. 국민 MC이니만큼 그 어떤 연령층의 손님이라도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쉽게 데려올 수 있을 터였다.

멤버들의 성화에 허둥지둥하던 박영진이 앞치마를 한 채로 휴게소 밖으로 달려나갔다. 박영진 담당 카메라맨이 따라붙고 전 피디와 작가도 따라붙었다. 손님들이야 좀 있으면 SNS를 보고 찾아오겠지만, 이런 그림도 나쁘지 않았다.

“손님! 손님!! 밥 먹고 가세요!! 밥!!”

“돈가스 맛있어요!! 제육볶음도 있어요!!”

어느새 따라 나온 정훈도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외쳤다.

아무도 내리지 않은 승합차와 트럭이 출구로 나가려고 움직이고, 버스도 마지막 한 명이 다시 타려고 할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에 버스에 오르려던 영화과 학생이 뒤를 돌아보았다. 버스에 타고 있던 팀원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에 달라붙었다.

“고기 많이 드릴게요오!!”

“반찬도요!!”

새하얀 앞치마를 입은 낯익은 두 사람이 두 팔로 허공을 내저으며 애절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 뒤로 카메라들도 보였다.

“……오…….”

영화 촬영이 아니라 예능 촬영이었나보다.

* * *

“물은 셀프래!”

“음료수 마실 사람!”

“밖에서 간식 사 와도 돼요?”

“먹을 수 있으면!”

쥐 죽은 듯 조용하던 휴게소 식당이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돈가스 20개! 제육볶음 13개요!”

“네엡!”

“그래!”

덩달아 주방도 바빠졌다. 활기가 넘치는 휴게소에 [워킹맨!] 멤버들과 제작진이 활짝 피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가 좋지!”

“영진이 형! 소스!”

“누나! 세팅 다 됐어요?”

“응! 제육볶음만 있으면 돼!”

열심히 준비해 둔 덕분에 빠르게 음식들이 나왔다.

“돈가스 4개! 나왔어!”

“제육볶음도요!”

단체 손님이라서 그런가 단합이 잘 되어 있었다. 흐름이 막힐 새도 없이, 요리가 담긴 쟁반들이 빠르게 테이블 위로 옮겨졌다. 착착착, 팀원들의 손에 옮겨지는 쟁반들의 모습이 제작진의 카메라에 담겼다.

“마지막 돈가스 나갑니다!”

마지막 요리까지 나가고, [워킹맨!] 멤버들이 한숨을 돌렸다. 주방의 열기 때문에 다들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와, 장난 아니네.”

“그러게요. 겨울인데 땀 나는 거 봐요.”

“물 좀 마실래?”

첫 손님부터 단체 손님이라서 그런지 많이 힘들긴 했다. 예능 촬영이라는 것도 잊고 요리에만 집중해버릴 정도로.

“진짜 요리만 해버린 것 같은데 분량 괜찮아? 아니면 뭐, 인터뷰 좀 할까?”

“그래요. 형. 그거 물어봐요. 아까 왜 다시 가려고 했는지.”

한 멤버의 말에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앞치마를 벗은 박영진이 밖으로 나오고, 다른 멤버들도 숨도 돌릴 겸 시원한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직접 만든 건데, 맛은 어떠세요?”

“앗! 네. 안녕하세요! 제육볶음 맛있어요!”

“저는 돈가스 만들었어요.”

“……아앗…….”

당황한 팀원의 모습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오고 갔다. [워킹맨!] 멤버들도 하나둘 팀원들의 옆에 몰려들었다.

“저 진짜 팬이에요!”

“오! 사인해 드릴……?!”

“소희 누나!”

으하하핳.

시무룩해진 멤버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학생들의 유쾌함에 제작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영화 촬영인 줄 알았다고요?”

학생들이 휴게소에 오자마자 떠나려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네. 드론은 있는데 사람들은 없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래서 촬영에 방해 안 되게 비켜드리려고 했죠.”

“맞아요. 촬영할 때 사람 통제하는 게 제일 어렵잖아요. 근데 예능 촬영일 줄은 몰랐죠.”

“그랬구나.”

이해가 되는 이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근데 다 같이 어디 가는 길이었어요? 단체 여행?”

“영화 촬영이 끝나서 서울로 돌아가던 중이었어요.”

김세연의 대답에 오오오! 멤버들과 제작진 쪽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제작진이 눈을 반짝였다. 영화 촬영팀이라니. 이보다 특이한 일행을 우연히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영화 촬영이라니, 다들 대학생인 것 같은데 대단하네!”

“그럼 이분들은 교수님이시구나!”

정훈의 말에 김성식과 정은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학생은 맞는데, 저분들은 저희 배우분들이에요.”

“앗!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희가 독립영화에만 나와서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정훈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건 편집해야 할까. 전민재 피디가 턱을 긁적였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촬영하러 온 거예요?”

“네. 눈이 필요해서요.”

“눈 하면 역시 강원도죠.”

영화 촬영이라는 이야기에 멤버들이 각자 팀원들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담당 카메라들이 찍고 있으니 나중에 편집할 때 필요한 부분만 빼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촬영은 얼마나 한 거예요?”

“11월 초부터 시작했어요.”

“와. 거의 한 달이나 있었네요. 안 힘들었어요?”

“힘들긴 했는데 재미도 있었어요. MT같은 기분도 들고…….”

“촬영 때문에 술은 거의 못 마셨지만요.”

“마을 어르신이 키우는 진돗개랑 놀기도 하고요.”

“크으. 백구 보고 싶다. 아, 사진 보실래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던 박영진이 문득 떠오른 것을 내뱉었다.

“근데 11월 초면 그 사고 있었던 날 아니야? 그 9중 충돌 사고.”

“아, 그러네?”

11월 초, 터널 9중 충돌 사고.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기적 같은 사고였지만 그래도 큰 사고이기는 했다.

“학생들도 엄청 놀랐겠네요.”

여기 있는 학생들과 전혀 상관없는 사고였겠지만, 뉴스를 보고 놀라긴 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워킹맨!] 멤버들과 제작진들이 이어지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맞아요. 그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철렁하죠.”

“너희 진짜 삐끗했으면 사고에 휩쓸릴 뻔했었지.”

“우리도 완전 놀랐다니까.”

……?

[워킹맨!] 멤버들과 제작진이 눈을 끔벅였다. 묘하게 현장감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그게 무슨?”

“아, 저희 선발대가 사고가 있던 시간에 딱 그 근처에 있었거든요.”

“그 터널로 가고 있었죠.”

……!

어디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옆에서 가던 관광버스 세 대가 사고에 휩쓸렸던 거 생각하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선발대, 미술팀 팀원의 말에 멍하니 있던 전민재 피디와 작가들이 정신을 차리고 9중 충돌 사고에 대해 알아보았다.

“허억! 있어요. 관광버스 세 대……!”

비명 같은 작가의 목소리에 [워킹맨!] 멤버들까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다행히 가던 중간에 일이 생겨서 멈춘 바람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죠.”

“와아…….”

탄성을 흘리던 최소희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허억, 숨을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두드려댔다.

“혹시 선발대, 9인승 승합차 타고 갔어요?”

“? 네.”

“차에 담요랑 핫팩도 있고요?”

“네.”

“잠시 멈췄다는 곳이……혹시 고연이에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놀란 표정의 팀원들과 더 놀란 표정의 최소희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 글…… 여러분 이야기 아니에요?”

휴대폰 화면을 본 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목: 고연에서 제 아내와 아이를 도와주신 분들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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