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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70화 (57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70화

다음 날 아침.

음악이 없는 클라이맥스라.

잠시 생각하던 황지윤이 클라이맥스 장면을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헤죽 웃었다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크흠.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에 권세아가 화색이 되어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른 장면들 곡도 열심히 쓸게요!”

“열심히도 좋지만 어울리게 써 줘.”

“네! 최선을 다할게요!”

권세아가 희희낙락하며 식당을 나섰다.

그런 권세아를 귀여운 동생 보듯 바라보고 있던 김세연과 박우진, 촬영팀이 각자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물론 편집을 하는 건 감독인 황지윤이지만, 영화감독이 꿈인 영화과 학생들인 만큼 지금까지 함께 촬영한 장면들을 각자의 스타일대로 편집해 보고 있었다. 음악이 들어간 버전과 들어가지 않는 버전.

“음악을 넣는 편이 좋지 않아?”

“전 안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서로가 중요시하는 부분이 다른 만큼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편집해 보고 영 아니면 다시 이야기해 봐야죠. 근데 전 음악이 없어도 잘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황지윤 감독의 말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랑, 종이가 넘어갔다.

황지윤이 그린 [화] 콘티의 복사본들 위로 체크 표시가 가득했다. 촬영팀 팀원들의 앞에 놓인 종이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이만큼이나 찍었네.”

“진짜 처음에는 어떻게 하나 했어요.”

첫 시작 때는 떨림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있었다.

생각한 대로 잘 찍을 수 있을까, 아무 문제 없이 무사히 촬영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끝이 벌써 이만큼이나 다가와 있었다.

“촬영할 장면도 이제 몇 신밖에 남지 않았네요.”

“진짜 시간 빠른 것 같아.”

“재미있어서 더 빨리 흐른 것 같지 않아? 촬영.”

“맞아요. 다들 합이 잘 맞아서 좋았죠.”

궂은일도 먼저 팔을 걷고 나서준 소품팀, 몇 날 며칠이고 연구하고 고민하던 미술팀, 눈 밟는 소리가 잘 들어가야 한다며 고생하던 음향팀, 눈에 반사되는 빛까지 고민하던 조명팀, 멋진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촬영팀. 그리고 캐릭터를 최대한 분석해 그대로 연기로 표현한 배우들까지.

“진짜…… 이런 팀원들을 만나는 것도 복이야.”

“그러니까요.”

다들 다른 영화제작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을 도운 적이 있어 이렇게 부드럽게 진행되는 것이 무척 드문 일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숙소 일까지 해야 했으니까.”

청소며 빨래며 식사 당번이며, 눈이 온 후부터는 눈도 치워야 했다.

귀찮았을 텐데도 별말 없이 해준 팀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와하하하!

웃음소리에 황지윤과 김세연, 촬영팀이 밖을 바라보았다. 식당의 통유리창 너머로 팀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온 서준과 오는 길에 만난 건지 왕왕! 짖는 백구도 있었다.

“오늘도 꼬리가 아주 프로펠러네.”

촬영팀 4학년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오오오!

황도윤에게 나무로 된 원반을 받고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이 하하 웃고는 솜씨 좋게 하늘로 원반을 던졌다.

처음일 게 분명하지만, 똑똑한 백구는 단번에 놀이 방법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신이 난 백구가 마구 달려가 멋지게 점프! 단번에 나무 원반을 입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달려와 서준에게 원반을 주었다.

프리스비였다.

“오오!”

식당 안에 있던 촬영팀도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다.

황지윤이 물었다.

“저건 또 언제 산 거래?”

“소품팀이 만들었대.”

“아하.”

다음으로 황도윤이 원반을 던졌다.

잘 던진 건지, 잘못 던진 건지.

잘 날아가던 원반이 그게 원을 돌아 다시 황도윤 쪽으로 날아왔다. 신나게 달려가던 백구가 다시 돌아오는 원반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서준과 팀원들이 아하핳! 웃음을 터뜨렸다.

황지윤이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외쳤다.

“다들 조심해요! 창문 깨지면 큰일 나니까!”

“넵!!”

하고 대답한 서준과 황도윤, 팀원들이 우르르 숙소 밖으로 나갔다.

“……얌전하게 놀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구나.”

이마를 짚는 황지윤에 김세연과 촬영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일정 이야기나 계속해 볼까요.”

“그래.”

왁자지껄한 바깥소리를 배경음 삼아, 황지윤과 김세연, 촬영팀이 회의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 같죠?”

“NG가 적어서 촬영 시간이 줄어든 덕분이지.”

예정했던 촬영 기간은 30일. 이제 7일 정도 남았다.

“남은 장면들은 앞으로 이틀 동안 촬영하면 다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버스를 언제 부를까요? 삼 일 후?”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식당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동안, 숙소 밖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왕왕!

백구가 신나게 하늘을 나는 원반을 따라갔다.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팀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슬슬 돌아갈 준비 하겠지?”

“그렇겠죠. 콘티 확인해 보니까 몇 장면 안 남았더라고요.”

나무 원반을 물고 온 백구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팀원에게 나무 원반을 주었다.

“크으. 진짜 똑똑하다니까……!”

나무 원반을 받은 팀원이 마구잡이로 백구를 쓰다듬어도 백구는 오히려 좋아하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댔다.

휘이익!

나무 원반이 허공을 갈랐다. 흰 눈이 쌓인 위로 새하얀 백구가 열심히 내달렸다.

“……백구는 어쩌지?”

그동안 정이 듬뿍 들었는지 백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울상인 팀원들의 모습에 서준이 쓰게 웃었다.

“마을 어르신이 잘 돌봐주실 거예요.”

“그거야 그렇겠지만…… 아! 백구 장난감 챙겨주고 싶은데 어르신 집에 한번 가 볼까? 서준아. 너 백구 집 어딘지 알아?”

선배의 말에 서준이 데굴 눈을 굴렸다.

존재하지 않는 마을 어르신의 집이 뿅 하고 나타날 리가 없었다.

“저도 산책하다가 만난 거라서 집은 어딘지 몰라요.”

“그럼 백구를 따라가야 하나?”

“산 너머면 어쩌려고. 똑똑한 녀석이라 활동 범위가 넓을지도 모르고.”

“그것도 그러네…….”

선배가 백구를 잡아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백구야. 너 집이 어디야? 멀어? 가까워?”

“왕? 왕? 왕왕!”

못 알아들을 게 뻔한데도 묻는 선배와 나름 대답하는 것 같은 백구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산책할 때 마을 어르신 만나면 백구 장난감 전해드릴게요. 아니면 숙소 사장님한테 부탁해도 되고요.”

서준의 말에 팀원들이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백구와 놀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 먹어요!”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를 끝낸 [화]팀은 다시 촬영을 이어나갔다.

* * *

모두가 잠든 새벽.

서준은 조용히 백구의 장난감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눈이 내린 마당에서 8자를 그리며 기다리고 있던 ‘그것’이 서준을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내밀었다. 흥분으로 상기된 두 뺨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서준이 웃으며 백구의 장난감들이 든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어디에다 둘 거야?”

서준의 말에 보자기를 품에 안은 ‘그것’이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택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클라이맥스를 촬영했던 언덕 쪽이었다.

서준은 앞서 걸어가는 ‘그것’의 뒤를 따라갔다.

“오. 이거 편한데?”

차로 이동했던 거리였는데, ‘그것’이 힘을 쓴 모양인지 한 번 두 번 땅이 접히더니 금세 언덕에 도착했다. 축지법이었다.

“하나 찾아두면 좋을 것 같네.”

뭐,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이 아니면 못 쓰겠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서준이 앞을 바라보았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아, 언덕 위, 서준이 그렸던 붉은 동백꽃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이리저리 오고 가며 촬영을 했던 탓인지 사람들의 발자국이 많긴 했다. 서준의 것도 있었고 팀원들의 것도 있었다.

‘그것’이 언덕 위로 올라갔다. 서준이 연기한 ‘무명 화가’가 쓰러졌던 장소였다.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의 손짓에 눈이 크게 파이고 깊숙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안에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집어넣었다. 썩지 않도록 주술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구덩이 속 보자기를 보는 ‘그것’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헤헤 웃던 ‘그것’이 그 위에 흙과 눈을 덮었다.

그 모습이 꼭 소중한 뼈다귀를 땅에 묻는 강아지 같았다.

“……진짜 개가 된 건 아니지?”

서준의 말에 절대 아니라는 듯, ‘그것’이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하긴, 저택에는 사람이 드나들어서 놔두기 힘들긴 해.”

응응!

‘그것’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힘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소중히 보관했겠지만, 자신의 안에 남아 있는 ‘서준의 마나’가 이제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인간들이 떠나고 며칠이 지나면 자신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후에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길 기다리게 될 거다.

‘그때까지는 여기 잘 있어 줘.’

쭈그려 앉은 ‘그것’이 헤헤헤 웃으며 원상 복구된 눈 위를 톡톡 두드렸다.

서준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

휙휙-

벌떡 일어난 ‘그것’이 고개를 저었다.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다시 한번 땅이 두 번, 세 번, 네 번 접혔다. 앞서가는 ‘그것’을 따라 걷자 깊은 산 속이었다.

‘그것’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 눈과 마른 풀로 가득한 땅으로 고개를 내리던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 * *

“어? 서준아. 산책 갔다 왔어?”

“네.”

마당에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소품팀 팀장이 서준을 반겼다.

서준의 뒤를 따라오던 백구가 눈을 반짝 빛내더니 소품팀 팀장에게 달려들었다. 힘으로 제일 잘 놀아주는 인간이었다. 으악! 웃음소리와 함께 마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그건 뭐야?”

연기과 1학년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의 손에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아, 마을 어르신을 만났는데 주시더라.”

“마을 어르신이면 백구 주인?”

“응.”

“백구 주인분 만났다고?”

팀원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네. 그래서 백구 장난감들도 다 전해드리고 왔어요.”

“어쩐지. 백구 장난감들이 다 어디 갔나 했어.”

“하하. 백구랑 잘 놀아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건 산에서 직접 캔 도라지래요.”

“오오!”

서준이 내미는 봉투를 받아 든 팀원들이 감탄했다. 잔뿌리 많고 튼실한 도라지가 깨끗하게 손질된 상태로 봉투에 가득 들어 있었다.

킁킁.

몸에 좋은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이야. 직접 캔 거라서 그런지 향도 좋은 것 같지 않아?”

“그러게요. 이거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네. 생으로 먹어도 되고 구워 먹어도 된대요. 오늘 저녁에 고기 구워 먹을 때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 그러자!”

서준의 말에 다들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영화 [화]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뭐, 아직 서울에서 찍어야 하는 게 남아 있지만.”

“여기서 찍을 수 있는 건 다 찍었지.”

황지윤과 김세연이 마음 편하게 늘어졌다. 두 사람의 손에는 고기가 가득 담긴 그릇과 젓가락이 들려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숙소 마당이 시끌벅적했다. 숙소 창고에 있던 바비큐그릴을 꺼내와 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내일 숙소를 떠날 예정이라 있는 음식 재료 없는 음식 재료 모두 써야 했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맥주!”

“소주!”

“소맥!”

오오오!

무슨 합체 주문이라도 된 듯, 잔을 들고 외치는 팀원들의 얼굴이 불콰했다.

“양주도 사 왔어요!”

“와인! 와인도 있어!”

“자! 우리 세아는 포도 주스!”

그동안 촬영 때문에 조심하느라 감질나게 마셨던 탓인지, 폭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일 차 타고 가야 하니까, 멀미 안 나게 적당히 먹어요! 서울 가면 회식 한 번 더 할 테니까!”

“예이!”

대답에서도 느껴지는 신남에 황지윤이 이마를 짚었다. 김세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백구 먹여도 되려나?”

“고기 먹으면 안 될걸요?”

맛있는 냄새에 백구가 안절부절못하며 팀원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팀원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그러나 조금 약을 올리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백구야. 너 이거 먹으면 안 된대.”

“이거 맛있는데, 어쩌냐.”

“왕! 왕! 왕왕!”

“여기 백구 간식도 사 왔지!”

나도 고기. 나도 구운 고기.

으적으적, 강아지 간식을 씹으며 바라보는 백구의 간절한 눈빛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서준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나중에 챙겨줘야 할 것 같았다.

“오. 이 도라지 맛있어요.”

“그러게. 약간 씁쓸하긴 한데 맛있네. 건강해지는 맛.”

백구 주인이 준 도라지들도 그릴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졌다.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하하호호 웃던 배우 김성식과 정은미도 서준이 준 도라지구이를 한입씩 베어 물었다. 음. 맛이 깊다. 생각보다 좋은 맛에 음미하며 씹던 두 사람이 곧 동그랗게 뜨고, 그릇 위에 있는 잘린 도라지구이를 바라보았다.

고기를 나눠주고 있던 황도윤이 두 중년배우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아니…… 이거 도라지가 아닌 것 같아서.”

“맞아. 도라지라기보다…….”

손질되고 잘려져서 잘 구분은 안 됐지만.

“……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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