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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63화 (56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63화

다음 날 아침.

서준과 같은 방을 쓰는 연기과 2학년이 커다란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귀신 같은 건 딱 질색이라 어제 담력 훈련에 참가하지 않고 바로 숙소에 돌아왔는데, 일어나보니 어쩐지 방에 자신밖에 없었다.

“아예 안 들어왔나?”

목을 긁적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지윤과 김세연이 보였다. 꾸벅 아침 인사를 하고 물었다.

“혹시 저희 방 애들 어디 갔는지 아세요?”

“걔들 어제 담력 훈련 끝나고 귀신 이야기한다고 1번 방 갔을걸.”

키득키득 웃으며 말하는 김세연에 2학년도 웃고 말았다. 담력 훈련 뒤에 귀신 이야기라니,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1번 방의 문을 열어보니, 선후배 할 것 없이 8명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문이 열려 찬 바람이 들어와선지 꿈틀거리며 이불을 찾는 황도윤이 보였다.

얼른 문을 닫고 방 안을 둘러보니 한 사람이 누워 있던 것 같은 빈자리도 보였고 반쯤 깬 듯 멍하게 앉아있는 연기과 1학년도 보였다.

“일어났냐? 왜 다들 여기서 자고 있는 거야?”

“……아, 안녕하세요. 형…… 그게…… 어제 서준이가 한 이야기가 너무 무서워서 다들 여기서 잤어요…… 완전 무서웠다니까요. 진짜 겪은 것처럼…… 외국 이야기도 있고, 옛날이야기도 있고…… 이야기가 안 떨어지더라구요…….”

거기에 이서준 배우의 목소리 연기까지 더해지니, 공포 영화 못지않았다.

“근데 또…… 이야기는 재미있어서 끊지를 못했어요. 강약조절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여전히 잠에 취해 늘어지는 목소리지만 대답만은 꼬박꼬박 들려왔다. 2학년이 방 안을 살폈다.

“서준이는?”

“산책 간다고 했어요…….”

저기 비어 있는 공간에서 서준이 잔 모양이었다. 슈퍼스타가 여기에 끼어 잤다는 게 조금 웃기기도 했다.

“이야. 진짜 부지런하네.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도 서준이 아니야?”

“그러게요…… 아, 형…… 저 조금만 더 잘게요…….”

“그래.”

1학년이 베개를 안고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뜨끈한 보일러의 온기에 히죽 웃고는 금세 잠에 빠졌다. 2학년이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 자고 있지?”

“네.”

“어차피 오늘 촬영은 오후부터니까 내버려 두자.”

“그래. 아, 아침 먹을 사람 몇 명인지 알아봐 줄래?”

황지윤과 김세연의 말에 2학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선배 : 아침 먹을 거야?

<네!

체중 감량이나 촬영 같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삼시 세끼 꼭 챙겨 먹는 서준이 2학년 선배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며 저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산책 겸 저택을 둘러보기 위해 일찍 나온 것이었다.

“마당이랑 1층에는 없네.”

기이한 존재가 반응하기 좋게, 선기와 마기를 이리저리 흘리며 마당과 1층을 살펴본 서준의 시선이 이내 2층으로 향했다.

“도윤이 형이 봤다는 게 2층이었지.”

서준은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방 창문에서 봤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어느 방인지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다섯 개의 방이, 왼쪽으로 다섯 개의 방이 있어, 하나하나 열어보기로 했다.

“없네.”

오른쪽 맨 끝의 방부터 살펴보던 중, 왼쪽 세 번째 방까지 와서야 서준은 창문 앞에 서 있는 희미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인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까만 머리칼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고 서준과 눈매가 조금 비슷했다.

‘귀신이라기보다는…….’

정령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아니면, 자연의 기운이 모인 형상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도깨비라면 도깨비일 수도 있었다.

‘꿈요정도 있으니까.’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번 세계’에도 괴상하고 기이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았다.

‘제일 이상한 건 나겠지만.’

어깨를 으쓱인 서준이 입을 열었다.

“안녕.”

벙긋 입을 열었지만 말은 못 하는 모양이다. 조금 시무룩한 기운이 느껴져서 서준이 작게 웃었다.

“제대로 태어난 게 아니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산을 가리킨다.

기이한 존재이니만큼 자신이 무엇이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근처 산들에서 흘러나온 기운들이 뭉쳐져 있었는데, 거기에 서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영향을 끼쳐, 형상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자연의 기운 95%에 내 마나 5%쯤.'

눈매가 닮은 것도 마나의 영향인 것 같았다.

“뭐, 기운이 흐른다고 해서 다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그랬으면 서준이 산으로, 바다로, 야외 촬영을 갈 때마다 그곳에 모인 기운들이 실체화를 해서 한바탕 귀신 소동이 났어야 했다.

[배우 이서준을 따라다니는 귀신?!]

이라는 기사가 났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타이밍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너무 일찍 태어났네.”

‘그것’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서준의 마나가 없었다면, 먼 미래에 산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100%를 채워 완전해졌을 때 태어났을 터였다.

순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이는 ‘그것’에, 서준이 턱을 매만졌다. 일단 기운은 선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산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여기 남을래?”

서준이 마나를 없애주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것’에 동화되지 못한 서준의 마나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때까지 여기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서준의 물음에 그것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아직 남아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근데 지켜야 할 게 있어.”

서준의 허락에 기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것이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기운은 착하지만 의외로 장난기가 많을지도 몰랐다. 선의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생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전부 내 전생이지만.’

서준이 짐짓 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젯밤, 처음으로 인간(황도윤)과 대화 비스무리한 것을 한 그것이 시무룩해졌지만 엄한 서준의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서준이 방으로 들어올 때부터 ‘그것’은 조금 쫄아 있는 상태였다.

자신과 같이 제법 지혜를 가진 기이한 존재들은 단번에 알아볼 거다. 저 인간에게서 흘러나오는 선한 기운과 악한 기운을.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실체화에 힘을 보탠 것도 이 인간의 힘이며, 자신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얌전히 말을 듣는 수밖에.

“두 번째, 함부로 힘을 쓰지 않는다.”

지금 힘쓰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인 것 같은데…….

서준의 주위에서 일렁이는 선기와 마기를 보며 ‘그것’이 눈을 데굴 굴리자, 서준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태어나자마자 라스트 보스와 마주하게 된 ‘그것’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이제 갓 태어난 ‘그것’은 셀 수도 없는 삶을 인외의 존재(몬스터)로 살았던 대선배의 조언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 * *

점심 식사를 끝내고 [화]의 촬영을 위해 왁자지껄 떠들며 저택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그것’이 2층 창문 유리에 딱 달라붙어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서준의 조언을 듣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성인이 아니라 어린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없는데?’

우르르 몰려오는 인간들 중, 조금 전 넘실거리던 선기와 마기는 보이지 않았다. 진짜 한 톨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 갔나? 그럼 힘써도 되는 건가? 인간이랑 놀고 싶은데!’

우물쭈물하던 그것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실체화를 하려는 순간, 저택 마당에서 다른 인간들과 웃으며 떠들고 있던, 평소에는 기운을 숨기고 있는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

그것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 *

“왜? 2층에 뭐가 있어?”

박우진의 물음에 어젯밤 서준에게 실제 경험담 같았던 귀신 이야기들을 들었던 학생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 커튼인가 봐요.”

서준이 웃으면서 말하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는 진짜 귀신 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저도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었는데 연예인들 중에 무당 사주가 많다더라구요.”

“나도 들었어. 진짜로 무당 된 사람들도 있잖아.”

귀신에서 무당으로, 무당에서 사주로, 사주에서 내년 운세로.

화제를 바꿔가며 떠들어대는 사이, 촬영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

* * *

“테이프! 누가 테이프 못 봤어?”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촬영장은 어수선했다. 깜빡 잊은 물건, 놓고 간 물건, 여기저기 놔둔 물건들 사이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는 손길이 분주했다.

“그 근처에 없어? 거기 놔뒀는데.”

“없는……어? 왜 여기 있지?”

소품팀 팀원이 바로 옆에 놓인 테이프에 눈을 끔벅였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확실히 없었는데, 여기 있었다.

“어디서 굴러왔나?”

고개를 갸웃한 팀원이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테이프를 들고 자리를 떴다.

“하하.”

1층에서 분장을 끝내고 2층으로 올라오던 서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황도윤이 물었다.

“갑자기 왜 웃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준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서준을 보며 오들오들 떨던 어린 모습을 한 ‘그것’은 어느새 쪼르르 팀원들을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전선을 밟지 않게 조막만 한 손으로 치워주고 물건을 찾을 때면 먼저 찾아 바로 옆에 놓아주었다. 회의를 하고 있으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어린 모습이라서 그런가, 아역 때가 떠올라 서준이 작게 웃고 말았다.

* * *

“레디, 액션!”

노을빛을 보고. 이른 새벽빛을 보고.

시간이 지날수록 한 뼘보다 작던 커튼 사이의 틈이 점점 넓어졌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민한이 이제는 대답도 들려오는 방문을 열었다. 어두웠던 지난 시간들과 달리 방 안에는 빛이 맴돌고 있었다. 물론 아직 밖처럼 환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도 어딘가 싶었다.

“아침 드세요.”

조용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도련님이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쟁반을 놓는 민한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거칠던 목소리도 차분해지고, 얼굴에도 조금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몸 상태도 나아졌으니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민한이 앞에 있는 한, 방에서도 수저에 손을 대지 않는 도련님이니 아직 무리인 것 같았다.

‘보이기 싫은 거지.’

여전히 떨리는 도련님의 손을 보면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음식이 식기 전에 얼른 용건을 전하고 방을 나가야겠다.

“그림 도구는 눈 올 때쯤 도착하지 않을까, 싶대요. 이씨 아저씨가요.”

민한의 말에 도련님의 눈이 조금 반짝였다.

“눈이라…….”

“한양에도 눈 내리죠?”

“……네. 그런데…… 여기랑은 풍경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잠시 멈칫한 도련님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커튼 사이, 유리창 너머 우뚝 솟은 산들이 보였다.

잠깐 저 산들을 뒤덮는 눈들을 떠올려보았다.

온전히 새하얗기만 할까, 아니면 그 사이사이에 색이 섞여 있을까. 그 색은 무슨 색일까. 햇빛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 빛날까. 새벽에 보면 어떤 느낌이며 달빛을 받으면 어떤 느낌일까. 달빛 한 점 없이 어두울 때는? 주황빛 노을이 질 때는?

“……빨리…….”

수많은 상상과 색과 풍경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벅찬 것 같기도 했고 조금 두렵기도 했다.

무명 화가는 떨리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여전히 자신의 마음과 상관없이 떨리는 손이지만.

“그려보고 싶네요.”

어쩐지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컷! 오케이!”

* * *

“눈 언제 온대?”

기상청이 예고했던 날이 소리소문없이 슬쩍 지나가려고 했다. 어제오늘쯤 첫눈이 내린다고 하더니, 하늘은 잠잠했다.

“기상청이 그렇죠, 뭐.”

그 한마디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팀은 어제까지 눈이 없는 배경의 장면들은 모두 촬영한 상태라 오늘부터 눈이 배경인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막상 일기예보와 달리 눈이 내리지 않아 하루를 홀랑 보내버리고 말았다.

“눈이 내려야 촬영을 하는데…… 눈이 안 내리네.”

황지윤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밤이 되어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훤히 떠 있어 눈은커녕 비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올 거면 빨리 오지.”

“그러게. 어차피 치울 거…….”

몇몇 선배들이 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하고 중얼거리며 조금 초점이 나간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인 데다가 이쪽 길은 [화]팀이 주로 사용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눈이 내리면 치울 사람은 [화]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 내리면 간만에 삽질하겠네요.”

“그러게. 적당히 내렸으면 좋겠다.”

“……일단 내려야 치우든 말든 하지.”

동시에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곤 모두 대답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얼른 눈이 내리기만을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서준이 창밖을 보고 오, 하고 감탄했다.

“눈이다.”

올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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