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62화
마지막 순서로 배정받은 두 학생이 떨리는 손으로 저택의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뭔가가 툭, 하고 머리 위로 떨어졌다. 차갑고 축축한 것. 정수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액체에 온몸의 털이 삐죽 설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으아아악!”
기겁하며 머리를 흔드는 선배를 진정시킨 조명팀 학생이 손전등으로 바닥에 떨어진 것을 살폈다.
“선배. 진정하세요. 천이에요. 천. 물에 젖은.”
후배의 말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 말 그대로 주먹만 한 새하얀 젖은 천이었다. 진정한 선배가 이마를 짚었다.
“……와……뇌가 도는 느낌이야…….”
얼마나 진심으로 돌렸는지 머리가 빙빙 돌았다.
그런 선배를 부축하며 후배가 걸음을 옮겼다. 거실 바로 앞이 계단이었고, 계단을 오르고 조금만 더 가면 2층 도련님 방이었다.
탁 트인 거실이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데, 이상하게도 젖은 천 이후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끝났나?”
“……선배. 그거 플래그잖아요.”
후배의 말에 아차 싶었던 선배가 제 입을 탁탁 쳤다. 취소, 취소를 외치는데 어떻게 스피커를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당에서부터 들려오던 배경음악에서 치직치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큰 거 올 것 같은데요.”
“……으허허허…….”
후배가 손전등으로 주위를 살폈다. 어두운 저택 안, 희미하게 밝기를 조절한 손전등의 빛이 지나갔다. 거실의 벽과 왼쪽 복도로 향하는 통로와 계단과 눈동자와 계단, 오른쪽 복도로 향하는 통로와 거실 벽이 있었다.
……?
“……방금 있으면 안 되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요.”
“…….”
선배는 이미 말을 잃어버린 것같이 가쁜 숨만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었다. 후배 또한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손전등을 다시 계단 쪽으로 돌렸다.
희미한 불빛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중간에 있는 공간을 비추기 시작했다.
먼저 손이 보였다. 그것도 바닥을 짚고 있는.
……왜 신발이 아니라 손?
그리고 두 학생은 아까 손전등으로 비쳤던 높이가 보통 서 있는 모습에서라면 다리가 보이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눈동자가 아니라.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사이에도 손전등은 계속 옆으로 움직였다. 굽혀진 팔꿈치와 무릎과 신발이 보이고, 그리고.
뒤집힌 얼굴이 보였다. 그 안에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창백하다 못해 새하얀 얼굴에 눈과 입이 꺼멓게 분장되어 있었다. 밝은 낮이라면 팬더라고 놀렸을 얼굴이었지만, 어둠 속 희미한 불빛 사이에서는 어마어마한 공포로 다가왔다.
……!
두 학생이 숨도 쉬지 못하고 놀라는 사이, 그것이 움직였다. 뒤집혀 있던 얼굴을 바르게 돌리면서 몸도 엎드리는 듯한 자세로 바꾸었다.
그리고 다닥다닥!
계단에서 빠른 속도로 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커다란 비명과 함께 두 학생이 거실 벽 쪽으로 달라붙었다. 그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 복도로 사라졌다. 다닥다닥, 멀어지는 구두 소리가 소름이 돋으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선배가 주저앉았다. 후배도 어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와씨……저거 누구야?”
머리 위 양털이 조금 줄어들자, 정신을 차린 선배가 입을 열었다.
“옷 보면 황도윤 선배님인 것 같던데…….”
“……얼마만큼 담력 훈련에 진심인 거야. 몸 뒤집어서 기다리는 것도 힘들겠다.”
몸을 부르르 떨던 두 학생이 다시 2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또 무언가 나타날까 싶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휙휙, 차가운 바람과 함께 새하얀 천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제법 익숙해진 덕분인지 많이 놀라진 않았다.
“와악!”
안 놀랐다는 건 아니다.
“들어갈게요.”
그리 멀지도 않은 도련님 방까지 오기에는 너무 길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며 후배가 방문을 열었다. 중앙 테이블보가 덮어진 테이블 위에 시내에서 사 온 ‘참 잘했어요!’ 도장이 놓여 있었다.
“……근데 서준이 나왔었어?”
“아직 안 나온 것 같아요.”
“그럼 이 방에 있거나 돌아가는 길에 나오겠네.”
두 학생이 주위를 휙휙 살피며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갈 때였다.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악!”
하는 작은 목소리도 들렸다.
후배가 오는 내내 소리를 질렀던 선배를 바라보고, 선배가 얼른 고개를 휘휘 저었다. 두 학생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테이블로 향했다. 정확히는 테이블 아래, 테이블보에 가려진 곳. 거기에 뭔가가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후배가 슬쩍 발소리를 내니, 테이블보에서 오른손이 툭 튀어나와 무언가를 찾듯 바닥을 더듬거렸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손에서 당황함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후배와 눈이 마주친 선배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조금 전까지의 공포는 어디론가 날려버린 듯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왼손까지 밖으로 나와 바닥을 더듬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두 학생이 테이블 앞에 쭈그려 앉아, 테이블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열심히 바닥을 더듬고 있던 인영과 눈이 마주쳤다.
“하, 하하, 하.”
분장은 수준급으로 했는데, 왜 안 무서운지 모르겠다.
푸하하하!
어색한 웃음소리에 두 학생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던 서준이 빙그레 웃고는 꼼지락꼼지락 테이블 아래에서 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어설퍼?”
“제가 맡은 게 귀신 연기 못하는 배우잖아요.”
서준이 두 학생의 손등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며 설명했다.
“근데 귀신이라는 게 그냥 걷기만 해도 무서우니까,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아예 웃기는 쪽으로 가기로 했어요.”
“확실히 웃겼다.”
아직도 당황하던 두 손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 선배가 말했다.
“아, 그럼 아까 부딪히는 소리가 났던 것도?”
“연기죠.”
민망한 듯, 어색한 웃음소리로 두 학생의 웃음을 이끌어냈던 것도 서준의 연기였다.
오.
두 학생이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 * *
마지막 순서까지 지나갔다.
몇 번이고 뒤집힌 상태로 있어야 했던 황도윤이 스트레칭을 했다. 서준의 의견인데 효과가 좋았다.
“이걸 서준이가 했으면…… 아예 뒤집힌 상태로 내려갔으려나.”
그건 진짜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하며 2층으로 향했다.
도련님 방, 창문 앞.
커튼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 앞에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서준이 서 있었다.
“서준아. 이제 가자. 뒷정리는 내일 하고.”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장 때문인지, 차가운 밤공기 때문인지 서준의 주위가 차가웠다. 살짝 몸을 떨던 황도윤이 앞장섰다.
“배 안 고파? 숙소 가면 야식 먹자.”
“네.”
“다들 돌아갈 때 웃으면서 가더라. 잘했어.”
“네.”
신이 난 황도윤이 떠들어대고 서준은 ‘네, 아니요.’ 하고 차분히 대답했다.
1층으로 내려와 막 저택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 황도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뭐 두고 왔어? 휴대폰?”
“네.”
“그럼 기다릴게. 갔다 와.”
“아뇨.”
“어? 먼저 가라고? 그래.”
서준이 꾸벅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도윤이 목덜미를 매만졌다.
“뭐, 마음 상한 일이라도 있나?”
벅벅, 머리를 긁던 황도윤이 저택을 나와 팀원들이 있는 길 쪽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니 2층 창문에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서준이 서 있었다.
“빨리 와!”
고개를 끄덕인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물어보자고 생각하며 황도윤이 걸음을 옮겼다.
길 끝.
조명과 난로가 켜져 있는 밝은 곳에서 [화]팀의 팀원들이 재잘재잘 웃고 떠들고 있었다.
“도윤 선배!”
“아까 계단에 있던 거 너지?!”
“장난 아니었어요!”
담력 훈련을 했던 팀원들이 활짝 웃으며 황도윤을 반겼다. 황도윤도 킬킬 웃으며 몸 뒤집고 기다리다가 팔다리 힘 다 빠졌다며 이야기했다.
“그럼 이제 숙소로 돌아갈까?”
황지윤의 말에 황도윤이 입을 열었다.
“서준이 아직 안 왔는데? 휴대폰 가지러 갔는데 늦네.”
“……?”
황도윤의 말에 일순 침묵이 맴돌았다.
다들 짜기라도 한 듯 의아한 눈으로 황도윤을 바라보았다. 그에 무언의 행동에 황도윤은 저도 모르게 눈을 데굴 굴렸다. 왜, 왜 이래?
“저,”
구석진 곳.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는데요. 도윤이 형.”
박우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서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네가 왜 거기 있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 황도윤이 얼떨떨한 얼굴로 제 앞에 있는 서준과 뒤쪽 저택을 번갈아 보았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애가 왜…… 내 앞에 있지?
“서, 서준아. 언제 왔어? 빨리 왔네?”
“……저 우진 선배님이랑 먼저 왔는데요?”
“……아니, ? 조금 전에…….”
……2, 2층에 휴대폰 놓고 왔다며?
입을 열려는 황도윤의 눈에 고개를 끄덕이는 박우진이 들어왔다. 다른 학생들도 동공지진을 일으키면서도, 황도윤보다 빨리 박우진과 서준이 왔다는 사실을 앞다투어 이야기했다.
“……그럼……아까 나랑 이야기한 건……누구야?”
덜덜 떨리는 황도윤의 목소리와 함께, 오싹한 침묵이 맴돌았다.
* * *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방문을 열었는데, 창문 앞에 하얀색 두루마기를 입고 딱 서 있는 거야!”
황도윤이 열정적으로 조금 전 일을 설명했다. 무섭긴 했는데, 생전 처음 겪는 체험이라 들뜨는 마음이 더 컸다. 바로 전에 일어난 일에 학생들도 헉, 숨을 들이켜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쩐지…… 싸하다고 했어. 게다가 대답을 네, 아니요밖에 안 하더라.”
“어쩐지라고 생각했으면 빨리 알아채라고.”
“근데 진짜 귀신일까요? 지윤 선배님. 여기 그런 이야기 있어요?”
“아니. 그런 건 못 들었는데…….”
오들오들 떠는 학생들의 모습에 서준과 박우진의 눈이 부딪혔다. 그리고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촬영팀 4학년이 알아차렸다.
“뭐야? 박우진. 이서준. 너희 왜 웃는 거야?”
“아, 그게…….”
이제 말할까?
하는 박우진에 서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저였어요.”
……?
심각한 표정으로 토론하고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서준에게 쏠렸다.
“도윤이 형은 귀신 역이라 담력 훈련을 못 했잖아요. 그래서 우진 선배님이랑 같이 계획한 거예요.”
……!
눈을 동그랗게 뜬 학생들이 키득키득 웃고 있는 서준과 박우진, 멍한 표정의 황도윤을 번갈아 보다가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진짜로?”
“네. 제가 연기한 거예요.”
살짝 능력도 썼다.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오늘 밤 못 자겠구나, 생각하던 학생들도 이내 웃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걸 못 알아봐요. 선배님.”
“막상 겪어보면 혹한다니까! 진짜 분위기가 다르다고.”
놀리는 팀원들에 황도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어떻게 나보다 먼저 온 거야?”
“형이랑 헤어지고 난 뒤에 뒷문에서 우진 선배님이랑 만나서 달려왔어요.”
아, 뒷문.
서준의 이야기에 황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2층 갔다가 뒷문까지 가려면 시간 꽤 걸렸을 텐데…… 역시 이서준. 달리기도 빠르네.”
“……네?”
“응? 2층 창문에서 나랑 눈 마주쳤잖아. 내가 빨리 오라고 하니까 고개도 끄덕였고. 여튼 깜짝 놀랐네! 진짜 귀신 본 줄 알고.”
속이 시원해진 황도윤을 학생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한결 가벼워진 웃음소리 사이로, 박우진이 서준의 옆으로 와 작게 속삭였다.
“……너 곧바로 뒷문으로 오지 않았어?”
맞다.
황도윤과 헤어지고 곧바로 박우진이 있는 뒷문으로 뛰어갔다. 2층에는 발을 디디지도 않았다. 서준이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진짜로 보신 것 같은데요. 도윤이 형.”
서준과 박우진이 조용히 황도윤을 바라보았다.
재미있었다며, 진짠 줄 알았다며 유쾌하게 웃는 황도윤과 안도하면서 그런 거에 속냐며 놀리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던 박우진이 입을 열었다.
“촬영할 때 귀신 보면 대박 난다던데…….”
“말하더라도 촬영 다 끝나고 말해야겠어요. 지금 말하면 촬영도 제대로 안 될 것 같고.”
“그래. 그러자.”
박우진이 무덤덤한 성격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준은 생의 도서관에 있는 책 목록을 떠올렸다.
‘내일 한번 살펴봐야겠네.’
마나의 흐름으로 봐서는 악귀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살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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