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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59화 (55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59화

“레디, 액션!”

볕이 좋았다.

“민한아. 이쪽으로 가져오렴.”

“네!”

저택은 아침부터 바빴다.

햇빛이 잘 드는 마당 한쪽에 자리를 펴고 민한과 이씨 아저씨, 고성댁이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든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땀이 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이번 겨울은 거뜬하지 않을까요?”

“글쎄. 새 손님이라도 오시면 모자랄 것 같은데…….”

민한과 고성댁이 한쪽에 쌓인 절인 배추를 보며 말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11월.

김장철이었다.

배추며 마늘이며 고추며 무며. 여기 있는 세 사람과 도련님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읏차!”

민한이 마지막 마늘 더미를 내려놓고 이씨 아저씨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의 손에는 작은 칼과 마늘이 들려있었다.

“근데 저 없을 때는 두 분이 하신 거예요? 이렇게 많은데?”

“예전에는 손님들이 도와주셨지.”

“다들 재미있어하시더라고.”

이씨 아저씨와 고성댁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한은 손을 움직였다.

흙이 묻어있는 마늘의 줄기를 자르고 겉껍질을 벗겨냈다. 다시 한번 껍질을 벗기자 반들반들한 마늘이 나왔다. 와르르, 알알이 빈 통으로 옮겨졌다.

그간 마을 사람들을 도왔던 경험 덕분인지 빠르고 능숙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지금 한양에서 고뿔이 유행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도 몸조심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비상약도 별로 없던 것 같은데…….”

“다음에 사람이 오면 보내달라고 합시다.”

저기 윗지방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더라, 이번에 외국에서 뭐를 가져왔다고 하더라, 세상에는 이런 신기한 물건도 있다더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씨 아저씨와 고성댁의 목소리에 민한도 귀를 기울였다.

산을 굽이굽이 넘어야 하는 촌이라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바깥소식에 어두웠다. 가끔 저택에 들리는 손님들의 모습에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할 정도로 말이다.

“저녁은 겉절이랑 수육을 해 먹을까요?”

“그거 좋죠. 막걸리도 있습니까?”

“마을에서 보내준 게 있어요. 이번에 아주 맛있게 됐다고 하던데요.”

민한이 침을 꼴깍 삼켰다.

고성댁 아주머니가 준비해 주는 세 끼 식사만 봐도 이 저택에 들어온 게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빠르게 마늘을 손질하던 민한이 찌뿌둥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연스럽게 2층 커튼이 쳐져 있는 방으로 시선이 갔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지만 저렇게 계속 방안에서 텁텁한 공기만 마시고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데……

“근데 도련님은 어쩌다 마차 사고가 난 거예요?”

민한의 물음에 무를 탁, 탁, 자르고 있던 이씨 아저씨와 고성댁이 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성댁의 눈빛에 이씨 아저씨가 으음, 침음성을 흘리다 입을 열었다.

“……그게 ……사람을 구하려다가 사고가 났다더라고.”

“아…….”

“……대단한 분이셔. 나이도 어린데…….”

고성댁의 말에 이씨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한도 동의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다쳤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안타까웠다. 거기에 얼마 전 밤에 봤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팔은 이제 계속……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 재활을 한다면 떨림을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림처럼 섬세한 일은 어렵다고 하더라.”

이씨 아저씨의 말에 어째서 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건지 모르겠다.

민한은 조용히 2층, 커튼이 닫혀 있는 방을 올려다보았다.

도련님은 지금.

그때 그 사람을 구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 * *

“컷! 오케이!”

황지윤의 목소리가 촬영장을 울렸다. 황도윤과 김성식, 정은미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았다.

“와. 손에서 마늘 냄새 나는 것 같아.”

“근데 잘 까시던데요.”

“집에서 연습했지. 깐 마늘, 할머니 댁에 가져다 드리니까 좋아하시더라.”

황도윤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촬영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황지윤은 그렇게 결정했다.

왜냐하면 어제 가까운 시내에서 사 온, 촬영 소품인 절인 배추와 김장 재료들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 버릴 수는 없으니, 김장해서 촬영하는 동안 먹기로 했다.

“이야. 촬영장에서 김장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요.”

연기과 2학년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할머니 댁에 가서 김장을 돕기는 했지만 이렇게 촬영장에서 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건 종호 삼촌도, 지석이 형도 못 해봤을 것 같았다.

[화]팀 팀원들이 조금 전 배우들이 앉아 연기를 하던 자리 옆에 돗자리를 펴 나눠 앉았다. 김장의 지휘는 배우 정은미가 맡았다.

“사람도 많으니까 금방 하겠는데?”

“오! 정말요?”

“그럼 먼저…… 수육부터 삶을까?”

웃으며 말하는 정은미에 [화]팀 팀원들이 우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하하 웃어댔다.

냄비 여러 개에 된장을 풀고 각종 채소를 넣고 수육 고기를 가득 넣어둔 정은미가 돌아와 김장을 파트별로 나누었다.

분업화된 김장에서 서준은 칼을 잡았다.

손으로 양념을 만들거나 배추에 양념을 치대는 것과 다르게 날카로운 칼을 다루는 것인 만큼 요리를 제법 해본 팀원들이 뽑힌 것이었다.

“크기는 이 정도로 자르면 돼.”

“네!”

요리에 익숙한 서준과 팀원들인 만큼, 정은미는 슬쩍 돌아본 후 만족하며 얼른 양념 파트로 넘어갔다. 알려준 대로 넣어 섞기만 하면 되는 양념 파트가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탁. 탁.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칫소가 될 하얀 무가 일정한 크기로 잘려 나갔다. 각종 재료들이 통 하나를 가득 채우면 옆 파트로 넘어가 양념과 섞고, 그다음에는 배추 한 잎 한 잎 빨간 양념을 치댔다.

“신청곡 받습니다!”

신나는 노래를 노동요 삼아 들으며 반복 작업을 하다 보니, 김장은 금세 끝나갔다.

“이게 마지막이야!”

김세연이 번쩍 비닐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에는 마치 애니메이션 [사자왕]의 한 장면처럼 겉잎으로 잘 감싼 배추김치가 들려 있었다.

“양념 다 떨어져!”

“앗!”

그렇게 마지막 배추까지 새빨갛게 변해 김치통 속으로 들어갔다.

한쪽에 쌓여 있는 김치통들을 보며 서준이 입을 열었다.

“배추가 많다고 생각했는데……진짜 빨리 끝났네요.”

“서른두 명이나 있으니까. 저것도 금세 다 먹어버릴걸.”

“진짜 그럴 것 같아요.”

내내 마늘을 까고 갈았던 황도윤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아도 금세 살아지던 걸 생각하면, 저 김장김치는 익기도 전에 팀원들의 뱃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조금 빼서 촬영 때 쓰고, 나머지는 우리가 먹죠.”

“수육이 다 됐던데, 숙소에서 먹는 게 낫겠지?”

“수육!!”

“라면도 끓일까요?”

“라면!!”

……어쩌면 오늘 다 먹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 * *

수육과 라면과 김장김치로 배를 채우고.

다음날에도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와. 미치겠다……!”

“괜찮아요. 잘하실 거예요.”

오늘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엑스트란데……되게 긴장되네.”

“물 갖다 드릴까요?”

“아, 고마워.”

엑스트라로 참여하게 된 무대미술과 4학년(소품팀 팀장)이 서준이 건네준 물을 마시고는 깊게 들이마셨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덜덜 떨리는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각오는 했는데, 생각보다 더 떨리네.”

“아무래도 서준이가 나오는 작품이라서, 전 세계적으로 네 발연기가 알려져서 그런 게 아닐……억!”

킬킬 웃으며 말하는 무대미술과 4학년, 친구의 다리를 타격한 소품팀 팀장이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과 애들도 있으니까 걔들이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요. 걔들이 아직 여리여리하잖아요.”

황도윤의 말에 소품팀 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연기과 1, 2학년들이 맡긴 좀 애매한 역이었다.

“게다가 조금 있다가 엑스트라로 촬영하고요.”

“……어쩔 수 없지.”

마른세수를 한 소품팀 팀장이 분장팀의 부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이씨 아저씨를 도와 마당을 청소하고 있던 민한이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잡일은 모두 민한에게 맡긴 이씨 아저씨와 짐을 잔뜩 진 보부상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 명밖에 없는 저택에서 일하면서 바쁘다길래 핑계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바쁜 모양이었다. 하긴. 겨울에는 한가한 농사일과는 달리 상인들은 겨울에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쁠 것 같았다.

보부상이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민한이 이씨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저씨. 상단에서 보낸 사람이에요?”

“어? ……어. 고뿔약 좀 사려고. 근데 여기 근처에서는 안 팔아서 한양까지 가야 한대. 겸사겸사 다른 물건들도 같이 보내달라고 했어.”

한양.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서양인들도 많다고 하니 이곳에는 없는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있을 터였다.

아.

민한이 문득 떠오른 한 사람에 대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잠시만요!”

민한의 외침에 보부상이 뒤를 돌아보았다. 듬직한 모습이 산적 두셋쯤은 가볍게 때려잡을 것 같았다. 그 위용에 잠시 주춤했던 민한이 제 용건을 꺼내놓았다.

“한양에 가신다고 들었는데, 물건 좀 부탁해도 될까요? 돈은 드릴게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보부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런 건 잘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대신 알아서 사주셨으면 하는데…….”

이어지는 민한의 주문에 보부상이 귀를 기울였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한 보부상이 뒤를 돌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막상 말은 했지만 텅텅 빌 제 돈주머니가 떠올라 안절부절못하던 민한이 외쳤다.

“……그! ……제일 싼 걸로요!”

잠시 침묵 후, 황지윤이 외쳤다.

“컷! 오케이!”

걸어가던 보부상, 소품팀 팀장이 그 소리에 비틀거렸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했다.

“대사도 없는데 왜 이렇게 힘드냐? 미안. NG 많이 냈지?”

소품팀 팀장의 말에 함께 연기하던 황도윤과 촬영하고 있던 팀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NG 별로 안 났어요.”

“처음 연기하는 건데 이 정도면 양반이지.”

“진짜 잘하셨어요.”

서준까지 그렇게 말하자, 소품팀 팀장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럼 다음 촬영 갈게요!”

김세연이 외침에 소품팀 팀장이 밖으로 나오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연기과 1학년들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갔다.

* * *

이틀 후, 오후.

저택에서 한참 촬영 중인 팀원들을 두고 미술팀과 소품팀, 서준이 9인승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촬영할 곳.

“진짜 쥐 파먹은 것 같네.”

소품팀 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불에 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평평한 부분과 나무들이 우뚝 서 있는 부분이 확연히 대비되어 보였다.

미술팀 팀장 유서영과 미술팀 팀원들이 조금 뒤로 물러나 선발대가 찍은 사진과 바뀐 게 없나 살펴보고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림을 왼쪽에다가 그려야 되지?”

“네. 여백은 오른쪽에 두고요.”

-/그럼 오른쪽에 있는 나무 기둥 같은 건 치워야겠네요./

노트북에서 들려오는 유창한 영어에 소품팀이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여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소품팀 팀장의 눈빛에 소품팀 팀원들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마테오. 전부 다 치우는 게 좋을까요?/”

서준의 물음에 노트북 건너, 프랑스에 있는 마테오가 미술팀이 촬영한 사진을 보며 말했다.

-/눈이 많이 쌓이면 모르겠지만, 완전히 치우는 게 그림의 완성도에는 좋을 거예요. 새하얀 여백에 점이나 선이 들어가면 별로잖아요. 그것만 눈에 띄고요./

말하던 마테오가 아, 하고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점이나 선이 의도된 거라면 괜찮아요./

“/아뇨. 저희도 없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유서영의 대답에 서준도 동의했다.

“/이 장면은 조금 인위적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감독님도 그렇게 말했고요./”

-/그럼 다 치워야겠네요. 깔끔하게./

마테오의 말에 서준과 유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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